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논 대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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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white> 2018년 8월 24일 ~ 2020년 7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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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color=#002147> {{{#white '''오스트레일리아 왕국 총리'''}}}||
| rowspan="2" style="font-size: 11.0pt; color: #FFF; background: #002147" | <center>'''출생'''</center>
||<bgcolor=white> 2020년 7월 20일 ~||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 1967년 7월 3일
|-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 [[오스트레일리아 왕국|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시드니]]
|-
| rowspan="2" style="font-size: 11.0pt; color: #FFF; background: #002147" | <center>'''재임'''</center>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background: #f5f5f5" | 제20대 [[오스트레일리아 왕국 총리|호주 총리]]
|-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 2021년 4월 15일 ~
|-
| colspan="2" style="font-size: 11.0pt;  color: #FFF; background: #002147;" | <center>'''서명'''</center>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 [[파일:샤논 대처 서명.png|140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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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class="mw-customtoggle-ap656" style="auto; padding:5px -1px 11px; padding-center:5px; width:100%; text-align:center; color:#000;"><div style="margin: -2px 0px; font-size: 11.5pt">'''[ 펼치기 · 접기 ]'''</div></div>
<div class="mw-collapsible mw-collapsed" id="mw-customcollapsible-ap656" style="background: none; border: 1px solid: transparent; width: 100%; text-align: center;">
<div class="toccolours mw-collapsible-content" style="background: none; margin: 0px -15px 0px; border: 1px solid transparent; text-align: center;">
{| style="margin-left:-1.2px; margin-right:-15px;margin-bottom:-12px; width: calc(100% + 3px); text-align:center;margin-top:-2px; font-size:10.5pt"
|-
| colspan="2" style="font-size: 11.0pt; color: #FFF; width: 25%; background: #002147;" | <center>'''학력'''</center>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text-align: left" | 퀸즐랜드 대학교 <small>(법학 / 학사)</small>[br]시드니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small>(졸업)</small>
|-
| colspan="2" style="font-size: 11.0pt;  color: #FFF; width: 25%; background: #002147;" | <center>'''배우자'''</center>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text-align: left" | 데니스 대처^^(1993년 결혼)^^
|-
| colspan="2" style="font-size: 11.0pt;  color: #FFF; width: 25%; background: #002147;" | <center>'''신장'''</center>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text-align: left" | 167cm
|-
| colspan="2" style="font-size: 11.0pt;  color: #FFF; width: 25%; background: #002147;" | <center>'''종교'''</center>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text-align: left" | [[성공회|호주 성공회]]
|-
| colspan="2" style="font-size: 11.0pt;  color: #FFF; width: 25%; background: #002147;" | <center>'''정당'''</center>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text-align: left" |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
|-
| colspan="2" style="font-size: 11.0pt;  color: #FFF; width: 25%; background: #002147;" | <center>'''지역구'''</center>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text-align: left" | 와이드 베이
|-
| colspan="2" style="font-size: 11.0pt;  color: #FFF; width: 25%; background: #002147;" | <center>'''의원 선수'''</center>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text-align: left" | '''8'''
|-
| colspan="2" style="font-size: 11.0pt;  color: #FFF; width: 25%; background: #002147;" | <center>'''의원 대수'''</center>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text-align: left" | 29, 30, 31, 32, 33, 34, 35, 36
|-
| colspan="2" style="font-size: 11.0pt;  color: #FFF; width: 25%; background: #002147;" | <center>'''약력'''</center>
| colspan="4" style="font-size: 11.0pt; text-align: left" | [[오스트레일리아 왕국|호주]] 하원의원 <small>(2010~)</small>[br]교육, 청소년부 차관 <small>(2013)</small>[br]환경부 장관 <small>(2013~2015)</small>[br]내무부 장관 <small>(2015~2018)</small>[br]재무부 장관 <small>(2018~2019)</small>[br][[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자유당]] 총재 <small>(2019~)</small>[br][[오스트레일리아 왕국|호주]] 총리 <small>(2021~)</small>
|-
|}
|}
 
||<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002147> <center><div style="margin: -5px -9px">[[파일:Thatcherportrait.jpg|100%]] </div><div style="margin: -0px -9px"></center>||
||<bgcolor=#002147> '''{{{#white 공식 초상화}}}''' ||
 
{{목차}}


==개요==
==개요==
[[호주 왕국|호주]]의 정치인. 호주의 여성 총리이며, 역대로 치면 세 번째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자유당]]의 두 번째 여성 총재이기도 하다. 2021년부터 현재까지 총선을 네 차례나 승리로 이끌었고, 호주의 보수주의와 시장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잡고 있다. 2031년 기준 집권 10년 차를 달성하며 역대 2번째 최장수 내각을 기록하게 되었다.


||<table align=center> [[파일:샤논 대처 집무실.jpg|width=500]] ||
==위상==
||<table width=500><table bordercolor=#002147><#002147> {{{#ffffff 집무실에서 촬영한 사진}}} ||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002147> <center><div style="margin: -5px -9px">[youtube(rQ-M0KEFm9I)] </div><div style="margin: -0px -9px"></center>||
||<bgcolor=#002147> '''{{{#white 전당대회 연설 中 <The lady's not for turning.>[* 여인은 돌아서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대처의 생애를 다룰 시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다.]}}}''' ||


