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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는 [[대경제국 근위대|근위대]]와는 달리 1일 늦게 설치됐다. 설치된 당일인 1987년 10월 12일에 초대 시위대장으로 '이영곤' 남작이 임명되고 초대 시위부대장으로는 '이근암' 남작이 임명된다. 이영곤 남작은 [[대경제국 근위대|근위대]]보다 빠르게 시위대 훈령 제1호를 공포하여 시위대의 직제를 제정하고 [[대경제국군]] 편제를 그대로 가져와 2개 연대를 두면서 [[대경제국 근위대|근위대]]와는 다르게 초기 조직 기반을 빠르게 정립한다. 이영곤 시위대장 사후로는[[대경제국 황립포병사관학교|황립포병사관학교]] 출신의 시위대장만 줄줄히 시위대장에 임명되었는데 2009년에 취임한 4대 시위대장인 '김옥균' 남작은 평범한 육군 출신 대령으로 김옥균 남작은 시위대의 지연으로 구성되어 있던 관료구조를 혁파하고 개혁파 귀족의 후견 하에[* [[평상택]] [[대경제국 국무대신|국무대신]]이 적극 후원했다.] 시위대에 관한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으나 얼마 안되어 보수파 소속의 [[김일선]] 남작이 국무대신에 오르자 시위대 내부 개혁이 중단되버린다.[* 게다가 이때는 궁내대신도 귀족원로이자 보수파인 [[이운서]] 후작이 재임하던 시절이었고 그나마 [[평상택]] [[대경제국 국무대신|국무대신]]이 이를 통제하다가 [[김일선]] 남작이 취임해버리면서 통제장치도 사라져버린 [[이운서]] 후작은 더욱 시위대의 개혁에 압박을 넣었다.] 시간이 지나서 2019년, [[김당정]] 국무대신이 군무원장에게 추천한 '한원숙' 남작이 시위대장에 임명되었는데 한원숙 남작은 이전 주변의 상황들로 인해 개혁을 중단한 김옥균 남작의 정치적 제자로 현재 그녀는 시위대의 내정개혁을 실시하고 있다.[* 지금 내정개혁을 하기도 딱 좋은 상황인데 궁내대신과 [[대경제국 국무대신|국무대신]] 모두 개혁파 소속이기 때문.][* 하지만 궁내대신도 [[대경제국 국무대신|국무대신]]도 마찬가지의 문제인 귀족원로들의 견제가 여전하다.] | 시위대는 [[대경제국 근위대|근위대]]와는 달리 1일 늦게 설치됐다. 설치된 당일인 1987년 10월 12일에 초대 시위대장으로 '이영곤' 남작이 임명되고 초대 시위부대장으로는 '이근암' 남작이 임명된다. 이영곤 남작은 [[대경제국 근위대|근위대]]보다 빠르게 시위대 훈령 제1호를 공포하여 시위대의 직제를 제정하고 [[대경제국군]] 편제를 그대로 가져와 2개 연대를 두면서 [[대경제국 근위대|근위대]]와는 다르게 초기 조직 기반을 빠르게 정립한다. 이영곤 시위대장 사후로는[[대경제국 황립포병사관학교|황립포병사관학교]] 출신의 시위대장만 줄줄히 시위대장에 임명되었는데 2009년에 취임한 4대 시위대장인 '김옥균' 남작은 평범한 육군 출신 대령으로 김옥균 남작은 시위대의 지연으로 구성되어 있던 관료구조를 혁파하고 개혁파 귀족의 후견 하에[* [[평상택]] [[대경제국 국무대신|국무대신]]이 적극 후원했다.] 시위대에 관한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으나 얼마 안되어 보수파 소속의 [[김일선]] 남작이 국무대신에 오르자 시위대 내부 개혁이 중단되버린다.[* 게다가 이때는 궁내대신도 귀족원로이자 보수파인 [[이운서]] 후작이 재임하던 시절이었고 그나마 [[평상택]] [[대경제국 국무대신|국무대신]]이 이를 통제하다가 [[김일선]] 남작이 취임해버리면서 통제장치도 사라져버린 [[이운서]] 후작은 더욱 시위대의 개혁에 압박을 넣었다.] 시간이 지나서 2019년, [[김당정]] 국무대신이 군무원장에게 추천한 '한원숙' 남작이 시위대장에 임명되었는데 한원숙 남작은 이전 주변의 상황들로 인해 개혁을 중단한 김옥균 남작의 정치적 제자로 현재 그녀는 시위대의 내정개혁을 실시하고 있다.[* 지금 내정개혁을 하기도 딱 좋은 상황인데 궁내대신과 [[대경제국 국무대신|국무대신]] 모두 개혁파 소속이기 때문.][* 하지만 궁내대신도 [[대경제국 국무대신|국무대신]]도 마찬가지의 문제인 귀족원로들의 견제가 여전하다.] | ||
==구성== | ==구성== | ||
시위대는 4개 연대 편제로 구성되며, 모두 보병 편제이다. | |||
===편제=== | |||
* 제1연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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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연대==== | |||
====제2연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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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 ==기타== |
2020년 4월 23일 (목) 22:11 판
![]() 大敬帝國 侍衛隊 / Korea High Lifeguard | |
설립일 | 의명 26년, 1987년 10월 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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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립 근거 | 칙령 제17호 |
직원 수 | 4,155명 |
시위대장 | 5대 한원숙 |
상급기관 | 경시원 |
개요
우리는 황제 폐하를 호위하는 영예로운 이들이다.
