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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9일, 안동 김씨에서 태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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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19일, 안동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다.''' 그녀가 20대에 들어설때 왕실은 [[대조선국 태조|태조]]의 정비를 찾고 있었다. 신의왕후는 왕비간택단자를 제출하였고, 결국 조선의 초대 왕비가 된다. 왕비가 되었을때 남편 태조와 나이 차이가 '''30~40살'''이였다. 신의왕후는 하지만 고뿔에 걸려 예정된 혼례에 참여하지 못했고, [[대조선국 태조|태조]]는 이걸 빌미 삼아 신의왕후를 왕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킨다. 왕후 김씨인 그는 폐비 김씨가 되었다. 폐위된 신의왕후는 궁에서 쫒겨났으며, 가난하게 자랐으나 이제 조선 국모로써 부유한 삶은 살까하는 '''희망이 깨져 망연사실'''하였다고 한다.
  
조선이 건국되고 현비(顯妃)에 봉해져서 조선 최초의 왕비가 되었다. 태조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으며 자신의 소생인 이방석을 세자로 만드는데 성공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신부전증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정작 자신보다 21살이나 연상인 남편 태조는 74세에 승하하여 조선 역사상 두 번째로 장수한 국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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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큰 충격'''을 얻어서 일까. 그녀는 궁에서 쫒겨난지 얼마 안되어 향년 20세로 사망한다. 이후 폐비로 기록되어 묘 또한 지나가는 백성들이 밟고 다닐정도로 '''고인이 되서도 모욕'''을 당하던 그녀는 반년이 지나서야 [[대조선국 성종|성종]]때 왕후로 복권되어 '''신의왕후(神懿王后)'''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묘 또한 왕릉으로 이장되었고 종묘에 위패도 세워졌다.
 
 
이후 존호는 신덕왕후(神德王后)라 하고 능호(陵號)를 정릉(貞陵)이라고 했다. 신덕왕후가 죽은 후 1차 왕자의 난이 일어나면서 아들들인 이방석과 이방번은 끝내 이복형 이방원에 의해 살해당했고, 딸 경순공주의 남편으로 사위인 흥안군 이제도 참살당하면서 신덕왕후의 실질적인 혈통은 모조리 끊기게 되었다.
 
  
 
==[[파일:현재2.png|width=30]]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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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현재2.png|width=30]]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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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열 : 공부나 학업은 '''세손과 세자 시절에 아주 열정적'''이였다고 한다. 점수는 낮게 나온적이 많으나 학업에 관심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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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주요 행사를 참석하지 않아 급진파로 인하여 왕후의 자리에서 폐위된 그녀는 20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만약 그가 폐위되지 않고 왕후의 자리에 있었다면 휼륭한 국모가 될수 있었다고 후대가 평가중이다.
 
 
・성품 : 감정적일때도 있고 이성적일때도 있으며 부친 [[대조선국 인종|인종]]과 성격이 비슷하였다. '''호감적인 모습'''들을 보여주며 많은 백성의 지지를 얻었다.
 
 
 
・치적 : 재위기간동안 나라를 평안하게 하였고 정치, 경제, 외교 등 다양한 부분에 있어서 발전하긴보단 쇠퇴하지 않게 현상 유지시킬려고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조선의 존립을 크게 유지'''할 수 있었다.
 
 
 
・외모 : 피부색이 매우 밝았다고 하며 눈 또한 크고 이뻤다. 부친 [[대조선국 인종|인종]]의 유전자인 듯하다.
 
 
 
・가정사 : 조선 국왕중 최초로 왕비를 1명 두었으며, '''안정적인 가정'''을 이끌었다.
 

2023년 7월 26일 (수) 00:02 판

조선왕조.png
대조선국 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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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조의 정비
신의왕후 | 神懿王后
2590.png
출생2022년 11월 19일
대조선국 안동 사저
사망2022년 12월 18일 (향년 20세)
대조선국 한양 사저
정릉(貞陵)
재위기간2022년 12월 15일 ~ 2022년 12월 18일 (4일)
본관안동 김씨
부모없음
형제자매없음
배우자태조
자녀없음
종교유교
시호신의왕후(神懿王后)

현재2.png 개요

태조의 정비이자, 조선 최초의 왕비. 본관은 안동 김씨.

현재2.png 생애

2022년 11월 19일, 안동에서 태어나 가난하게 자랐다. 그녀가 20대에 들어설때 왕실은 태조의 정비를 찾고 있었다. 신의왕후는 왕비간택단자를 제출하였고, 결국 조선의 초대 왕비가 된다. 왕비가 되었을때 남편 태조와 나이 차이가 30~40살이였다. 신의왕후는 하지만 고뿔에 걸려 예정된 혼례에 참여하지 못했고, 태조는 이걸 빌미 삼아 신의왕후를 왕후의 자리에서 폐위시킨다. 왕후 김씨인 그는 폐비 김씨가 되었다. 폐위된 신의왕후는 궁에서 쫒겨났으며, 가난하게 자랐으나 이제 조선 국모로써 부유한 삶은 살까하는 희망이 깨져 망연사실하였다고 한다.

너무 큰 충격을 얻어서 일까. 그녀는 궁에서 쫒겨난지 얼마 안되어 향년 20세로 사망한다. 이후 폐비로 기록되어 묘 또한 지나가는 백성들이 밟고 다닐정도로 고인이 되서도 모욕을 당하던 그녀는 반년이 지나서야 성종때 왕후로 복권되어 신의왕후(神懿王后)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묘 또한 왕릉으로 이장되었고 종묘에 위패도 세워졌다.

현재2.png 가족 관계


자식이 하나도 없어서 신의왕후의 핏줄은 사실상 없다.

현재2.png 평가

・국가의 주요 행사를 참석하지 않아 급진파로 인하여 왕후의 자리에서 폐위된 그녀는 20세라는 젊은 나이로 요절하였다. 만약 그가 폐위되지 않고 왕후의 자리에 있었다면 휼륭한 국모가 될수 있었다고 후대가 평가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