현재 [[오스트레일리아 왕국]] 제19대 총리이며, 2018년 8월 24일부터 2020년 7월 19일까지 전임이었던 스콧 모리슨 전 총리의 내각에서 내무부 장관 겸 자유당 부대표를 지낸 경력이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내 대표적인 신자유주의자이자 강경보수주의자이다. 그녀의 개혁정책에 따라 지지자들에게는 '''철의 여인''', '''돌아서지 않는 여자''', 일부 노동자와 비지지층에서는 '''신자유주의의 마녀''', '''전체주의자''' 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한다.
[[로버트 멘지스]], [[밥 호크]] 총리 이후로 호주 정치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모국에서는 그녀의 리더십과 냉철한 이미지에 빗대어 철의 여인으로, 독선적이고 비타협적인 태도에 신자유주의의 마녀라고 불리울 정도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지만, 공과 과의 여부와는 별개로 호주 사회 전반을 변화시킨 시대적 인물임에는 별 다른 이견이 없다.


대처는 정치에 입문하고 국가 최고자리인 총리에 오르기까지 친인척의 도움을 하나도 받지 않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비록 오스트레일리아 최대도시인 시드니에서 태어났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가정형편은 좋지 않았고 당시 여성이 정치권에 발을 들이기란 쉽지 않았다.
호주의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광산 총파업 사태|광부, 조선소 파업을 분쇄하여 노동시장 개혁을 쟁취하거나]] 압도적인 정치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에너지 정책을 입법의 최종단계인 상원까지 무리없이 상정하는가 하면, [[카나본 크리스탈호 피랍 사건|자국 선박을 피랍한 해적들에 가차없는 응징을 선사하는 등의]] 불도저스러운 면모가 곧 대처의 아이콘이라 볼 수 있다. 2013년부터 내홍을 겪어온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자유당]]의 암흑기를 종식시키고 한 때 호주 정치계를 휘어잡던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노동당]]을 몰락시킨 인물 또한 대처이다. 위와 같은 이력은 유권자의 다수이자 자유당의 핵심 지지층인 미들 오스트레일리아[* Middle Australia, 호주 중산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야기하여 장기집권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친인척의 후광을 받지 않은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녀의 가정은 전형적인 중산층으로, 노력주의적 경제관념을 가진 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비록 부유한 사업가인 남편의 영향이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정치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생애==
==생애==
샤논 대처는 1967년 7월 3일, 시드니 남서부에 있는 켐스 크릭(Kemps Creek)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집안은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고 아버지는 시드니 시장선거에 출마하였는데, 아버지가 호기심이 많은 대처를 선거운동에 데려감으로서 정치에 관심을 가지게 도와주었다.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30><tablebordercolor=#002147> <center><div style="margin: -5px -9px">[[파일:대처가 사진.jpg|100%]] </div><div style="margin: -0px -9px"></center>||
||<bgcolor=#002147> '''{{{#white 로버츠가 사진. 맨 오른쪽 인물이 샤논 로버츠이다.[* 혼전 성은 로버츠(Roberts)였다.]}}}''' ||
 
대처는 1967년 7월 3일 [[뉴사우스웨일스]] [[시드니]]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대처는 학창시절 동안 항시 학급수석을 유지하였으며, 웅변 능력이 출중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내면의 불타는 경쟁심으로 인해 호주의 명문대인 퀸즐랜드 대학교의 장학생을 목표로 삼아 입시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장학생으로 선발되지는 않았지만 1987년에 퀸즐랜드 대학교 법과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게된다. 이후 그녀는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된 '정치' 에 눈독을 들이게 되고, 퀸즐랜드 대학교 자유당 학생회에 가입하여 유명 정치가들의 순회강연에도 성실히 참가하였다. 이때 대처는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자유당]] 의원의 연설을 듣고 정치와 경제의 깊은 연계성에 흥미를 갖게 되어 여러 경제도서를 접하였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도서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집필한 「노예의 길」 이었다.
 
대처는 3학년이던 1990년 학생회 회장 자격으로 [[브리즈번]]에서 열린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퀸즐랜드 자유당]] 대회에 처음으로 참석하였다. 이는 [[퀸즐랜드]]에서 찾아든 남녀노소 당원들이 존 휴슨[* John Hewson, 당시 자유당 총재]을 비롯한 당 지도부와 한 자리에 모여 당의 단합을 다진 대회로 대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30><tablebordercolor=#002147> <center><div style="margin: -5px -9px">[[파일:대처 결혼식.jpg|100%]] </div><div style="margin: -0px -9px"></center>||
||<bgcolor=#002147> '''{{{#white 데니스 대처와 샤논 대처의 결혼식}}}''' ||


