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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제2대 국왕 [[대조선국 인종|인종]]의 정비이며 본관은 문경 서씨.
 
조선 제2대 국왕 [[대조선국 인종|인종]]의 정비이며 본관은 문경 서씨.
  
==[[파일:현재2.png|width=30]] '''왕비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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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현재2.png|width=30]] '''왕세자빈 시절'''==
  
2022년 11월 19일, 나주에서 태어난 신덕왕후는 어릴때 가난하게 자랐다. 낚시와 농사로 생계를 겨우 유지하던 도중 20세가 되던 해 [[대조선국 태조|태조]]의 정비 간택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때 임씨는 왕비 간택에 나갔으나 [[신의왕후]]에게 밀려 떨어졌다. 하지만 왕대비 [[의혜왕후]]가 혹시 모를 상황에 신덕왕후도 왕실에 들여야한다고 판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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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2일, 문경에서 태어난 정안왕후는 가난하게 자랐다. 가난하게 자란 정안왕후는 어릴때부터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였고 그게 이유인지 '''30살이 될때까지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던 2023년 1월 7일, [[휘빈이씨]]가 세자빈에서 폐위되고 [[신덕왕후]]는 세자빈 간택 단자를 올렸다. 이에 정안왕후는 신분을 바꾸고자 간택단자에 나갔고 그 결과 세자빈이 되었다.
  
신덕왕후는 종1품 귀인으로 책봉되었다. 아이가 없으면 품계가 오르지 않는데, 간택후궁이여도 바로 종1품 귀인으로 책봉되는 것은 드문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인으로 책봉된 이유는 당시에는 내명부 품계가 정리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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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빈이씨]]를 잃은 원손 [[대조선국 성종|성종]]은 새어머니인 [[정안왕후]]를 잘 대해주었다고 한다. 정안왕후는 세자빈 시절, 국가의 주요 행사들을 바로바로 참석하긴했으나 의례와 전통을 익히지 못하여 윗전으로부터 여러 꾸중을 들었다. 전통을 익히지 못해 조정 대신들 앞에서 품위도 지키지 못해 왕실에 입장에선 골칫덩어리였다. 결국 정안왕후는 날이 갈수록 왕실의 삶이 힘들어졌고 '''정신병'''에 걸리고 만다.  
  
[[신의왕후]]가 왕비로 재위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채 폐위되어, 귀인 임씨던 신덕왕후가 '''20세'''의 나이에 [[대조선국 태조|태조]]의 계비로 정식 책봉된다. [[대조선국 태조|태조]]와 무려 '''30~40살''' 차이났으며, 명목상 아들인 세자 [[대조선국 인종|인종]]과 10살 차이가 났으며 명목상 며느리인 세자빈 [[휘빈이씨]]와도 2살 차이가 났다. 12월 20일, 왕대비 [[의혜왕후]]가 훙서하고 '''내명부 최고 어른'''이 되었으나 그녀의 나이는 불과 '''24세'''로 왕실에서 나이가 가장 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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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현재2.png|width=30]] '''왕비 시절'''==
 
 
그러던 12월 27일, 선덕왕후가 세자빈 [[휘빈이씨]]의 '''뒷담을 까고 욕설을 하며''' 품위를 잃는 사건이 발생한다. 당일 왕위를 계승한 원손 [[대조선국 성종|성종]]까지 나은 세자빈은 '''미래 왕의 어미로 지지세력 꽤 되던 인물'''이였다. 하지만 선덕왕후는 '''아이 하나 없었으며 아버지 뻘인 남편과도 각별한 애정도 없어 지지기반이 약했다.''' 결국 조정 대신들의 간곡한 요청으로 [[대조선국 태조|태조]]는 선덕왕후를 교태전에 '''유폐시키고''', 내외명부 권한을 세자빈 [[휘빈이씨]]에게 밀어주었다.
 
 
 
