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윤성(메이플스토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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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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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외로 강인범 태왕과 닮은 부분이 있다. 강인범 태왕은 지금은 군주로서 나라를 다스려야 하니 말이 많아졌지만 정안대군 시절에는 말수가 적고 소심한 성격이였다<ref>강인범의 모후인 이런 성격을 고치고자 밖에 돌아다녔는데 좀 고쳐지긴 했는데 태왕으로 즉위 후에 완벽히 낳아졌다</ref> 그리고 같은 97년생이므로 동갑이다
의외로 강인범 태왕과 닮은 부분이 있다. 강인범 태왕은 지금은 군주로서 나라를 다스려야 하니 말이 많아졌지만 정안대군 시절에는 말수가 적고 소심한 성격이였다<ref>강인범의 모후인 이런 성격을 고치고자 밖에 돌아다녔는데 좀 고쳐지긴 했는데 태왕으로 즉위 후에 완벽히 낳아졌다</ref> 그리고 같은 97년생이므로 동갑이다
[[분류:고구려의 대막리지]][[분류:진주 정씨]]
[[분류:고구려의 대막리지]][[분류:진주 정씨]][[분류:1997년 출생]]

2020년 11월 12일 (목) 11:48 판

고구려 제77대 대막리지

정수환|鄭水換

연개소문.jpg

사진은 연개소문이지만 절대로 위와 같은 얼굴이 아니다

개요

고구려 제국의 제77대 대막리지이자 인범태왕의 유일한 친구이다.

성향

정수환이 추구하고자 하는 고구려는 일단 왕권을 강화하고 고대 시절의 고구려 힘을 되찾는 것이다. 중세 ~ 근세 시절의 고구려는 유교 사상에 도입한 후 전쟁을 하지않은 상태라서 국력이 많이 약해졌다. 물론 고수 전쟁 이후 고구려는 국력이 소모되었지만 아직까지는 최강대국였다. 인조 때 잘못된 선택을 하는 바람에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를 하고 제후국이 되었으며 선조 때는 임진왜란에 시작하자마자 털리는 매우 안습한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고구려 제국이 제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국력이 약해졌으니까. 지금은 군사력이 갖춰졌고 핵까지 개발했으니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고구려는 성공하였다.

강인범 태왕과의 관계

태왕 폐하께서 어전에서 말씀 하시기를

“짐이 중학생 시절 처음에 카페에서 대막리지랑 이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논쟁을 하여 친해진지 엊그제 같군” 하니 대막리지께서 화답 하시기를 “폐하께서 그 일을 기억해주시니 신은 망극하기 그지 없습니다. 신과 폐하가 있는 한 대고구려제국의 앞날에 먹구름이 있을 일이 없습니다

— 작성 중인 강인범 태왕 실록

강인범이 황자 시절이였다. 강인범은 주말에 창원시 합성동을 방문하여 카페에 방문했다. 이를 볼 때 고구려가 전제군주제이지만 황족의 외출까지 막는 것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아무튼 강인범 태왕은 커피를 주문하여 “요즘 세상에 전쟁은 무슨 전쟁임?”이라 중얼 거렸는데 정수환이 이를 듣고는 다짜고짜 강인범 앞에 앉았다 귀도 밝다

정수환이 고구려의 황족임을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닐꺼다. 그의 감이 “아 쟤 황족임 ㅇㅇ 분명함”이라며 왔을테니까

강인범은 다짜고짜 자기 앞에 앉은 걸 보고 당황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했다. 이에 정수환은 정안대군[1]께서 추구하시는 고구려가 평화라냐고 물었다.

지금의 강인범은 강해지는 고구려를 꿈 꿨지만 정안대군 때에는 평화였다. 아무래도 정수환이 대막리지로 천거된 후 정수환의 고구려를 지켜본 후 강인범이 즉위 직전에 꿈이 평화에서 강한 고구려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즉, 지금의 강인범 모습이 된 동기는 대막리지의 정수환이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정안대군 강인범은 그렇다고 했다. 수나라를 물리친 강이식 장군의 후손이면서 왜 배포가 작냐고 대꾸했다. 이에 강인범은 침착하면서 전쟁의 댓가가 곧 고수 전쟁 직후의 약해진 고구려라고 했다

그래도 전쟁에서 이기면 고구려는 칭송 받을 것이고 전쟁의 승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하자 강인범 태왕은 그럴싸 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논쟁을 한 결과

친해졌다

대막리지 천거

친구가 된 후 강인범 태왕은 김월수 왕립 육군 참모총장에게 친구가 된 것과 정수환의 사상을 말해준 뒤 대막리지 각이라며 그 당시 태왕이였던 열조에게 말하였다 안그래도 대막리지가 공석이였던 참이였다

열조는 신중하게 생각한 뒤 그를 대막리지로 임명하였다.

대막리지로서 한 일

강인범의 부황인 열조 때에는 경제에 집중 하였고 열조가 승하하자 강인범 태왕이 즉위하면서 본격적으로 국력에 집중했다. 물론 국력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였다. 강인범 태왕 때부터 수교를 맺게 될 나라들을 조사하니 평안 원년 때부터이다. 평안 3년으로 세월이 흐르자 조선 제국, 나루 입헌국, 라센티아 공화국, 프랑스 왕국, 미국, 몽골 민주 공화국과 수교를 맺게 되었고 고구려 역사상 최초로 핵을 개발 하였다.

기타

의외로 강인범 태왕과 닮은 부분이 있다. 강인범 태왕은 지금은 군주로서 나라를 다스려야 하니 말이 많아졌지만 정안대군 시절에는 말수가 적고 소심한 성격이였다[2] 그리고 같은 97년생이므로 동갑이다

  1. 황자 시절 강인범의 군호는 정안대군이였다. 후궁의 아들이면 정안군이겠지만 강인범의 모후가 고구려의 태왕후였다.
  2. 강인범의 모후인 이런 성격을 고치고자 밖에 돌아다녔는데 좀 고쳐지긴 했는데 태왕으로 즉위 후에 완벽히 낳아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