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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기준과 판단==
==죽음의 기준과 판단==
상술한 '생명체의 모든 기능의 영구적인 정지'라는 정의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기능이 정지했더라도 종종 회복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영구히 회복되지 않는 상태인 것은 어느 시점부터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과거에는 이 판정이 엄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장례를 치렀어도 사실은 죽은 게 아니어서 사실상 [[생매장]]이 되어버리거나 장례 중에 깨어나는 사태도 있었다.<ref>때문에 [[관(장례)#기타|관]] 문서에서도 보듯 서구권에서는 그런 사태를 대비하는 장치가 존재했다. [[동아시아]]에서는 꽤 오랫동안 [[장례식]]을 치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다.</ref>
과거에는 [[심장]]이 정지하는 [[심장마비]]가 오면 살릴 방법이 없었으므로 '''[[심폐사|심장사]]'''(心臟死)가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의 기준이었다. 따라서 목이나 가슴의 맥을 짚어 본 뒤 박동이 느껴지지 않으면 죽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심폐소생술]], [[심장충격기]] 같은 응급요법과 다양한 심장 관련 의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심장이 아주 일순간 정지해도 빠른 처치로 소생이 가능하다는 게 알려지면서 죽음의 정의는 심장의 정지에서 더 근본적인 [[뇌]]의 기능 정지로 옮겨 갔다.<ref>물론 지금도 심장의 역할은 막대하며, 관념적으로도 심장은 생명과 자주 얽힌다. 후술할 뇌가 정신적 생명의 상징이라면 심장은 육체적 생명의 상징으로 주로 대응된다.</ref> 뇌의 다른 부분이 손상되었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부분은 멀쩡한 '''[[식물인간]]''' 상태와, 뇌의 전반적인 기능이 모두 정지한 '''[[뇌사]]'''(腦死)가 이에 속한다. 특히 식물인간은 일부에서 환자가 의식을 갖고 있으며 몇몇은 깨어나기도 하는 사례가 보고되면서, [[1960년대]] 이후 많은 나라에서는 [[뇌파]]와 [[호흡계]]까지 정지한, 완전한 뇌사를 죽음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ref>[[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2772257/|The diagnosis of brain death, Ajay Kumar Goila and Mridula Pawar, Indian J Crit Care Med. 2009 Jan-Mar; 13(1): 7-1]]</ref>
그러나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을 [[안락사]]시키거나, 뇌사자를 [[장기기증]]에 사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뇌사]]와 심장사'''를 복합적으로 판단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모든 [[세포]]의 기능 정지'''까지 주장되었다. 참수 등 '즉사'로 판정되는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그 즉시 죽음이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숨을 참는다고 해서 바로 죽는 게 아닌 것처럼 뇌를 향한 혈류가 끊어져 영양소의 공급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세포 자체가 [[아데노신3인산|ATP]] 등의 형태로 저장해 둔 에너지원이 존재한다.<ref>물론 이와 반대로 생명 활동에 필요는 하나 필수까지는 아닌 부위를 잃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도 있는데 이는 과다출혈이나 고통으로 인한 쇼크사라고 보는 게 맞다.</ref> [[참수]]를 해도 [[심장]]은 바로 멈추지 않으며, [[뇌]]도 활동한다.<ref>하지만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듀라한|자기 잘린 머리를 들고 걸었다든지]], 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당연한데 머리가 잘리면 뇌의 [[전기]] 신호가 몸으로 전달되지 않으므로 몸은 반응할 리가 없고, 말을 하려면 [[성대]]가 있어야하는데 참수 시 성대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역시 전설은 전설이다.</ref>
체내의 모든 세포의 생명 활동이 멈추고, 자체 효소와 부패균의 활동으로 세포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죽은 지 충분한 시간이 지나 모든 세포가 죽은 사람, 죽어서 화장을 한 사람은 현재로서는 살릴 방도가 전혀 없으며, 퍼센티지로 치면 인체의 100%가 기능 정지 및 복구 불가 상태라는 의미이므로 반박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사망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ref>단, 설령 생명 활동에 꼭 필요한 부위가 파괴되었다고 해도 이런 게 이루어지기 전에 신체의 일부를 타인에게 이식받았다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ref> 물론 이론상으로는 확률이 아예 0은 아니라서 다시 짜맞춰 원상복구가 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 나온 묘사처럼, 생명체의 주인을 [[유전자]]로 두고 인간의 육신을 '유전자를 후대에 전파하기 위한 운반 수단'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자식이 있어 자신의 유전자가 [[복제(생물학)|복제]], 전달된다면 죽지 않은 것이 된다. 반대로 내 후손의 대가 끊기면 죽는 것이다.
[[미래]]에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죽은 세포 하나하나를 살릴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위 정의는 재검토될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 등 [[기술적 특이점]] 지지자나 [[안티에이징]]을 연구하는 하버드대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머지 않은 미래에 죽음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경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죽음의 기준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 가령 뇌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산소 결핍에서도 생존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과거에는 뇌에 산소 공급이 얼마 이상 끊기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미국 뉴욕 대학교 랭온 헬스 병원(NYU Langone Health)의 중환자 치료 및 소생술 연구 책임자인 샘 파니아(Sam Parnia)는 "죽음을 회복 불가능한 사건으로 여기기보다는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일시적인 산소 결핍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즉, 일반적으로는 죽음이라는 것이 어느 하나의 시점이고 그것을 넘어가면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죽음이란 [[테세우스의 배|연속적 과정이고 어느 한 지점을 짚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간의 죽음에 대한 통념은 이러한 의료 지식의 발달을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
==죽음에 대한 공포==