하지만 [[대조선국 태조|태조]]와  세자빈 [[휘빈이씨]]의 사이가 매우 안좋아지자 태조는 선덕왕후의 유폐를 금방 해제시켜주고 내외명부 권한을 회복시켜주었다. 세자빈 [[휘빈이씨]]는 [[대조선국 태조|태조]]와 [[선덕왕후]]에게 불만이 많아지고 있었는데, 어느날 [[선덕왕후]]가 자선당을 찾아 세자빈 [[휘빈이씨]]가 왕가의 법도를 어기고 있다며 '''종아리를 걷으라 하였다.''' 이때 세자던 [[대조선국 인종|인종]]과 원손이던 [[대조선국 성종|성종]]이 말려 [[휘빈이씨]]가 회초리를 맞진 않았다. 선덕왕후는 회초리를 때릴려고 마음먹었으나 세자와 원손의 극심한 항의로 결국 화난채로 교태전으로 돌아갔다. 왕가의 법도상 내명부의 수장인 중전이 내명부에 속한 세자빈을 벌하는 것은 '''국왕도 막지 못한다.''' 하지만 당시 중전이 원손의 모친인 세자빈을 때리지 못한 것은 '''왕비로써 기반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결국 얼마 안 가 2023년 1월 5일, 세자빈 [[휘빈이씨]]가 폐위되었고 정신질환의 초기 증세를 보이며 매우 순진했던 [[정안왕후]]가 새 세자빈으로 간택된다. [[휘빈이씨]]가 죽고 순진한 세자빈이 들어와 선덕왕후는 한 순간에 '''궁중내에서 입지가 매우 커졌다.'''
 
 
 
내명부의 품계가 정리될 때쯤 선덕왕후는 내명부 궁인들과 외명부 여인들을 총괄하기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내조를 다스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위상이 [[휘빈이씨]] 사후 얼마나 커졌냐면, 세손빈이던 [[원경왕후]]의 모친인 디보가 규정을 어기고 반매국짓을 하자 국왕이던 태조와 이야기도 없이 '''품계를 빼앗고 노비'''로 만들어 버렸다. 선덕 왕후의 입지는 조선에서 국왕 [[대조선국 태조|태조]]와 세자 [[대조선국 인종|인종]]을 다음으로 높아졌다. 이후 낚시, 농사를 즐겨하였는데, 경복궁 후원에서 물고기만 '''300마리 이상'''은 잡았다고 한다.
 
 
 
==[[파일:현재2.png|width=30]] '''왕대비 시절'''==
 
 
 
2023년 2월 10일, [[대조선국 태조|태조]]가 86세의 나이로 승하하면서 '''52세의 나이에 왕대비'''가 되었다. 세자 [[대조선국 인종|인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정안왕후]]는 세자빈에서 왕후가 되었는데, 이때 정신 질환이 더 심해져 궁인들을 폭행하고 허언과 망상을 하기도 하여 내외명부를 관리할 처지가 아니자, 왕대비가 되어서도 선덕왕후는 '''내외명부를 총괄하였다.''' 왕비일때보다 입지가 더욱 더 커진 것이다.
 
 
 
결국 [[정안왕후]]가 세상을 떠나고 후궁이던 [[현덕왕후]]가 왕후가 되었다. [[현덕왕후]]는 성품도 좋고 내외명부도 안정스럽게 다스렸기 때문에 [[현덕왕후]]가 왕비가 된 이후 선덕왕후는 내외명부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았다.
 
 
 
==[[파일:현재2.png|width=30]] '''대왕대비 시절'''==
 
  
[[대조선국 인종|인종]] 재위 29일 치세를 끝으로 3월 10일 승하한 후 '''68세의 나이에 대왕대비'''가 되었다. 왕후에서 왕대비가 된 [[현덕왕후]]와 자경전에서 함께 살았으며 왕후가 된 [[원경왕후]]가 내외명부를 다스리기 시작하였다. 대왕대비가 된 이후 [[대조선국 성종|성종]]과 [[원경왕후]]의 인기가 커지면서 대왕대비로써 입지가 매우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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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10일, 시아버지 [[대조선국 태조|태조]]가 86세의 나이로 승하하고 남편 [[대조선국 인종|인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가 되었다. 왕비가 된 이후 정신질환을 더욱 더 심해지며 이제 '''망상, 허언'''을 하기도 하였고 '''궁인의 뺨을 때리거나 폭언'''을 하기도 하였다. 이에 시어머니 [[신덕왕후]]와 남편 [[대조선국 인종|인종]]이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2023년 2월 23일, 교태전에 정안왕후를 '''유폐'''시켰다. 정신병이 극도로 심각해진 정안왕후는 결국 유폐된지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교태전에서 '''빠이염'''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향년 72세로 훙서하였다.
  
