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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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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립 계기===
===야요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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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플라이스토세 후기, 지구가 빙하기를 겪고 있었을 때, 고대 안류가 빙하기로 인하여 낮아진 해수면을 통해 일본 열도로 유입되었다. 이들이 일본 열도로 들어온 최초의 인류였다. 하지만 빙하기가 종결되고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자 일본 열도로 들어왔던 고대 인류는 고립되버렸고 세대를 거쳐 '조몬인(縄文人)'으로 성립된다. 조몬인들은 오랜 세월 끝에 수렵·채집 사회를 바탕으로 하는 조몬 문화를 발전시키게 되는데 조몬 문화는 일본의 신석기 시대 문화로써 기원전 15세기부터 기원전 10세기까지 이어졌다. 이 시대적 구간을 조몬 시대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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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 시대 (나루히토)|조몬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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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조몬 시대 (나루히토) 모습 1.png|500px|섬네일|가운데|당대 조몬인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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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몬 시대에는 현대보다 더 따뜻하고 습한 기후가 형성된 시절이었기에 인구가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수렵·채집 사회는 침엽수림이 활엽수림으로 대체되면서 사냥 개체들이 증가한 것에 편승해 각지에 특화되어 발달하였고 조몬 토우나 귀걸이, 장신구, 등이 나왔으며 움집 형식의 주거 형식이 등장했다. 해안가에서는 수산업이 주류 산업으로 되기도 했다. 조몬 문화는 중기에 황금기를 누리고 후기에 들어서면서 정체기에 진입하였다. 조몬 문화가 정체기에 접어든 결정적 요인은 기후 냉각화였다. 조몬 시대를 견인하던 기간 산업인 수렵·채집 사회가 냉해 피해와 사냥수 감소로 인해 쇠락하면서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게 되었고 이는 인구의 감소로 이어졌다. 인구 감소로 촉발된 거주집단 붕괴는 가속화됐으며 인구 밀도가 높았던 조몬인들의 생활 구조가 무너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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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조몬인들은 그나마 추위를 덜 느낄 수 있는 남방지대로 몰려들었다. 남방지대는 오늘날의 산요, 긴키, 규슈, 시코쿠 지역으로 이렇게 한정된 지역으로 집약된 인구는 공동체 생활을 강제하게 만들면서 여러 수많은 부락들이 남방지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수혈주거에서 화덕이 증설된 모습들을 조몬 시대의 벼랑 끝인 기원전 11세기 시절의 유적지에서 볼 수 있었고 점차 추위로 인한 고통을 견디기 위해 어느 무언가에게 간절한 구원을 구하기 시작하는 양상이 사회에 보였는데 이는 신앙의 탄생을 불러 일으키는 토양이 됐다. 조몬 문화는 기원전 10세기 이후 종적을 감추었고 기원전 5세기까지 학자들은 암흑기가 있었을 것으로 유추한다. 왜냐하면 이 '암흑기' 시절의 유적지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실정이고 게다가 발견된 유물들마저도 마모가 심해 제대로 연구할 수 없어 그 유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암흑기 기간 동안 조몬 문화로 번성했던 일본 열도 9개 권역 중 5곳이 몰락하였고 조몬인들은 극심한 기아와 충돌을 빚었을 것이다. 이러한 암흑기에서 살아 남은 4개 권역의 경우에는 농업이 발족되고 이를 핵심 산업으로 육성시켜 삶을 연명했다. 시간이 지나 기원전 5세기에 진입하며 천천히 온도가 도로 안정권으로 올라가고 특히 조선 반도에서 1세대 도래인인 야요이인들이 건너 와 일본 열도에 선진문물을 보급하면서 일본 열도의 사회는 복구되어 다시 발전하기 시작한다. 기술 또한 선진문물의 유입으로 발전을 이룩하고 이때부터 일본 열도의 민족 주체가 조몬인에서 야요이인과 조몬인이 융합된 [[야마토 민족 (나루히토)|야마토 민족]]으로 교체됐다. 