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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대부분을 장악한 군국주의 국가로, 유럽 정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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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23일 (토) 07:52 판
슈타벨 제국 Stabbelische Reich | |||
국가 | 55번 병사의 노래 | ||
영토 | |||
인구 | 81,254,327명 | ||
국가 원수 | 디트리히 슈타벨 제국 대제 | ||
수도 | 젠트룸 | ||
공용어 | 독일어, 러시아어, 폴란드어 | ||
정치체제 | 군주정 파시즘 | ||
경제체제 | 국가 통제적 자본주의 | ||
화폐단위 | 글뤼크 | ||
GDP | 2조 3124억 USD | ||
국조 | 검독수리 |
개요
동유럽 대부분을 장악한 군국주의 국가로, 유럽 정세에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국가이다.
역사
간단 연표
1. 왕조시대
960년: 미에슈코 1세, 폴란드 왕국 수립[피아스트piast 왕조]
966년: 미에슈코 1세, 로마 카톨릭 세례를 통해 기독교를 정식 국교로 선포
1039년, 카지미에시 1세, 수도를 그니에즈노에서 크라쿠프로 천도
1241년: 타타르족의 침입으로 크라쿠프 함락
1333년: 카지미에시 3세 등극, 발트 해- 흑해 연안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 확장, 폴란드 왕국 전성기 구가
1364년: 체코 프라하 대학(1348)에 이어 중- 동부유럽 두번 째 대학인 크라쿠프 야기엘론스키 대학 설립
1385년: 피아스트 왕조가 끝나고 왕권 계승자인 야드비가여왕이 리투아니아의 야기에우워 대공과 결혼,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 왕국의 야기엘로니안 왕조 탄생
1410년: 야기에우워 대공, 튜턴 기사단과의 그룬발트 전투에서 승리, 폴란드 전역 지배권 확보
1525년: 튜턴 기사단 호엔촐레른 공작, 크라쿠프 광장에서 폴란드 지그문트 왕에게 충성서약
1569년: 폴란드와 리투아니아는 두 왕조 간의 유대 관계를 항구적인 제도적 장치로 통합, 일종의 국가 연합을 결성, 폴란드- 리투아니아 연합 왕국 탄생
1572년: 왕위 계승자 부재로 야기엘로니안 왕조가 끝나고, 귀족들이 국왕을 선출하는 일종의 귀족 공화정 등장, 국왕의 권력이 귀족들에 의해 제한됨
1576년: 스테판 바토리가 왕이 되다.
1579년: 1581년까지 러시아를 상대로 승리하다.
1596년: 지그문트 3세, 수도를 남부 크라쿠프에서 중부 바르샤바로 천도
1605년: 1610년, 폴란드 지그문트 3세, 러시아 내분을 틈타 모스크바 2회 점령
1655년: 7월 스웨덴의 폴란드 침공, 11월 쳉스토호바 야스나구라 전투
1683년: 소비에스키 3세, 터키군의 오스트리아 빈 포위 공격 격퇴
1722년: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에 의한 폴란드 1차 분할
1792년: 5월 3일, 유럽 최초의 성문 헌법인 폴란드 5·3 헌법 제정
1793년: 러시아, 프러시아 양국에 의한 폴란드 2차 분할
1794 코시치우슈코 봉기 실패
1795년: 러시아, 프러시아, 오스트리아 3국에 의한 3차 영토 분할로 폴란드 왕국 멸망
2. 제1, 2차 세계대전
1914년: 1차 대전 발발 및 오스트리아군 휘하 피우수트스키 장군의 폴란드 군단 창설
1918년: 11훨 11일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를 원칙으로 독립 폴란드 공화국 탄생
1919 ~1921년: 대소련 전쟁을 통해 현 리투아니아,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서부지역을 편입, 영토확장
1922년: 12월 16일 제2공화국 초대 대통령 나루토비치, 취임 5일 만에 극우민족주의자에게 암살됨
1926년: 피우수트스키 장군, 쿠테타로 집권, 1935년 사망 시까지 철권통치
1932년: 7월, 폴란드- 소련 불가침조약 체결
1934년: 1월, 폴란드- 독일 불가침조약 체결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의 폴란드 공격으로 2차대전 발발
1939 9월 17일 소련의 폴란드 침공, 폴란드 전역 독일과 소련에 양분, 멸망.
