해방사회체계이론

가상의 사상. 통칭 LSS 이론(혹은 LSST). 해방사회체계이론[1]과 해방체계사회주의이론[2] 이라는 말이 혼용된다. 이하는 모두 LSS로 통일한다.

LSS라는 이름은 남태평양 해방 공화국에 위치한 해방사회체계연구소(Liberagita Socia Sistema Institutio)를 중심으로 정세민을 비롯한 여러 사상가들의 이론을 일컫는다. 이 이론은 2028년 세계 혁명의 핵심을 이루는 사상이 되었으며, 현대 사회주의의 큰 흐름 중 하나를 이루고 있다.

그 핵심은 상호 해방적 소통 구조의 건설을 통한 모든 가학의 철폐 로 요약할 수 있다.

배경

LSS는 가학이 심해지던 시대 이를 설명하기 위해 탄생했다. 당시만 해도 가학 이라는 말은 존재하지도 않았으며 사람들은 이를 무엇이라 표현해야 할지, 심지어 이것이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도 알지 못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랜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지속에 의해 새로운 형태의 인간형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이것이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이에 맞서기 위해 만들어진 여러 사상들, 특히 정체성 정치를 필두로 한 기존의 좌파 사상들은 제대로 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 하고 있었다. LSS는 가학에 맞서 구성된 공동체에 세계관을 제시하고 그들이 하나의 구성 원리에 의해 조직되었음을 밝혀 혁명의 단초를 쌓는다.

역사적 배경:

신자유주의 수행성

수행성(performability)란 언어/지식 행위를 통한 실천적인 효과를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수행성이란 신자유주의를 위해 만들어진 여러 지식들이 사회에 실제로 적용됨에 따라 낳는 일정 형태의 실천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하이에크와 포퍼, 프리드먼 등에 의해 만들어진 합리적 인간[3]의 한 형태가 그 스스로를 윤리적 주체로 정립할 때 그가 취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신자유주의 수행성은 물론 1980년대 반동의 시대에 정식화되지만, 그 근본은 근대의 초기부터, 아주 직관적인 데서부터 시작한다. 바로 도덕적 주체로서의 개인을 상정하는 것이 그것이다. 데카르트의 말대로 'Cogito, Ergo Sum'이다. 따라서 인간 개인은 그리고 그의 이성은 도덕적 질서의 기반이 되며, 인간은 이를 실천하는 주체가 된다. 아주 단순해 보이는 이 명제가 어떤 파국적인 결과를 내재하고 있는지 계몽주의 당시의 실천가들은 짐작조차 못 했을 것이다.[4]

이런 이성의 주체로서의 인간은 권리를 통해 자신을 표명하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권리는 생명권이다. 생명권의 쟁취는 자연물과의 대사 과정을 통해 가능해지는 것이 명백해지는 바, 생명권을 스스로 쟁취하기 위해서는 노동을 통해 자연물을 가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를 다시 개인에 의해 점유받기 위해 근대적 소유권이라는 개념이 생긴다.[5]

따라서 개인의 소유권이, 그리고 이러한 소유권을 구성하는 현상적 능력이 권리를 구성하는 주체가 된다. 따라서 소유권에 대한 침해는 권리에 대한 강탈을 넘어 도덕의 체계를 흔드는 것이 된다. 반대로 사회는 이런 소유권이 확립된 자, 즉 상대적 강자들이 참여하는 것이 된다. 반대로 공적인 영역은 이들의 알량한 호의에 기초한 것이 된다. [6]

이렇게 구성된 신자유주의 수행성은 착근된 자유주의가 무너지고 신자유주의 시대가 열리면서 본색을 드러낸다. 2020년대에 나타난 인간상은 차원을 달리 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가난을 다른 사람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태로 규정하면서 죄악시하고 나아가 그러한 상태를 가진 사람에 대한 멸시를 숨기지 않았다. 이들에게 있어 가난 문제의 해결은 사실상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었는데, 이는 그들의 반빈곤 정책이 빈곤자들을 국경 밖으로 내쫒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것에서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현실도피로 받아들여졌다. 따라서 증오감을 숨기지 않는 것은 점점 사회의 표준이 되어갔다.

