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rew

앤드루 가
House of Andrew
앤드루.png
국가 잉글랜드 잉글랜드 왕국
작위 미상
본가 랭커스터 가
분가 미상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가문인 앤드루 가에 관한 글이다.

역사

초창기

랭글리의 에드먼드에게는 에드워드 공작와 리처드 백작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에드워드는 1402년에 공작 위를 계승했지만, 후계자 없이 1415년에 전사했다. 리처드는 1415년에 반역죄로 헨리 5세에게 처형됐다. 리처드 백작에게는 제3대 요크 공작이 되는 리처드라는 아들이 있었다.

제3대 요크 공작 리처드는 숙부 에드워드 공작의 요크 공작령과 아버지 리처드 백작의 캠브리지 백작령을 상속받았다. 또한 리처드 2세의 상속인이었던 동생 에드먼드가 사망하면서 리처드 공작의 어머니인 앤 드 모티머의 백작령까지 상속받았다.

장미 전쟁

전쟁의 원인

병약한 헨리 6세를 마음대로 다루던 프랑스 출신 왕비 앙쥬의 마가렛은 영지, 작위, 왕위계승권까지 가진 리처드 공작를 경계했고 제2대 서머셋 공작 에드먼드 보퍼트와 함께 리처드 공작를 견제했다. 결국 요크 가문과 보퍼트 가문의 사이는 험악해졌다. 헨리 6세가 병에 걸리자 리처드 공작은 호국경(Lord Protector)의 자리에 올랐지만 헨리 6세가 회복하자 마자 보퍼트 가문에 의해 정권에서 밀려난다.

1460년에 리처드 공작은 왕위 계승권을 주장했고 자신의 두 아들을 후계자로 삼았다. 10월에 요크 가문은 랭커스터와의 전투에서 승리해 헨리 6세를 생포했다. 하지만 12월에는 오히려 리처드 공작과 차남 에드먼드가 전투에서 패하고 처형당했다.

여러 내분

리처드 공작의 장남 에드워드는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고 워릭 백작 리처드의 지원을 받아 랭커스터를 몰아붙혔다. 그리고 헨리 6세와 앙쥬의 마가렛이 북부에 있는 사이에 타우톤 전투에서 랭커스터의 세력을 괴멸시키고 에드워드 4세로 즉위했다.

에드워드 4세가 왕비 후보인 정혼자 대신 부유한 미망인과 결혼하면서 다시 한 번 왕권에 혼란이 왔다. 에드워드 4세를 국왕으로 추대한 워릭 백작 리처드마저 에드워드 4세를 배신하고 앙쥬의 마가렛과 손을 잡아 1470년에 헨리 6세를 복위시켰지만 에드워드 4세는 1년만에 왕위를 되찾고 헨리 6세를 런던 탑에서 죽인다.랭커스터 왕조의 마지막 왕자 웨스트민스터의 에드워드도 전투에서 전사했기 때문에 랭커스터 왕조의 피는 확실하게 끊어버렸다.

1483년에 에드워드 4세가 사망하고 왕위는 에드워드 4세의 어린 아들 에드워드 5세가 이어받았다. 하지만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자 에드워드 5세의 섭정이였던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는 형이 원래의 약혼자와 결혼하지 않았기에 두 아들은 사생아라는 논리를 내세우며 탑에 가두고 스스로 리처드 3세로 즉위했다.

현대

요크 가문의 역사는 위와 같다. 그러나 요크 가문의 혈통이 단절된 이후로는 요크 가문은 작위로 남게 되었다.

현대 들어서는 전대 요크 공이던 앤드루 앨버트 크리스티안(엘리자베스 2세의 차남)의 아들인(실제로는 2녀만 있고 아들은 없음) 에릭 앤드루가 앤드루 가문(원래는 에드워드라 해야 하긴 한다.)을 이었다.

앤드루 앨버트 크리스티안 공은 엘리자베스 2세(오셀롯 윈저 국왕의 할머니)의 차남으로, 에릭 앤드루 에드워드는 엘리자베스 2세의 손자이다. 나이는 오셀롯 윈저 국왕과 한살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