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치 봉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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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가경(嘉慶) 2년, 계서(雞西)에서 시작하여 아무르강을 거점으로 일어난 '''대규모 농민봉기'''이다. 당시 청나라는 '''백련교도의 난'''이 진행중에 있었고, 내부에선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당시엔 '''삼대의 봄'''(강희제-옹정제-건륭제시기. 최전성기를 이른다.)이 막 끝날무렵이었으며 북부지방의 차별과 농민의 삶이 궁핍해지고 대지주의 폭정이 심화되었다.
청나라 가경(嘉慶) 2년, 계서(雞西)에서 시작하여 아무르강을 거점으로 일어난 '''대규모 농민봉기'''이다. 당시 청나라는 '''백련교도의 난'''이 진행중에 있었고, 내부에선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당시엔 '''삼대의 봄'''(강희제-옹정제-건륭제시기. 최전성기를 이른다.)이 막 끝날무렵이었으며 북부지방의 차별과 농민의 삶이 궁핍해지고 대지주의 폭정이 심화되었다.


이에 '''누르치'''는 계서(雞西)에서 농민의 삶을 개선하고 자급자족의 지상낙원을 건설하고자 현재의 [[동명공화국 우수리시]] 지역을 거점삼아 '''연해국'''을 수립하였다. 이 봉기로 인해 약 1만명의 사람들이 연해국으로 이주하였으며, 현대 [[동명공화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이에 '''누르치'''는 계서(雞西)에서 농민의 삶을 개선하고 자급자족의 지상낙원을 건설하고자 현재의 [[동명공화국|동명공화국 우수리시]] 지역을 거점삼아 '''연해국'''을 수립하였다. 이 봉기로 인해 약 1만명의 사람들이 연해국으로 이주하였으며, 현대 [[동명공화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

2021년 10월 24일 (일) 10:10 판

개요

既然, 天子가 折騰百姓,陷入混亂,皇帝를皇帝라 稱할 수 있으랴
庫爾奇錄

청나라 가경(嘉慶) 2년, 계서(雞西)에서 시작하여 아무르강을 거점으로 일어난 대규모 농민봉기이다. 당시 청나라는 백련교도의 난이 진행중에 있었고, 내부에선 분열의 조짐이 보이고 있었다. 당시엔 삼대의 봄(강희제-옹정제-건륭제시기. 최전성기를 이른다.)이 막 끝날무렵이었으며 북부지방의 차별과 농민의 삶이 궁핍해지고 대지주의 폭정이 심화되었다.

이에 누르치는 계서(雞西)에서 농민의 삶을 개선하고 자급자족의 지상낙원을 건설하고자 현재의 동명공화국 우수리시 지역을 거점삼아 연해국을 수립하였다. 이 봉기로 인해 약 1만명의 사람들이 연해국으로 이주하였으며, 현대 동명공화국의 국가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최초의 계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