기술 혁신과 사회 양상의 급격한 변화, 민족주체의 교체가 이루어지며 조몬 문화는 역사의 뒤안길을 걷고 야요이인들에 의해 야요이 시대가 일본 열도에 개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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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요이 시대 (나루히토)|야요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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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야요이 시대 (나루히토)의 모습 1.png|500px|섬네일|가운데|야요이 시대 당간, 쌀을 수확하는 사람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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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반도에서 건너 온 야요이인들이 선진화된 농업 기술을 보급하자 농경 사회는 야요이 시대 전반에 있어 급격한 도약을 이룩하기 시작한다. 농경 사회는 그동안 긴 공백을 남겼던 수렵·채집 사회를 대체할 수준까지 성장했고 무몬 토기가 등장해 식량 적재가 원활해졌으며 철제 농기구가 유입되어 농업 생산량이 획기적인 증가를 이룩하였다. 효과적인 식량 적재 방식의 등장과 농업 생산량의 급증이 겹쳐 잉여생산물은 무지막지하게 늘어났고 이에 따라 인구가 폭증했다. 그리고 농경 시대가 개막되어 사람들은 전과 같은 유목 생활을 포기하고 정착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기존 부락들이 정착을 하러 온 유목민들에 의해 크게 확장됐다. 한편 야요이 시대에는 철제 농기구와 함께 들어온 또다른 금속 도구로 철검과 같은 무기들이 본격적으로 각 마을마다 사용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인구가 늘어나면서 예상 외로 마을의 인구부양력이 부족해지자 각 마을들은 다른 마을들의 농경지가 필요해졌고 순순히 농경지를 내줄 의사가 타 마을에게는 만무하였을테니 무기를 동원한 즉 무력을 동원한 수단을 농경지 확보에 도입하면서 무기를 쓰게 된 것이다. 또한 야요이 시대에는 이주했던 야요이인들과 현지 조몬인 간 동화가 이루어져 오늘날의 [[야마토 민족 (나루히토)|야마토 민족]]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야요이인들의 이주 범위에서 제외된 혼슈 중부, 혼슈 동부, 그리고 홋카이도에 조몬인들은 에미시와 아이누족으로 변화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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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지를 얻기 위해 시작한 부락 간 충돌은 곧 세력 확장을 위한 전쟁으로 성격이 변화했다. 야요이 시대에 접어들어 계급 사회가 형성되면서 지배계급이 등장했고 지배계급들은 자신들의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주민들의 관심을 전쟁을 통하여 밖으로 집중시키는 의도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지배자 자신의 지배권을 확장시키려는 욕심도 정복전쟁에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한 켠으로 지배층은 통치의 원활함을 위해 신앙을 기반으로 성장하던 신관들과 결탁, '신'이라는 존재로 지배층을 신격화 함으로써 지배의 정당성을 더하고 통치를 견고히 하였다. 신앙의 급격한 성장과 수많은 전쟁들은 야요이 시대를 대표하였다. 그중 수많은 전쟁 끝에 다른 경쟁자들을 밀어내고 큐슈 북부에 여왕국(女王國)이 확고하게 지배권을 정립했다. 그들은 군주 그 자체가 신녀로써 제정일치사회임을 보여주었고 제정일치의 강력한 통치 정당성은 여왕국이 큐슈 북부를 평정하는데 있어 큰 힘이 되었다. 여왕국을 시작으로 점차 과거부터 꾸준히 세력을 확장해오던 규슈, 산요, 시코쿠 북부, 긴키에 작은 국가들이 넓은 영역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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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의 꼴을 갖춘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국가 간 민간교류도 같이 늘어났고 이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는 없는 자신의 나라에 물건을 팔고 다른 지역에는 있고 자신의 나라에는 없는 물건을 사서 자신의 나라에서 이를 비싼 값에 파는 '상인'들도 야요이 시대에 등장했다. 또한 야요이 시대에는 전쟁이 일상화되면서 '군인'들도 사회에 있어 큰 작용을 하게 되는 계층으로 발돋움한다. 그리고 기존 농업 종사자들은 자신의 농작지를 가져 자신 소유의 농작지에서 농산물을 경작하는 자영농으로 구성된 종사자들과 노예로써 한 사람의 논을 경작하거나 혹은 땅을 빌려 소작경작을 전개하는 종사자들로 분화됐다. 상인, 군인 자영농, 소작농, 노예가 계급 사회에 큰 계층으로 야요이 시대에 등장한 것이었다.
 
