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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도-파푸아 연방 제국의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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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14일 (일) 21:19 판

개요

3관의 동인도제도와 뉴기니섬을 영토로삼는 연방제국가이다.

국명

동인도는 동인도제도가 국명의 유래이다.

동인도 (East Indies) 자체는 인도의 동쪽이란 의미이며 여기서 인도는 바로 인도아대륙을 의미하는것이 맞다. 인도아대륙은 이 대륙을 흐르는 인더스강을 페르시아인들이 그리스를 통해 서방에 전파되면서 소아시아와 페르시아 이동대륙을 가리키는 용어로 정착되었다.

이후 16세기 대항해시대가 개막되고 유럽인들의 지리인식이 확장되면서 대아시아에서 분리하여 인도는 인도아대륙과 그 주변부를 일컫는 용어로 한정되어졌다. 이에 서구인들은 인도를 중심으로 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 이래로 카리브해의 도서부를 서인도제도, 동인도는 인도해안, 동남아시아의 말레이 열도, 오세아니아 서남부의 섬들을 의미했다. 여기서 동인도는 인도동부해안, 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의 섬들을 모두 통틀어 일컫는말이 되었으며 동북아시아에 대해 잘 알려지기 전에는 이지역을 극동이라고도 불렀다.

인도네시아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1850년 영국민족학자 조지 윈드소르 얼이 그리스어 인도스(Ἰνδός)’와 ‘네소스(νῆσος)를 합성해 만들었으다. 이는 인도양의 섬들이란 의미로서 창안한 용어로 동인도제도를 이 이름으로 지칭한 사라은 그의 제자인 제임스 리처드슨 로간 이다. 정작 영국식민당국에서는 이 용어를 쓰는것을 꺼려했으며 모든 공문서와 교육과정에서는 동인도라고 불렸다. 그러나 동인도 원주민 즉 동인도 민족주의자들은 인도네시아라는 용어를 동인도라는 말의 대체어로 사용하였고 지금도 그러하고있다.

파푸아 뉴기니의 경우는 파푸아는 현지인들의 곱슬머리를 의미하는 현지어에서 유래했으며 뉴기니는 이곳을 방문한 영국인인 아프리카의 기니와 닮았다고 해서 새로운 기니라고 명명한것이다. 영국식민당국은 서파푸아를 먼저 동인도제도 식민지에 편입시켰으나 독일과 동파푸아 국경을 확정한이후 동남파푸아를 새로이 추가하였다가 1차대전와중 독일이 점유하던 동북파푸아를 빼았아 동인도 총독부관할에 편입시켰다.

역사

선사

고대

중세

흑사병 대유행당시 이슬람상인들과 화물을 타고 이섬에도 흑사병이 대유행하였고 섬 인구 대부분이 절멸했다. 군도나 산속오지에 숨어있던 사람들만이 겨우 살아남았으며 대유행이 끝나고난뒤 인도, 말레이 등에서 이주민들이 찾아왔지만 기반이 대부분 파괴되어 있어서 거점몇군대만 간신히 정착지를 유지했고 그나마도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흑사병이나 전염병 대유행으로 국경을 확장하지 못하고 때로는 철수하거나 전멸했다. 힌두계 왕조인 마자파힛 왕조가 겨우 권력진공상태를 메우며 성립되었으나 이러한 이유로 국력이 성장하거나 중앙집권화는 실패했다. 그나마 인구부양력은 자바섬 일대가 강력했으므로 자바섬과 말레이와 비교적 가까웠고 피해또한 덜했던 북부 수마트라의 인구는 어느정도 까지는 회복했지만 전성기 시절을 능가하지 못하였고 수많은 중소군벌들이 난립하는 춘추전국시대가 되어버렸으며 내륙으로 확장을 못하게되었다. 결국 인구는 다시 감소추세로 돌아섰으며 이러한 악재들 때문에 이들을 통합할만한 구심정이나 강력한 권위를 가진 정권이 창출되지 못하고있었다. 그 와중에 대항해시대가 개막되면서 서구세력의 침투라는 재앙이 시작된다.

서양인들의 도래

1510년에 초에 최초로 포루투갈 상인들이 도착한이래 유럽인들은 이섬에서 향신료를 교역하였고 1612년 최초의 식민지가 건설되었다. 이지역 원주민 왕조들의 저항은 매우 격렬하였는데 영국식민지당국은 이에 맞서서 매우 가혹하게 통치했다. 이문제로 당시 식민당국과 본국에서는 알력이 발생했는데-왜냐면 전쟁은 결국 돈이다. 영국은 수지가 악화되면 털고 나올각을 재고있었다.-피투성이 존이라는 별명이 붙은 존 퍼크 로 경이 무자비한 진압과 초토화 정책, 민족이간정책과 강제이주정책을 실시하여 본국이든 현지에서든 욕을 먹든말든 영국식민지배의 기틀을 닦았다.

