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서양전쟁"의 두 판 사이의 차이

56번째 줄: 56번째 줄:
  
 
|| [[File:기뢰.jpg|400px]] ||
 
|| [[File:기뢰.jpg|400px]] ||
||<-4><bgcolor=#CCCCCC> '''올리비안 왕국 연안전투함 주변의 기뢰폭발''' ||
+
||<-4><bgcolor=#CCCCCC> '''올리비안 왕국 연안전투함 (올바나3함) 주변의 기뢰폭발''' ||
  
(작성중)
+
올리비안 왕국은 서쪽으로 브라질 본토로부터 오는 해군전력과 동쪽으로 기니비사우 영토서 오는 브라질 상륙군과 미사일을 모두 방어해야 했지만 해상봉쇄와 동시에 전체적으로 포위당하면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오랜 올리비안 왕국의 동맹국이었던 '''[[프랑스 공화국]]'''과 '''[[스페인 왕국]]'''이 나서게 되는데......
 +
 
 +
|| [[File:201268559_1280.jpg|400px]] ||
 +
||<-4><bgcolor=#CCCCCC> '''해상봉쇄를 당해서 회항하는 올리비안 왕국 초계기와 구축함''' ||
  
 
==프랑스와 스페인의 참전==
 
==프랑스와 스페인의 참전==
  
(작성중)
+
'''프랑스 공화국'''과 '''스페인 왕국'''은 브라질과 기니비사우 그리고 서아프리카까지 전쟁에 가세하자 '''올리비안 왕국의 동맹국을 명목으로 참전을 선언'''했다. '''전쟁선포 하루만'''이다. 프랑스의 경우, '''포르뱅급 방공구축함 6척과 핵추진항공모함인 드골함을 선두'''로 보내고 여러 다른 구축함 및 잠수함을 세워 대규모 전단을 꾸려 기니비사우로 향했다. 서아프리카 연합은 당연 그들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통과하는 프랑스 함대를 건들 수가 없었는데, 건드는 순간 X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
그러나 프랑스의 군사력은 브라질보다도 앞섬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당황하지 않았다. 브라질이 먼저 선전포고한 전쟁이었고, 그들의 전쟁목적이 올리비안 왕국의 정부를 완전 무력화시키는 것이 다였기 때문에 브라질은 크게 치고 바로 빠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질이 당황하지 않은 더욱 큰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이는 뒤에서 계속 기술하도록 하겠다.
 +
 
 +
|| [[File:프랑스 전폭기 출동.jpg|400px]] ||
 +
||<-4><bgcolor=#CCCCCC> '''기니비사우를 폭격하기 위해 카나리아 공항서 발진하는 프랑스 전폭기''' ||
 +
 
 +
기니비사우 지역은 프랑스 전단의 도착으로 완전 초토화되었다. 기니비사우 내 주둔하던 브라질군은 이미 오이리 제도(올리비안 왕국 본토)로 모두 상륙했고, 미사일 또한 초기 오이리시(올리비안 왕국의 수도)를 폭격하면서 소모했기 때문에 브라질은 잃을 것이 없었다. 기니비사우 대통령은 긴급하게 세네갈로 도망쳤다. 프랑스군은 즉각 기니비사우에 상륙하여 남아있는 브라질과 기니비사우 세력을 제거했는데, 아쉽게도 프랑스군은 본토에 군을 상륙시켜 오이리 제도에 상륙한 브라질군을 몰아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다만 기니비사우 정부의 지지율은 국토가 초토화됨에 따라 크게 떨어지고 이는 '''종전과 쿠테타 종료 이후 올리비안 왕국과 기니비사우가 서로 합쳐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
|| [[File:스페인 전함.jpg|400px]] ||
 +
||<-4><bgcolor=#CCCCCC> '''북쪽 해역의 브라질 구축함을 격침한 후 모뷔뭰토 군항에 입항하는 스페인 군함''' ||
 +
 
 +
한편 스페인은 카나리아 제도를 경유하여 소규모 함대를 보내 브라질 해군이 올리비안 왕국 북쪽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기여도는 비록 적지만 '''브라질의 오이리 제도 해상봉쇄를 크게 저지'''한데에 의의가 있다.
  
