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분류:대조선국 국왕}} ||<width=100><#972000><-999> {{{+2 {{{#ffffff '''조선 초대 국왕''' }}}}}} || ||<width=100><#972000><-999> {{{+1 {{{#ffffff '''태조 | 太祖''' }}}}}} || ||<table align=right><table width=400><-999> [[파일:태조어진.png]] || ||<-3><#972000> {{{#ffffff 출생}}} || 2022년 9월 30일 [br] {{{-1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자선당}}} || ||<-3><#972000> {{{#ffffff 즉위}}} || 2022년 12월 4일 [br] {{{-1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근정전 }}} || ||<-3><#972000> {{{#ffffff 사망}}} || 2023년 2월 10일 (향년 86세) [br] {{{-1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강녕전 }}} || ||<-3><#972000> {{{#ffffff 능}}} || '''정릉(貞陵)''' || ||<-3><#972000> {{{#ffffff 재위기간}}} || 2022년 12월 4일 ~ 2023년 2월 10일 (69일) || ||<-3><#972000> {{{#ffffff 본관}}} || 전주 이씨 || ||<-3><#972000> {{{#ffffff 휘}}} || 조(鎺) || ||<-3><#972000> {{{#ffffff 부모}}} || 부왕 환조, 모후 [[의혜왕후]] || ||<-3><#972000> {{{#ffffff 형제자매}}} || 형 [[이벽]] || ||<-3><#972000> {{{#ffffff 배우자}}} || 세자빈 [[현빈심씨]], 정비 [[신의왕후]], 계비 [[신덕왕후]] || ||<-3><#972000> {{{#ffffff 자녀}}} || 장남 [[대조선국 인종|인종]] || ||<-3><#972000> {{{#ffffff 종교}}} || 유교 || ||<-3><#972000> {{{#ffffff 신장}}} || 183cm || ||<-3><#972000> {{{#ffffff 묘호}}} || '''태조(太祖)''' || ||<-3><#972000> {{{#ffffff 시호}}} || '''성문신무정의광덕대왕(聖文神武正義光德大王)''' || ||<-3><#972000> {{{#ffffff 서명}}} || [[파일:이성계 싸인.png|100px]]|| ||<-3><#972000> {{{#ffffff 연호}}} || '''덕흥(德興)''' || '''조선의 초대 국왕.''' 묘호는 태조(太祖), 시호는 성문신무정의광덕대왕(聖文神武正義光德大王), 휘는 조(鎺), 연호는 덕흥(德興). 환조와 [[의혜왕후]]의 장남으로 태어나 왕세손(王世孫)으로 책봉되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왕세자(王世子)에 책봉되었으며, 무려 '''114일'''간 왕위를 기다리다가 2023년 7월 1일 '''73세''' 라는 역사상 가장 고령의 나이로 즉위하였다. 명종의 재위 기간 초, 조선은 외세의 압박과 내부의 붕괴로 위태로웠지만 명종은 왕권을 안정시키고 조선을 정비하여 토대를 쌓았다. ==[[파일:조선왕조.png|width=30]] '''업적'''== '''〈 정치 〉''' ・ 사헌부와 승정원 재설치 ・ 과거제 재정비 ・ 한성판윤과 내의원 재설치 ・ 연호 재도입 ・ 효율적이며 실용적인 관직 확대 '''〈 경제 〉''' ・ 경제와 토지 개혁 '''〈 문화 〉''' ・ 카츠오브아이언 재오픈 ・ 조선 경기대회 개최 '''〈 교육 〉''' ・ 성균관 폐지 ・ 홍문관 설치 ・ 세자시강원과 세손강서원 재설치 ==[[파일:현재2.png|width=30]] '''조선 국왕 즉위'''== 국왕으로 즉위한 이조는 '''대조선국을 선포'''하고, '''[[조선 왕조]]를 창립'''하며 '''조선의 초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연호는 '''덕으로 흥하다. 