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벨 강 9세(메이플스토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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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조가 16살 때 선종은 양성대군을 태성태자를 폐하고 정녕을 새로운 태성태자로 책봉하고 1982년인 18살에 선종은 열조에게 양위를 한다. 폐태자 직후에는 양성의 장남, 순성군을 세우겠다고 했으나 일부 대신들이 반발하여 뜻을 거둔다. 다음으로는 점을 쳐서 태자로 정하겠다고 했지만 다시 이 의견을 바꾸고 어진 사람을 골라야 한다는 이유로 정녕을 태자로 지명한다.
열조가 16살 때 선종은 양성대군을 태성태자를 폐하고 정녕을 새로운 태성태자로 책봉하고 1982년인 18살에 선종은 열조에게 양위를 한다. 폐태자 직후에는 양성의 장남, 순성군을 세우겠다고 했으나 일부 대신들이 반발하여 뜻을 거둔다. 다음으로는 점을 쳐서 태자로 정하겠다고 했지만 다시 이 의견을 바꾸고 어진 사람을 골라야 한다는 이유로 정녕을 태자로 지명한다.


선종은 아들에게 양위를 하고 전격적으로 황위에서 물러났는데 선종은 재위 기간 수시로 자신의 황권 강화하기 위해 선위한다는 쇼를 벌이곤 했는데 신하들은 그때마다 찬 바닥에서 절을 하며 말리는 일을 반복해야했다. 양위 시에도 신하들은 "이번엔 또 얼마나 선위파동이 오래갈려나?"했는데 선종은 '''태자에게 임금의 즉위복을 차림을 입히고'''는 신하들 앞에 내보냈다. 선위를 반대하던 신하들도 바로 군말없이 조복으로 갈아입고 열조의 즉위식에 참석했다. 이는 불안정한 셋째 아들의 황권을 안정 시키는 데 열종 자신의 남은 여생을 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상태왕으로 물러난 선종은 죽을 때까지 4년 간 실권을 쥐고 있었으며 열조는 선종이 죽은 뒤에야 진정하 고구려 제국의 태왕으로 거듭나게 된다.
선종은 아들에게 양위를 하고 전격적으로 황위에서 물러났는데 선종은 재위 기간 수시로 자신의 황권 강화하기 위해 선위한다는 쇼를 벌이곤 했는데 신하들은 그때마다 찬 바닥에서 절을 하며 말리는 일을 반복해야했다. 양위 시에도 신하들은 "이번엔 또 얼마나 선위파동이 오래갈려나?"했는데 선종은 '''태자에게 임금의 즉위복을 차림을 입히고'''는 신하들 앞에 내보냈다. 선위를 반대하던 신하들도 바로 군말없이 조복으로 갈아입고 열조의 즉위식에 참석했다. 이는 불안정한 셋째 아들의 황권을 안정 시키는 데 선종 자신의 남은 여생을 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상태왕으로 물러난 선종은 죽을 때까지 4년 간 실권을 쥐고 있었으며 열조는 선종이 죽은 뒤에야 진정하 고구려 제국의 태왕으로 거듭나게 된다.
=== 선종이 실권을 쥐고 있을 때 한 일 ===
=== 선종이 실권을 쥐고 있을 때 한 일 ===
* 군사 훈련
* 군사 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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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조의 외척인 여양 진씨 가문이 정치를 못하게 따로 할 일을 명함
* 열조의 외척인 여양 진씨 가문이 정치를 못하게 따로 할 일을 명함
* 미국의 사신 접대
* 미국의 사신 접대
== 본격적인 재위 기간 ==
== 본격적인 재위 기간 ==
선종이 죽고 드디어 열조가 고구려의 군주로서 국사에 임하게 되며 아버지의 묘호를 선종(宣宗)으로 하고 시호를 진강순원강호태왕(進强順元强護太王)으로 했다.
선종이 죽고 드디어 열조가 고구려의 군주로서 국사에 임하게 되며 아버지의 묘호를 선종(宣宗)으로 하고 시호를 진강순원강호태왕(進强順元强護太王)으로 했다.

2020년 11월 13일 (금) 11:08 판

열조
烈祖
조선 제국 천현제와 똑같이 생긴 것은 넘어가자
출생1964년 5월 3일
고구려 평양
사망2018년 8월 5일
고구려 황궁
성별남성
국적고구려의 국기.png 고구려
별칭만고의 성군
학력없음
경력고구려의 태성태자
직업107대 태왕
소속정당 없음
종교불교
부모父 고구려 선종 母 민지원
배우자진성후
자녀강빈,강향진, 강수진, 금상태왕 강인범
병역해당사항 없음
상훈없음
웹사이트없음

개요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산다. — 즉위식 때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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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젠장!!! — 화났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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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제107대 태왕. 성은 강(姜), 휘는 방륜(方輪)으로 군호는 정녕대군이였다. 고구려 역사상 3번째 만고의 성군으로 아들인 인범태왕은 국력으로 기준으로 하여 나라를 다스렸더라면 아버지인 열조는 평화를 기준으로 하여 나라를 다스려왔다.

즉위 전

고구려왕조실록[1]에 1964년 5월 3일에 당시 황자 시절의 강고[2]와 군부인이였던 여흥 민씨 일족의 사이에서 6남으로 태어났다고 기재되어 있다. 위에 다섯명의 형이 있었으나 3명은 어린 시절에 요절하여 사실상 강방륜 부부의 3남으로 자랐다.