We are honorable army escorting the Korea Emperor. — 시위대의 슬로건
대경제국 시위대(영어: Korea High Lifeguard, 한문: 大敬帝國 侍衛隊)는 대경제국 황제를 특정한 상황에 호위를 하는 기관이다.
상세
시위대는 경시원의 지휘를 받는 군대로 엄연히 대경제국군과는 별개의 지휘 계통에 속한다. 이에 따라 시위대에 관한 군령권은 합참의장이 소유하지 않고 있다. 시위대의 지휘관은 '시위대장'으로 불리며, 시위대장은 근위대와는 달리 시위부대장이라는 부지휘관을 둔다. 시위부대장은 소령 계급을 지내고 있던가 아님 지냈던 귀족이 보임되며, 시위대장은 대령 계급을 지내고 있는 귀족이 보임된다.
역사
시위대는 근위대와는 달리 1일 늦게 설치됐다. 설치된 당일인 1987년 10월 12일에 초대 시위대장으로 '이영곤' 남작이 임명되고 초대 시위부대장으로는 '이근암' 남작이 임명된다. 이영곤 남작은 근위대보다 빠르게 시위대 훈령 제1호를 공포하여 시위대의 직제를 제정하고 대경제국군 편제를 그대로 가져와 2개 연대를 두면서 근위대와는 다르게 초기 조직 기반을 빠르게 정립한다. 이영곤 시위대장 사후로는황립포병사관학교 출신의 시위대장만 줄줄히 시위대장에 임명되었는데 2009년에 취임한 4대 시위대장인 '김옥균' 남작은 평범한 육군 출신 대령으로 김옥균 남작은 시위대의 지연으로 구성되어 있던 관료구조를 혁파하고 개혁파 귀족의 후견 하에 평상택 국무대신이 적극 후원했다. 시위대에 관한 개혁에 박차를 가하였으나 얼마 안되어 보수파 소속의 김일선 남작이 국무대신에 오르자 시위대 내부 개혁이 중단되버린다. 게다가 이때는 궁내대신도 귀족원로이자 보수파인 이운서 후작이 재임하던 시절이었고 그나마 평상택 국무대신이 이를 통제하다가 김일선 남작이 취임해버리면서 통제장치도 사라져버린 이운서 후작은 더욱 시위대의 개혁에 압박을 넣었다. 시간이 지나서 2019년, 김당정 국무대신이 군무원장에게 추천한 '한원숙' 남작이 시위대장에 임명되었는데 한원숙 남작은 이전 주변의 상황들로 인해 개혁을 중단한 김옥균 남작의 정치적 제자로 현재 그녀는 시위대의 내정개혁을 실시하고 있다. 지금 내정개혁을 하기도 딱 좋은 상황인데 궁내대신과 국무대신 모두 개혁파 소속이기 때문. 하지만 궁내대신도 국무대신도 마찬가지의 문제인 귀족원로들의 견제가 여전하다.
구성
시위대는 4개 연대 편제로 구성되며, 모두 보병 편제이다.
편제
- 제1연대
- 제1대대
- 제3대대
- 제2연대
- 제2대대
- 제4대대
- 제6대대
- 제3연대
- 제3대대
- 제7대대
- 제4연대
- 제8대대
- 제9대대
- 제10대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