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LDAT

SOLDAT

개요

SOLDAT(솔닷)은 일반적으로 국방력이 약한 초소형 국민체를 위해 세워진 다국적 용병 기업이다. 설립된지 십여년 정도 된것으로 추정하나, 외부에 드러나기 시작한건 최근에 들어서이다.
가상국가에 외세의 침략, 내전, 테러 등 위기상황 발생시 일정한 금액을 받고 용병을 투입해 수습을 도우는 서비스를 제공하며, 국가적 대형 전면전보단 요인 암살, 요인 및 물품 이송작전 등 소규모 특수작전 등을 주로 수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본사가 위치한 기업이며, 기업 특성상 조직, 규모, 과거 전력 등 많은 부분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기업이다.
프리츠 그레고리오라는 인물이 이 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있으며, 그의 아들 헤르만 그레고리오가 솔닷에서 직접 용병생활을 하며 후계자 교육을 받고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유 전력

이 항목에 나온 솔닷의 전력 규모는 정확한 수치가 아닌, 솔닷에서 공개한 자료와 그동안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추정하는 수치이다.

  • 항공기 5개 대대 규모
  • 침투정 및 함선 7척
  • 정찰 및 침투용 드론 20여대
  • 초정예 요원 약 600여명
  • 일반 보병 1만여명

숑고포비 훈련소 반란 사건

SOLDAT 숑고포비 훈련소 반란사건


숑고포비 훈련소는 미합중국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다국적 용병기업 SOLDAT의 최대규모 훈련소이다. 주로 신병 훈련, 요원 재교육, 정기 훈련 등의 역할을 담당하는 곳이다. SOLDAT의 피닉스 본사 주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SOLDAT 내부에서 굉장히 중요시하는 시설이다.

위키엔 사진이 올라와 있지만, UVN 카페에 숑고포비를 검색하면 당시의 참혹한 유출사진을 볼 수 있다.


숑고포비 훈련소 반란의 배경

프리츠 그레고리오가 경쟁자들을 빠른속도로 재치고 SOLDAT의 최고경영자에 오르며 대형 게혁을 단행하자, SOLDAT 내 일부 세력들이 불만을 품기 시작했다.
프리츠 그레고리오가 일본에 장기출장을 가자, 불만이 많던 특수전략단 3중대 대원들이 숑고포비 훈련소에서 특수전략단의 합동훈련이 예정되어 있던것을 기회로 삼아 합동훈련때 다른 중대를 설득해 함께 피닉스 본사로 진입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지않았고 반란세력과 저지세력의 충돌로 첫 유혈사태가 시작되었다.


2015. 04. 12
프리츠 그레고리오 일본 출장 출발

04. 14
특수전략단 합동훈련 시작
특수전략단 1, 3, 4, 6중대 참석

오전 11시경 
특수전략단 3중대장(앱슨 브라운)이 다른 중대장들에게 함께 피닉스 본사로 진격할 것을 제안

오후 1시경
특수전략단 3, 6중대 반란동참, 1, 6중대 거부
SOLDAT 참모부에 반란조짐 첫 보고

오후 2시경
피닉스 본부에서 SOLDAT 강습전투단 2, 3중대 숑고포비 훈련소에 급파
반란세력, 강습전투단 급파소식 전달받음

오후 4시 52분
특수전략단 3중대장 3, 6중대 합동으로 피닉스 진격, 발포 지시
특수전략단 1, 6중대 숑고포비 훈련소 봉쇄, 반란세력 과 총격전 시작


오후 7시 16분
강습전투단 2, 3중대 숑고포비 훈련소 도착
반란세력 1차 진압시도, 반란세력의 저항으로 실패

오후 9시 48분
강습전투단의 2차 진압시도 성공. 잔당소탕 개시

오후 10시 3분
잔존 반란세력 숑고포비 훈련소 탈출


04. 15

오전 8시 44분
반란세력 수장 특수전략단 3중대장(앱슨 브라운) 사살
반란세력 항복선언

오후 1시 13분
프리츠 그레고리오, 사건 철저한 은폐 지시 및 생포인원 철저한 조사 주문

04. 16
오후 3시 00분
숑고포비 훈련소 반란사건 완전한 종결 선언


반란세력의 잔혹함

반란세력이었던 특수전략단 3, 6중대는 이 반란을 미리 계획했다. 때문에 경량 개인화기가 아닌, 수류탄, 중기관총 등 중화기로 무장해 갔으며, 이를 저지하던 1, 6중대는 큰 피해를 입을 수 밖에 없었다. 반란세력은 다른 특수전력단 단원들이 그들에게 협력하지 않자 무차별적으로 사격하였으며, 당시 숑고포비 훈련소에서 훈련받고 있던 신병들을 인질 및 총알받이로 썻다.


결과

숑고포비 훈련소 반란사건은 SOLDAT에 큰 타격을 주었다. 이 사건으로 반란세력 46명 사망, 62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진압, 저지세력 82명 사망, 66명이 부상을 입었다. 또한 훈련소의 신병 60여명이 대거 휩쓸려 사망했다.
피해규모가 큰것에 대해선 이들은 원래 같은 아군이었기에 서로 피아식별이 잘 되지않은 점이 가장 컷다.
사망자 중에는 수많은 전장에 참여했던 베테랑 대원들이 포함되었을 뿐 아니라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고있던 신병들 또한 포함되어있었다.
또한 당시 숑고포비 훈련소엔 프리츠 그레고리오의 장남 헤르만 그레고리오와 차남 요나스 그레고리오가 훈련을 받고 있었다. 장남 헤르만 그레고리오는 반란 세력에 의해 죽음을 당했고, 차남인 요나스 그레고리오는 주위의 시신들로 몸을 덮어 죽은척을 한 덕분에 살아남았다.
SOLDAT은 이 반란에서 많은 대원들을 잃었으나, 최고경영자의 권한을 더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미 정부의 뒷일들을 봐주고 있었던 SOLDAT이었기에 미 정부는 어떠한 후속조치도 하지 않았으며, 철저히 이 사건을 대중에 은폐했다.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