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플라즈마 가문}} {{가문 정보 |가문명 = 플라즈마 가 |문장 = |문장설명 = |국가 = |왕국명 = |작위 = [[하인리히 헤스 대공]] |설립자 = 세르덴 플라즈마 폴 아스테르단 쾨스테른소네테르네 대공 |최후통치자 = |현재수장 = 하인리히 헤스 대공 (플라즈마 라미레즈) |건립일 = 481년 1월 4일 |몰락일 = |폐위일 = |민족 = 게르만족 |본가 = |분가 = }} '''플라즈마 가''' 는 네덜란드 연합왕국의 귀족 가문이다. == 역사 == 481년, 서게르만족과 프랑크족이 통합되어 메로빙거 왕조를 중심으로 "프랑크 왕국" 을 세운다. 당시 게르만족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세르덴 플라즈마 폴 아스테르단 쾨스테른소네테르네는, (축약해서 폴이라 부르겠음) 성년이 되고 원정군에 배속된다. 폴은 기사 작위를 하사받고, 세르비아 원정에 참전한다. 평소에도 총명했던 폴은 전투에서 기지를 발휘하여 세르비아 원정에서 대승리를 기록한다. 폴은 보병대를 이끌고 투르네로 귀환하고, 클로비스 1세는 이러한 공을 인정하여 공작의 작위와 세르비아 땅을 하사하였다. 이것이 플라즈마 가문의 시작이다. (아래의 이야기부터는 1882년 1월 29일 "플라즈마 소나티나"의 이야기를 담고있습니다.) 프랑크의 귀족가문이였던 플라즈마 가문은 새로운 왕조에 의해 몰락하고 843년에 유안(юань)차르국과 게르만-게르마니아 왕국의 접경지역으로 쫓겨났다. - 1882년, 부 플라즈마 페를 소네튀르케네스와 모 플라즈마 메리(혼 후 성씨통합)가 플라즈마 페를 소나티나 (플라즈마 소나티나) 를 낳는다. 소박하지만 행복하게 살았던 가정에 비극이 생긴다. 플라즈마 소나티나가 6세 되는 해에 3차 전쟁이 발발했다. 이로 인해 플라즈마 페를 소네튀르케네스와 플라즈마 메리가 죽임을 당하고, 플라즈마 소나티나는 어린나이에 상트페테르부르크 포로 수용소에 간다. 게르만인 포로들 중에서 최연소였던 소나티나는 청년 포로들에게 동정심을 받았고, 많은 사람들과 친해져 나무일과 러시아어를 배웠다. 13년 후, 플라즈마 소나티나는 19세의 나이가 된다. 게르만-게르마니아 왕조가 몰락하고 독일 땅은 35개의 국가들로 남게된다. 플라즈마 소나티나는 포로 석방 되고, 베를린으로 복귀하여 공화국 조병창에서 일하게된다. 5년 후, 24세의 플라즈마 소나티나는 선술집에서 "리샤흐 아세토니아그라스" 라는 마르크스 사상을 공부하는 청년을 알게된다. 그라스는 찢어진 독일에 마르크스 사상에 대해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어 베를린에 왔다고 한다. 플라즈마 소나티나는 그라스에게 마르크스 사상과 사회주의에 대해 공부를 했고, 현재 독일은 매우 잘못됬으며 민중을 위한 사회주의로 재통합 되야한다고 마음먹는다. 처음엔 붉은 깃발을 들고 베를린 거리에서 사회주의 혁명을 일으키자는 "구걸" 수준에 이렀다. 하지만 여러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회주의를 전파하려고 애쓴 끝에 몇몇 사람들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2년 후, 마침내 사람들은 모두 붉은 깃발을 들고 베를린으로 향하기 시작한다. 이 운동은 급기야 동란 수준으로 바뀌고 경찰서에서 총을 탈취해 무장, 밭에서 일하면서 썼던 낫, 굉이, 망치 등등을 들고서 베를린으로 진격한다. 베를린은 민중들 앞에 저항없이 무너지고, 플라즈마는 "게르만 사회주의 컨트리즈드 공화국" 을 선포한다. 컨트리즈드 공화국은 점차 세력을 확장하고 막강한 국력을 얻게된다. 4년간의 내전 끝에, 변방 3국을 제외한 32개국을 점령하고 독일 통일과 게르만 컨트리즈드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을 선포한다. 플라즈마 소나티나는 공화국의 국가주석에 오르고, 아세토니아그라스는 제2서기장에 오른다. 그 후 플라즈마 소나티나는 혼인을 맺은 후 "플라즈마 소나타"를 낳는다. 개국선언 후 5년, 막강한 권력 위에 오른 플라즈마는 점차 부패해져간다. 플라즈마는 모든 개인의 땅, 재산을 몰수하고 왕당파들을 숙청한다. 또한 당을 외로 플라즈마 소나티나 개인을 찬양하라는 사상을 강요했다. 개인의 재산과 식료품, 땅을 모두 몰수해 간 탓에, 인민들은 당에서 주는 빵조각 몇개를 먹으면서 노동을 해야만 했다. 이러한 독재체재에 분노한 사람들이 "신당파" 를 결성하고 사람들을 모았지만 플라즈마 소나티나는 신당파들을 모두 숙청하고 거기에 관계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모조리 죽였다. (5.21 컨트리즈드 대숙청) 아세토니아그라스는 이렇게 변해버린 플라즈마에게 실망하고 쿠바로 떠난다. 