3.냉전시대
1945년 6월: 폴란드 임시정부 수립
1947년 1월: 소련의 강압속에 실시된 총선 실시 결과, 공산· 사회 양당 중심의 인민전선 압승, 공산당 정부 수립
1953년 4월: 피아넨 장군의 반공 쿠데타 성공
1953년 11월: 피아넨 장군의 암살, 부패와 내부 정권 찬탈의 연속. 미국과 나토에게 대부분의 이권이 팔아넘겨지고 주권이 훼손됨.
1955년 2월: 대규모 민주화 운동 발발, 유혈 진압으로 훗날 '바르샤바 대학살'로 일컬어질 2.14 사태 발생. 군을 동원한 유혈 진압으로 전국에서 약 100만여명이 사망하고 300만명이 실종됨.
1958년 9월: 바르샤바 조약기구에 가입하고자 하는 공산주의적 장교들의 공산 쿠데타, 바르샤바 조약기구 가입.
1959년 1월: 미국의 사주를 받은 구 피아넨 장군 추종자들의 반란, 적백 내전 시작.
1962년 7월: 미국이 개입한 증거를 잡아낸 소련의 갑작스런 직접적 개입으로 내전 1주만에 종결.
1962년 12월~1965년 6월: 공산당 정부의 대숙청으로 1100만여명이 처형됨. 처형 대상에는 5세 이상이면 모두가 포함되었으며 구 백군에 협조하였거나 해당 점령지에서 파르티잔 활동을 하지 않은 모든 자였다.
1967년 5월: 나토의 은밀한 지원을 받은 민주화운동과 백군 추종자들의 2차 반란, 그러나 내부 고발자로 인해 반란은 시작하기도 전에 주동자들이 모두 처형되며 종결되고 민주화운동은 대대적인 탄압과 공개처형으로 묵살됨. 약 150만명 정도의 희생자가 발발함.
1971년 1월: 극심한 인구난으로 산업이 거의 마비됨. 이미 부패해버린 공산당 정부는 소련으로부터 인력을 받고 자신들의 신변을 보장받는 조건으로 산업시설을 모두 소련에 양도한다는 말도 안되는 조약을 채결, 국민들 50%가 실직하게 되는 대참사가 발발. 그 와중에 식량 배급조차 거의 되지 않아 국민들은 순무와 양파껍질로 끼니를 때워야 했다. 이러한 상황은 현 정권이 생겨난 계기가 된 '8.18 혁명'이 일어난 1990년까지 이어짐.
1980년 7~8월: 약 300만명이 기아로 사망하고 나머지들도 다 그리 될 운명에 처하자 또 한번의 대대적인 시위 발발, 군 부대마저 합세. 다급해진 공산당 정부는 소련에 구원을 요청하지만 수도 방위군이 반란에 가담해버리면서 정부 요인 전원이 몰살, 공산당 정권의 또 한번의 몰락이 찾아옴.
1981년 4월: 약 1년간의 '인민자치기구' 통치는 잠시동안 국민을 편안하게 해주었으나 미-소 비밀 협정에 따라 서쪽에는 최초의 '문민정부'인 자유당 정권이 성립됨. 그러나 그것은 미국의 괴뢰정에 불과했고 또다른 부패정권일 뿐이였다. 바로 다음날 소련이 폴란드 동부를 점령하며 폴란드 인민 군정을 설치, 구 공산당 정권과 같은 형태의 정권이 세워짐. 또한 이러한 형태로 인해 포위되버린 동독을 구조하기 위해 서폴란드 군은 무장할 수 없고 영해권은 동폴란드가 가지며 주둔 미군의 규모는 5000명 이하로 해야 했다.
1991년 1월: 독일의 통일을 바라본 동 폴란드의 대령 '파울 베커'가 부패한 비밀경찰을 매수, 특유의 화법과 설득력으로 주요 사단장들을 포섭하고 쿠데타 계획을 세움.
1991년 8월 18일: 00시 00분에 시작된 쿠데타는 10만명 규모의 동폴란드의 주요 전력들, 그리고 특수부대와 치안성을 모두 아우르는 규모로 시작되었고 수도 방위군은 그들을 마주치자마자 투항, 동폴란드 정부 요인을 모조리 죽인 후 서폴란드로 기습 진격, 공수부대의 수도 점령 밎 서폴란드 정부 요인 전원 사살로 갑작스런 통일이 이루어짐. 운마저도 좋아서 그 날은 소련에서 '8월 쿠데타'가 발발, 소련의 숨통이 완전히 끊어져 세계가 혼란에 빠진 날이였고 그 누구도 개입하지 못했다. 파울 베커를 최고지도자로 하는 '인민평의회'가 설립됨.
