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국가(메이플스토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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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 "height : 50px; width : 100px; text-align : center;"colspan="2" | '''<big>고구려의 국가<b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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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 "height : 50px; width : 100px; text-align : center;" | '''사용 국가''' || [[파일:고구려의 국기.png|20px]] 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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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 "height : 50px; width : 100px; text-align : center;" | '''작사''' || 존 뉴턴
| style = "height : 50px; width : 100px; text-align : center;" | '''작사''' ||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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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 "height : 50px; width : 100px; text-align : center;" | '''작곡''' || 요제프 하이든
| style = "height : 50px; width : 100px; text-align : center;" | '''작곡''' || 프란츠 에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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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 = "height : 50px; width : 100px; text-align : center;" | '''사용 시기''' || 1797년 3월 2일 ~
| style = "height : 50px; width : 100px; text-align : center;" | '''사용 시기''' || 1902년 9월 9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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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 개요 ==
1797년인 고구려 정종 21년, 정종은 국가(國歌)의 존재 필요성이 느껴졌다. 그래서 지금 현재 국악보다는 다른 나라처럼 퀄리티가 있게 느끼기 위해 영국에 사신을 보내서 존 뉴턴을 고구려에 방문하도록 했고 이번에는 오스트리아로 사신을 보내 요제프 하이든을 고구려에 방문하도록 했다. 영국 하노버 왕조의 초대 국왕인 조지 4세는 정종의 응답에 수락했고 존 뉴턴이 고구려에 방문을 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제2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인 카를 1세 역시 정종의 응답에 수락하여 요제프 하이든이 고구려에 방문했다.
고구려 제국의 국가이다
== 역사 ==
고구려 역사 최초의 근대 국가이다. 1898년의 가사가 기초 되었는데 작사가 미상이다. 민영환이 작성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은 없다. 자체 곡이 없을 당시에는  God Save the king에 맞춰 불렀다. 이후 프란츠 에레르트가 곡을 붙였다.


정종은 존 뉴턴과 요제프 하이든을 맞이하고 고구려의 국가를 작사, 작곡하기 시작했다. 존 뉴턴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쓰였던 황제 찬가를 가사만 고구려식으로 바꿔보는게 어떻냐고 묻자 정종은 흔퀘히 수락을 했다. 이렇게 제작된 것이 가사만 바꾼 <태왕 찬가>이다. 딱 4절 까지만 만들어졌다.
1902년 9월 9일 처음으로 연주 되었고 정식으로 채택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1907년 순종 태왕 즉위식에 연주 되었다. 작곡가 에레르트는 독일 제국 해군의 군악대에서 고구려로 건너와 고구려의 군악단을 교육했다. 곡에서 느껴지듯이 당대에도 "외국인이 이런 국가를 지어주다니!"할 정도로 높은 퀄리티의 곡이 나왔고 스스로도 국악의 음을 최대한 살리고자 최대한 노력했다. 공식 악보에 쓰인 독일어 해설에 따르면 '고구려적 모티브를 본딴 고구려 국가'라고 설명히고 있다. 에케르트는 손자 대까지도 고구려에서 살면서 고구려의 음악계를 지원하며 생을 마쳤고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양화진외국인선사교사묘원에 안장되었다.


== 내용 ==
== 내용 ==
=== 1절 ===
=== 1절 ===
{{인용문|천지신명님 보존하소서, 천지신명님 보존하소서 우리의 태왕을, 우리의 국가를! 신념이 떠받침으로써 강력하도다 태왕께서 지혜로운 손으로 우리를 이끌지니! 태왕의 선조 분들의 익선관이 그 어떠한 적들로부터라도 방어하리라! 대고구려제국의 운명은 태왕 폐하의 왕좌 아래 충심으로 단결하지니!}}
{{인용문| 상제는 우리 태왕을 도우사
성수무강하사(임의 수명에 끈이 없게 하시고)
해옥주를 산같이 깧으시고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위엄과 권세가 천하에 떨치사)
! 천만세에 복록이(천만대가 지나도록 복되고 영화로움이)
일신케 하소서(나람다 새롭게 하소서)
상제는 우리 태왕을 도우소서}}


=== 2절 ===
=== 2절 ===
{{인용문|충실하고 충성하며 진실되고 열려있도다 정의와 의무를 위해 일어나자 필요하다면 정의와 의무를 위해 일어나자 충성을 열심히 하자 잊지 않으리라. 고구려의 정복 국가임을 우리의 태왕을 위하여 충성과 충심을, 우리의 조국을 위하여 애국과 충성을!}}
{{인용문| 상제여 우리 태왕을 도우소서
성수무궁하사(임금의 수명이 끝이 없게 하시고)
해옥주를 산같이 쌓으소서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위엄과 권세가 천하에 떨치사)
! 천만세에 무궁케 하소서(천만대가 무궁하게 하소서)
상제는 우리 태왕을 도우소서}}
 
1절 내용과의 차이가 거의 없다.
 