===고훈 시대===
 
===고훈 시대===
 
===아스카 시대===
 
===아스카 시대===
(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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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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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관련 문서==
 
* [[야마타이 (나루히토)|야마타이 왕권]]
 
* [[야마타이 (나루히토)|야마타이 왕권]]

2020년 9월 23일 (수) 00:53 판

개요

역사

성립 계기

과거 플라이스토세 후기, 지구가 빙하기를 겪고 있었을 때, 고대 안류가 빙하기로 인하여 낮아진 해수면을 통해 일본 열도로 유입되었다. 이들이 일본 열도로 들어온 최초의 인류였다. 하지만 빙하기가 종결되고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하자 일본 열도로 들어왔던 고대 인류는 고립되버렸고 세대를 거쳐 '조몬인(縄文人)'으로 성립된다. 조몬인들은 오랜 세월 끝에 수렵·채집 사회를 바탕으로 하는 조몬 문화를 발전시키게 되는데 조몬 문화는 일본의 신석기 시대 문화로써 기원전 15세기부터 기원전 10세기까지 이어졌다. 이 시대적 구간을 조몬 시대라 한다.

조몬 시대

당대 조몬인들의 모습

조몬 시대에는 현대보다 더 따뜻하고 습한 기후가 형성된 시절이었기에 인구가 가파르게 상승하였다. 수렵·채집 사회는 침엽수림이 활엽수림으로 대체되면서 사냥 개체들이 증가한 것에 편승해 각지에 특화되어 발달하였고 조몬 토우나 귀걸이, 장신구, 등이 나왔으며 움집 형식의 주거 형식이 등장했다. 해안가에서는 수산업이 주류 산업으로 되기도 했다. 조몬 문화는 중기에 황금기를 누리고 후기에 들어서면서 정체기에 진입하였다. 조몬 문화가 정체기에 접어든 결정적 요인은 기후 냉각화였다. 조몬 시대를 견인하던 기간 산업인 수렵·채집 사회가 냉해 피해와 사냥수 감소로 인해 쇠락하면서 식량 생산량이 감소하게 되었고 이는 인구의 감소로 이어졌다. 인구 감소로 촉발된 거주집단 붕괴는 가속화됐으며 인구 밀도가 높았던 조몬인들의 생활 구조가 무너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조몬인들은 그나마 추위를 덜 느낄 수 있는 남방지대로 몰려들었다. 남방지대는 오늘날의 산요, 긴키, 규슈, 시코쿠 지역으로 이렇게 한정된 지역으로 집약된 인구는 공동체 생활을 강제하게 만들면서 여러 수많은 부락들이 남방지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수혈주거에서 화덕이 증설된 모습들을 조몬 시대의 벼랑 끝인 기원전 11세기 시절의 유적지에서 볼 수 있었고 점차 추위로 인한 고통을 견디기 위해 어느 무언가에게 간절한 구원을 구하기 시작하는 양상이 사회에 보였는데 이는 신앙의 탄생을 불러 일으키는 토양이 됐다. 조몬 문화는 기원전 10세기 이후 종적을 감추었고 기원전 5세기까지 학자들은 암흑기가 있었을 것으로 유추한다. 왜냐하면 이 '암흑기' 시절의 유적지는 거의 발견되지 않는 실정이고 게다가 발견된 유물들마저도 마모가 심해 제대로 연구할 수 없어 그 유물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암흑기 기간 동안 조몬 문화로 번성했던 일본 열도 9개 권역 중 5곳이 몰락하였고 조몬인들은 극심한 기아와 충돌을 빚었을 것이다. 이러한 암흑기에서 살아 남은 4개 권역의 경우에는 농업이 발족되고 이를 핵심 산업으로 육성시켜 삶을 연명했다. 시간이 지나 기원전 5세기에 진입하며 천천히 온도가 도로 안정권으로 올라가고 특히 조선 반도에서 1세대 도래인인 야요이인들이 건너 와 일본 열도에 선진문물을 보급하면서 일본 열도의 사회는 복구되어 다시 발전하기 시작한다. 기술 또한 선진문물의 유입으로 발전을 이룩하고 이때부터 일본 열도의 민족 주체가 조몬인에서 야요이인과 조몬인이 융합된 야마토 민족으로 교체됐다. 기술 혁신과 사회 양상의 급격한 변화, 민족주체의 교체가 이루어지며 조몬 문화는 역사의 뒤안길을 걷고 야요이인들에 의해 야요이 시대가 일본 열도에 개막된다.

