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 국가(Social Fiction-Nation)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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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국가(Social Fiction-Nation)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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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국가(Social Fiction-Nation)에 관하여

부제 : 가상국가란 무엇인가?

1. 이것은 하나의 회고록이다.

동시에 마라우타인과 가상국가에 사는 모든 동지들에게 고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최근 가상국가계가 요동치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오히려 침잠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2011년 1월부터 올해까지 7~8년 간을 가상국가와 가상사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해왔기에, 지금의 혼란이 이젠 익숙해진 것이다. 지난 7년 동안 언제나 그러하듯 누군가는 권력을 유지하고자 옳지 못한 일을 했고, 누군가는 이를 비방했으며, 누군가는 그 권력을 쟁탈하고자 추악한 일을 했고, 누군가는 이를 그저 관망하였다. 내 개인적인 상황도 있기 때문에, 나는 맨 마지막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예전에는 이러한 사건들의 중심, 못해도 주변에 있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가상국가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관찰하고 구경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예전보다 훨씬 객관적일 수 있었고 동시에 가상국가계에서 살아온 삶을 되돌아볼 수 있었다.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여러분 중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나 역시 가상국가 내에서 제법 오래 있었고, 그 과정에서 환멸도 느꼈고 나 스스로 추악한 일도 해봤으며, 엄청난 고통도 겪었다. 가상국가에 남아 있는 사람 중에서 세컨을 썼다고 공개 시인한 사람은 (현재로서는) 아마도 나 혼자 일 것이고, 조국이 송두리채 털려서 다시 재건해 본 사람도 (현재로서는) 나 혼자일 것이다. 별의별 경험을 갖고 있다보니 아무래도 요즘 상황에 대해 보는 시각도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지 않을까 생각한다. 비록 현재는 가상국제연합에서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하나도 모를 정도의 퇴물이 되었지만 말이다.

요즘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화두는 바로 '가상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주제이다. 이 주제는 가지를 이루며 '우리는 무엇을 위해 가상국가를 하는가', '가상국가란 우리에게 어떤 가치를 갖는가'라는 조그마한 주제들로 나눠진다. 이 조그마한 주제들 역시 매우 중요한 화두들이지만, 이 문제들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우린 가상국가란 무엇인가라는 가장 큰 화두부터 해결해야 한다.

도대체, 가상국가란 무엇인가?

2. 일찍이, '가상국가'라는 시스템에 대해 논의를 하고자 했던 이는 많았다. 신성(이미 많은 이들이 가대국이라는 명칭을 쓰지만, 옛 명칭이 편한 퇴물인 만큼 옛 명칭을 쓰고자 한다,)의 많은 이가 유희론과 사회실험체론 등을 끊임없이 논의하며 가상국가에 대해 정의내리려 했고, 김석윤정을 비롯한 다른 사상가들 또한 가상국가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표명해왔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그 누구도 뚜렷하게 가상국가가 무엇이다라고 정의내린 사람은 없다. 이들의 주장이 모두 쓸모없고, 의미없다는 것이 아니다. 그 주장들 중 개개의 주장에 대해 탄복하거나 공감하는 사람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그 개개의 주장이 모든 이에게 폭넓게, 보편적으로 수용되는 것은 아니다. 유희론은 사회실험체론의 지지자들에게 비판받았고, 사회실험체론은 김석윤정 등으로 대표되는 이들에게 비판받았다. 그리고 김석윤정의 이론 등도 다른 이들에게 비판받았다.

엄밀히 따지면, 이한-한빛 간의 확전될 가능성이 높아보이는 이번 분쟁 또한 이 백가쟁명의 연장선이라고 봐야할 것이다. 이한은 기존의 '가상국가'에 대한 개념 자체를 사실상 부정하고 있고, 한빛과 신성 등은 이러한 개념을 철저하게 지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세부적으로 보면 더 복잡한 문제겠지만, '가상국가론'에 천착하고 있는 내 입장에선 이한-한빛 분쟁도 백가쟁명의 연장선이다. 하지만 나는 가상국가 이론에 대한 백가쟁명이 이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우리가 다른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 이토록 백가쟁명이 이뤄지는 것일까?

그냥 그 중 하나의 이론만 대충 선택해서 그게 옳은 것이라고 선포하면 안 될까?

