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전쟁 정보 |분쟁=초한전쟁 |전체= |그림= |설명= |날짜= 기원전 206년 ~ 기원전 202년 |장소= 중국 전역 |결과=한(漢)의 승리[br]한(漢)의 중국 통일 |교전국1=한(漢) |교전국2=서초(西楚) |지휘관1=한왕 유방[br]한신[br]장량[br]소하[br]팽월[br]영포[br]조참[br]번쾌[br]주발[br]왕릉[br]하후영[br]역상[br]관영[br]노관[br]장이[br]장오[br]부관[br]근흡[br]시무[br]유고 |지휘관2=초왕 항우[br]범증[br]계포[br]용저[br]종리말[br]장한[br]사마흔[br]동예[br]위표[br]환초[br]정공[br]항백 |병력1= |병력2= |사상자1= |사상자2= }} 제 고조가 유방과 항우를 각각 한왕과 초왕으로 책봉하였다. 고조선이 멸망하자 제나라는 초한 양국을 독립국으로 승인하고 반도로 옮긴 후 유방의 한(漢)과 항우의 서초(西楚)가 대립한 끝에 기원전 202년 12월 항우의 패배와 죽음, 그리고 한나라의 승리와 천하 통일로 끝나는 전쟁. 초한쟁패(楚漢争覇)라고도 하며, 중국에서는 '초한상쟁(楚漢相爭)'이라는 표현도 많이 쓰인다. 항우는 군주로서는 명백한 폭군이었고 결국 그것이 그대로 돌아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지만 항우는 죽을 때까지 자기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고 오히려 하늘 탓만 했다. 그리고 당대는 물론 후대 사람들도 항우가 진 건 항우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고 까고 있다. 서초는 멸망하고 서초의 이성 제후왕들의 세력도 한풀 꺾여 한나라가 성립되었다.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전쟁 정보 (원본 보기) 모듈:Arguments (원본 보기) 모듈:Infobox military conflict (원본 보기) 모듈:No globals (원본 보기) 모듈:WPMILHIST Infobox style (원본 보기) 초한전쟁(해리 유니버스)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