4. 냉전, 그 이후.
1991년 9월: 4개년 계획의 발표. 4개년 계획에는 단순한 대대적 경제 부흥책뿐만이 아니라 인구를 다시 늘리기 위한 주택 지원 밎 사회 활동 장려 등 결혼 촉진책과 복지정책, 베커가 특별히 관심을 가지던 항공/해운 사업과 기술 증진도 포함되었다. 주로 대규모 공공사업과 특별 채권 발행을 통한 기업 활성화, 주요 산업의 정부 통제, 무역에서의 자립책, 내수 경제 활성화 등이 주요 경제 정책으로 꼽힌다.
1992년 1월: 4개년 계획의 실행.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혼잡한 경제체제" 라는 세계의 비판과 조롱에도 "우리의 경제이념은 없는것이 이념" 이라는 명언을 남기며 실행함.
1992년 12월: 군 부패 척결과 부패한 재벌들을 처단/교체하기 위한 정부의 자작극이였던 '크리스마스 선물' 작전의 성공. 제 1차 4개년 계획에 박차가 가해짐.
1994년 2월: 자원과 주요 기술 자체 보유에서부터 시작해 물물교환론에 다다른 경제 자립책의 성공으로 수출 규모가 수입 규모를 뛰어넘게 됨. 그러나 물가 상승을 막기 위해 적당히 멈춤으로서 수입/수출 비는 현재까지도 대등함을 유지중이다. (실제로도 자국에서 물건이 나갔는데 들어오는건 달러뿐이면 유통 화폐만 늘어나고 물건을 줄어 물가만 높아지는 결말을 가져온다. 일본의 경제가 갑작스레 침체기를 맞은것도 이것을 관과했기 때문이다.)
1996년 1월: 1차 4개년 계획의 성공으로 바닥을 기던 경제력이 4년만에 세계 20위권에 들게 됨. 2차 4개년의 실시. 2차 4개년 계획은 주로 기업의 기술력/경쟁력 강화를 위한 투자와 자립책의 마무리에 치중을 두었다.
1997년 1월: 군사 기술 증강 5개년계획의 발표, 실시. 이 계획은 육군 장비의 국산화, 즉 기술력 확보를 목적으로 하였고 이것을 위해 산업스파이까지 보내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였다.
1997년 3월: 정부의 잇다른 성공이 지난 시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삶의 질 향상을 가져다주자 국민들의 지지도는 거의 100%에 달하였고, 사실상 1인 독재를 가능하도록 해주는 개헌에 85%가 찬성함으로서 정식으로 독재 시대가 시작됨.
1999년 5월: 최초의 국산 보병화기 개발에 성공.
2000년 1월: 제 2차 4개년 계획의 성공, 항공/차량/조선 등 중공업 기술이 주로 발달하게 되며 이는 이후 군 확장정책에 있어서도 큰 뒷받침이 되게 된다. 최후의 4개년 계획인 3차 4개년 계획이 실시되며, 이번 계획에는 경공업과 소프트웨어 발달, 지나친 경기 과열로 인한 부의 불평등 해소등이 주 목표였다.
2002년 1월: 국산 현대 보병화기와 기갑장비, 해군 장비 등의 개발에 성공하며 1차 군사 기술 증강 계획은 나름 성공적으로 완료됨. 2차 군사 기술 증강 계획의 시작.
2004년 1월: 3차 4개년 계획은 소프트 웨어 발달을 제외하면 모두 성공적으로 완료됨. 경제력이 안정적으로 세계 순위권에 입성하는데에 성공.
2007년 1월: 항공모함의 진수와 미국의 지원을 받은 4세대 전투기 개발, 공군 장비 개발 등이 완료되며 2차 군사 기술 증강 계획이 순조롭게 완료됨.
2010년 11월: 슬로바키아 기습 합병 계획 '유리거울 작전'이 입안됨.
2011년 3월: 내부 쿠데타 진압을 명목으로 2개 군단이 슬로바키아에 진주, 부정선거가 판치는 상황속에서 99%의 높은 지지표로 폴란드의 슬로바키아 합병이 결정됨.
2013년 2월: 파울 베커의 사망, 집단 지도체제 돌입
2019년 1월: 디트리히 슈타벨의 전권 장악, 제정 선포
2019년 5월: 군국주의 체제 돌입
2020년 2월: 대제 선포
2020년 5월: 러시아와 대랜드제국 분할 점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