신자유주의적 수행성은 존엄할 자격에 대한 투쟁이 아주 손쉽게 무시될 수 있다는 것을 아주 확실히 깨닫고 있었으며, 이는 정치 장과 생활세계 내에서 완고한 수행성의 근거가 된다. 요컨대 존엄할 자격에 대한 박탈이 신자유주의적 수행성의 핵심이었다.

물론 신자유주의 수행성에 대해 많은 비판이 쏟아졌다. 우선 구조주의적 비판은 주체가 구조/담론/정동에 의해 구성되므로 사유란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들 주체에 의해 구성된 도덕은 힘의 작용에 다름아니며 궁극적으로는 넘어서야 하거나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기실 주체 중심의 사고관이 역으로 자유주의적 기획을 벗어나지 못 했다는 점이 학계에서 구조주의와 해체론을 토대로 비판이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루이 알뛰세와 미셸 푸코 등은 주체는 구조 혹은 담론으로 대변되는 주체 이상의 것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었다. 푸코는 주체란 권력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언어와 지식으로 대표되는 '담론' 속에서만 활동할 수 있음을 자본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그의 면밀한 분석을 통해 밝혀냈다. 그에 의하면 권력은 우리 스스로가 사용하는 것이며 저항 또한 이 프레임 내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알뛰세는 역시 주체가 힘의 작용을 통해 구성된다고 말하며 주체에 대한 구조의 우위를 주장했다. 이처럼 고전적인 주체 개념은 이미 새로운 사상의 선택지로 작용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수행성은 특유의 직관성에 기초해 이를 반격한다. 말하자면, "사회란 존재하지 않으며 오직 남성과 여성, 가족만이 존재할 뿐이다." (Thatcher, 1979) 사회란 추상적으로 구성된 주체일 뿐이므로 이를 논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는 것은 오로지 개인 뿐이다.

또한 맑스주의적 비판은 가치는 노동에 의해서만 생산되며, 현상에 있어 이들이 은폐될 뿐이라고 비판한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수행성은 착취를 은폐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수행성은 맑스주의에서 말하는 노동가치 라는 것이 과학적/실증적으로 증명될 수 없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착취는 없으며 한계생산성이론이 이를 증명한다고 말이다.

신보나파르티즘과 대안 세력의 부재

이러한 공중의 태도 변화를 바탕으로 정치 장의 지각 변동 또한 일어난다. 2010년대에는 적어도 자유주의적 전통 정치 세력과 극우 포퓰리즘이 손을 잡는 일은 적어도 서구 주요 국가에서는 드문 일이었다. 이를테면 프랑스의 정치 현실에서 이는 마끄롱과 르펜의 대결로 나타났으며, 미국에서 이는 클린턴과 트럼프의, 한국에서 이는 문재인과 홍준표의 대결로 나타났다. 그러나 트럼프의 영향으로 반동주의와 배타주의가 주류 정치권을 휩쓸기 시작하면서, 이들은 점차 기성 자유주의 세력과 융화되기 시작한다. 바야흐로 신보나파르티즘의 시대였다.

대안 진영의 문제는 신자유주의 수행성이 변혁 운동 내에도 스며들었다는 것이었다. 첫째의 경우 샌더스와 멜랑숑 등 좌파의 이상을 외치던 사람들이 무너지면서 더이상 대안이 없어진 탓이 컸다. 둘째의 경우 특히, 전략적 수사의 형태로서만 나타났던 혐오의 미러링은 변혁 운동의 특성 그 자체가 되는 경우가 많아져, 신자유주의적 사회를 충실히 살아내는 피해자로서의 당사자와, 그렇지 못 하고 친밀성을 명목으로 착취를 일삼는 무능한 사람들로 구분되는 수사가 점점 변혁 운동 진영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조직 운동은 커녕 제대로 된 변혁조차 불가능하며, 오로지 개인적 증오만이 게토화된 공동체 내에 쌓일 뿐이었다.