사실, 이렇게 싸워대는 걸 보면 충분히 귀찮지 않았던가.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우린 이미 그 결과가 어떤 것인지 안다. 가상국가계의 역사를 통해서도, 실제 현실의 역사를 통해서도 말이다. 가상국제연합과 일부 국가들이 사회실험체론만이 옳다고 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 단일-신성 냉전이 발생했고, 당시의 가상국가인들은 하나의 사상만을 강요받았으며, 그 분위기에 환멸을 느낀 이들이 가상국가계에서 등을 돌렸다. 역사는 무엇을 보여주는가? 중세 유럽 사회에 기독교만이 강요받았다고 해서 잘 굴러갔던가? 사제와 교회는 부패했고, 기득권층에 빌붙지 않았던가? 어느 하나의 사상에 대한 철저한 검증이 이뤄지지 않는 한, 그것이 무조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자멸하는 길이다. 역사는 이를 분명히 증명한다.

이야기가 잠시 산으로 갔는데,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보겠다.

왜 이토록 백가쟁명이 이뤄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우리가 가상국가라는 것을 하고 있는데, 이게 뭔지, 그리고 내가 가상국가를 하는 게 잘하고 있는 짓인지 잘 모르겠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판단을 받고 싶어 한다. 우리는 지금 하는 일이 쓸모 있는 일이기를 원하고, 이를 통해 내 가치를 증명받고 싶다. 지금 우리가 방에 틀어박혀서 여러가지 설정을 만들어내고, 글을 써대는 짓이 무의미한 일이 아니라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우리가 갖는 이러한 심리는 이론으로도 나와 있다. A. H. 매슬로의 5단계 욕구이론 중 소속감과 애정의 욕구(Belongingness and Love Needs), 존경의 욕구(Esteem Needs), 자아실현의 욕구(Self-Actualization Needs) 정도가 가상국가를 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동기부여이자 심리는 아닐련지.

하지만 단순히 '욕구 해결'을 위해 가상국가를 한다기엔 우리는 너무 멀리 와버렸다. 욕구 해결을 위해 가상국가를 한다는 명제가 성립되어 버리면, 가상국가는 우리의 욕구를 배출하는 장소로만 국한되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우리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 왕이나 황제를 하고 싶은데 못하니까 가상국가를 한다는 소리가 돼버린다. 그럴바엔 왜 가상국가를 하나? 트로피코나 토탈워 시리즈, 문명을 하면 되지. 그리고 이 소리는 (다소 자기방어적으로 말해,) 우리가 그런 자리에 오르지도 못할 인물들이기 때문에 이런 나만의 세상이나 꾸미고 사는 루저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

또는 가상국가를 하는 이유가 우리의 자아실현을 위해서라고 한다면, 우리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가상국가에서 정치질과 친목질을 하면서 정치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대한민국의 기존 법을 그대로 복붙하면서 새로운 법을 만들고 법학을 배운 양하며, 설정으로 역사를 만들어내면서 역사학을 공부하고 있다고 한다면, 이처럼 허무한 자아실현 방법이 세상이 어디에 있겠는가? 물론 이렇게 설정이라도 만드는 소소한 재미에 빠진 사람이라면 우리가 하는 가상국가의 활동만으로도 충분히 자아실현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과연 그것이 진정으로 그 사람의 잠재력을 모두 끌어내 성공시킨 자아의 실현이라고 봐야 할까 의문이 든다. 그런 자아실현을 하고 싶다면 차라리 거리로 나가라. 나가서 사회 경험을 쌓고, 이런 저런 사람과 부딪혀가며 사는 것이 훨씬 자아실현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허무하고 일시적인 자아실현, 거짓된 그것을 이루기보다는 실패했더라도 진실되고 땀방울로 맺혀 있는 영구적인 자아실현을 시도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

그럼 우린 왜 가상국가를 하는가?

도대체 가상국가가 무엇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토록 집중을 하는 건가?

도대체, 가상국가란 무엇인가?

3. 이 상황에서 나는 가상국가에 대해 다음과 정의내리고 싶다 :

가상국가는 우리의 민낯을 잘 포장하는 수단에 불과하고, 허구에 불과하다.

현재의 가상국가계를 보면, 누가 과연 이 명제에 대해 부정할 수 있을까? 민주주의라는 허울을 쓴 독재국가가 횡행하고, 심지어 디스토피아형 가상국가까지 등장했다. 사실 과거엔 마라우타를 비롯해 유토피아형 가상국가가 판을 쳤던 만큼,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디스토피아형 가상국가가 등장하지 말란 법도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디스토피아형 가상국가가 등장하고 보니 이만큼 가상국가의 폐단을 잘 설명하는 것은 없게 되었다. 위에서 내가 정의내린 결론 또한 디스토피아형 가상국가들을 살펴보다 떠올린 것이다.