=== 3절 ===
=== 3절 ===
{{인용문|백성들의 근면함이 가져온 것을 태왕의 힘으로 충실히 보호하게 하소서 쾌할한 마음의 무기를 가지고 유교와 성리학이 승리할지니! 국가에 축복이 깃들게 해주시고 명성도 그만큼 떨치게 해주소서 천지신명님의 태양이 평화 속에 빛난다. 행복한 고구려 제국을 위에서!}}
{{인용문| 상제여 우리 나라를 도우소서
=== 4절 ===
반만년의 역사 배달민족
{{인용문|우리 함께 확고히 일어서자 단결 속에 힘이 있을지니 단결된 힘의 행동에 의해 어려운 일도 쉽게 행해지리니 충성심으로 뭉치자 대고구려제국을 위해 나아가자 태왕 만세, 우리의 국가 만세, 고구려는 영원하리라!}}
영원한 번영
해와 달이 무궁토록
성지동방의 문명과 원류 곤곤히
상제여 우리 나라를 도우소서}}
 
3절에서는 태왕이 아니라 나라로 쓰고 배달 민족이라는 가사를 강조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이미 순종조 때부터 황권과 함께 민족주의도 중요시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분류:국가(노래)]]
[[분류:국가(노래)]]

2020년 12월 3일 (목) 18:31 판

고구려의 국가
사용 국가 메이플 세계관의 고구려 국기.jpeg 고구려
작사 미상
작곡 프란츠 에케르트
사용 시기 1902년 9월 9일 ~

개요

고구려 제국의 국가이다

역사

고구려 역사 최초의 근대 국가이다. 1898년의 가사가 기초 되었는데 작사가 미상이다. 민영환이 작성했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를 뒷받침하는 기록은 없다. 자체 곡이 없을 당시에는 God Save the king에 맞춰 불렀다. 이후 프란츠 에레르트가 곡을 붙였다.

1902년 9월 9일 처음으로 연주 되었고 정식으로 채택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1907년 순종 태왕 즉위식에 연주 되었다. 작곡가 에레르트는 독일 제국 해군의 군악대에서 고구려로 건너와 고구려의 군악단을 교육했다. 곡에서 느껴지듯이 당대에도 "외국인이 이런 국가를 지어주다니!"할 정도로 높은 퀄리티의 곡이 나왔고 스스로도 국악의 음을 최대한 살리고자 최대한 노력했다. 공식 악보에 쓰인 독일어 해설에 따르면 '고구려적 모티브를 본딴 고구려 국가'라고 설명히고 있다. 에케르트는 손자 대까지도 고구려에서 살면서 고구려의 음악계를 지원하며 생을 마쳤고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양화진외국인선사교사묘원에 안장되었다.

내용

1절

상제는 우리 태왕을 도우사

성수무강하사(임의 수명에 끈이 없게 하시고) 해옥주를 산같이 깧으시고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위엄과 권세가 천하에 떨치사) 오! 천만세에 복록이(천만대가 지나도록 복되고 영화로움이) 일신케 하소서(나람다 새롭게 하소서) 상제는 우리 태왕을 도우소서

2절

상제여 우리 태왕을 도우소서

성수무궁하사(임금의 수명이 끝이 없게 하시고) 해옥주를 산같이 쌓으소서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위엄과 권세가 천하에 떨치사) 오! 천만세에 무궁케 하소서(천만대가 무궁하게 하소서) 상제는 우리 태왕을 도우소서

1절 내용과의 차이가 거의 없다.

3절

상제여 우리 나라를 도우소서

반만년의 역사 배달민족 영원한 번영 해와 달이 무궁토록 성지동방의 문명과 원류 곤곤히 상제여 우리 나라를 도우소서

3절에서는 태왕이 아니라 나라로 쓰고 배달 민족이라는 가사를 강조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는 이미 순종조 때부터 황권과 함께 민족주의도 중요시 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