우선 상술하였듯, 68혁명 당시 사상적 전범이 되었던 네오맑시즘의 계보로부터 역사적으로 파생된 정체성정치와 환경정치 등은 20년대 말 이미 위기를 맞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들 운동이 만든 고유의 언어와 생활 양식이 탈근대 사회의 파편화 물결을 정확히 포착해내지 못 하면서 스스로 폐쇄적인 공동체로 귀결된 이유가 컸다. 이들은 점차 중산층-아비투스화 하면서, 신보나파르티즘 동맹의 저항 세력 정도로만 위치를 잡고 있었을 뿐 결코 수권을 위한 세력이 될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피로를 느끼면서 내부에서 '게토화'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졌으며 이들은 LSS의 초창기 성립에 있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의식이 되었다.

맑스주의는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가학들에 대해 비판을 할지언정 그 가학 자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연구하는 바가 없었다. 기실 가학을 주체의 자유로운 활동 속에서만 두고 보자면, 오로지 욕구 충족의 방해에서 확장된 형태만을 가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었으며, 따라서 고전적 자유주의와 다른 사상 내의 '중도파' 정도의 역할만을 자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LSS가 경성 과학 수준의 체계화까지 목표로 하고 시작했음을 감안할 때, 이는 매우 불만족스로운 답에 불과했다.

자유주의 내에 샌델, 드워킨, 왈저 등이 이미 개혁적인 대안을 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LSS가 이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는, 이미 새로운 형태의 착취로 분류된 자기착취에 대해 이들이 제대로 된 설명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기실 현대의 긍정성이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자기PR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개인은 우울감과 탈진에 빠지기 쉽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자유주의의 비판은 외부 강권에 대한 비판으로 회귀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배경: 反가학 공동체들의 출현

이런 상황 속에서 자본주의가 생산하는 가학은 커졌다. 그런데 아직 가학이라는 말이 출현하기도 전에 이에 소극적으로나마 저항하는 반가학 공동체들이 출현했다. 이들은 68혁명 당시의 자유(Libertaire)를 성취하고자 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反가학 공동체들의 탄생 이유를 후술할 시간논리학적 구조에 의해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기능 분화의 전회와 함께 슈퍼코드인 포함/배제-도식의 발달에 따라 사회의 파편화가 이루어지면, 이전의 계급 도식과 유사한 분화 양식이 어느 정도의 유효성을 되찾게 되면서, 소위 상류층과 하류층 간의 공간적 분화가 일어나게 된다. [7] 계급의 분화는 다른 사회 체계와 마찬가지로 당연히 감각을 토대로 유지된다. [8] 이를 통해 계급 의식의 형성이 강제로 이루어진다. 아울러 포함/배제-도식의 심화로 인해 가학의 피해자들이 늘어나게 되며, 이들은 늘어난 계급의식을 경유해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를 건설해 배제 없는 사회를 지향하게 된다.

지배층의 전체 사회 내에서의 분리는 구조에 대한 비판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애초에 지배층이 있어야 이들을 극복할 텐데, 지배층이 눈앞에 없으니 남은 것은 피지배자들끼리의 피튀기는 싸움이었다. 예를 들어, 2010년대에는 자본가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 불가능해지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또는 소생산자와 프레카리아트 간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동시에 피지배자들끼리의 대면이 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서 핵심은 피지배자들 사이에서 나타난 추방자들에 의해, 피지배자들 사이에서 나타나는 자생 공동체에서의 폭력과, 계급투쟁에서 나타나는 괴롭힘이, 사실상 동일한 것임을 인식했다는 데에 있다.

역사적으로 분석했을 때 反가학 공동체들은 기존의 정체성 공동체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의 공동체, 즉 추방자의 공동체에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0년대 후반 정체성 공동체들은 기존 신자유주의의 배제 도식을 답습하면서 많은 배제자를 낳았는데, 이들의 언어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와 공통적인 요소들이 발견됨을 확인할 수 있다.[9] 反가학 공동체는 정체성 공동체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이들 언어에 대한 환멸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증오와 차별 발언에 대한 증언과 재현은 초기 反가학 공동체에서 자주 드러난 특징이다.

우선 분화 도식 자체가 변했다. SNS의 발달은 기존의 공동체를 해체시켰고, 사회 구성원들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정보만을 빠른 속도로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뉴스-피드(News-Feed) 형태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이를 위해 도입된 빅데이터 기술은 자연스럽게 같은 정보를 공유하는 사람들 끼리의 공동체를 구성했다. 동시에 이들 공동체 간의 비교를 바탕으로 경쟁적으로 세워진 적대적 소통의 형식은, 공동체 중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 했던 사람들의 반감을 사는 데에 충분한 목표가 되었다.

