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서양전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7번째 줄: 7번째 줄:
 
||||||<:><#0431B4> {{{#white '''이유'''}}} ||
 
||||||<:><#0431B4> {{{#white '''이유'''}}} ||
 
||||||<:>  올리비안 왕국의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내외적 요소 ||
 
||||||<:>  올리비안 왕국의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내외적 요소 ||
||<:><#0431B4> {{{#white '''교전국'''}}}||<^|1> [[File:오이 왕국.jpg|25px]][[올리비안 왕국]][br] [[File:프랑스.jpg|25px]][[프랑스 공화국]][br] [[File:400px-대한왕국_태극기.jpg|25px]][[대한왕국]](한일연합)[br] [[File:스페인.jpg|25px]][[스페인 왕국]][br] [[File:vhfnxnrkf.jpg|25px]][[포르투갈 공화국]][br] [[File:아르헨티나.png|25px]][[아르헨티나 공화국]] ||<:><^|1>[[File:브라질.jpg|25px]][[브라질 공화국]][br] ||
+
||<:><#0431B4> {{{#white '''교전국'''}}}||<^|1> [[File:오이 왕국.jpg|25px]][[올리비안 왕국]][br] [[File:프랑스.jpg|25px]][[프랑스 공화국]][br] [[File:400px-대한왕국_태극기.jpg|25px]][[대한왕국]](한일연합)[br] [[File:스페인.jpg|25px]][[스페인 왕국]][br] [[File:vhfnxnrkf.jpg|25px]][[포르투갈 공화국]][br] [[File:아르헨티나.png|25px]][[아르헨티나 공화국]] ||<:><^|1>[[File:브라질.jpg|25px]][[브라질 공화국]][br][[File:기니비사우.png|25px]][[기니비사우 공화국]][br][[서아프리카 연합]] ||
 
||<:><#0431B4> {{{#white '''지휘관'''}}} ||<:><^|1>[[올리비안 왕국의 대왕|조나단 8세(가비오이 조나단)]][br] [[대한왕국의 대왕|이 한 (김태환 대령(제독))]][br] [[프랑스 대통령|프랑수아 올랑드]][br] [[스페인 해군참모총장|마가리타로 블레스]][br] [[포루트갈 공화국의 대통령|아나발 카바쿠 실바]][br] [[아르헨티나 공화국의 대통령|마우리시오 마키리]] ||<:><^|1>[[브라질 공화국의 대통령|지우마 호세프]] ||
 
||<:><#0431B4> {{{#white '''지휘관'''}}} ||<:><^|1>[[올리비안 왕국의 대왕|조나단 8세(가비오이 조나단)]][br] [[대한왕국의 대왕|이 한 (김태환 대령(제독))]][br] [[프랑스 대통령|프랑수아 올랑드]][br] [[스페인 해군참모총장|마가리타로 블레스]][br] [[포루트갈 공화국의 대통령|아나발 카바쿠 실바]][br] [[아르헨티나 공화국의 대통령|마우리시오 마키리]] ||<:><^|1>[[브라질 공화국의 대통령|지우마 호세프]] ||
 
||||||<:><#0431B4> {{{#white '''결과'''}}} ||
 
||||||<:><#0431B4> {{{#white '''결과'''}}} ||

2019년 7월 25일 (목) 15:21 판

남대서양전쟁
War of South Atlantic
121030018052370 thumb 1024 w.jpg
(올리비안 왕국 영해를 지나고 있는 올리비안식 구축함)
날짜
2015년 1월 12일 ~ 2015년 2월 3일
지역
올리비안 왕국 과 주변 해역, 동브라질
이유
올리비안 왕국의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내외적 요소
교전국오이 왕국.jpg올리비안 왕국
프랑스.jpg프랑스 공화국
400px-대한왕국 태극기.jpg대한왕국(한일연합)
스페인.jpg스페인 왕국
Vhfnxnrkf.jpg포르투갈 공화국
아르헨티나.png아르헨티나 공화국
브라질.jpg브라질 공화국
기니비사우.png기니비사우 공화국
서아프리카 연합
지휘관조나단 8세(가비오이 조나단)
이 한 (김태환 대령(제독))
프랑수아 올랑드
마가리타로 블레스
아나발 카바쿠 실바
마우리시오 마키리
지우마 호세프
결과
빠른 평화협정으로 승자없는 전쟁
국방부 쿠테타(2015)
영향
국방부 쿠테타까지 발생하면서 왕국이 크게 쇠퇴함


748e7b6104a850298285e0769e73d5f8.jpg

(브라질 해군 열병식)


발단

2128FF4054E9CF1505.jpg
(사진은 브라질의 신형미사일)

브라질은 지난 50년간 올리비안 왕국에 수차례 군사적 도발을 강행했다. 그러나 2015년 초, 브라질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브라질은 외부로 정치적 관심을 돌릴 필요성을 느꼈고 그 대상을 올리비안 왕국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브라질 대통령의 지우마 호세프는 올리비안 왕국의 오이리 제도에 영유권을 주장하여 어이없는 도발을 강행했고, 한편으로는 올리비안 기니비사우 연방의 불안한 형국을 이용하여 올리비안 왕국기니비사우 공화국 두 국가의 사이를 갈라놓고 기니비사우 공화국을 브라질의 동맹국으로 삼으려 했다.