진지하게 디스토피아에 대해 고찰하는 사람을 제외하면, (솔직하게 말해서) 디스토피아형 가상국가를 하는 사람들은 '독재자'라는 자리에 매료되어 가상국가를 하는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고 자신의 귀에 달달한 말만 듣고 싶어하는 이들, 현대인의 고질적인 질병인 자존심과 우울증으로 무장한 이들이 현실을 벗어나고 싶어 독재자를 하는 것처럼 보인다. 수많은 잔소리와 훈계로 상처받은 민낯을 권위있는 독재자란 형태의 가면을 사용하여 포장하기 위해 디스토피아형 가상국가를 운영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디스토피아형 가상국가를 운영하는 모든 이들을 비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의 마음대로 가상국가를 이렇게 저렇게 요리하다가, 이에 대해 지적이 들어오면 "디스토피아라서 그렇습니다. 헤헷☆"하며 이리저리 피하려는 뱀장어들이 너무나도 불쾌하여 그렇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우리가 이뤄온 가상국가라는 10년에 달하는 이 프로젝트를 '쓸모없었고 허구에 불과합니다'라고 말하기 너무나 싫다. 나 역시 적지 않은 시간을 이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사람 중 하나이고, 내 청소년기를 가상국가에 소비했기 때문이다. 내 청소년기 돌려주세요 엉엉, 하는 징징거림이 아니라, 나의 삶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 중에 가상국가도 있었기 때문에 나는 가상국가를 이처럼 결론내리기 싫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너무나 분명히 현재의 가상국가를 저렇게 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새로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가상국가에 대한 허무주의와 환멸을 피하면서도, 가상국가를 발전시킬 수 있는 새로운 생각은 없는 걸까?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이 시점에서 나는 이렇게 선포한다.

우리들의 가상국가는 더 이상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 카페 기반의 가상국가는 쌓여있는 행정 작업으로 제대로 굴러가지 못한다고.

= 그러니 철저하게 설정 중심으로만 가상국가를 운영해야 한다고.

과거의 사회실험체론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나의 주장은 철저하게 '관념가국론'적인 입장의 재림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하지만 내가 단순히 사회실험체론에 반감을 가졌다거나, 관념가국론에서 깨달음을 얻어 위와 같은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실재가국론의 입장에서 가상국가를 운영한 결과, 관념가국론에 경도되었다. 그렇다면 왜 나는 가상국가는 철저하게 허구의 것이라는 입장을 갖게 된 것인가.

그 이유는 간단하다.

실재가국론은 카페 또한 가상국가의 중요한 부분임을 주장하면서, 카페 내의 행정과 전자정부가 사회실험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가 운영해본 결과, 카페 내의 온갖 행정과 전자정부의 시스템, 서비스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제 아무리 뛰어난 행정과 서비스를 갖춘들 무얼 하겠는가? 카페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에게는 잠시 편리할 수 있겠으나, 이런 서비스를 제공한 들 무엇을 얻을 수 있고 창조할 수 있겠는가? 여러 카페들끼리 수교를 맺고, 외교관계를 수립한다고 해서 무슨 도움이 되고 이득이 되는가? 정치질에서 촉발된 외교분쟁에서 내 편 늘리기 정도 외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외교관계가 아니던가?

누군가가 카페를 테러하거나 혼란을 초래한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기껏해야 사후재판, 혹은 강탈 정도가 답이지, 과거의 마라우타 셧다운사태나 한비자 테러와 같은 사건이 발생하면 제대로된 수습조차 어려울 수 있다. 한비자 테러야 다행히 한비자가 부매니저 직위에서 저지른 일이기에 다행이었지, 마라우타 셧다운사태의 경우 매니저가 갑자기 잠적한 탓에 제1공화정이 무너지고 제2공화정이 수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 국가라면 이 정도 테러리스트와 직무유기자의 경우 처벌이 확고하지만, 가상국가들은 전부 카페 형태이기 때문에 그 처벌의 수준이 미미하고 그리 높지 않다. 이처럼 가상국가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는 카페 내 행정과 전자정부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뿐더러, 더 나아가 우리를 옭아매는 족쇄에 불과하다. 일부 가상국가의 경우, 대단히 높은 수준의 행정력을 가지고 있지만 정작 허구의 사건과 일을 수습하고자 아까운 행정력만 낭비되고 있다. 더군다나 가상국가의 행정력은 인터넷 시스템이나 프로그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사람을 갈아 만드는 만큼, 그 일을 담당하던 이가 지쳐서 나가떨어지면 아예 행정이 마비된다. 마라우타 제1공화정이 삐걱거리기 시작한 계기가 그랬다. 제대로 된 행정이 돌아가다 멈추는 순간, 그 파급력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쉽게 이야기할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사회실험체론의 실재가국론이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리고 가상국가의 허구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고민 끝에, 나는 가상국가를 결코 하나의 국가나 정치결사체, 혹은 그만한 권력을 쥔 것으로 보지 않게 되었다. 가상국가는 철저하게 가상의 국가이기 때문에 아무런 권력도 없다. 권위와 권력은 이에 대해 동의하고 인정되어야 효력을 발휘할 뿐, 우리가 이를 부정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즉 가상국가에서 하는 모든 정치적 행동은 우리가 동의하는 한 존재하고 인정받지만, 사회로 나가는 순간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이 말에 반박하고 싶다면, 수많은 황제, 왕, 대공, 대통령, 총리, 수상, 총통, 통령이 판치는 가상국가의 지도자 중 사회에 나가 그 지위를 인정받을 수 있는 이가 얼마나 되는지 생각해보라. 아무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쓰디쓴 현실이다.