反가학 공동체는 추방 공동체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이들 공동체가 추방자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추방자들의 특징은 조직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조직 상태를 해결할 전위 조직으로서 신상황주의가 지목된다. 이들은 일상적인 감정을 다루는 예술 작품을 일상 속에 배치해 상황을 전복하려는 시도들을 통해 형성되었다. 특히 외로움과 우울함에 대한 음악이 일상 속 괴롭힘에 배치됨으로써 얻는 대비 효과가 이들이 노리는 것이었다. 이들에 대한 소비가 202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늘어났음을 통해 反가학 공동체의 토대가 증명 가능해진다. 이들 신상황주의의 핵심은 일상 감정에서부터 가학을 재정의하려 하고, 이로서 가학의 보편성을 증명하려 했다는 것이다. 누구나 겪는 고통와 증오가 있고, 이로서 고통받는 사람들끼리 서로를 보듬음으로서 상황을 조금이나마 개선시킬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이 가진 믿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2010년대 소위 '힐링' 바람과 근본적으로 달랐던 까닭은 기존 힐링 문화가 단순한 재현이나 공감만을 노리거나 현실 도피로 빠져들었던 데 반면에 이들은 확고한 이상향에 대한 문화적 상징을 내세우고 이를 적극적인 반항의 표지로 삼았다는 데에서 나온다. 예를 들어 연극 공동체의 형성을 들 수 있다. 연극 공동체는 가학 상황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를, 이전까지의 관중 역할을 넘어 구성원들이 이를 실제로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함으로서 해방적 상황을 창출해낸다.

따라서 이를 통해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사보타주의 가능성이 마련되었다. 사보타주는 이들 反가학 공동체의 문화가 되었다. 특히 정보가 핵심 자산이 된 이 시대에, 정보를 훔치고 이를 공유하는 것은 이들 反가학 공동체의 자산이자 문화가 되었다. 이러한 사보타주는 지배 체제에 실질적인 균열을 내는 수단이었을 뿐더러 그들 스스로가 '훔쳐낸' 이들 정보를 새로 쓸 수 있게 하는 토대가 되었다. 2010년대의 공유 경제가 결국 자본주의 체제에 충실한 플랫폼 경제로 귀결되었다면, 2020년대에는 소위 장물 경제 라 조롱받았던, 궁극적으로 반사회적인 행위로 이루어진 공동체가 자본주의를 뿌리부터 흔들기 시작했다.

소결: 학문적 배경: 주체 중심주의의 해체 요구

이상의 논의는 신자유주의 수행성이 심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니 오히려 그 때문에, 反가학 공동체와, 이들의 담지자인 추방자가 생겨났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아직 공동체를 구성하기만 했을 뿐 그들 고유의 인식론을 만들지는 못 한 상태였다. 아직까지는 신자유주의 수행성이 추방자의 논리보다 우월한 실정이었던 것이다.

이는 추방자들의 본질인, 가학에 맞서야 하는 자유 개념이 '자유주의'로 대변되는 일련에 사상에 의해 이미 대표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비롯된다. 자유주의의 기본 논리는 추방자 공동체가 만들고자 했던 68혁명의 정신과 의외의 동일성을 갖고 있었다. 주어진 기본 단위로서의 주체를 상정하고 이들의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LSS는 자유주의와의 대결에 주목했다. 자유주의가 근대의 빈곤과 착취를 효과적으로 설명하지 못 하고 심지어 정당화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가 낳는 가학적 상황의 원천을 인정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자유주의가 근본적으로 개인 밖의 실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를 자유주의가 전제한 사회명목론의 문제로 본 LSS는 따라서 '사회' 그 자체의 개념을 정식화하며 시작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강제성을 띈 사회를 미시적 영역에서까지 근본적으로, 과학적/실증적으로 규명할 필요가 생긴다. 이는 기존의 주체중심주의를 급진적으로 해체함으로서만 가능할 것이었다.