또한 인민들은 대기근에 시달린다. 이런 사태까지 이르자 당에선 플라즈마를 쫓아내자고 결정하고 플라즈마의 측근이였던 당원들은 저택으로 찾아가 총을 들이밀고 "죽음 혹은 망명" 을 제안하고 어쩔수없이 플라즈마 소나티나는 스몰렌스크를 통해 아리매로 떠나게된다. 이때 플라즈마는 38세였다. 아리매뉴델리에 도착한 플라즈마는 1년간의 부랑자 생활을 하다가, 군에 자원한다. 황제였던 쿠르즈 리는 일국의 지도자였던 경험이 있는터라, 플라즈마를 하사관에 임한다. 플라즈마는 아리매 진영에서 2차 히말라야 전쟁(2차 아리매-갈타스 전쟁)에 참전하고 승리로 이끈다. 플라즈마는 공을 인정받아 준위에 임명된다. 하지만 플라즈마의 측근이였던 아리매군 3명이 히말라야 전쟁 때 아리매의 전쟁범죄를 목격한 플라즈마를 포함한 히말라야 전쟁 참전군 몇명을 숙청한다는 전보를 전해왔다. 그렇게 플라즈마 소나티나 포함 3명은 배를 타고 갈타스로 귀순하기로 결정한다. 밀선을 타고 광둥으로 떠난 플라즈마는 또 부랑자 생활을 하게된다. 이때 플라즈마는 42세였다. 옛 경험을 살려 발해군에 지원한다. 그리고 3차 히말라야 전쟁 (3차 갈타스-아리매 전쟁)이 발발하고 몇년전만 해도 아리매 진영에서 갈타스와 싸우던 플라즈마는 갈타스 진영에서 아리매 진영과 싸우게 된다. 아리매와의 협상 끝에 전쟁은 끝을 내리고 플라즈마는 장교로 임명된다. 몇십년을 갈타스군에 있던 플라즈마는 72세 당시 사성장군이였던 플라즈마의 오랜 공로를 인정하여 국방장관에 임명한다. 그 후 81세 나이에 국방장관직을 사임하고 남경에서 노후를 보낼때, 지식인 백성현과 이한의 장군 한재호를 만난다. 백성현은 현 태왜 정권은 무능한 독재정권이고, 민주화혁명을 일으켜 정부를 갈아엎으려 하는데 몇십년간 태왜의 측근이였던 경험으로 태왜를 누구보다 잘 알고있던 플라즈마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플라즈마는 처음엔 거절했지만, 끝내 승낙한다. 플라즈마는 고령의 나이였지만 백성현과 함께 혁명을 주도하며 북경으로 나아갔다. 혁명군은 북경 점령에 성공하고 태왜 정권은 몰락했다. 플라즈마 소나티나는 대통령에 취임했지만 늙고 병들었다는 이유로 남경 경무대에 감금하고 업무는 백성현을 중심으로 한 세력이 맡았다. 플라즈마 소나티나는 부족한것은 없지만 허무한 감금살이 끝에 114세의 나이에 자결한다. (여기부턴 플라즈마 소나타, 플라즈마 라미레즈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플라즈마 소나타는 막대한 자금으로 콩고에서 사치를 즐기다가, 플라즈마 소나티나가 갈타스로 귀순했다는 전보를 듣고. 아리매군의 추적을 피해 사하공화국(야쿠티야 변방)으로 피난을 간다. 몽골-러시아계 주민들과 유목생활을 즐기다가 아들 "플라즈마 라미레즈" 를 낳고 부족한것 없이 행복하게 지낸다. 하지만 소나타는 병에 걸려 병사하고, 플라즈마 라미레즈는 24세에 독일 출신 친구 한명과 2년간의 대장정 끝에 발트에 정착한다. 발트에서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누구와 다름없는 행복한 삶을 살았다. 하지만 42세에 플라즈마 라미레즈가 일을 나간 도중에 거주하던 마을에 화재가 발생하고 가족들을 모두 잃는다. 절망한 라미레즈는 성당에서 1년간 죽은 가족들의 자리를 지키다가 네덜란드로 떠난다. 네덜란드에서 새 삶을 개척하겠단 희망감을 가지고 암스테르담에 정착한다. 이름을 "하인리히 헤스" 로 바꾸고 피자 가게를 해보려다가 망한다. 부풀어있던 희망감 조차 잃은 헤스는 기념탑에서 몸을 던지려 하다가 우연히 국왕이 그것을 발견하고 헤스를 구하라고 지시한다. 국왕 헤르만은 헤스를 식사에 초청하며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물어보려다가, 선왕 (현 국왕의 요청으로 표기하지 않음)가 플라즈마 가문에 룩셈부르크땅을 하사했다는것을 말하자, 국왕 헤르만은 헤스가 평범한 시민이 아니란것을 짐작하고 그에게 원하는것을 물어본다. 헤스는 룩셈부르크 땅을 되찾고, 부유한 삶을 살아보고싶다고 하자 국왕 헤르만은 공식적으로 헤스에게 룩셈부르크땅과 공작 작위를 하사한다. 이렇게 플라즈마 가문은 하인리히 헤스(플라즈마 라미레즈)에 의해 1500년만에 대공 작위를 되찾는다. == 가풍 == == 유명인 == === 황가 === === 공작 === * [[하인리히 헤스]] (플라즈마 라미레즈) 대공 === 후작 === === 백작 === === 자작 === === 남작 === == 가계도 ==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가문 정보 (원본 보기) 틀:플라즈마 가문 (원본 보기) 플라즈마 가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