우리의 지위와 활동과 이야기가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이 부정된다는 말과 진배없다. 따라서 나는 가상국가에 대한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다.

가상국가는 우리의 민낯을 잘 포장하는 수단이며, 허구에 불과하다 : 하지만 그 '허구'라는 틀을 이용해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예고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4.'가상국가'라는 시스템에 대해 많은 이가 고찰했다. 사실 나의 결론 또한 백가쟁명 중 하나에 불과하며, 이것이 옳은지에 대해선 (솔직히 말하자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 고민은 분명 오랜 시간 내가 공들여 해온 만큼, 동지 여러분에게 공개하여 우리 모두 각자의 진솔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이제는 인정하자. 가상국가 속 가면(persona)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추악한 존재들인지 숨겨왔고 또 증명해왔던가. 하지만 가상국가는 이러한 민낯을 보여주는 곳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이상향을 도출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우리의 이상향을 도출할 수 있는 장소라. 이 말만 본다면 사회실험체론이나 지향주의-대안사회론과 내가 이제부터 주장할 소위 'SF 국가(Social Fiction-Nation) 이론'은 큰 차이가 없어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선 주장들과 나의 주장은 전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나의 'SF 국가 이론'(공상사회국가 이론)은 사실 SF 문학에 관한 저서를 읽던 도중 떠오른 것을 정리하다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론적 특성이 다소 '문학'적 시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가상국가에 대해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여러분에게 소개하고 싶다.

가상국가는 허구의 국가이며, '사회적 상상'을 기반으로 하는 가상사회이다. 즉 가상국가란 사회상상 내지 공상사회의 국가에 불과하다. 그렇기 때문에 법적인 효려는 전무하며, 그 권위는 그 소속원이 인정될 때에 한해서만 발휘한다. 그리고 공상과학소설(Science fiction)이 판타지와 달리 '과학적 개연성'이 중요한 차이라면, 공상사회국가의 경우 '사회적 개연성'이 매우 종요한 차이이다. 즉 공상과학소설들이 과학적 개연성을 통해 '정말 같음', '있을 법한 속성'을 가져서 독자들에게 설득력을 준다면, 우리의 공상사회국가는 사회적 개연성을 통해 '정말 같음', '있을 법한 속성'을 가져야 한다. 이 점은 우리의 가상국가들이 (사회실험체론의 표현에 따르면 '교차설정'을 통해) 있을 법한 설정을 만들어 자신들의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점을 눈여겨 보면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공상사회국가(SF Nation)는 왜 필요한가? 이는 공상과학(SF)이 미래 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유도하듯이, 공상사회국가는 우리의 삶과 정치체제, 사회적 문화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상사회국가는 당대의 사회문제를 가상으로 극화하여, 해당 가상국가의 설정에 참여하거나 읽는 이들에게 비판적 사고를 함양시키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따라서 신마르크스 주의, 페미니즘, 탈식민주의(포스트 콜로니즘), 포스트 모더니즘, 퀴어 이론 등이 하나의 설정 내지 상황으로 제시됨으로써 공상사회를 구축해야 한다. 그 결과 공상사회국가는 그 설정에 참여하는 이들이(이 경우에는 공상사회국가의 가상국가인들이,) 이러한 문제를 실제 사회에서 직시할 수 있게 만들거나, 혹은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해결이 어렵다면 적어도 직시라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것이 공상사회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이다.

