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2><:><tablealign=right><tablewidth=350><table bordercolor=#FFFFFF><table bgcolor=#FFFFFF> [[파일:대경제국 국무대신기.png|width=50]][br] {{{+2 {{{#FFD732 '''대경제국 국무대신'''}}}}}}[br]{{{#FFD732 '''大敬帝國 國務大臣'''[br]'''The Emperor Advisor and Counselor Minister of Korea Empire'''}}} || ||<:><-4>[[파일:김당정 국무대신.jpg|350px]]|| || {{{#FFD732 '''현직'''}}} || [[김당정|{{{#FFD732 김당정}}}]] {{{#FFD732 (8대)}}} || || {{{#FFD732 '''취임일'''}}} ||<#FFFFFF> {{{#FFD732 경무 27년, 2016년 12월 5일}}} || || {{{#FFD732 '''파벌'''}}} ||<#FFFFFF> [[대경제국 개혁파|{{{#FFD732 개혁파}}}]] || || {{{#FFD732 '''산하 조직'''}}} ||<#FFFFFF> {{{#FFD732 7 위원회}}} || ==개요== '''대경제국 국무대신([[영어]]: The Emperor Advisor and Counselor Minister of Korea Empire, [[한문]]: 大敬帝國 國務大臣)'''은 [[대경제국 국무원]]의 수장이다. ==상세== 국무대신은 [[대경제국 국무원|국무원]]의 수장이자 모든 궁무부 기관들을 대표한다.[* 그렇다고 하여 모든 궁무부 기관의 수장직을 겸하지는 않는다.] 어째 이름만 보면 나라(國)의 정무(務)를 관장하는 신하(大臣)라 해석하여 '''총리'''라 보일 수 있는 직책명인데 엄연히 그냥 [[대경제국 국무원|대경제국 '''국무원''']]의 수장이라는 뜻이다. 이는 [[대경제국 내명부|내명부]]와 [[대경제국 내관|내관부]]를 제외한[* 내명부 수장 직책명은 제조상궁이고 내관부 수장 직책명은 도관상선이다.] 다른 궁무부 기관 수장들에 직책명의 뜻과 동일하다.[* '''궁내'''부의 수장은 '''궁내'''대신, '''원로'''원의 수장은 '''원로'''대신, '''승정'''원의 수장은 '''승정'''대신이다.] [[대경제국 제1제국]] 시기, 현재의 국무대신에 지위에 있던 사람은 [[대경제국 제1제국 궁내부|궁내대신]]이었는데 이때는 [[대경제국 제1제국 궁내부|궁내부]]에 내관부[* 내관부가 궁내부 중앙조직으로 편입되면서 내관부의 업무인 황명출납 사무가 궁내부로 넘어갔다.]와 국무원의 전신인 [[대경제국 제1제국 황립자문원]][* 이쪽은 내관부보다는 상황이 좋아서(중앙조직이 아닌 산하조직으로 설립됨) 본래 업무인 시정자문 사무에서는 어느정도 궁내부에서 위임을 받았다. 그러나 현재처럼 궁무부 기관을 관할하는 업무는 전혀 없었다.]이 포함되어 있어서 궁내부를 감시·감찰하던 [[대경제국 제1제국 승정원|승정원]]과 당시로서는 황후의 손아귀에 있던 내명부를 제외하고는 궁내부가 궁무부 사무를 독점하고 있었기에 자연스럽게 그 궁내부의 수장인 궁내대신이 실질적으로 궁무부 기관들의 실세이자 대표가 되었다. 제정이 폐지된 후 복벽이 된 현재에 와서는 제도가 대대적으로 변혁이 이루어지면서 내관부, 내명부, 승정원 등이 모두 독립적인 궁무부 기관이 되고 궁내부도 더이상은 궁무부의 정무 업무를 맡지 않게 되어 궁내대신의 궁무부 기관들의 대표라는 공백은 [[대경제국 칙령|칙령]]에 따라 궁무부 기관 중 최고기관으로 지정된 [[대경제국 국무원|국무원]]의 수장인 국무대신이 채우게 되었으며 이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역대 국무대신== {{대경제국 역대 국무대신}} ==임면== 국무대신의 임면에 관한 규정은 국무원법이 정하고 있다. {{인용문|①국무대신에 관한 임면권은 황제가 가진다.[br]②전임 국무대신, 혹은 귀족회의는 후임 국무대신을 황제께 건의할 수 있다.[br]③황제는 국무대신을 임면할 때, 미리 5일 전 귀족회의와 법률이 정한 궁무부 기관들에 이를 통보하여야 한다.|국무원법 제00조}} {{인용문|현역 군인귀족은 국무대신에 임명될 수 없으며, 현역을 면하더라도 전역 후 10년의 기간이 지나야 국무대신에 임명될 수 있다.|국무원법 제00조}} ===임명=== 국무대신은 법적으로는 귀족이 아닌 자도 임명될 수 있으나 현재 非귀족 출신 공무원이 국무대신은 고사하고 원칙적으로 귀족만 기관원에 속하게 되는 내관부와 내명부를 제외한 궁무부 기관들의 수장직에 오른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으며, 심지어 귀족이 아닌 평민 출신 공무원의 비율이 다른 궁무부 기관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국무원에서도 평민 공무원이 오를 수 있는 직책 상한선은 사무차관까지이고 정무차관부터는 평민 출신 공무원이 단 한명도 없다. 다른 궁무부 기관들은 안 봐도 비디오이므로 패스. 누구를 국무대신에 임명하는 것은 [[대경제국 황제|황제]] 본인의 자유이지만 관례상 전임 국무대신이 지명(건의)을 한 사람이 국무대신에 오른다. 