그 후 대처는 [[퀸즐랜드]] 대학교 법학과에 진학하여 정치인으로서의 꿈을 키워나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 퀸즐랜드 대학교 청년보수단체는 대처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입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끈질긴 노력끝에 가입에 성공하여 단체장을 맡기도 하였다.
1991년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자유당]] 간부 만찬에서 남편 데니스 대처를 만났다. 그는 한 수출회사의 주주였으며 샤논의 정치활동을 열심히 도운 인물이다. 1993년 데니스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샤논에게 청혼하였고 두 사람은 교회에서 국교파 예법에 따라 결혼식을 올리게 되며, 샤논은 혼전 성인 로버츠에서 대처로 개명한다. 데니스 대처는 결혼 후부터 아내인 샤논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사랑을 베푼 남편으로 알려져 있다. 샤논이 [[오스트레일리아 왕국 총리|호주 총리]]로 재임 중인 현재까지 절제되고 검소한 품격을 보이고 있으며, 데니스는 그런 자신을 '그림자 남편' 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1998년에는 총선거에 출마하여 자유당의 텃밭이라고 할 수 있는 퀸즐랜드의 와이드 베이(Wide Bay) 지역구에서 당선되어 본격적으로 하원에 진출하게 된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자유당]] 개혁위원장, 2013년부터 2015년까지 자유당 운영위원장을,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스콧 모리슨 전 총리가 산불 전후복구와 코로나 확산 책임을 안고 사임하자, 자유당 부대표였던 샤논 대처가 당 대표 경선에서 승리한다. 이후 승승장구하여 [[2020년 오스트레일리아 왕국 총선거|조기 총선]]에서 하원 의석 147석 중 과반수인 79석을 확보하는데 성공, 2020년 7월 20일에 총리로 취임한다.
대처는 법학 학위 졸업장을 수여받은 다음 시드니 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하여 변호사 자격시험 공부에 매진하게된다. 당면 목표는 변호사 중간시험에 이어 최종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임산부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는 결실을 맺게된다. 2년 후 대처는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이후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자유당]] 학생회장, 전직 변호사라는 경력을 바탕으로 대처는 1998년 31세의 나이에 하원의원에 출마할 기회를 얻었다. 1998년과 2001년 두 차례 걸쳐 출마하였으나 두 선거 모두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노동당]] 후보에게 크게 패하였다. 결국 차기 총선부터는 입후보를 단념하고 선거운동을 돕는데 그쳤다.


==대내정책==
||<table align=center><table width=400><tablebordercolor=#002147> <center><div style="margin: -5px -9px">[[파일:대처 인터뷰.jpg|100%]] </div><div style="margin: -0px -9px"></center>||
대처는 코로나와 경제침체 국면 속에서 국민들의 전폭적인 지지로 총리에 당선되었기 때문에 그 책임이 매우 막중하였다. 그렇게 대처 내각의 우선순위는 노동시장 개혁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문제가 컸던 광산노조는 무리하게 임금과 퇴직연금 인상을 요구하였고 심지어 코로나를 핑계로 무단결근을 하는 노동자도 생기는 등 이는 점차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었다. 대처는 이에 광산 통폐합 정책이라는 초강수를 두었고 이에 반발한 광산노조들이 대규모 파업을 일으키자 연방경찰과 기마경찰을 동원하는 등 철의 여인 다운 대응자세를 보여주었다. 파업이 종료된 후 100곳 이상의 광산은 통폐합 조치에 들어갔다.
||<bgcolor=#002147> '''{{{#white 지역구 후보 발탁 후 인터뷰 하는 샤논 대처}}}''' ||


이외에도 기업의 세금을 대폭 삭감하고 각종규제를 풀어주었으며 조선소 흑자달성, 공무원 연금삭감, 언론 자유화 등의 시장경제 활성화 및 국가 안정화 정책을 시행중이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퀸즐랜드]] 와이드베이 지역구 후보에 도전하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자유당]] 우세 지역구인 만큼 약 200여명이 입후보를 희망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대처가 와이드베이 지역구 입후보자로 선출되어 2010년 총선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대처는 2013년, 당선된 지 3년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자유당 [[토니 애벗]] 총리로부터 교육부 차관직을 제의받았다. 2014년에는 환경장관, 2016년에는 내무장관, 2018년에는 재무장관에 임명된다.


==대외정책==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자유당]]은 토니 애벗과 [[피터 더튼]]을 필두로 한 매파가 [[줄리 비숍]] 총리를 대상으로 불신임을 선언하며 당내 분란이 본격화된다. 2019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패배한 이후 절정에 달한 분란은 비숍의 사퇴를 몰고 왔고, 당시 비숍의 측근이자 재무장관이었던 대처가 차기 당수 후보로 거론된다. 대처는 공직 시절의 악착같은 추진력과 훌륭한 웅변실력으로 대내적 인지도가 높았으며, 비록 매파 성향이 짙은 인물이었으나 분당 위기에 봉착한 자유당으로 하여금 고난을 타개해 나갈 리더십이 충만한 정치인로 각인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우연히 당권 도전 기회를 마주하게 된 대처는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 아래 자유당 총재로 취임한다.
대처정부는 [[대영 연방|대영연방]] 가입국들과 모두 단교한 상태이다. 2020년 7월 23일까지는 대영연방국이었던 나이지리아, 나미비아 등의 아프리카 일부 국가와는 무역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다음날 7월 24일에 돌연 대처내각에서 두 국가와의 단교를 선언하였다. 외교적으로 애매한 관계였던 대영과 완전히 선을 그어버리겠다는 것. 이후 대영에서 오스트레일리아의 독립을 부정하는 발언을 하자 "웃음밖에 안 나온다." 라고 받아쳤고, 이는 곧 국제적 갈등으로 번져나갔다.