야요이 시대

야요이 시대 당간, 쌀을 수확하는 사람들의 모습

조선 반도에서 건너 온 야요이인들이 선진화된 농업 기술을 보급하자 농경 사회는 야요이 시대 전반에 있어 급격한 도약을 이룩하기 시작한다. 농경 사회는 그동안 긴 공백을 남겼던 수렵·채집 사회를 대체할 수준까지 성장했고 무몬 토기가 등장해 식량 적재가 원활해졌으며 철제 농기구가 유입되어 농업 생산량이 획기적인 증가를 이룩하였다. 효과적인 식량 적재 방식의 등장과 농업 생산량의 급증이 겹쳐 잉여생산물은 무지막지하게 늘어났고 이에 따라 인구가 폭증했다. 그리고 농경 시대가 개막되어 사람들은 전과 같은 유목 생활을 포기하고 정착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기존 부락들이 정착을 하러 온 유목민들에 의해 크게 확장됐다. 한편 야요이 시대에는 철제 농기구와 함께 들어온 또다른 금속 도구로 철검과 같은 무기들이 본격적으로 각 마을마다 사용되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인구가 늘어나면서 예상 외로 마을의 인구부양력이 부족해지자 각 마을들은 다른 마을들의 농경지가 필요해졌고 순순히 농경지를 내줄 의사가 타 마을에게는 만무하였을테니 무기를 동원한 즉 무력을 동원한 수단을 농경지 확보에 도입하면서 무기를 쓰게 된 것이다. 또한 야요이 시대에는 이주했던 야요이인들과 현지 조몬인 간 동화가 이루어져 오늘날의 야마토 민족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러나 야요이인들의 이주 범위에서 제외된 혼슈 중부, 혼슈 동부, 그리고 홋카이도에 조몬인들은 에미시와 아이누족으로 변화하게 된다.

농경지를 얻기 위해 시작한 부락 간 충돌은 곧 세력 확장을 위한 전쟁으로 성격이 변화했다. 야요이 시대에 접어들어 계급 사회가 형성되면서 지배계급이 등장했고 지배계급들은 자신들의 통치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주민들의 관심을 전쟁을 통하여 밖으로 집중시키는 의도로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였으나 지배자 자신의 지배권을 확장시키려는 욕심도 정복전쟁에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 한 켠으로 지배층은 통치의 원활함을 위해 신앙을 기반으로 성장하던 신관들과 결탁, '신'이라는 존재로 지배층을 신격화 함으로써 지배의 정당성을 더하고 통치를 견고히 하였다. 신앙의 급격한 성장과 수많은 전쟁들은 야요이 시대를 대표하였다. 그중 수많은 전쟁 끝에 다른 경쟁자들을 밀어내고 큐슈 북부에 여왕국(女王國)이 확고하게 지배권을 정립했다. 그들은 군주 그 자체가 신녀로써 제정일치사회임을 보여주었고 제정일치의 강력한 통치 정당성은 여왕국이 큐슈 북부를 평정하는데 있어 큰 힘이 되었다. 여왕국을 시작으로 점차 과거부터 꾸준히 세력을 확장해오던 규슈, 산요, 시코쿠 북부, 긴키에 작은 국가들이 넓은 영역을 확립하기 시작했다.

나라의 꼴을 갖춘 국가들이 늘어나면서 국가 간 민간교류도 같이 늘어났고 이 과정에서 다른 지역에는 없는 자신의 나라에 물건을 팔고 다른 지역에는 있고 자신의 나라에는 없는 물건을 사서 자신의 나라에서 이를 비싼 값에 파는 '상인'들도 야요이 시대에 등장했다. 또한 야요이 시대에는 전쟁이 일상화되면서 '군인'들도 사회에 있어 큰 작용을 하게 되는 계층으로 발돋움한다. 그리고 기존 농업 종사자들은 자신의 농작지를 가져 자신 소유의 농작지에서 농산물을 경작하는 자영농으로 구성된 종사자들과 노예로써 한 사람의 논을 경작하거나 혹은 땅을 빌려 소작경작을 전개하는 종사자들로 분화됐다. 상인, 군인 자영농, 소작농, 노예가 계급 사회에 큰 계층으로 야요이 시대에 등장한 것이었다.

고훈 시대

아스카 시대

나라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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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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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일본의 역사 (나루히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