라는 뜻에서 덕흥(德興)으로 정하였다.''' 아버지가 사전적인 이야기도 없이 갑작스럽게 양위하여 많은 짐을 가지게 된 태조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사실상 상왕으로 물러나있던 아버지의 왕족 지위를 폐위시키고, 평민으로 신분을 격하시켰다. 이때 '''패륜 행위'''라는 욕을 먹기도 했으나 당시 민심이 흉흉하던 [[환종]]의 '''폐위가 꼴 좋다는 반응'''도 많았다. 다음날인 11일 장남 이경을 조선의 왕세자로 책봉한다. 2022년 12월 12일, 아버지 이하응이 갑작스러운 의문사로 사망한다. 태조는 아버지 이하응을 [[환종]]으로 추존하였다. 세자빈 [[현빈심씨]]의 사망 이후 내명부가 비어있자 당시 왕대비던 [[의혜왕후]]가 간택을 통하여 안동 김씨의 [[신의왕후]]와 나주 임씨의 [[신덕왕후]]를 각각 왕후와 종1품 귀인에 책봉하였다. 왕후 김씨, 귀인 임씨가 태조와 나이차이가 30~40살이 났기 때문에 '''웃음 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2022년 12월 17일, 광주 이씨의 [[휘빈이씨]]가 세자빈으로 책봉되며 태조는 며느리가 생겼다. 태조의 재위기간은 종교 탄압이 말할 수 없을정도로 매우 많았다. 12월 18일 가톨릭 신자들이 대대적으로 처형당하거나 탄압당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는데 이를 '''덕흥 박해'''라고 한다. 19일 [[태조]]와 [[신의왕후]]의 혼례가 예정되어있었으나 [[신의왕후]]가 고뿔에 걸려 혼례에 참여하지 못하였다. 이에 태조는 [[신의왕후]]를 왕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키고 당시 귀인이던 [[신덕왕후]]를 왕후로 책봉하였다. 폐위된 [[신의왕후]]는 당일 향년 20세로 사저에서 생을 마감하였고 훗날 손주라 볼수 있는 [[대조선국 성종|성종]]때가 되서야 왕후로 복권된다. 12월 20일, 아버지 [[환종]]에 이어서 왕대비던 어머니 [[의혜왕후]]가 훙서하였다. 태조는 의혜왕후라는 시호를 어머니에게 내렸다. 27일 [[신덕왕후]]가 세자빈 [[휘빈이씨]]를 까다가 걸려 '''태조는 [[신덕왕후]]를 교태전에 유폐'''시켰다. 하지만 유폐 이후 태어난 세손 [[대조선국 성종|성종]]과 세자빈 [[휘빈이씨]]가 품위가 떨어지며 날이 갈수록 언행이 심해지자 태조는 [[신덕왕후]]의 유폐를 해제해주고 많은 영향력을 실어주었다. 이후 [[태조]]와 [[신덕왕후]]는 세자빈 [[휘빈이씨]]와 사이가 '''안좋아질대로 안좋아졌다.''' 1월 5일, 결국 세자빈 [[휘빈이씨]]가 자진해서 폐위를 요청하여 태조는 [[휘빈이씨]]를 세자빈에서 폐위시켰다. 이후 폐빈 이씨라 불리던 그는 폐위된 당일 사저에서 사망하였으며 훗날 자신의 아들인 [[대조선국 성종|성종]]때가 되서야 세자빈으로 복권되었다. 1월 7일 새며느리로 문경 서씨의 [[정안왕후]]가 세자빈으로 책봉된다. 1월 13일, 조정의 요청으로 태조는 혜민원을 '''폐지'''하였다. 당시 혜민원은 조선의 의료시스템을 총괄하고 있었는데 여러 문제가 나오자 결국 폐지시켰으며 국가의 의료시스템을 민간 상점들에게 맡기었다. 이건 훗날 조선의 의료시스템과 복지시스템이 더 효율적이고 더 편리하게 바뀌는 원인이 되었다. 다음날 [[휘빈이씨]]의 소생이던 원손 [[대조선국 성종|성종]]을 태조는 여러 시험을 거쳐 조선의 왕세손으로 책봉한다. 실록에 따르면 세손 책봉식 이후 여러 연회가 열렸으며 매우 성대하게 진행되었다고 한다. 1월 16일에는 손자며느리로 한양 토씨의 [[원경왕후]]를 보았다. 1월 22일, 태조는 재위 50일 금경축일을 맞이하였다. 조선과 텍사스의 전쟁이 막 진행되던 시기 2월 1일부터 2월 5일까지 세자 [[대조선국 인종|인종]]에게 대리청정을 맡겼다.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글씨 색 (원본 보기) 틀:대조선국 국왕 (원본 보기) 분류:대조선국 국왕 (원본 보기) 대조선국 태조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