2020년 8월 3일에 리비아에서 친영 쿠데타가 발발하고 당시 파견근무 중이던 오스트레일리아인 해외무역관 5명이 부르주아의 본산이라는 이유로 군부에 의해서 혁명재판에 넘겨질 위기에 처하자 대처가 외무부를 통해 강력 대응을 예고한 끝에 8월 22일에 해외무역관 5명 모두 무사히 귀국하였다. 이 날 내각 지지율은 69%까지 폭등하였다.
총재로 선출된 대처는 [[캔버라]]의 한 호텔에서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자유당]] 상·하원의원과 당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취임 연설회를 개최했다. 연설 내용은 "비전을 잃은 사회는 붕괴된다." 는 것으로, 확고한 신념 아래 자유당을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대처가 총재로 선출된 2019년 호주는 노동조합의 산발적인 파업과 원자재 가격 폭락, 전기료 폭등으로 혼란에 휩싸여있었다.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고, 주가가 폭락하였으며 주택가에는 정전이 끊이질 않았다. 이에 대처는 총재로서 그림자 내각을 구성한 후 정책연구그룹을 만들어 각료들에게 정책개발에 열중하라 지시하였다. 동시에 대처는 야당 대표로 재직할 동안 거친 언행으로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이른바 '공격수' 로 활동하며 총리 적임자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외무회담을 통해 [[일본국 (나루히토)|일본]]과 군사조약을 체결, 문화교류를 약속하며 동아시아 국가와의 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table align=center><table width=600><tablebordercolor=#002147> <center><div style="margin: -5px -9px">[[파일:대처 총선.jpg|100%]] </div><div style="margin: -0px -9px"></center>||
||<bgcolor=#002147> '''{{{#white 총선 승리 후 인사하는 샤논 대처}}}''' ||


프랑스 공화국 망명정부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모습을 보였다. [[프랑스 코뮌 연합|프랑스 코뮌]]이 대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오스트레일리아의 독립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인데, 의회에서 망명정부 지원안이 가결된다면 말 그대로 뒷통수를 때리는 동시에, 프랑스 코뮌의 심기를 건드리는 꼴 밖에 되지않기 때문.
2021년, 대처가 상정한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노동당]] 내각 불신임안이 77대 74로 가결되며 조기총선이 실시된다. [[오스트레일리아 자유당|자유당]]은 하원의원 150석 중 79석을 확보하며 무난하게 과반 승리를 쟁취하지만 그간 축적된 사회적 난제를 짊어지게 되었다. 대처는 첫 임기부터 광산 통폐합을 단행하며 대격변을 예고하였다. 광부 노조가 이에 반발하여 호주 전역에 동시다발적으로 파업이 발생하지만 공권력의 지속적인 압력으로 단기간에 종료된다. 이듬해 발생한 조선소 파업에도 관용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의 독선은 대처의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국내에서의 인기==
또한 대처가 제언한 에너지 정책은 호주 정치계에 돌풍을 몰고왔다. 탄소세 폐지와 우라늄 채굴을 골자로 한 정책 초안은 야당과 환경운동단체를 납득시키기 어려웠고, 발효된 교토의정서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행보였기에 국제적 비난은 예정된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각계의 우려와는 달리 연연치 않은 대처는 탄소세의 부작용을 대대적으로 역설하고 우라늄 광산을 직접 답사하는 등 강행 의지를 내비쳤다. 여야의 설전 끝에 [[사우스오스트레일리아|남호주]]에서 우라늄 탐사가 전개되었으며, 탄소세는 상원의 심의를 거쳐 최종 폐지되었다. 이후 대처 정부는 기업체의 투자를 기반으로 한 탄소감축기금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현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샤논 대처 총리의 지지율은 60%를 웃돌고 있다. 순조로운 국내 안정화 정책과 강성노조 와해, 리비아 해외무역관 전원 구출 등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소득세와 법인세도 대폭 감면되어 기업 경영에도 활력을 안겨주었으며 문화부에서 SNS와 미디어 규제를 완화하여 인터넷 활동이 훨씬 자유로워졌다는 호평이 있다. 물가도 작년에 비해서 눈에 띄게 낮아졌다고 한다.
2030년 총선 이후 대처는 행정개편을 명목으로 [[수도 준주]] 자치의회를 폐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노동당]]이 다수인 자치의회를 무력화하는 조치로, 수도 준주를 중앙정부 직할령으로 편입시킬 전망이다.