학문적 기반: 체계 이론

그래서 이들은 사회체계이론을 끌고 온다. 그것도 아주 전도된 형태로.

철학 이론: 시간논리학

AI 시대이다. 논리학도 변했다. 스펜서-브라운의 시간논리학을 통해 기존의 선형적 체계를 아예 뒤집어버렸다. 구별과 지시과 시간의 도입을 통해 안에서부터 실체를 구성해낸다. 상상과 실체와 관찰은 하나이다. 이는 체계이론의 근본이 된다.[10]

기본 이론: 복잡성 감축 기제

체계이론은 체계를 규정하고 이 체계가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것을 증명해내면서 시작한다. 체계는 자신의 요소와 관계를 하향적으로 구성해내어[11][12] 자신과 환경 사이의 차이를 생산하는 자기생산적이며 재귀준거적인 복잡성 처리 기제이다. 사회 체계는 의미를 바탕으로 자아와 타자의 이중우연성에서 자신의 폐쇄적 구성 원리를 찾아낸다. 이는 체계가 자신만의 코드를 만들고 이 코드의 맹점에서 프로그램을 만듦으로서 가능해진다. 체계는 자신의 기준에 맞는 것을 포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을 배제한다. 이 중 복잡성이 침해되면 병리현상이 생긴다.

심화 이론: 가학의 정식화

이러한 체계는 감정 체계를 포함한다.[13] 즉 구조적으로 생기는 복잡성 침해의 병리현상이 실제 감정 체계로 옮겨올 때, 이것의 적극적인 형태가 가학이 되는 것이다.

이로서 LSS는 가학을 정식화해내는 데에 성공한다.

방법론

이론적 방법론: 의미연결망분석

LSS의 주 연구 수단은 컴퓨터 언어인 Luho이다. LSS는 Luho를 통해 감정에 대한 의미연결망분석을 해 체계의 복잡성과 그 형태에 대해 연구한다.

실천적 방법론: 대안 체계 건설

따라서 LSS는 배제된 자들끼리의 연대를 통해 기존 사회 체계의 기능을 영구히 대체해내는 대안 체계를 건설할 것을 주문한다.[14]

핵심 이론

감정 차원: 평등의 원리

LSS는 체계이론에 의거해 변혁을 도모하고자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체계의 작동 중, 소통 중 부정태거나 긍정태인 것이 소통 자체가 아닌 것으로 나타나거나 기능 자체가 다른 것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이 감정의 영역에서 나타날 때, 특히 직접적으로 나타날 때 이는 가학의 형태를 띈다. 특히 체계의 공간성을 인정할 때 이러한 경우가 자주 생기는데, 이는 가끔 예속적 소통이 도리어 복잡성 증대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소통은 불안정하며 결국에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중추적 소통이 주변부 소통의 복잡성을 침탈하는 병리적 소통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 이를 위하여 주변부 소통이 중심부 소통과 상호작용하며 나아갈 수 있도록 하는 원칙이 필요하다. 목표 자체는 복잡성의 끝없는 증대이나, 이를 위하여는 절차적 정당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궁극적으로 더 빠른 소통 대신 더 많은 소통을 지향하게 하며, 이를 위해 보편적인 소통을 지향하고 의미간 평등을 이끌어낸다. 이는 인격간 평등에까지 연결된다. 따라서 이는 평등의 원리로 불린다.

중추와 말초의 병리 현상

그런데 잠재태와 현실태의 구분에 있어, LSS는 기존의 체계 이론과 다른 입장을 취한다. 기존 체계 이론이 잠재태가 소통의 복잡성 속으로 숨어버린다고 말한 바와 다르게, LSS는 체계의 공간성을 도입함으로써 잠재태가 중추적 소통이 아닌 말초적 소통 어딘가에서는 살아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이들 체계는 따라서 작동에 있어 중추 체계에 의해 고유 복잡성을 침해당함으로써 중추 체계로의 진입을 거부당한다. 이것, 즉 구조적으로 생기는 복잡성 침해의 병리현상이 실제 감정 체계로 옮겨올 때, 이것의 적극적인 형태가 가학이 되는 것이다.

상호적 소통의 원칙들

따라서 LSS는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상호적 소통의 원칙들을 제시한다.

