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tablealign=right><tablewidth=400><#0B3AA8><tablebordercolor=#0B3AA8><-2> {{{#FFFFFF '''조국찬가}}}''' || ||<-2> - || ||<#FFFFFF> '''지위''' || 관습상 국가(國歌)[* 직접적인 법률상 근거는 없다.] || ||<#FFFFFF> '''제정시기''' || 미상 || ||<#FFFFFF> '''근거법령''' || 없음 || ||<#FFFFFF> '''작사 / 작곡''' || 양명문(작사), 김동진(작곡) || ||<#FFFFFF> '''듣기''' || [[파일:조국찬가 (1984년).mp3]] || 양명문 작사, 김동진 작곡의 곡. [[한국 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5년]]에 작곡되었으며, 때문에 2절에서 '재건'이 강조된다. 제 3, 4공화국 시절동안 애국가보다 더 많이 불렸으며, 반공적인 색채가 상당했기 때문에 박정희-전두환 정부에서 각종 음반에 강제로 끼워넣는 등 프로파간다용으로 많이 사용되었다. 그러나 친일파가 작성했다는 논란과 과거 [[가상 대한민국/역사|군부독재시기]]의 프로파간다 가요라는 점에서 비판받는 점이 없지않아 있다. 이후 자연스럽게 애국가가 잊혀지고 조국찬가가 국가의 자리를 메꿨으며, 진보나 민주당계에서도 큰 비판없이 부르고 있다. [[애국가]]보다 국가적인 색채가 뚜렷하고 곡조도 나름 박력이 있는 편이라 애국가보다 더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은 확실함에 틀림없다. 일화로 [[6월 항쟁]] 당시 외신기자가 찍은 광화문 집회에서 수만의 서울시민이 함께 조국찬가를 부르는 영상이 큰 화제를 부른 적이 있다. 과거엔 2절이 불리지 않고 1절만 불리었으나, 노태우 정권 때 2절이 새로이 보급되면서 다시 불리게 되었다. == 가사 == ||<rowbgcolor=#0B3AA8><tablebordercolor=#0B3AA8>|| {{{#FFFFFF '''한글'''}}} || ||<#FFFFFF> '''1절''' || 동방에 아름다운 대한민국 나의 조국[br]반만년 역사 위에 찬란하다 우리 문화[br]오곡백과 풍성한 금수강산 옥토낙원[br]선진조국이루어 영원한 자유평화 || ||<#FFFFFF> '''2절''' || 꽃피는 마을마다 고기잡는 해변마다[br]공장에서 광산에서 생산경쟁 높은기세[br]드높은 건물들과 푸르고 정겨운 동네[br]늠름하게 나가는 새 세기의 젊은 세대 || ||<#FFFFFF> '''후렴''' || 태극기 휘날리며 벅차게 노래불러[br]자유대한 나의 조국 길이 빛내리라 || 대한민국의 국가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