==비판==
==성향과 행보==
하지만 물가 하락도 잠깐뿐이었고 2020년 9월부터는 물가상승률이 2.9%기록하게 된다.[* 2019년 오스트레일리아 물가상승률이 1.6% 였던 것에 비하면 상당히 높아진 셈.] 그리고 대처의 정책은 과감하지만 상당히 독단적이고 극단적이라는 비판이 있다. 코로나를 예측하지 못한채 무작정 광산 통폐합 정책을 발표하여 노조를 자극해버린 것이다. 이는 대규모 집단감염이라는 최악의 결과를 낳게 되었고 파업 종료 후에는 하루 신규확진이 최고 1,200명을 찍기도 해 전문가와 국민들의 비판을 받았다. 현재는 60명대를 유지하고 있다.
대처는 [[사회보수주의|사회적으로는 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지향한다. 이는 우파 정치의 일반적인 특징이지만, 대처는 기존 보수 계층과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학계에서는 대처를 보수주의자보다는 고전적 자유주의자 내지는 개혁주의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그녀의 신자유주의 정책도 경제성장에는 이로우나, 실업률과 빈부 격차를 증가시켰다는 비판 또한 존재한다. 대처정부 출범 이후 실업률은 5.3%에서 5.9%로 증가하였다, 코로나의 여파도 있지만 정부의 무리한 민영화 정책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반난민===
내무장관 시절 대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된 각종 테러를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2017년 퀘안비얀 테러, 브라이튼 참사, 2018년 맬버른 칼부림 사건 등의 참상을 목도한 대처는 곧바로 국경을 통제하고 체류허가 과정을 강화하여 난민 유입을 전면 차단하였다. 동 조치는 현재진행형이며 호주 정부는 난민수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여담==
===가부장적 가치관===
* [[오스트레일리아 왕국 국왕|엘리자베스 2세]]와 샤논 대처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노동자를 탄압하는 대처를 보고 "저게 정녕 오스트레일리아를 위한 총리란 말인가?" 라고 말했다는 설이 있다.
대처는 가부장적인 사회를 줄곧 옹호해왔다. 전당대회에서는 친동성애 교사들을 향해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하는 아이들에게 좌파적인 인식만을 주입한다" 라며 비판했으며, 성소수자 지지 발언을 범법화하려 시도해 논란이 일었다.
 
===탄소배출 감축기금 조성===
대처는 탄소세의 대안으로 탄소배출 감축기금(Emissions Reduction Fund)을 조성하여 민간 투자를 통한 탄소 저감을 유도하였다. 정부 기금을 통해 기업들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시장 원리에 따라 사업자들이 자체적으로 감축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인데, 재생에너지가 시장에서 경쟁력이 갖추어지지 않아 화석연료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저탄소 배출 및 고효율 화력발전기술에 대해서는 정부의 강제적 집행이 아닌 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와 연구 개발 활동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하였다. 위 제도를 기반삼아 온실가스 배출감축 계획을 UN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반소===
2026년, 소련의 비토권 행사로 호주가 비상임국 지위를 승계받지 못한 건에 대하여 대처는 대미국 협력을 강화하고 소련 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하여 항의했을 정도로 반소적 성향을 여실없이 드러냈다. 우크라이나-소련 위기 당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행보를 보였다.


* 대처정부의 미디어 규제완화 이후 오스트레일리아의 Youtube 동시접속률이 5배나 증가하였다고 한다.
===노동시장 개혁===
대처 정부는 거대권력화된 노동조합에 비타협적인 태도를 고수해오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 광산 총파업 사태|집권 초기 발생했던 파업사태]]를 거치면서 대처의 정책노선은 더욱 확고해져 양측 간 분위기는 날로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가 세수에 비상이 걸려 각종 의료혜택이 폐지되고 최저임금 상한제와 탄소세까지 거론되자 이는 전국민적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위 현상을 직접 목격했던 대처는 1기 내각이 출범하자마자 사회적 합의는 고사하고 바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시작한다. 반발하며 파업에 돌입한 노조를 분쇄함과 동시에 책임자들을 모두 사법조치한다. 더불어 대처는 2024년에 공정근로법(Fair Work Act)을 개정하여 노동시장을 한 층 유연화시켰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리비아 사태 당시 해외무역관들이 피랍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대처가 대노하여 머리스 페인(Marise Payne) 외무부 장관한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적이 있다고 당시 외무부 차관이 인터뷰에서 밝혔다.
* 조합원 파업관련 비밀투표 의무화
* 기업연금제 축소
* 노조비로 정치 후원금 제한
* 노조운영비 투명하게 정부 신고
* 노동기준 보장체제(Award System) 적용범위 축소
* 클로즈드숍, 유니온숍 제한 및 오픈숍 제도 확장
* 피케팅 시 경찰에 의무적 신고
* 파업 시 대체인력 고용 가능
* 노사관계의 사법화[* 본래는 독립기관인 노사관계위원회에서 중재를 전담하였으나 그 권한을 모두 사법부로 이관한다는 조치이다.]
* 상부조직 설립 의무화 및 재편[* 호주는 개별노조 간 입장이 천차만별이라 별다른 연맹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 IS를 극도로 싫어한다고 한다. 지인이 2014년 시드니 인질극 때 범인의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는데 그 범인이 바로 이슬람 극단주의자 IS였기 때문. 이로 인한 복수심 때문인지 2년간 내무부 장관을 재임할 당시 국외로 추방한 IS 추종자만 50명이 넘었고 8명이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다. 그야말로 씨를 말려버리겠다고 결심한 것.
==여담==