2025년 4월 12일 (토) 22:33 판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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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죽음과 주사위는 모두에게 공평하다.
사무엘 푸츠

죽음이란 생명체이 끝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생명체의 장기 활동, 심장 박동 중단, 혈액 순환 중단 등 모든 활동이 정지되고 완전히 의식을 잃은 상태 또는 의식을 되돌릴 수 없는 상태. 말미암아 신체가 항상성을 유지하는 능력을 완전히 상실하는 것이다.

죽음의 기준과 판단

상술한 '생명체의 모든 기능의 영구적인 정지'라는 정의에는 애매한 점이 있다. 기능이 정지했더라도 종종 회복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것이 아니라 영구히 회복되지 않는 상태인 것은 어느 시점부터인지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과거에는 이 판정이 엄밀하지 못했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하고 장례를 치렀어도 사실은 죽은 게 아니어서 사실상 생매장이 되어버리거나 장례 중에 깨어나는 사태도 있었다.[1]

과거에는 심장이 정지하는 심장마비가 오면 살릴 방법이 없었으므로 심장사(心臟死)가 되돌릴 수 없는 죽음의 기준이었다. 따라서 목이나 가슴의 맥을 짚어 본 뒤 박동이 느껴지지 않으면 죽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심폐소생술, 심장충격기 같은 응급요법과 다양한 심장 관련 의학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심장이 아주 일순간 정지해도 빠른 처치로 소생이 가능하다는 게 알려지면서 죽음의 정의는 심장의 정지에서 더 근본적인 의 기능 정지로 옮겨 갔다.[2] 뇌의 다른 부분이 손상되었지만 생명을 유지하는 부분은 멀쩡한 식물인간 상태와, 뇌의 전반적인 기능이 모두 정지한 뇌사(腦死)가 이에 속한다. 특히 식물인간은 일부에서 환자가 의식을 갖고 있으며 몇몇은 깨어나기도 하는 사례가 보고되면서, 1960년대 이후 많은 나라에서는 뇌파호흡계까지 정지한, 완전한 뇌사를 죽음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3]

그러나 식물인간 상태의 사람을 안락사시키거나, 뇌사자를 장기기증에 사용해도 되는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뇌사와 심장사를 복합적으로 판단하게 되었고, 최근에는 모든 세포의 기능 정지까지 주장되었다. 참수 등 '즉사'로 판정되는 상황이 온다 하더라도 그 즉시 죽음이 찾아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숨을 참는다고 해서 바로 죽는 게 아닌 것처럼 뇌를 향한 혈류가 끊어져 영양소의 공급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세포 자체가 ATP 등의 형태로 저장해 둔 에너지원이 존재한다.[4] 참수를 해도 심장은 바로 멈추지 않으며, 도 활동한다.[5]