 
==한일연합함대의 등장==
 
==한일연합함대의 등장==
  
(작성중)
+
|| [[File:NISI20181223_0000249037_web.jpg|400px]] ||
 +
||<-4><bgcolor=#CCCCCC> '''인도양 상 대한왕국의 세종대왕함과 뒤따르는 호위함과 상륙함''' ||
  
==포루트갈의 참전==
+
한편 동남아시아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대한왕국]]''' 함대는 올리비안 왕국에서의 전쟁 상황을 전해듣고 기꺼이 올리비안 왕국을 돕기로 결정했다. 이는 [[대한왕국]]의 국왕인 이 한의 허가가 있었다. 대한왕국의 함대는 중화민국 타이베이로 돌아가 [[일본]] 함대와 연합하여 전쟁 3일만에 남아공으로 출항했다.
  
(작성중)
+
한일연합함대는 출항 20일만에 본토에 도착했으며 빠른 지원을 위해 공군지원도 이어졌다. 대한왕국의 해병대는 터키를 경유하여 본토에 강습했다.
 +
 
 +
==포르투갈의 참전==
 +
 
 +
'''포르투갈 공화국'''은 [[올리비안 왕국]]의 오랜 동맹국이자 혈연으로 맺어진 나라다. 처음에는 참전을 꺼렸으나, 스페인까지 참전하자 의회에서 급박히 참전하기로 결정했다. 포르투갈은 '''의료품과 구호품을 중심으로 지원'''했다.
  
 
==전개2==
 
==전개2==
 +
 +
|| [[File:201408091104540639_t.jpg|400px]] ||
 +
||<-4><bgcolor=#CCCCCC> '''기니비사우를 폭격하는 모습''' ||
 +
 +
거의 대부분의 기니비사우의 정부 인사가 프랑스군에 의해 체포되었고 대통령까지 세네갈로 도주하면서 기니비사우는 무정부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프랑스는 세네갈에 기니비사우 대통령을 넘겨달라고 요구했고, 세네갈은 기니비사우를 배신하고 대통령을 생포하여 프랑스에 넘겨줬다. 또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압박으로 서아프리카 연합은 브라질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브라질은 이제 혼자 남게 되었다.
 +
 +
2016년 1월 30일,
  
 
(작성중)
 
(작성중)

2019년 7월 26일 (금) 20:45 판

남대서양전쟁
War of South Atlantic
121030018052370 thumb 1024 w.jpg
(올리비안 왕국 영해를 지나고 있는 올리비안식 구축함)
날짜
2015년 1월 12일 ~ 2015년 2월 3일
지역
올리비안 왕국 과 주변 해역, 동브라질
이유
올리비안 왕국의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내외적 요소
교전국오이 왕국.jpg올리비안 왕국
프랑스.jpg프랑스 공화국
400px-대한왕국 태극기.jpg대한왕국(한일연합)
스페인.jpg스페인 왕국
Vhfnxnrkf.jpg포르투갈 공화국
아르헨티나.png아르헨티나 공화국
브라질.jpg브라질 공화국
기니비사우.png기니비사우 공화국
서아프리카 연합
지휘관조나단 8세(가비오이 조나단)
이 한 (김태환 대령(제독))
프랑수아 올랑드
마가리타로 블레스
아나발 카바쿠 실바
마우리시오 마키리
지우마 호세프
결과
빠른 평화협정으로 승자없는 전쟁
국방부 쿠테타(2015)
영향
국방부 쿠테타까지 발생하면서 왕국이 크게 쇠퇴함


748e7b6104a850298285e0769e73d5f8.jpg

(브라질 해군 열병식)


발단

2128FF4054E9CF1505.jpg
(사진은 브라질의 신형미사일)