[[분류:오스트레일리아 왕국]]
[[분류:오스트레일리아 왕국]]

2024년 3월 31일 (일) 14:41 기준 최신판

Aukpmwhite.png
오스트레일리아 왕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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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1세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조셉 라이언즈 로버트 멘지스 아서 페든 존 커틴
헨리 2세
제4대 제5대 제2대2 제6대 제7대
존 커틴 벤 치플리 로버트 멘지스 헤럴드 홀트 존 고튼
제8대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고프 휘틀럼 맬컴 프레이저 밥 호크 폴 키팅 존 하워드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제17대
킴 비즐리 마크 라담 케빈 러드 줄리아 길라드 토니 애벗
제18대 제19대
줄리 비숍 빌 쇼튼
앤드류 1세
제19대 제20대
빌 쇼튼 샤논 대처
* 호주는 임기가 단절되었다가 재집권해도 처음 집권 당시 대수를 유지한다.

호주 제20대 총리
샤논 대처
The Hon. Shannon Thatcher
MP
대처122.jpg
본명
샤논 힐다 대처
Shannon Hilda Thatcher
출생
1967년 7월 3일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시드니
재임
제20대 호주 총리
2021년 4월 15일 ~
서명
샤논 대처 서명.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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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퀸즐랜드 대학교 (법학 / 학사)
시드니 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졸업)
배우자
데니스 대처(1993년 결혼)
신장
167cm
종교
호주 성공회
정당
자유당
지역구
와이드 베이
의원 선수
8
의원 대수
29, 30, 31, 32, 33, 34, 35, 36
약력
호주 하원의원 (2010~)
교육, 청소년부 차관 (2013)
환경부 장관 (2013~2015)
내무부 장관 (2015~2018)
재무부 장관 (2018~2019)
자유당 총재 (2019~)
호주 총리 (2021~)
100%
공식 초상화

개요

호주의 정치인. 호주의 여성 총리이며, 역대로 치면 세 번째이다. 자유당의 두 번째 여성 총재이기도 하다. 2021년부터 현재까지 총선을 네 차례나 승리로 이끌었고, 호주의 보수주의와 시장자유주의 진영을 대표하는 인물로 자리잡고 있다. 2031년 기준 집권 10년 차를 달성하며 역대 2번째 최장수 내각을 기록하게 되었다.

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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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대회 연설 中 여인은 돌아서지 않는다. 미디어에서 대처의 생애를 다룰 시 자주 인용하는 문장이다.

로버트 멘지스, 밥 호크 총리 이후로 호주 정치계에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인물로 꼽힌다. 모국에서는 그녀의 리더십과 냉철한 이미지에 빗대어 철의 여인으로, 독선적이고 비타협적인 태도에 신자유주의의 마녀라고 불리울 정도로 평가가 극단적으로 갈리지만, 공과 과의 여부와는 별개로 호주 사회 전반을 변화시킨 시대적 인물임에는 별 다른 이견이 없다.

호주의 산업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광부, 조선소 파업을 분쇄하여 노동시장 개혁을 쟁취하거나 압도적인 정치력을 바탕으로 자신의 에너지 정책을 입법의 최종단계인 상원까지 무리없이 상정하는가 하면, 자국 선박을 피랍한 해적들에 가차없는 응징을 선사하는 등의 불도저스러운 면모가 곧 대처의 아이콘이라 볼 수 있다. 2013년부터 내홍을 겪어온 자유당의 암흑기를 종식시키고 한 때 호주 정치계를 휘어잡던 노동당을 몰락시킨 인물 또한 대처이다. 위와 같은 이력은 유권자의 다수이자 자유당의 핵심 지지층인 미들 오스트레일리아 Middle Australia, 호주 중산층의 전폭적인 지지를 야기하여 장기집권의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친인척의 후광을 받지 않은 자수성가형 인물이다. 그녀의 가정은 전형적인 중산층으로, 노력주의적 경제관념을 가진 아버지 슬하에서 성장하였다. 비록 부유한 사업가인 남편의 영향이 전무한 것은 아니지만 그녀가 정치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요인은 아니었다.

생애

100%
로버츠가 사진. 맨 오른쪽 인물이 샤논 로버츠이다. 혼전 성은 로버츠(Roberts)였다.

대처는 1967년 7월 3일 뉴사우스웨일스 시드니의 한 중산층 가정에서 둘째 딸로 태어났다. 대처는 학창시절 동안 항시 학급수석을 유지하였으며, 웅변 능력이 출중하였다고 한다. 그녀는 내면의 불타는 경쟁심으로 인해 호주의 명문대인 퀸즐랜드 대학교의 장학생을 목표로 삼아 입시공부를 시작하게 되었고, 장학생으로 선발되지는 않았지만 1987년에 퀸즐랜드 대학교 법과대학으로부터 입학 허가를 받게된다. 이후 그녀는 아버지를 통해 알게 된 '정치' 에 눈독을 들이게 되고, 퀸즐랜드 대학교 자유당 학생회에 가입하여 유명 정치가들의 순회강연에도 성실히 참가하였다. 이때 대처는 자유당 의원의 연설을 듣고 정치와 경제의 깊은 연계성에 흥미를 갖게 되어 여러 경제도서를 접하였는데 그 가운데 대표적인 도서는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집필한 「노예의 길」 이었다.

