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케인스는 유효수요를 경기 변동의 주요 변수로 파악하였다. 유효수요는 실제 구매력이 뒷바침된다는 전제 아래에서의 소비재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요와 자본 제공에 대한 투자자들의 수요로, 케인스는 유효수요의 하락을 대공황의 근본적 원인으로 보며, 유효수요의 상승을 위해서는 정부가 적자를 감수하고서라도 시장주의적 자본주의 경제 체제의 운동에 개입해 유효수요의 창출과 완전고용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러한 이론적 기반을 토대로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는 정부 투자 중심의 완전 고용을 추구하는 뉴딜 정책을 펼쳤고, 오늘날에는 일반적으로 이것이 대공황 극복의 주된 요인으로 생각된다. 케인스의 이러한 혁신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소위 자본주의의 황금기를 불러왔다. 그러나 이는 약 40여년만에 한계에 부닥쳤다. 정부의 활동이 오히려 석유 파동을 일으키는 등 정부 개입의 한계가 드러나며 대규모의 스테그플레이션[* 경기 침체 상태에서 물가가 지속적으로 오르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로인하여 신고전학파가 시카고 학파를 중심으로 다시 우위를 점하게 되었으나, 케인스학파 또한 신케인스학파로 변화하였다. 케인스학파는 이러한 케인스의 주장에 따라 기존 주류경제학인 신고전학파와는 다른 각종 수학적 도구와 이론들을 창시하였다. [[분류:경제학파]] 케인즈주의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