존 퍼크 로우경이 빡친이유는 잉글랜드의 세력이 악화된 사이 현지인들이 폭동을 일으켜서 4천~2만의 잉글랜드인들을 살해하거나 쫓아내고 교회를 불태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폭동에 편승하여 마자파힛왕국이 미쳐서 쳐들어왔다가 고전끝에 영국군이 마자파힛을 몰아내기 시작하여 전세가 불리해지자 마자파힛왕은 주변 이슬람군주들에게 귀금속을 담보삼아 사채를 빌리고 이 돈으로 말레이술탄들을 매수해 1만 병력을, 또 포루투갈과 에스파냐 동양식민지에게 땅을 넘겨주는것으로 꼬드기며 1만 병력을 요청하려 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존 퍼크 로우경은 군대를 스스로 이끌고 친정을 감행하는데 처음엔 일반인과 폭동에 가담하지 않은자들은 사면령을 내렸으나 어림도 없었고 마자파힛의 저항은 격렬했다. 이에 중립을 선언했거나 친영적인 군주국과 부족들마저 슬슬 마자파힛에 기울어가는 모습을 보였으며 이러한 사실을 보고받고 있던 영국본국 정부는 퍼크로우를 파면하고 총독부 철수를 검토할수 있다고 경고하였다. 이에 퍼크로우는 격렬하게 항의했고 그 끝에 의회는 30일이내에 사태를 어떻게든 마무리 지을것을 요구했고 결국 그는 자바의 30일간이라고 불리는 대학살극과 동시에 지나가는곳마다 사정없이 초토화시키고 살인과 방화, 약탈을 동반하여 폭동을 진압함과 동시에 마자파힛을 영원히 영국에 저항할수없도록 완전 불구로 만들어버리기로 결심했다. 이때 죽어나간 현지원주민들이 당시 섬전체 인구의 1/4 정도였고 마자파힛 왕국은 영원히 국력을 회복하지 못한다.

1627년 마차파힛 왕국은 존퍼크로우의 강렬한 공격과 이에 퍼크로의 매수, 협박에 넘어간 이슬람 왕국들이 결탁하여 연합군을 형성해 공격하자 결국 무너져 내리며 멸망하였다.그러나 퍼크로우도 이러한 공적에도 말년은 별로 좋지는 않았는데 이에대해 자바인들의 원혼들의 복수라는 소문이 돌았다고 한다.

식민지시대

이는 단순히 퍼크로의 잔학행위로 끝나지 않았으며 동인도의 이후 역사의 향방을 결정짓게된다.

퍼크로의 동인도 식민화정책의 핵심은, 자바 정벌 이후로도 동인도 내부의 핵심적인 정치 세력으로서 정국을 주도했던 지방부족장들과 이슬람 군주들의 힘을 아예 기반부터 제거하기 위한, 전면적인 토지 강탈 및 재분배 정책실시로 요약된다.

계획적으로 퍼크로의 병사들은 씨앗 한 톨, 돼지 한 마리 남기지 않고 자바 전역을 처절하게 불지른 다음, 원래 주민들은 정글과 황무지만 가득한 미개척 내륙지방이나 뉴기니, 보르네오 산간 오지에 가두어 버리고 의도적으로 기아와 질병을 조장하고 어떠한 지원조치를 해주지 않아 부모들이 자식을 바꿔서 잡아먹는 지경까지 이르게했다. 또한 이들 원주민 지역을 주기적으로 침략해서 여자와 아이는 노예로 끌고가고 남자들은 죽였으며 가축은 압류하고 농지엔 소금을 뿌렸으며 마을은 불태웠다.

단 말레이시아나 인근 지역으로 난민이 되어 떠나는 경우는 허용해 주었다. 대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며 재산은 내버려두고 몸만 빠져나와야 한다는 조건을 달았다. 그리고나선 나머지 알토란 같은 토지는 전부 다 자신을 따라온 부하들에게 분배했다. 처절하게 가난한 대다수 현지 혹은 혼혈인이나 이방민족 소작농을 극소수의 백인 지배층이 착취하는 동인도의 기형적인 사회 경제적 구조는 이렇게 퍼크로의 초토화 정책에서 비롯되었다.

이들 원주민들은 동인도당국이 만든 일종의 집단강제노동수용소에 입소하여 무급으로 식민당국의 플렌테이션농장, 천연고무채취, 광산등에서 하루 18시간 주 7일노동을 강요당했으며 할당량을 채우지못하면 태형을 비록하여 온갖 고문과 가혹한 형벌이 기다리고 있었다. 게다가 동인도는 비록 총독은 본국에서 임기마다 교체했을 지언정 사실상 퍼크로우 가문이 대대로 물려받는 사유지나 마찬가지여서 총독인선에 퍼크로우 가문이 개입하기도 했으며 총독들도 퍼크로우 가문앞에선 활동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다.

