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문서 : [[5.16 군사 쿠데타 (대경제국)]] ==과정== 박정희는 쿠데타를 결심하고 김종필과 차지철과 통모하여 구체적인 쿠데타 계획을 수립하고 곧 이어 참여할 이들을 모집한다. 이후 쿠데타를 5월 12일로 결정했지만 5월 12일에 모이기로 했지만 [[김종필(대경제국)|김종필]]의 부대가 중국 국경으로 차출 명령을 받으면서 계획을 연기한 5월 16일이 최종 실행 날짜가 된다. ===01:00=== 박정희의 비밀 지휘를 받는 수도방위사령부 제2예비사단 예하 포병대대가 청경 군무총독 관저를 점거한다. 청경 군무총독 이희섭은 쿠데타에 동참하는 각서에 날인했고 청경 군무총독의 직속부대인 수도방위사령부 제2~4사단이 쿠데타에 가담한다. ===02:30=== 쿠데타를 포착한 오-헝 제국 청경 주재 외교관 기젤라 모니카 폰 하이넬은 내각총리공관에 연락하여 쿠데타가 일어났다고 보고했지만 묵살됐다. ===03:00=== 김종필이 지휘하는 제3군단이 상부의 명령을 불복하고 강서구에 있던 원수부 별관을 점거하여 원수부 대다수를 포로로 검거한다. 한편 장도영 황립육군 인사참모부 부장겸 수도방위사령부 제1사단 사단장은 기젤라 모니카 폰 하이넬로부터 쿠데타 사실을 알게 되고 곧 이어 현석호 국방부 대신과 서한량 제7군단 군단장에게 쿠데타 사실을 보고하려 했지만 통신 문제로 끝내 전달이 안된다. 그러자 장도영 제1사단장은 직접 총리공관으로 간다. ===03:50=== 차지철이 지휘하는 제1공수특전단이 기습적으로 남산의 육본을 공격, 방어선을 무너트리고 육본에 진입한다. 이에 김중호 육군참모총장은 자결을 택한다. ===04:00=== 박정희는 수도방위사령부 본부가 있던 강북구를 점거하고 총리공관으로 가려 했던 장도영 장군을 구금, 쿠데타 지휘를 요청했으나 장도영은 끝내 거절한다. ===04:20=== 현석호 국방부 대신은 내각총리관저로 향하는 도중 총성이 들리자 길을 돌려 총리공관으로 이동하여 윤보선 총리대신을 부하들로 하여금 피신케 하고 자신은 헌병대를 이끌고 성북구에 방어선을 구축한다. ===04:30~05:00=== 이즈음 명경, 대구, 영경, 혜경에 있던 쿠데타군이 주둔해있던 도시의 관공서를 장악한다. ===05:05=== 이영휘 황궁 경위국장은 현석호 국방부 대신으로부터 쿠데타 사실을 접하고 경복궁에 있던 황실 일가를 오-헝 제국 청경 주재 대사관으로 파천시킬 준비를 한다. 이에 의종 대황제는 "궁을 버릴 수 없다!"라 말하며 버텼으나 결국은 파천에 동의한다. ===05:10=== 쿠데타군이 장악한 도심에서 다음과 같은 뉴스가 방영됐다. * {{인용문|친애하는 애국동포 여러분!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오늘 아침 미명을 기해서 일제히 행동을 개시해, 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 3권을 완전히 장악하고, 이어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했습니다.<br/>군부가 궐기한 것은 부패하고 무능한 현 내각과 기성 정치인, 사치와 향략에 빠진 황실이 더 국가와 민족의 운명을 맡겨둘 수 없다고 단정하고, 백척간두에서 방황하는 조국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것입니다.<br/>군사 혁명 위원회는 첫째,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지금까지 안일한 대처만 했던 반공 전선을 다시 활성화 할겁니다.<br/>둘째, 유엔헌장을 준수하고 국제협약을 충실히 이행할 것이며,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더욱 공고히 하고 비열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그 동맹국들에겐 엄중한 외교적 행동을 취하겠습니다.<br/>셋째, 이 나라 사회의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퇴폐한 국민도의와 민족정기를 다시 바로잡기 위하여 청신한 기풍을 진작할 것입니다.<br/>넷째, 절망과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민생고(民生苦)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 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입니다.<br/>다섯째,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 배양에 전력을 집중할 것입니다.