또한 공상사회국가는 필요충분조건으로 공상과학과 같이 '낯설게 하기'와 '인지작용'이 존재하고, 상호 작용이 있어야 하며, 운영자(매니저/설정자)의 실증적 경험에 대한 상상적 대안 또는 이상향이 주요 형식적 장치라고 봐야 한다. 낯설게 하기는 공상사회국가들이 비록 '정말 같음', '있을 법한 속성'을 띠면서도 실제로는 이 국가들이 실존하지 않음을 눈치채게 하는 장치이다. 비유를 들면, 마라우타의 역사적 설정을 살펴보면 '중공군의 침입과 민주화 운동'이라는 있을 법한 설정이 있지만, 아무리 봐도 이것이 가짜라는 인지 작용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낯설게 하기이다. 또 설정 또는 하나의 상황에 대해 그 가상국가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상호작용을 하며 그 일을 해결하거나 수습, 겪어야 한다. 공상과학 소설과 달리 공상사회국가는 여러 개인이 모여 구성되기 때문이다.

공상사회국가에서 지리적 설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것이 그 국가나 사회의 존망을 좌지우지하거나 그 사회 체제의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은 이상, 지리적 설정이 어떻든 상관 없다. 하지만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설정은 반드시 필요하고 매우 중요하다. 이 설정들은 개개의 공상사회국가의 정체성과 틀을 증명하는 가장 주요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이를 테면 같은 미국이란 지리적 배경을 하고 있더라도, 어느 공상사회국가가 남북전쟁에서 남부가 승리한 과거를 갖고 있고, 어느 공상사회국가는 흑백내전으로 분리된 과거를 갖고 있으며, 어느 공상사회국가가 인디언 독립이 일어났다는 설정을 갖고 있다면, 이 세 국가는 비록 미국이라는 지리적 공통점을 갖고 있더라도 정치적/사회적/문화적 설정이 전혀 상이하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반드시 보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가상국가가 진정한 공상사회국가로 나가기 위해서는, 이러한 설정이 단순히 설정놀음으로만 멈춰서는 안 된다. 이러한 기본적인 설정을 밑바탕으로 하면서도, 앞서 말했던 숱한 사회문제를 하나의 이벤트나 설정으로 반영하여 해당 가상국가인으로 하여금 이를 해결하면서 우리 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직시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를테면 마라우타의 내전 설정을 통해 대한민국의 남북통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여러 장애물이 있음을 제대로 인식하고, 비록 마라우타 내전 수습이라는 가상의 설정이지만 이를 통해 대한민국 통일의 더 나은 방향을 탐구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가상법안이나 가상정책 등이 이뤄지고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어야 한다.

단,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러한 것들이 순수하게 허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점과, 하나의 결론이 도출되기 위해서는 짧은 시간이 아닌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러한 공상은 단순히 '그럴 듯 하기'만 하면 될 뿐, 사회실험이나 사고실험과 같이 굳이 증명할 필요가 없다. 완전히 허상인 것을 증명할 필요가 있는가? 공상사회국가는 단순히 설정을 통해 하나의 가능성을 보여줄 뿐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하나의 설정이 끝나거나 이벤트가 끝날 때마다 이와 관련한 보고서나 브리핑을 작성해 이러한 사회적 의제에 대해 어떻게 다뤘는지 평가할 필요가 있다. 즉 이러한 사회적 의제들이 단순히 유희적 목적으로 소비되어서는 안 되고, 그것을 어떻게 다뤘는지 기록으로 남아야 한다. 그래야 공상사회국가의 목적인 '사회적 의제를 직시하기' 또는 '사회적 의제를 해결할 자력을 기르기'가 가능하다.

즉, 공상사회국가는 단순히 즐거움을 느끼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허구의 설정을 통해 더 나은 사회를 기획하는 것에 목적을 두며, 카페는 단순히 그것을 표현하고 증명하는 장이지 카페 자체가 가상국가로서의 효력을 갖는 것은 아니다. 공상사회국가는 "'허구'라는 틀을 이용해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예고하는 수단"인 것이다.

5.공상사회국가의 원칙이나 최소한의 규정, 그리고 자세한 설명은 다음에 이어서 하도록 하겠다. 말이 다소 두서없고, 혼란스러운 것은 이 이론 자체가 내 머리에서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다는 방증이리라. 그런 만큼 이와 관련한 댓글이나 의견이 달린다면 답글을 달거나 읽으면서 내 생각을 정리해볼 생각이다.

그러니 친애하는 동지 여러분, 많은 의견을 부탁드린다.

"사람은 행동으로 자신의 존재와 가치를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