대처는 3학년이던 1990년 학생회 회장 자격으로 브리즈번에서 열린 퀸즐랜드 자유당 대회에 처음으로 참석하였다. 이는 퀸즐랜드에서 찾아든 남녀노소 당원들이 존 휴슨 John Hewson, 당시 자유당 총재을 비롯한 당 지도부와 한 자리에 모여 당의 단합을 다진 대회로 대처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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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니스 대처와 샤논 대처의 결혼식

1991년 자유당 간부 만찬에서 남편 데니스 대처를 만났다. 그는 한 수출회사의 주주였으며 샤논의 정치활동을 열심히 도운 인물이다. 1993년 데니스는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샤논에게 청혼하였고 두 사람은 교회에서 국교파 예법에 따라 결혼식을 올리게 되며, 샤논은 혼전 성인 로버츠에서 대처로 개명한다. 데니스 대처는 결혼 후부터 아내인 샤논을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고 사랑을 베푼 남편으로 알려져 있다. 샤논이 호주 총리로 재임 중인 현재까지 절제되고 검소한 품격을 보이고 있으며, 데니스는 그런 자신을 '그림자 남편' 이라 칭하기도 하였다.

대처는 법학 학위 졸업장을 수여받은 다음 시드니 대학교 로스쿨에 입학하여 변호사 자격시험 공부에 매진하게된다. 당면 목표는 변호사 중간시험에 이어 최종시험에 합격하는 것이었다. 그녀는 임산부임에도 불구하고 변호사 시험에 응시하여 합격하는 결실을 맺게된다. 2년 후 대처는 법률사무소를 차렸다. 이후 자유당 학생회장, 전직 변호사라는 경력을 바탕으로 대처는 1998년 31세의 나이에 하원의원에 출마할 기회를 얻었다. 1998년과 2001년 두 차례 걸쳐 출마하였으나 두 선거 모두 노동당 후보에게 크게 패하였다. 결국 차기 총선부터는 입후보를 단념하고 선거운동을 돕는데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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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후보 발탁 후 인터뷰 하는 샤논 대처

그녀는 마지막으로 퀸즐랜드 와이드베이 지역구 후보에 도전하였다. 자유당 우세 지역구인 만큼 약 200여명이 입후보를 희망하였으나 최종적으로 대처가 와이드베이 지역구 입후보자로 선출되어 2010년 총선서 하원의원에 당선되었다. 대처는 2013년, 당선된 지 3년 채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자유당 토니 애벗 총리로부터 교육부 차관직을 제의받았다. 2014년에는 환경장관, 2016년에는 내무장관, 2018년에는 재무장관에 임명된다.

자유당은 토니 애벗과 피터 더튼을 필두로 한 매파가 줄리 비숍 총리를 대상으로 불신임을 선언하며 당내 분란이 본격화된다. 2019년 총선에서 자유당이 패배한 이후 절정에 달한 분란은 비숍의 사퇴를 몰고 왔고, 당시 비숍의 측근이자 재무장관이었던 대처가 차기 당수 후보로 거론된다. 대처는 공직 시절의 악착같은 추진력과 훌륭한 웅변실력으로 대내적 인지도가 높았으며, 비록 매파 성향이 짙은 인물이었으나 분당 위기에 봉착한 자유당으로 하여금 고난을 타개해 나갈 리더십이 충만한 정치인로 각인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우연히 당권 도전 기회를 마주하게 된 대처는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 아래 자유당 총재로 취임한다.

총재로 선출된 대처는 캔버라의 한 호텔에서 자유당 상·하원의원과 당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취임 연설회를 개최했다. 연설 내용은 "비전을 잃은 사회는 붕괴된다." 는 것으로, 확고한 신념 아래 자유당을 이끌겠다고 강조했다. 대처가 총재로 선출된 2019년 호주는 노동조합의 산발적인 파업과 원자재 가격 폭락, 전기료 폭등으로 혼란에 휩싸여있었다.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왔고, 주가가 폭락하였으며 주택가에는 정전이 끊이질 않았다. 이에 대처는 총재로서 그림자 내각을 구성한 후 정책연구그룹을 만들어 각료들에게 정책개발에 열중하라 지시하였다. 동시에 대처는 야당 대표로 재직할 동안 거친 언행으로 정부여당을 비판하는 이른바 '공격수' 로 활동하며 총리 적임자로서의 입지를 다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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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승리 후 인사하는 샤논 대처