사회적: 상호작용/조직/기능체계
사실적:누가 어떻게 왜 언제어디서 무엇을
시간적: 정보 통보 이해

의 차원에서, 체계들은 상호적 소통의 원칙을 취해야 한다.

체계의 해방적 형식

이건 남태평양 해방 공화국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면 된다.

경세제민 차원: 복잡계 사회주의

감정 차원의 원칙을 물질적 차원으로 옮긴 것이라고 보면 된다.

개미 사회에 대한 연구

경세제민 원칙에 있어 가장 참고가 되었던 것은 이미 해방된 사회의 소통 구조의 모범적 모델로 꼽혔던 개미 사회이다. 개미 사회에서의 자유로운 노동 참여와 사유 재산에 대한 부정, 모든 것의 공유는 경세제민 원칙에 거대한 단초가 되었다.

코드의 변동

기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경제 코드는 개미 사회의 원칙에 맞추어[15] 다음과 같이 변동된다.
소유 → 조직
지불 → 생산

경제 조직의 이원화

그렇기 때문에 조직을 담당하는 소비자 협동조합과 생산을 담당하는 노동자 평의회로 나뉘게 된다. 다시 이는 조직 차원에 따라 나뉘게 된다.
이하의 내용은 남태평양 해방 공화국의 정치경제 단락을 참조하는 것이 빠르다.[16]

경세제민의 조정

다시 이들은 복잡계 원칙에 따라 구성된 자료에 따라 조정을 거친다.

결론: 사회주의의 패러다임 변동

남태평양 해방 공화국을 탄생시켰다.

참고 문헌

  1. (에스페란토: Liberigita Socia Sistema Teorio, 영어: Liberated Social System Theory)
  2. (에스페란토: Liberigita Sistema Socialisma Teorio, 영어: Liberated System Socialism Theory)
  3. 물론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말하는 모델로서의 합리적 인간과는 근본적으로 다름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4. LSS는 근대성 자체가 일종의 파쇼적 행태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5. LSS에 기반한 인류학에서는 논리적 법칙에 따라 도둑질에 대한 개념이 소유권에 대한 개념보다 먼저 나왔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는 Devaskar. (2040). Ŝtelo kondukanta al posedaĵoj? Tempologika Studo pri la Antropologia Evoluado de Posedo.Speranzo: Univeresitad de Speranz 참조.
  6. 권리의 행사자로서의 주체는 근대 윤리학의 핵심이 된다. 전통적 진보 이론은 생명권의 보장을 핵심에 두는 권리 이론을 그대로 지키면서 이를 급진적으로 전회하기 위하여 소유권을 수정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점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으나, 여전히 윤리의 그리고 권리의 주체로서의 주체의 역할이 혼동된다는 비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에 관해서는 윤종희, 『현대의 경계에서』, 생각의 힘, 2015 참조
  7. 대해서는 Bauman, Z. (2011). Collateral Damage: Social inequalities in a global age, Cambridge: Polity Press. 참조
  8. 감각적 분리에 대해서는 Bourdieu, P. (1984) Distinction: A Social Critique of the Judgement of Taste, 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참조. 이에 대한 문학적 표현으로는 봉준호, 「기생충」, 2019 참조.
  9. 이에 대해서는 Kocxanesx, 2052. Formado de percepto de ĝenerala ekskludo: Bazita sur la kompara historio de komunuma formado en la 2020-aj jaroj. Speranz: Universitad de Speranz 참조.
  10. 특히 이 시대 개발된 프로그래밍 언어 Luho는 이를 가속화했다.
  11. 이로서 전체와 부분 간의 관계가 전도된 형태로 규명된다
  12. 이로서 기존의 실증주의적 사고관은 비판적으로 계승된다
  13. 정세민니클라스 루만과 달리 감정을 넓은 의미로 해석한다.
  14. 이것의 궁극적 형태가 바로 남태평양 해방 공화국이다.
  15. 이는 주류경제학과 비주류 경제학의 차이인 분배-생산 문제와도 연관된다.
  16. 남태평양 해방 공화국은 경세제민의 모델을 구성하기 위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사실상 해방사회체계이론 경세제민 차원의 현현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