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족청년단: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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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당일 = 1946년 10월 9일<sub> (조선민족청년단)
| 창당일 = 1946년 10월 9일<sub> (조선민족청년단)
| 당명 변경 = 1948년 8월 <sub> (대한민족청년단)
| 당명 변경 = 1948년 8월 <sub> (대한민족청년단)
| 통합한 정당 =  
| 통합한 정당 = 대동청년단
| 전신 =  
| 전신 =  
| 후신 =  
| 후신 =  

2025년 1월 9일 (목) 23:01 판

대한민족청년단 당기.png
대한민족청년단
원어명
국가 이응준 태극기.png 대한제국
약칭
족청(族靑)
표어
민족지상, 국가지상
창당
1946년 10월 9일 (조선민족청년단)
당명 변경
1948년 8월 (대한민족청년단)
중앙당사
한성부 중구 을지로 5가 77번지
이념
한민족주의,애국주의,일민주의,국민주의,협동조합주의
스펙트럼
우익 ~ 극우
당수
이범석
내각총리대신
이범석
중추원의원
석 / 석 (%)
부윤
석 / 석 (%)
당색
민족의 영 (#234794)
청년조직
백의사(白衣社)

개요

세계는 넓고 인류는 그 수가 하도 많지만, 역사와 전통으로 보아 우리처럼 강건한 조건을 갖춘 민족은 다시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민족 생성 과정의 한 일원으로서, 과거의 온갖 유산을 계승하는 과거의 종말인 동시에 미래의 온갖 가치를 창조할 기점에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의무감을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역사적.전통적 영광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우리의 앞날을 더욱 빛나게 할 신성한 책임, 조상 천대에 대한 또 자손 만대에 대한 가장 엄중한 책임을 걸머지고 있는 것이다.
- 이범석『민족』

이범석을 주축으로 하여 1946년에 세워진 우익~극우 정당

상세

이범석을 중심으로 안춘생과 노태준이 지휘했던 광복군 제2지대를 주축으로하여 창설되었다.

당시의 다른 우익단체들과 차별화된 점이 상당히 많았는데 일단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에 모두 반대하는 제3의 노선에 있었다. 또한 다른 우익 단체들이 테러를 일삼거나 좌익 세력과 물리적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족청은 이범석부터가 테러를 반대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좌익과 충돌하지 않고 청년들의 교육과 훈련에 집중했다. 그 때문에 당시 여러 우익단체들의 지나친 폭력행사를 우려하고 상대적으로 온건한 우파를 찾던 미군정(米軍政)의 지원을 받기도 했다.

강령으로는 단지삼칙이 있었으며, '민족지상, 국가지상'의 슬로건을 내걸었다.

강령:단지삼칙

① 우리는 민족정신을 환기하여 민족지상·국가지상의 이념하에 청년의 사명을 다할 것을 기한다.

② 우리는 종파를 초월하여 대내자립·대외공존의 정신으로 민족의 역량을 집결할 것을 기한다.

③ 우리는 현실을 직시하며 원대한 곳을 바라보고(着眼遠大), 비근한 것부터 착수하여(着手卑近) 건국도상의 청년다운 순감(純感)을 바칠 것을 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