체내의 모든 세포의 생명 활동이 멈추고, 자체 효소와 부패균의 활동으로 세포가 무너지기 시작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죽은 지 충분한 시간이 지나 모든 세포가 죽은 사람, 죽어서 화장을 한 사람은 현재로서는 살릴 방도가 전혀 없으며, 퍼센티지로 치면 인체의 100%가 기능 정지 및 복구 불가 상태라는 의미이므로 반박의 여지가 없는 절대적인 사망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6] 물론 이론상으로는 확률이 아예 0은 아니라서 다시 짜맞춰 원상복구가 가능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불가능하다.

리처드 도킨스의 저서 이기적 유전자에 나온 묘사처럼, 생명체의 주인을 유전자로 두고 인간의 육신을 '유전자를 후대에 전파하기 위한 운반 수단'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자식이 있어 자신의 유전자가 복제, 전달된다면 죽지 않은 것이 된다. 반대로 내 후손의 대가 끊기면 죽는 것이다.

미래에 사람의 몸을 구성하는 수많은 죽은 세포 하나하나를 살릴 수 있는 기술이 나온다면 위 정의는 재검토될 것이다. 레이 커즈와일기술적 특이점 지지자나 안티에이징을 연구하는 하버드대 데이비드 싱클레어 교수는 머지 않은 미래에 죽음에 대한 정의가 완전히 뒤바뀔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신경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죽음의 기준은 점점 더 모호해지고 있다. 가령 뇌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산소 결핍에서도 생존할 수 있음이 밝혀졌다. 과거에는 뇌에 산소 공급이 얼마 이상 끊기면 죽었다고 생각했지만 치료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더 길어지고 있다. 미국 뉴욕 대학교 랭온 헬스 병원(NYU Langone Health)의 중환자 치료 및 소생술 연구 책임자인 샘 파니아(Sam Parnia)는 "죽음을 회복 불가능한 사건으로 여기기보다는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르는 일시적인 산소 결핍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즉, 일반적으로는 죽음이라는 것이 어느 하나의 시점이고 그것을 넘어가면 죽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죽음이란 연속적 과정이고 어느 한 지점을 짚어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세간의 죽음에 대한 통념은 이러한 의료 지식의 발달을 아직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

원인

불로불사는 가능한가?

다양한 노력

실제로 불로불사하는 생물

학문적 관점

철학

인문학

생물학

의학

종교적 관점

그리스도교

이슬람

불교

관련 문서

각주

  1. 때문에 문서에서도 보듯 서구권에서는 그런 사태를 대비하는 장치가 존재했다. 동아시아에서는 꽤 오랫동안 장례식을 치르기 때문에 그런 일이 상대적으로 적었다.
  2. 물론 지금도 심장의 역할은 막대하며, 관념적으로도 심장은 생명과 자주 얽힌다. 후술할 뇌가 정신적 생명의 상징이라면 심장은 육체적 생명의 상징으로 주로 대응된다.
  3. The
  4. 물론 이와 반대로 생명 활동에 필요는 하나 필수까지는 아닌 부위를 잃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도 있는데 이는 과다출혈이나 고통으로 인한 쇼크사라고 보는 게 맞다.
  5. 하지만 전설에 나오는 것처럼 자기 잘린 머리를 들고 걸었다든지, 말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당연한데 머리가 잘리면 뇌의 전기 신호가 몸으로 전달되지 않으므로 몸은 반응할 리가 없고, 말을 하려면 성대가 있어야하는데 참수 시 성대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역시 전설은 전설이다.
  6. 단, 설령 생명 활동에 꼭 필요한 부위가 파괴되었다고 해도 이런 게 이루어지기 전에 신체의 일부를 타인에게 이식받았다면 또 얘기가 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