브라질은 지난 50년간 올리비안 왕국에 수차례 군사적 도발을 강행했다. 그러나 2015년 초, 브라질 총선을 앞두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브라질은 외부로 정치적 관심을 돌릴 필요성을 느꼈고 그 대상을 올리비안 왕국으로 지정하게 되었다. 브라질 대통령의 지우마 호세프는 올리비안 왕국의 오이리 제도에 영유권을 주장하여 어이없는 도발을 강행했고, 한편으로는 올리비안 기니비사우 연방의 불안한 형국을 이용하여 올리비안 왕국기니비사우 공화국 두 국가의 사이를 갈라놓고 기니비사우 공화국을 브라질의 동맹국으로 삼으려 했다.

당시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굉장히 경제적으로 궁핍하여 올리비안 왕국에 무리한 경제적 지원을 부탁했는데 연방군을 결성할 것을 요청, 기업투자를 더욱 늘려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기니비사우 공화국의 부진한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함이었는데 올리비안 왕국은 당연히 이런 무리한 부탁을 한 번에 들어주기 어려웠고 내부로는 독립당과 정부 간의 관계가 극심하여 민주의회에서 정기회의 자체도 열리지 않아 행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다.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이를 계기로 올리비안 왕국을 신뢰할 수 없다라고 했으며, 더군다나 연방군의 결성이 이루어지고 올리비안-기니비사우 연방군의 주둔지가 기니비사우 공화국의 수도 비사우로 결정되자 올리비안 왕국을 견제하던 여러 서아프리카의 국가들이 기니비사우 공화국에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올리비안 왕국을 비난했다.

이러한 형세가 지속되고 기니비사우 공화국의 여당의 지지율이 급락하자, 당시 기니비사우 공화국 대통령인 '하이문두 페레이라'(대통령이 임기 중 사망하여 권한대행으로 앉아있었기에 정부를 유지시키려는 태도를 보였다.)는 급기야 서아프리카로부터의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올리비안 왕국에 연방해체를 통보한다. 이에 연방법에 의하여 올리비안 왕국과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15일만에 연방해체되었고, 연방군도 결성 19일만에 해체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가만히 있을 올리비안 왕국이 아니었다. 올리비안 왕국은 즉각 기니비사우 공화국을 비난했고, 연방군과 기니비사우 정부에 투자한 19조 8000억원을 순식간에 잃어버릴 위기에 처하자 배상을 요청하고, 모든 압박 카드를 사용했다. 이때를 그냥 넘길 브라질 공화국이 아니었다. 브라질은 기니비사우 공화국과 같은 언어를 사용, 비슷한 문화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동질감을 이유로 우호관계를 선포하고 곧바로 서아프리카의 對기니비사우 국가들의 위협을 막을 수 있도록, 브라질군을 주둔시켜주겠다고 했다. 기니비사우 공화국은 당연히 이 조건을 수락했는데 사실은 브라질이 올리비안 왕국을 압박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모를 리 없는 올리비안 왕국은 기니비사우 공화국을 모든 수단으로 압박하고, 브라질을 비난, UN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소용없었다. 브라질은 이미 올리비안 왕국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조사하고 그에 따른 대응을 생각해두었기 때문에, 타격이 거의 없었고 가장 큰 이유는 기니비사우 공화국이 이렇게 빠르게 배신할 것이라는 것을 올리비안 왕국은 전혀 몰랐고 대응도 미비했기 때문이다.

발발

올리비안 왕국은 외교전에서도 패배했고 연방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매우 불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브라질은 기니비사우에 군사를 주둔시키기까지 했고, 올리비안 왕국은 군사적으로도 압박을 느끼게 되었으며 국내적으로도 상황이 흔탁치 않았는데, 제 1 야당인 독립당과 제 3 야당인 국민당이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의회를 보이콧하면서 정부가 매우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이다.