이때문에 한 파벌의 귀족이 한 번 국무대신에 오르면 그 귀족이 속한 파벌이 지속적으로 국무대신직을 차지하는데 중간에 국무대신이 사망하거나 불명예 사퇴를 한 경우 등에는 [[대경제국 귀족회의|귀족회의]]가 후임 국무대신을 지명하여 그 지명된 인물이 국무대신에 오른다.[* 하지만 이러한 관습이 잡히지 않는 초기에는 그냥 전임 국무대신이 후임 국무대신을 지명하는 형식으로만 이어졌다. 사망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이때 전임 국무대신에게 특별한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전임 국무대신이 속했던 파벌이 아닌 다른 파벌에서 인물을 지명한다. 황제 본인의 결정으로 국무대신에 오른 경우는 초대 국무대신인 [[김의수]] 남작만 있다.--즉 최순실만 없었으면 [[김일선]] 남작 이후 국무대신은 계속 보수파였을 것이다.-- ===파면=== 국무대신에 관한 해임(파면) 권한은 [[대경제국 황제|황제]]에게 있는데 보통 국무대신이 임기를 끝내는 것은 임기 수행 도중 [[평상택|사망]]을 하거나 [[김의수|사임]]을 하는 경우가 과반수다. 그래서 지금까지 황제의 해임으로 직에서 파면당한 국무대신은 없다. 그러나 만일에 [[대경제국 황제|황제]]가 국무대신을 해임한 경우, [[대경제국 귀족회의|귀족회의]] 방침에 따르면 임시회가 소집되어 후임 국무대신을 모색한 후 이를 황제께 건의한다고 한다. ==권한== 국무대신은 국무원법과 [[대경제국 칙령|궁무부에 관한 칙령 제5호]]에 따라 궁무부 기관들의 대표로서 궁무부 기관을 관할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각 궁무부 기관의 직제 및 사무 등을 정하는 칙령에 의하여 중요 궁무부 기관의 수장인 궁내대신, 승정대신, 원로대신을 지휘·감독하고[* 승정대신은 느슨한 감독만 받고 지휘는 안 받는다.] 이들의 해임을 황제께 건의할 수 있다.[* 허나 이는 사문화된 권한으로 아직까지 단 한 번도 발동된 적이 없다.] 이외 '궁무부대표발언권', '궁무부 관련 조칙 부서권(副署權)'[* 만일 궁무부에 관련된 조칙에 국무대신의 서명이 없을 경우, 구속력이 발동되지 않는다.], '국무원원령 발동권' 등을 소유한다. ==예우== 국무대신은 재임기간에만 [[대경제국 황실|황실]]로부터 [[정혜궁]]이라는 공관을 제공받는다. 정혜궁 이전 국무대신이 제공받은 공관으로 [[운현궁]]이 있었으나 이후 신축된 [[정혜궁]]으로 옮겨졌다. 의전서열은 대신급으로 내각대신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직속 위원회== * 궁무부재정회의 - 칙령 제5호, 궁무부에 관한 칙령 * 보익사정무위원회 - 칙령 제22호, 보익사에 관한 칙령 * 시종·지밀지원위원회 - 칙령 제4호, 궁내시종조직에 관한 칙령 * 궁내위생향상위원회 - 칙령 제19호, 궁내위생에 관한 칙령 ** 사옹원검차소위원회 - 사옹원조칙 * 국무자문회의 - 국무원원령 제1호, 국무자문회의 정령 * 황실사무총괄지원위원회 - 국무원원령 제2호, 황실사무총괄지원위원회 보령 * 시종검수위원회 - 시종조칙 ==기타== * 국무대신에 관한 규정은 대부분 국무원법에서 정하지만 국무원원령 제5호를 통해 일부 규정이 별도로 정해져 있다. * 1대 국무대신인 [[김의수]] 남작은 스위스 유학파 출신으로[* 황실과 동반으로 스위스로 망명하였을 때, 만 17세였다.] 유럽의 개혁적인 학문을 접하여 개혁파 귀족이 됐다고 한다.[* [http://www.example.org 스위스에 있는 동안 개혁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는 김의수 국무대신?]] 2대 국무대신인 [[이영걸]] 남작과 3대 국무대신인 [[차남영]] 남작은 [[김의수]] 남작의 1세대 제자들이고 [[평상택]] 남작은 2세대 제자 출신이다. 유일한 보수파 귀족 국무대신인 [[김일선]] 남작은 [[김의수]] 남작과 보통학교 동기여서 제정복고 이후 그로부터 개혁적인 사상들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이때문에 귀족원로였던 그가 개혁적인 정책들의 시행을 묵인해준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래도 보수파 소속인지라 위에서 말한거처럼 급진적인 개혁 정책들을 대부분 철회시키거나 폐지를 시도했다.] * --편집자가 국무총리에서 연감을 받았다고..-- ==관련문서== * [[대경제국]] * [[대경제국 황제]] * [[대경제국 황실]] * [[대경제국 국무원]] ==각주== {{주석}} ==둘러보기== [[분류:킹덤 오브 킹덤 세계관]]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각주 (원본 보기) 틀:대경제국 역대 국무대신 (원본 보기) 틀:인용문 (원본 보기) 틀:일반 기타 (원본 보기) 틀:주석 (원본 보기) 모듈:Check for unknown parameters (원본 보기) 대경제국 국무대신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