<br/>여섯째, 이와 같은 우리의 과업이 성취되면, 참신하고도 양심적인 정치인들에게 언제든지 행정권을 이양하고 우리들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준비를 갖추겠습니다.<br/>애국 동포 여러분, 여러분은 본 군사혁명위원회를 전폭적으로 신뢰하고, 동요 없이 각인의 직장과 생업을 평상과 다름없이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이 순간부터 우리들의 희망에 의한 새롭고 힘찬 역사가 창조되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조국은 우리들의 단결과 인내와 용기와 전진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대경공화정부 만세, 궐기군 만세.|군사혁명위원회 위원장 육군 중장 장도영}} 쿠데타 세력은 삐라 10만장을 L-19 5대를 통해 청경에 대대적으로 살포했다. ===06:00=== 내각총리대신 장면과 총리대신 윤보선이 중간에 합류하여 정로 수도원으로 피신했으나 얼마 안 가 박정희를 비롯한 제2예비사단에게 발각되어 다시 총리공관으로 압송된다. ===06:10=== 박정희는 황실 일가 체포를 명령하고 같은 시간에 장도영 군사혁명위원장에게 제정 폐지를 건의한다. ===06:40=== 이영휘 국장은 비밀스럽게 기젤라 청경 주재 외교관에게 황실 도피를 요구했고 기젤라 청경 주재 외교관은 이를 수용하고 본국에 이에 대한 정보를 전달했다. ===06:50=== 기젤라 청경 주재 외교관은 개인 소장하고 있던 헬리콥터를 통해 황실 일가를 대피시키기로 하고 경복궁에 공문을 보내 파천을 요구했다. ===07:00=== 부산이 쿠데타군의 수중에 떨어지는 동안 황실은 이영휘 국장이 시간을 버는 동안 헬리콥터를 통해 인천으로 대피했고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행 선박에 몸을 실는다. ===08:00=== 당시 쿠데타 세력은 총리대신 윤보선을 죽일지 살릴지에 대한 토론을 했고 결론은 살리기로 했다. 이후 박정희는 윤보선 총리대신에게 계엄령 추인을 요구했지만 윤보선 총리대신은 계속 거절했다. ===09:30=== 박정희는 윤보선 총리대신에게 장면 내각총리대신의 해임과 함께 '''제정 폐지'''를 요구했다. 이후 윤보선 총리대신을 이를 수용한다. 이로써 근 2600년간 존재했던 군주정의 명맥이 '''잠시''' 종말을 고했다. ===10:05=== 이 소식을 접한 미국은 마셜 그린을 외교관으로 청경에 파견한다. ===10:10=== [[제국 정치-행정 연합]] 사무총장 [[볼프강 막시밀리안 프란츠 오케르트]]는 5.16 군사 쿠데타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한다. ===12:00~13:00=== 윤보선 총리대신은 각료의 자문을 들어 계엄령을 추인하기로 하고 장도영 육군참모총장을 계엄군 사령관에 임명했으며 가급적 계엄군의 방대한 활동을 통제하는 '출동 저지 서한'을 작성하여 계엄령 선포와 함께 공포한다. ===15:30=== 박정희는 이름바 '공화국 건설 준비 위원회'를 창설하여 군사혁명위원회를 해체시켜 그 권력을 [[국가재건최고회의(대경제국)|국가재건최고회의]]에 위임시켰다. ===16:40=== * {{인용문|우리나라는 지금 중대한 시국에 놓여있습니다. 오늘의 사태를 우리가 어떻게 수습하느냐 하는 것에는 우리나라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사태를 무사히 수습해야 하고, 공산주의를 막는 힘에 약화를 초래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우리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침착하고 냉정하게 이 나라의 일을 판단해야 하며, 희생없이 최선의 방법으로 이 사태를 수습하는데 우리의 성의와 노력을 다해야 겠습니다. 나는 지금 이 중대한 사태에 처해서 혼란방지와 질서유지에 국민 여러분들이 특별히 노력해주시기를 간절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더욱이 정운영 부총리 권항대행 이하 모든 각료등은 한시바삐 나와서 이 중대한 사태를 성의있게, 합법적으로 처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말에 의하면, 각의에 출석하는 각료와 기타 공무원의 신변은 보장된다고 합니다.|윤보선 공화국 건설 준비 위원회 위원장겸 임시총리}} [[분류:킹덤 오브 킹덤 세계관]]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인용문 (원본 보기) 5.16 군사 쿠데타 (대경제국)/과정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