이때, 1월 4일과 5일, 독립당이 총리와 국왕을 동시에 해임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총리가 독립당 출신인데 독립당과 뜻이 다르고 행정부를 야당의 뜻 없이 따른다는 점에서 정권교체를 원했던 독립당 입장에서는 매우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립당은 사법부와 입법부를 대부분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무리없이 총리를 해임하는데 성공하는데, 이때 검찰에서는 독립당이 브라질과 연통한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총리를 해임하기 위해서 최고의원위원회의 동의를 받아야 했는데 독립당이 최고의원위원회에 압력을 불어넣었다는 의심 또한 하게 되면서 독립당에 대한 검찰조사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국왕강제퇴위안이 의회에서 제출되고, 브라질과 전쟁까지 발발하면서 검찰조사는 무산된다.

국왕강제퇴위안은 처음에 2015년 12월 26일, 최고의원위원회에서 동의 1명을 얻지 못해 무산되었는데 10일만에 다시 퇴위안이 제출되었고, 최고의원위원회의 전원일치로 국민투표 실시, 국민투표에서 76%의 동의를 얻어 국왕이 퇴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국왕이 퇴위될 수 있었던 까닭은 정치적으로 정부가 힘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고, 브라질과의 전쟁위기가 고조되는데도 연방이 해체되어 외교전에서도 정부가 패배, 전쟁위기는 더욱 고조되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정부의 무능함이 독립당의 지지율상승과 정권교체의 희망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행정부의 수반이 중간에 해임되거나 사임하는 경우는 파타나샤 정권 이후로 처음이었고 민주의회의 등장 이래 최초였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크게 조명되었다.

한편 브라질 공화국은 이때가 기회였다. 브라질 공화국은 이미 여러번 도발로 올리비안 왕국의 군사적 상황을 대충 파악해 놓은 상태였고, 기니비사우라는 동맹국을 얻었으며, 서아프리카의 지원을 약속받았고 더군다나 올리비안 왕국의 정부가 국왕이 없어 매우 불안한 형국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이 전쟁 적기였다.

브라질은 기니비사우 공화국의 육군을 수도와 모뷔뭰토군에 상륙할 준비를 했고, 본토에서 함대를 출격시켜 해상봉쇄를 하는 군사작전을 수립했으며, 1월 12일 모든 준비를 끝마친 브라질은 올리비안 왕국에 선전포고한다. 브라질은 당일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전개1

전쟁으로 파괴된 집.jpg
전쟁으로 파괴되었던 상점

전쟁 발발직전, 올리비안 왕국은 데프콘 4단계를 발령하고 있었는데, 발발직후 데프콘 1단계로 격상, 즉각 F-15 4편대OV1 제 2전단을 출격시켰으며 아일리아급 함과 잠수함 등 여러 해군전력을 움직였다. 그러나 브라질은 즉각 올리비안 왕국의 해상을 봉쇄시켰으며 미사일 폭격으로 왕국의 항만을 무력화시키고 기뢰 수십기를 설치해 올리비안 왕국의 해군전력이 기뢰선을 넘지 못하도록 했다.

기뢰.jpg
올리비안 왕국 연안전투함 (올바나3함) 주변의 기뢰폭발

올리비안 왕국은 서쪽으로 브라질 본토로부터 오는 해군전력과 동쪽으로 기니비사우 영토서 오는 브라질 상륙군과 미사일을 모두 방어해야 했지만 해상봉쇄와 동시에 전체적으로 포위당하면서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이때 오랜 올리비안 왕국의 동맹국이었던 프랑스 공화국스페인 왕국이 나서게 되는데......

201268559 1280.jpg
해상봉쇄를 당해서 회항하는 올리비안 왕국 초계기와 구축함

프랑스와 스페인의 참전

프랑스 공화국스페인 왕국은 브라질과 기니비사우 그리고 서아프리카까지 전쟁에 가세하자 올리비안 왕국의 동맹국을 명목으로 참전을 선언했다. 전쟁선포 하루만이다. 프랑스의 경우, 포르뱅급 방공구축함 6척과 핵추진항공모함인 드골함을 선두로 보내고 여러 다른 구축함 및 잠수함을 세워 대규모 전단을 꾸려 기니비사우로 향했다. 서아프리카 연합은 당연 그들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통과하는 프랑스 함대를 건들 수가 없었는데, 건드는 순간 X짐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군사력은 브라질보다도 앞섬에도 불구하고, 브라질은 당황하지 않았다. 브라질이 먼저 선전포고한 전쟁이었고, 그들의 전쟁목적이 올리비안 왕국의 정부를 완전 무력화시키는 것이 다였기 때문에 브라질은 크게 치고 바로 빠질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브라질이 당황하지 않은 더욱 큰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이는 뒤에서 계속 기술하도록 하겠다.