당시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굉장히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올리비안 왕국에 무리한 경제적 지원을 부탁했는데 연방군을 결성할 것을 요청, 기업투자를 더욱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기니비사우 공화국의 부진한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는데 올리비안 왕국은 당연히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한 번에 들어주기 어려웠고 내부로는 독립당과 정부 간의 관계가 극심하여 민주의회에서 정기회의 자체도 열리지 않아 행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이를 계기로 올리비안 왕국을 신뢰할 수 없다라고 했으며, 더군다나 연방군의 결성이 이루어지고 올리비안-기니비사우 연방군의 주둔지가 기니비사우 공화국의 수도 비사우로 결정되자 올리비안 왕국을 견제하던 여러 서아프리카의 국가들이 기니비사우 공화국에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올리비안 왕국을 비난했다.

이러한 형세가 지속되고 기니비사우 공화국의 여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당시 기니비사우 공화국 대통령인 '하이문두 페레이라'(대통령이 임기 중 사망하여 권한대행으로 앉아있었기에 정부를 유지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급기야 서아프리카로부터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올리비안 왕국에 연방해체를 통보한다. 이에 연방법에 의하여 올리비안 왕국과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15일만에 연방해체되었고, 연방군도 결성 19일만에 해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가만히 있을 올리비안 왕국이 아니었다. 올리비안 왕국은 즉각 기니비사우 공화국을 비난했고, 연방군과 기니비사우 정부에 투자한 19조 8000억원을 순식간에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자 배상을 요청하고, 모든 압박 카드를 사용했다. 이때를 그냥 넘길 브라질 공화국이 아니었다. 브라질은 기니비사우 공화국과 같은 언어를 사용,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질감을 이유로 우호관계를 선포하고 곧바로 서아프리카의 對기니비사우 국가들의 위협을 막을 수 있도록, 브라질군을 주둔시켜주겠다고 했다.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당연히 이 조건을 수락했는데 사실은 브라질이 올리비안 왕국을 압박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올리비안 왕국은 기니비사우 공화국을 모든 수단으로 압박하고, 브라질을 비난, UN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소용없었다. 브라질은 이미 올리비안 왕국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조사하고 그에 따른 대응을 생각해두었기 때문에, 타격이 거의 없었고 가장 큰 이유는 기니비사우 공화국이 이렇게 빠르게 배신할 것이라는 것을 올리비안 왕국은 전혀 몰랐고 대응도 미비했기 때문이다.

발발

올리비안 왕국은 외교전에서도 패배했고 연방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브라질은 기니비사우에 군사를 주둔시키기까지 했고, 올리비안 왕국은 군사적으로도 압박을 느끼게 되었으며 국내적으로도 상황이 흔탁치 않았는데, 제 1 야당인 독립당과 제 3 야당인 국민당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의회를 보이콧하면서 정부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때, 독립당이 총리를 해임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총리가 독립당 출신인데 독립당과 뜻이 다르고 행정부를 야당의 뜻 없이 따른다는 점에서 정권교체를 원했던 독립당 입장에서는 매우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립당은 사법부와 입법부를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없이 총리를 해임하는데 성공하는데, 이때 검찰에서는 독립당이 브라질과 연통한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총리를 해임하기 위해서 최고의원위원회의 동의를 받아야 했는데 독립당이 최고의원위원회에 압력을 불어넣었다는 의심 또한 하게 되면서 독립당에 대한 검찰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왕강제퇴위안이 의회에서 제출되고, 브라질과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검찰조사는 무산된다.

국왕강제퇴위안은 처음에 최고의원위원회에서 동의 1명을 얻지 못해 무산되었는데 10일만에 다시 퇴위안이 제출되었고, 최고의원위원회의 전원일치로 국민투표 실시, 국민투표에서 76%의 동의를 얻어 국왕이 퇴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국왕이 퇴위될 수 있었던 까닭은 정치적으로 정부가 힘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브라질과의 전쟁위기가 고조되는데도 연방이 해체되어 외교전에서도 정부가 패배, 전쟁위기는 더욱 고조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정부의 무능함이 독립당의 지지율상승과 정권교체의 희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행정부의 수반이 중간에 해임되거나 사임하는 경우는 파타나샤 정권 이후로 처음이었고 민주의회의 등장 이래 최초였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크게 조명되었다.

한편 브라질 공화국은 이때가 기회였다. 브라질 공화국은 이미 여러번 도발로 올리비안 왕국의 군사적 상황을 대충 파악해 놓은 상태였고, 기니비사우라는 동맹국을 얻었으며, 서아프리카의 지원을 약속받았고 더군다나 올리비안 왕국의 정부가 국왕이 없어 매우 불안한 형국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전쟁 적기였다.

브라질은 기니비사우 공화국의 육군을 수도와 모뷔뭰토군에 상륙할 준비를 했고, 본토에서 함대를 출격시켜 해상봉쇄를 하는 군사작전을 수립했고, 올리비안 왕국에 선전포고한다. 브라질은 당일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전개1

(작성중)

프랑스와 스페인의 참전

(작성중)

한일연합함대의 등장

(작성중)

포루트갈의 참전

(작성중)

전개2

(작성중)

전개3

(작성중)

결과

(작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