대왕대비로 말년에 극대접을 받으며 평온하게 산 선덕왕후는 2023년 4월 20일, 자경전에서 향년 92세의 나이로 승하하였으며 시호는 '''신덕왕후(神德王后)'''로 정해졌다. 선덕왕후는 태어난 이후 [[환종]], [[대조선국 태조|태조]], [[대조선국 인종|인종]], [[대조선국 성종|성종]] 이렇게 '''4명의 국왕'''을 보았으며 [[의혜왕후]], [[신의왕후]], [[정안왕후]], [[현덕왕후]], [[원경왕후]] 이렇게 '''5명의 왕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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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다음날 [[대조선국 인종|인종]]의 후궁이던 [[현덕왕후]]가 바로 왕비로 책봉되었는데, 국상 기간중엔 그 누구도 책봉하지 않는게 원칙이다. 하지만 [[현덕왕후]]가 다음날 바로 왕비로 책봉된 것을 보면 왕실 가족들은 [[정안왕후]]의 죽음을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 전해져 내려오는 것에 따르면 [[정안왕후]]의 훙서 소식을 들은 왕족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파일:현재2.png|width=30]] '''가족 관계'''==
 
==[[파일:현재2.png|width=30]] '''가족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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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하나도 없어서 선덕왕후의 핏줄은 사실상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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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하나도 없어서 정안왕후의 핏줄은 사실상 없다.
  
 
==[[파일:현재2.png|width=30]] '''평가'''==
 
==[[파일:현재2.png|width=30]] '''평가'''==
  
・선덕 왕후는 어린 나이로 가난하게 자라 왕비가 되어 여러 고난을 겪고, 이후 왕비-왕대비-대왕대비가 될때까지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큰 대접을 받은 성공한 왕후로 후대에 평가'''되고 있다. 그는 자식 하나 없었으나 그녀의 영향력은 마치 '''아들이 여러명'''일 정도로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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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안왕후는 왕후로써 성품은 좋다고 볼수 있으나 정신 질환이 있었다는게 안타깝다는 평가가 많다.

2023년 7월 26일 (수) 16:38 판

조선왕조.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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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인종의 정비
정안왕후 | 定安王后
어기.png
출생2022년 11월 22일
대조선국 문경 사저
사망2023년 2월 23일 (향년 72세)
대조선국 한양 경복궁 교태전
후릉(厚陵)
재위기간2023년 2월 10일 ~ 2023년 2월 23일 (14일)
본관문경 서씨
부모없음
형제자매없음
배우자인종
자녀없음
종교유교
시호정안왕후 (定安王后)

현재2.png 개요

조선 제2대 국왕 인종의 정비이며 본관은 문경 서씨.

현재2.png 왕세자빈 시절

2022년 11월 22일, 문경에서 태어난 정안왕후는 가난하게 자랐다. 가난하게 자란 정안왕후는 어릴때부터 매우 내성적인 성격이였고 그게 이유인지 30살이 될때까지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던 2023년 1월 7일, 휘빈이씨가 세자빈에서 폐위되고 신덕왕후는 세자빈 간택 단자를 올렸다. 이에 정안왕후는 신분을 바꾸고자 간택단자에 나갔고 그 결과 세자빈이 되었다.

휘빈이씨를 잃은 원손 성종은 새어머니인 정안왕후를 잘 대해주었다고 한다. 정안왕후는 세자빈 시절, 국가의 주요 행사들을 바로바로 참석하긴했으나 의례와 전통을 익히지 못하여 윗전으로부터 여러 꾸중을 들었다. 전통을 익히지 못해 조정 대신들 앞에서 품위도 지키지 못해 왕실에 입장에선 골칫덩어리였다. 결국 정안왕후는 날이 갈수록 왕실의 삶이 힘들어졌고 정신병에 걸리고 만다.

현재2.png 왕비 시절

2023년 2월 10일, 시아버지 태조가 86세의 나이로 승하하고 남편 인종이 왕위에 오르면서 왕비가 되었다. 왕비가 된 이후 정신질환을 더욱 더 심해지며 이제 망상, 허언을 하기도 하였고 궁인의 뺨을 때리거나 폭언을 하기도 하였다. 이에 시어머니 신덕왕후와 남편 인종이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2023년 2월 23일, 교태전에 정안왕후를 유폐시켰다. 정신병이 극도로 심각해진 정안왕후는 결국 유폐된지 몇시간이 지나지 않아 교태전에서 빠이염이라는 유언을 남기고 향년 72세로 훙서하였다.

바로 다음날 인종의 후궁이던 현덕왕후가 바로 왕비로 책봉되었는데, 국상 기간중엔 그 누구도 책봉하지 않는게 원칙이다. 하지만 현덕왕후가 다음날 바로 왕비로 책봉된 것을 보면 왕실 가족들은 정안왕후의 죽음을 기다린 것으로 보인다. 전해져 내려오는 것에 따르면 정안왕후의 훙서 소식을 들은 왕족들은 별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현재2.png 가족 관계


자식이 하나도 없어서 정안왕후의 핏줄은 사실상 없다.

현재2.png 평가

・정안왕후는 왕후로써 성품은 좋다고 볼수 있으나 정신 질환이 있었다는게 안타깝다는 평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