프랑스 전폭기 출동.jpg
기니비사우를 폭격하기 위해 카나리아 공항서 발진하는 프랑스 전폭기

기니비사우 지역은 프랑스 전단의 도착으로 완전 초토화되었다. 기니비사우 내 주둔하던 브라질군은 이미 오이리 제도(올리비안 왕국 본토)로 모두 상륙했고, 미사일 또한 초기 오이리시(올리비안 왕국의 수도)를 폭격하면서 소모했기 때문에 브라질은 잃을 것이 없었다. 기니비사우 대통령은 긴급하게 세네갈로 도망쳤다. 프랑스군은 즉각 기니비사우에 상륙하여 남아있는 브라질과 기니비사우 세력을 제거했는데, 아쉽게도 프랑스군은 본토에 군을 상륙시켜 오이리 제도에 상륙한 브라질군을 몰아내려는 시도는 하지 않았다. 다만 기니비사우 정부의 지지율은 국토가 초토화됨에 따라 크게 떨어지고 이는 종전과 쿠테타 종료 이후 올리비안 왕국과 기니비사우가 서로 합쳐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스페인 전함.jpg
북쪽 해역의 브라질 구축함을 격침한 후 모뷔뭰토 군항에 입항하는 스페인 군함

한편 스페인은 카나리아 제도를 경유하여 소규모 함대를 보내 브라질 해군이 올리비안 왕국 북쪽으로 이동하지 못하도록 저지했다. 기여도는 비록 적지만 브라질의 오이리 제도 해상봉쇄를 크게 저지한데에 의의가 있다.

한일연합함대의 등장

NISI20181223 0000249037 web.jpg
인도양 상 대한왕국의 세종대왕함과 뒤따르는 호위함과 상륙함

한편 동남아시아에서 작전을 수행하던 대한왕국 함대는 올리비안 왕국에서의 전쟁 상황을 전해듣고 기꺼이 올리비안 왕국을 돕기로 결정했다. 이는 대한왕국의 국왕인 이 한의 허가가 있었다. 대한왕국의 함대는 중화민국 타이베이로 돌아가 일본 함대와 연합하여 전쟁 3일만에 남아공으로 출항했다.

한일연합함대는 출항 20일만에 본토에 도착했으며 빠른 지원을 위해 공군지원도 이어졌다. 대한왕국의 해병대는 터키를 경유하여 본토에 강습했다.

포르투갈의 참전

포르투갈 공화국올리비안 왕국의 오랜 동맹국이자 혈연으로 맺어진 나라다. 처음에는 참전을 꺼렸으나, 스페인까지 참전하자 의회에서 급박히 참전하기로 결정했다. 포르투갈은 의료품과 구호품을 중심으로 지원했다.

전개2

201408091104540639 t.jpg
기니비사우를 폭격하는 모습

거의 대부분의 기니비사우의 정부 인사가 프랑스군에 의해 체포되었고 대통령까지 세네갈로 도주하면서 기니비사우는 무정부 상태에 들어가게 되었다. 프랑스는 세네갈에 기니비사우 대통령을 넘겨달라고 요구했고, 세네갈은 기니비사우를 배신하고 대통령을 생포하여 프랑스에 넘겨줬다. 또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압박으로 서아프리카 연합은 브라질에 대한 지지를 철회했고, 브라질은 이제 혼자 남게 되었다.

2016년 1월 30일,

(작성중)

전개3

(작성중)

결과

(작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