2021년, 대처가 상정한 노동당 내각 불신임안이 77대 74로 가결되며 조기총선이 실시된다. 자유당은 하원의원 150석 중 79석을 확보하며 무난하게 과반 승리를 쟁취하지만 그간 축적된 사회적 난제를 짊어지게 되었다. 대처는 첫 임기부터 광산 통폐합을 단행하며 대격변을 예고하였다. 광부 노조가 이에 반발하여 호주 전역에 동시다발적으로 파업이 발생하지만 공권력의 지속적인 압력으로 단기간에 종료된다. 이듬해 발생한 조선소 파업에도 관용없는 태도로 일관하는 정부의 독선은 대처의 중앙집권적이고 권위주의적인 성향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또한 대처가 제언한 에너지 정책은 호주 정치계에 돌풍을 몰고왔다. 탄소세 폐지와 우라늄 채굴을 골자로 한 정책 초안은 야당과 환경운동단체를 납득시키기 어려웠고, 발효된 교토의정서를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행보였기에 국제적 비난은 예정된 수순이었기 때문이다. 각계의 우려와는 달리 연연치 않은 대처는 탄소세의 부작용을 대대적으로 역설하고 우라늄 광산을 직접 답사하는 등 강행 의지를 내비쳤다. 여야의 설전 끝에 남호주에서 우라늄 탐사가 전개되었으며, 탄소세는 상원의 심의를 거쳐 최종 폐지되었다. 이후 대처 정부는 기업체의 투자를 기반으로 한 탄소감축기금 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 2030년 총선 이후 대처는 행정개편을 명목으로 수도 준주 자치의회를 폐지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실상 노동당이 다수인 자치의회를 무력화하는 조치로, 수도 준주를 중앙정부 직할령으로 편입시킬 전망이다.

성향과 행보

대처는 사회적으로는 보수주의를, 경제적으로는 자유주의를 지향한다. 이는 우파 정치의 일반적인 특징이지만, 대처는 기존 보수 계층과 전혀 다른 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일부 학계에서는 대처를 보수주의자보다는 고전적 자유주의자 내지는 개혁주의자로 평가하기도 한다.

반난민

내무장관 시절 대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자행된 각종 테러를 수습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2017년 퀘안비얀 테러, 브라이튼 참사, 2018년 맬버른 칼부림 사건 등의 참상을 목도한 대처는 곧바로 국경을 통제하고 체류허가 과정을 강화하여 난민 유입을 전면 차단하였다. 동 조치는 현재진행형이며 호주 정부는 난민수용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가부장적 가치관

대처는 가부장적인 사회를 줄곧 옹호해왔다. 전당대회에서는 친동성애 교사들을 향해 "창의적이고 도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하는 아이들에게 좌파적인 인식만을 주입한다" 라며 비판했으며, 성소수자 지지 발언을 범법화하려 시도해 논란이 일었다.

탄소배출 감축기금 조성

대처는 탄소세의 대안으로 탄소배출 감축기금(Emissions Reduction Fund)을 조성하여 민간 투자를 통한 탄소 저감을 유도하였다. 정부 기금을 통해 기업들의 이산화탄소 배출 감축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시장 원리에 따라 사업자들이 자체적으로 감축하도록 유도하는 방식인데, 재생에너지가 시장에서 경쟁력이 갖추어지지 않아 화석연료가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저탄소 배출 및 고효율 화력발전기술에 대해서는 정부의 강제적 집행이 아닌 개발 분야에 대한 투자와 연구 개발 활동 등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하였다. 위 제도를 기반삼아 온실가스 배출감축 계획을 UN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반소

2026년, 소련의 비토권 행사로 호주가 비상임국 지위를 승계받지 못한 건에 대하여 대처는 대미국 협력을 강화하고 소련 대사관 총괄공사를 초치하여 항의했을 정도로 반소적 성향을 여실없이 드러냈다. 우크라이나-소련 위기 당시 우크라이나를 지지하는 행보를 보였다.

노동시장 개혁

대처 정부는 거대권력화된 노동조합에 비타협적인 태도를 고수해오고 있다. 집권 초기 발생했던 파업사태를 거치면서 대처의 정책노선은 더욱 확고해져 양측 간 분위기는 날로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국가 세수에 비상이 걸려 각종 의료혜택이 폐지되고 최저임금 상한제와 탄소세까지 거론되자 이는 전국민적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위 현상을 직접 목격했던 대처는 1기 내각이 출범하자마자 사회적 합의는 고사하고 바로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기 시작한다. 반발하며 파업에 돌입한 노조를 분쇄함과 동시에 책임자들을 모두 사법조치한다. 더불어 대처는 2024년에 공정근로법(Fair Work Act)을 개정하여 노동시장을 한 층 유연화시켰다.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조합원 파업관련 비밀투표 의무화
  • 기업연금제 축소
  • 노조비로 정치 후원금 제한
  • 노조운영비 투명하게 정부 신고
  • 노동기준 보장체제(Award System) 적용범위 축소
  • 클로즈드숍, 유니온숍 제한 및 오픈숍 제도 확장
  • 피케팅 시 경찰에 의무적 신고
  • 파업 시 대체인력 고용 가능
  • 노사관계의 사법화 본래는 독립기관인 노사관계위원회에서 중재를 전담하였으나 그 권한을 모두 사법부로 이관한다는 조치이다.
  • 상부조직 설립 의무화 및 재편 호주는 개별노조 간 입장이 천차만별이라 별다른 연맹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