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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물 정보 | | {{인물 정보 |
| | 이름 = 고구려 마지막 대막리지 | | | 이름 = 고구려 제26대 내각총리대신 |
| 고구려 초대 내각총리대신
| | 김류 |
| 정수환
| | | 원어이름 = 金瑬 |
| | 원어이름 = 鄭水換 | |
| | 그림 = 연개소문.jpg | | | 그림 = 연개소문.jpg |
| | 그림설명 = | | | 그림설명 = |
| | 출생일 = 1997년 3월 4일 | | | 출생일 = 1571년 |
| | 출생지 = 고구려 서울특별시 | | | 출생지 = 고구려 |
| | 성별 = 남성 | | | 성별 = 남성 |
| | 사망일 = | | | 사망일 = 1648년 3월 5일 → 부활 |
| | 사망지 = | | | 사망지 = 고구려 한성부 |
| | 국적 = [[파일:고구려의 국기.png|20px]] 고구려 | | | 국적 = [[파일:메이플 세계관의 고구려 국기.jpeg|20px]] 고구려 |
| | 별칭 = | | | 별칭 = |
| | 학력 = | | | 학력 = |
| | 경력 = 고구려 대막리지 | | | 경력 = 고구려 대막리지 |
| | 직업 = 초대 내각총리대신 | | | 직업 = 제26대 내각총리대신 |
| | 병역 = 해당사항 없음 | | | 병역 = 해당사항 없음 |
| | 소속 = [[민주공화당(고구려)|민주공화당]] | | | 소속 = [[민주공화당(고구려)|민주공화당]] |
| | 종교 = | | | 종교 = |
| | 부모 = 父 정환곤 母 이수진 | | | 부모 = 父 김여물 母 함양 박씨 |
| | 배우자 = | | | 배우자 = 진주 류씨 |
| | 상훈 = | | | 상훈 = |
| | 자녀 = | | | 자녀 = 김경진 |
| | 웹사이트 = | | | 웹사이트 = |
|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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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개요 == | | == 개요 == |
| [[고구려(가국련 2관)|고구려 제국]]의 마지막 대막리지이자 초대 내각총리대신이며 [[강인범(가국련 2관)|인범태왕]]의 유일한 친구이다. 고구려 영진왕 시기에 만들어진 대막리지 직책은 강인범왕 대에 이르러서 막을 내리게 되었다. | | [[고구려(가국련 2관)|고구려 제국]]의 제26대 내각총리대신이자 생전에는 제197,206,208대 대막리지였다. |
| == 성향 ==
| | [[분류:고구려의 대막리지]][[분류:순천 김씨]][[분류:고구려의 내각총리대신]] |
| 정수환이 추구하고자 하는 고구려는 일단 왕권을 강화하고 고대 시절의 고구려 힘을 되찾는 것이다. 중세 ~ 근세 시절의 고구려는 유교 사상에 도입한 후 전쟁을 하지않은 상태라서 국력이 많이 약해졌다. 물론 고수 전쟁 이후 고구려는 국력이 소모되었지만 아직까지는 최강대국였다. 인조 때 잘못된 선택을 하는 바람에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패배를 하고 제후국이 되었으며 선조 때는 임진왜란에 시작하자마자 털리는 매우 안습한 상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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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고구려 제국이 제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다. 국력이 약해졌으니까. 지금은 군사력이 갖춰졌고 핵까지 개발했으니 그가 추구하고자 하는 고구려는 성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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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인범 태왕과의 관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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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용문|태왕 폐하께서 어전에서 말씀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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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이 중학생 시절 처음에 카페에서 대막리지랑 이 나라가 나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논쟁을 하여 친해진지 엊그제 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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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니 대막리지께서 화답 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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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하께서 그 일을 기억해주시니 신은 망극하기 그지 없습니다. 신과 폐하가 있는 한 대고구려제국의 앞날에 먹구름이 있을 일이 없습니다|작성 중인 강인범 태왕 실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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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인범이 황자 시절이였다. 강인범은 주말에 창원시 합성동을 방문하여 카페에 방문했다. 이를 볼 때 고구려가 전제군주제이지만 황족의 외출까지 막는 것은 아님을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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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무튼 강인범 태왕은 커피를 주문하여 “요즘 세상에 전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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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슨 전쟁임?”이라 중얼 거렸는데 정수환이 이를 듣고는 다짜고짜 강인범 앞에 앉았다 --귀도 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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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수환이 고구려의 황족임을 아예 몰랐던 것은 아닐꺼다. 그의 감이 “아 쟤 황족임 ㅇㅇ 분명함”이라며 왔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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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인범은 다짜고짜 자기 앞에 앉은 걸 보고 당황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대단했다. 이에 정수환은 정안대군<ref>황자 시절 강인범의 군호는 정안대군이였다. 후궁의 아들이면 정안군이겠지만 강인범의 모후가 고구려의 태왕후였다.</ref>께서 추구하시는 고구려가 평화라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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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강인범은 강해지는 고구려를 꿈 꿨지만 정안대군 때에는 평화였다. 아무래도 정수환이 대막리지로 천거된 후 정수환의 고구려를 지켜본 후 강인범이 즉위 직전에 꿈이 평화에서 강한 고구려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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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즉, 지금의 강인범 모습이 된 동기는 대막리지의 정수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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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자면 정안대군 강인범은 그렇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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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나라를 물리친 강이식 장군의 후손이면서 왜 배포가 작냐고 대꾸했다. 이에 강인범은 침착하면서 전쟁의 댓가가 곧 고수 전쟁 직후의 약해진 고구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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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전쟁에서 이기면 고구려는 칭송 받을 것이고 전쟁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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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부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하자 강인범 태왕은 그럴싸 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논쟁을 한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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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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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막리지 천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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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된 후 강인범 태왕은 김월수 왕립 육군 참모총장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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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가 된 것과 정수환의 사상을 말해준 뒤 대막리지 각이라며 그 당시 태왕이였던 열조에게 말하였다 안그래도 대막리지가 공석이였던 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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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조는 신중하게 생각한 뒤 그를 대막리지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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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막리지로서 한 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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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인범의 부황인 열조 때에는 경제에 집중 하였고 열조가 승하하자 강인범 태왕이 즉위하면서 본격적으로 국력에 집중했다. 물론 국력에만 집중한 것은 아니였다. 강인범 태왕 때부터 수교를 맺게 될 나라들을 조사하니 평안 원년 때부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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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안 3년으로 세월이 흐르자 조선 제국, 나루 입헌국, 라센티아 공화국, 프랑스 왕국, 미국, 몽골 민주 공화국과 수교를 맺게 되었고 고구려 역사상 최초로 핵을 개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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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18일 고구려가 입헌군주제와 의원내각제를 도입하자 내각총리대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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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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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로 강인범 태왕과 닮은 부분이 있다. 강인범 태왕은 지금은 군주로서 나라를 다스려야 하니 말이 많아졌지만 정안대군 시절에는 말수가 적고 소심한 성격이였다<ref>강인범의 모후는 아들의 이런 성격을 고치고자 밖에 돌아다녔는데 좀 고쳐지긴 했는데 태왕으로 즉위 후에 완벽히 낳아졌다</ref> 그리고 같은 97년생이므로 동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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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류:고구려의 대막리지]][[분류:진주 정씨]][[분류:1997년 출생]][[분류:고구려의 내각총리대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