12살에 정녕군이였고 아버지가 황위에 오른 후 2년 후에 대군으로 진봉 되었다. 황자 시절부터 이미 될 성 부른 떡잋을 보여 한번 잡은 책은 닳아 없어질 때까지 읽었다고 한다. 이러한 아들의 기특한 모습에 기쁜 아버지인 선종 태왕은 아들의 취미 생활을 전적으로 지원해줬다고 한다. 덕분에 학문은 물론 미술, 음악, 수석까지 다양한 부분을 섭렵했고 오히려 대군이였기에 제한받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였으므로 다양한 재능을 발전 시킬 수 있었다고 한다. 대군으로서의 유복한 부르주아 생활이 다재다능한 태왕으로서의 실력을 키워주는데 복이 된 셈이다.

셋째 황자이기 때문에 본래 황위 계승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첫째 황자인 양성대군이 평소의 망나니와 개차반 짓 때문에 끝내 폐태자가 되고 그전부터 영특하고 어질기로 유명한 셋째 황자 정녕대군이 황통을 잇게 되었다. 하지만 열조 태왕에게도 형재애가 있는건지 열조 태왕의 힘이 강해지자 양성대군의 처우도 점점 좋아졌다. 한편 둘째인 효진대군은 평생 부처를 받드는 선비가 되었다. 효진대군이 차남임에도 불구하고 황위 계승에서 동생인 열조에게 밀린 이유는 공식적으로는 술을 못 마시기 때문이다. 선종에 따르면 "술은 너무 많이 마셔도 안되지만 못마셔도 문제가 되는데 사신들이 왔을 때 보니까 효진대군이 술을 잘 못하는데 정녕대군은 마신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열조도 사실 술을 잘 못마신다. 소주도 겨우 한두 잔 마실까말까 할 정도.아들래미인 강인범 태왕은 소주는 못마셔도 맥주는 마시는데?

재위 초기

열조가 16살 때 선종은 양성대군을 태성태자를 폐하고 정녕을 새로운 태성태자로 책봉하고 1982년인 18살에 선종은 열조에게 양위를 한다. 폐태자 직후에는 양성의 장남, 순성군을 세우겠다고 했으나 일부 대신들이 반발하여 뜻을 거둔다. 다음으로는 점을 쳐서 태자로 정하겠다고 했지만 다시 이 의견을 바꾸고 어진 사람을 골라야 한다는 이유로 정녕을 태자로 지명한다.

선종은 아들에게 양위를 하고 전격적으로 황위에서 물러났는데 선종은 재위 기간 수시로 자신의 황권 강화하기 위해 선위한다는 쇼를 벌이곤 했는데 신하들은 그때마다 찬 바닥에서 절을 하며 말리는 일을 반복해야했다. 양위 시에도 신하들은 "이번엔 또 얼마나 선위파동이 오래갈려나?"했는데 선종은 태자에게 임금의 즉위복을 차림을 입히고는 신하들 앞에 내보냈다. 선위를 반대하던 신하들도 바로 군말없이 조복으로 갈아입고 열조의 즉위식에 참석했다. 이는 불안정한 셋째 아들의 황권을 안정 시키는 데 선종 자신의 남은 여생을 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상태왕으로 물러난 선종은 죽을 때까지 4년 간 실권을 쥐고 있었으며 열조는 선종이 죽은 뒤에야 진정하 고구려 제국의 태왕으로 거듭나게 된다.

선종이 실권을 쥐고 있을 때 한 일

  • 군사 훈련
  • 황권 강화
  • 열조의 외척인 여양 진씨 가문이 정치를 못하게 따로 할 일을 명함
  • 미국의 사신 접대

본격적인 재위 기간

선종이 죽고 드디어 열조가 고구려의 군주로서 국사에 임하게 되며 아버지의 묘호를 선종(宣宗)으로 하고 시호를 진강순원강호태왕(進强順元强護太王)으로 했다.

  1. 열조 4년(1986년 6월 4일): 세종이 제정한 공노비에게 주는 출산휴가를 더욱 더 기간을 많이 늘였다.
  2. 열조 8년(1990년 7월 3일): 일국의 군주가 직접 시장에 나서서 직접 장을 봤으며 장남인 강빈이 태어났다.
  3. 열조 10년(1992년 3월 2일): 강향진이 태어난다
  4. 열조 13년(1995년 5월 3일): 조선 제국의 사신을 접대하고[3] 저녁 6시에 강수진이 태어난다.
  5. 열조 15년(1997년 1월 19일): 훗날의 금상태왕인 강인범이 태어난다

가족

  • 장남: 강빈
  • 장녀: 강향진
  • 차녀: 강수진
  • 막내: 금상태왕 강인범
  • 배우자: 진성후 태왕후

사망

2018년 6월 3일, 막내 아들인 강인범의 소심하고 말 수가 적은 성격을 고치기 위해 장남인 강빈을 제치고 태성태자로 책봉하고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였고 폐암으로 2018년 8월 5일, 사망하고 만다. 태성태자였던 강인범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108태 태왕으로 즉위를 하였으며 아버지의 묘호를 열조(烈祖), 시호를 강렬진원순태왕(强洌進元順太王)으로 하고 이제는 국력을 기준으로 하여 나라를 다스린다.

여담

정말로 열이 뻗힐 때 주로 욕을 한다. 군주고 나발이고 욕이 튀어나와 이럴 때 신하들이 겁을 먹을 때도 있다. 열조실록에 열조가 욕을 했던 기록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1. 현조 때부터 만들어진 역대 고구려 군주들의 이야기가 담긴 역사책으로 태조 중모태왕 즉, 동명성왕부터 강인범까지 역대 군주들의 역사가 기록 되어있다.
  2. 고구려 제106대 태왕 선종
  3. 물론 이때 수교를 맺지않았다. 수교를 맺은 것은 강인범 태왕 때이며 지금 현재 고구려의 동맹국들은 강인범 태왕 때 맺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