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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급진주의자들은 바보지만 시대가 맞는다면 현실적으로 적용시켜라''' | 1865년 라피엘 대통령의 서한 }} | |||
북유럽 복지국가를 완성시킨 장본인이라는 호칭처럼 진보보수주의와 사회자유주의가 주류이며 일부 강경보수파(대처리즘)이 있지만 현재까지도 몇몇 대표를 제외하면 영향력이 강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념적 체계가 확립된건 1840년대 농민당(현재 노동당의 전신)이 자유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자유당의 후신인 민주당이 몰락하자 이를 계기로 어느정도의 진보적 아젠다를 받아들여 총선에서 승리하였으며 실제로 이와 함께 다른 보수정권이 기업가 편을 들때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한쪽에 편향적인 결과를 내지 않았고 그 결과 노동자들에게도 지지를 받으면서도 양측의 타협안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게 됩니다. (단 이점은 사회노동당도 비슷했음) | |||
그리고 타국과 달리 보수당이 평화주의를 옹호하고 중립주의를 제창하는데 이는 2차대전 당시 보수당이 제 1야당의 위치에서 유대인과 소수민족들을 구하면서도 당직자들이 본 전쟁의 참상으로 인해 평화주의가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
2021년 1월 10일 (일) 13:5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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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servatives Party of Shirabishika | |
한국어 명칭 | 시라비시카 보수당 |
영어 명칭 | Conservatives Party of Shirabishika |
창당일 | 1722년 07월 3일 |
이념 | 진보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재정보수주의 사회자유주의 보수당계열의 보수정당들은 대부분 대처리즘을 반대하며 특히 신산업 분야는 적극적인 정부개입을 지지함 사회보수주의 주로 동성애나 성소수자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
스펙트럼 | 중도좌파~우파 시라비시카 보수당은 빅텐트 정당이라는 점이 매우 중요하며 친서방 계열이자 사회노동당과 비슷한 성향을 내는쪽부터 네오나치까지 스펙트럼이 넓으며 현재는 대규모 분당사태로 친러성향이 매우 강한편이다. |
상징색 | 옥색 (#00C6C6) |
당수 | 니콜라 사르테야 |
부당수 | 케멀 올리버 |
교육의회 교섭단체 | 작은 보수당 (Little Conservative Party) |
하원의원 | 291석 / 800석 (36.2%) |
상원의원 | 110석 / 300석 (36.6%) |
교육의원 | 51석 / 120석 (42.5%) |
약칭 | SCP |
개요
For peace Conservative!
평화를 위해 보수당! — 2028년 지방선거 보수당의 공식 슬로건
시라비시카의 대표적인 보수정당이자 하원 제 1 야당 상원 제 2 야당으로 전신은 1655년에 결성된 토리파이며 시라비시카 역사상은 물론이고 현존하는 세계의 정당중 가장 오랫동안 존속한 정당이다.
보수당의 역사
창당
역사적으로 시라비시카 보수당의 기원으로 올라가면 30년 전쟁이후인 1649년 왕위 투쟁을 두고 싸웠던 봉건적 귀족중심,지주들이 스톡홀롬에 몰린 개혁적 자유주의적 성향의 귀족들과 젠트리들을 견제하기위해 결성한 계파인 "토리파"로 볼수있지만 공식적으로 선관위에서 인정되는건 1722년에 발표된 시라비시카 보수당회 성립문으로 현재 시라비시카 정부는 물론 선관위도 토리파를 시라비시카 보수당의 공식 전신으로 바라볼뿐 동일한 정당이라고 비교하지 않습니다.
시라비시카 보수당은 당대 경쟁자였던 시라비시카 자유당과 경쟁하면서 양당구도를 형성하였고 당시까지만 했어도 귀족중심이였던지라 자유당의 개혁정책에 밀리면서 점차 선거마다 의석을 잃어갔고 결국 나폴레옹 전쟁이후 퍼진 자유화 열풍으로 인해 1당 우위제라는 참극을 만들게 됩니다.
야당시대 2공화국
이후 시라비시카 보수당을 지탱하던 귀족들이 전부 신적강하되고 탈 봉건화가 진행되면서 보수당은 활력을 잃어갔지만 자유당은 농민이나 일부 소수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보수당은 이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지지층을 포괄하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시라비시카 보수당의 진보화의 시점으로 이를 통해 시라비시카 보수당은 소작농과 노동자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고 점진적으로 의석을 늘리기 시작했으며 이후 8월 혁명에서 보수당은 농민들과 함께 이들을 지지하고 농민들의 정치세력화를 적극적으로 협조하였으며 이후 자유당이 몰락하고 대통령 직선제에 기반한 제 3공화국이 등장하자 자유당의 정치인들은 혁명의 여파가 적었던 보수당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지지기반
역대 보수당 대표
성향
급진주의자들은 바보지만 시대가 맞는다면 현실적으로 적용시켜라 — 1865년 라피엘 대통령의 서한
북유럽 복지국가를 완성시킨 장본인이라는 호칭처럼 진보보수주의와 사회자유주의가 주류이며 일부 강경보수파(대처리즘)이 있지만 현재까지도 몇몇 대표를 제외하면 영향력이 강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념적 체계가 확립된건 1840년대 농민당(현재 노동당의 전신)이 자유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자유당의 후신인 민주당이 몰락하자 이를 계기로 어느정도의 진보적 아젠다를 받아들여 총선에서 승리하였으며 실제로 이와 함께 다른 보수정권이 기업가 편을 들때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한쪽에 편향적인 결과를 내지 않았고 그 결과 노동자들에게도 지지를 받으면서도 양측의 타협안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게 됩니다. (단 이점은 사회노동당도 비슷했음)
그리고 타국과 달리 보수당이 평화주의를 옹호하고 중립주의를 제창하는데 이는 2차대전 당시 보수당이 제 1야당의 위치에서 유대인과 소수민족들을 구하면서도 당직자들이 본 전쟁의 참상으로 인해 평화주의가 상승하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