동인도-파푸아 자치령

태평양전쟁

독립

제1공화국

제2공화국

제1제국

제2제국

자연환경

지리

기후

동식물

정치

영연방제국으로 군주가 이미 국가원수이기 때문에 명목상의 동인도제도와 뉴기섬의 전체군주는 영연방원수(영국국왕)이다.
총독또한 제국이므로 한단계 격이높은 부왕이 임명되며 주민직접선거로 선출된다. 부왕이 공석일경우 인니황제가 대리한다. 부왕은 모두 귀족이어야하며 평민일경우 인니황제가 영국여왕을 대리하여 귀족작위를 수여한다.

실질적인 이나라의 국가원수는 황제이며 기나긴 칭호와 수식어가 있으나 근례엔 간단하게 전제국 3군의 통수권자(Imperator)이며 연합왕국의국왕이자 전부족의 족장(Rex)이며 땅위의 기는것, 하늘위에 나는것, 물속의 고기와 대지의 산물과 만물의주인(dominator)이라고 칭한다. 이마저도 길어서 줄여서 IMP.REX.DOM. 으로 표기한다. 여군주이면 REG.이다.

반입헌군주제

영연방 국가임에도 군주권이 대단히 강력한 반입헌군주제 혹은 반전제군주제를 실시하는 국가이다. 헌법상으론 황제의 강력한 권력과 권한이 보장되며 황제가 발하는 칙령은 헌법과 동일한효력을 가지며 헌법과 상충될경우, 헌법의 효력을 황제칙령이 정지시킨다. 이러한 입법부의 입법권을 행정부가 아니라 황제에게 부여한것이 수권법인데 본래는 한시법이자 법률이었으나 초대 황제가 국민들의 인기를 등에엎고 친위쿠데타로 당시헌법에는 불법이었던 의회해산과 더불어 국민투표를 감행한 개헌을 통해 헌법에 아예 박아버려서 군주권한을 막강하게 강화하였다.단 인니는 보통법지배원리에 따라 딱히 개헌과정에 국민투표는 필요없다고 보나 이를 표결할 의회가 해산되었기때문에 이를 국민투표로 대체한것이다. 현재 인니헌법은 황제칙령을 제외한다면 헌법개정에서는 반드시 국민투표를 하도록 강제하나 황제가 국민투표 자체를 거부할수있도록 되어있다.

의회

의회는 영연방계 국가답게 양원제를 체택하며 형태는 양당우위적 다당제 형태를 보이고있다.원내정당은 4개정당이며 이는 보수당, 노동당, 자민당, 통일당이다. 원외정당으로는 최대정당이자 현재 금지된정당인 공산당, 민주사회주의 계열의 민주사회당, 사민주의 계열인 노동사회당, 환경론자들의 녹색당, 여성주의자들의 동인도 여성의당, 소수민족중심의 이슬람민주당이 있다.

상원

하원

의원선거

입법과정

개헌절차

의장

역대의장

국회경비대

정당

원내정당

원외정당

해산및 금지된 정당

법률

독립직후에는 영미법계였으나 몇차례 국가체제가 변경되면서 오늘날엔 대륙법계 요소가 상당히 가미되었으나 선례구속주의, 병과주의, 보통법의지배원리를 따르고있다. 이 보통법의 지배원리 덕에 헌법의 즉시수정효력이 발생할수 있는 황제칙령의 발포를 보장하는 수권법이 가능하다는 해석이다. 왜냐하면 헌법은 일반법률과 똑같은 법률이므로 개헌과정에서 다른 법률과 별개의 절차는 필요하지 않다고 인식하며 이때문에 국민투표가 필요없으며 법률의 입법 위임처럼 헌법 혹은 그와 동일한 칙령의 수권또한 동일하게 적용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단 미국법처럼 입법부에서 제정한 제정법, 황제가 발령하는 칙령이 판례보다 우위에 있다는 해석이 인니법학계의 통설이므로 이를보고 대륙법요소가 가미되었다고 판단한다.

행정

연방제국가이며 각 연방주체(지자체)들에게 고도자치권을 부여한다. 예전에는 지방장관을 칙선혹은 관선으로 황제나 내각에서 임명했으나 오늘날에는 지방선거를 통해서 선출한다.

행정체계

지방자치

주소체계

동인도-파푸아 연방 제국의 행정구역

경제

==

경제사

주요산업

1차산업

2차산업

3차산업

교통

육상교통

철도

도로

해상교통

항공교통

주요항공사

사회

언론

언론자유는 황제권력에 비하면 쓸때없이 높은편이나 황제나 황실에대한 비난은 '보도지침' 과 '보도통제'를 내려 검열및 금지한다. 동인도는 아직도 공화국 시절의 국가원수모독죄를 계승, 강화한 불경죄가 존재한다.

신문사

르찌라시라는 황색언론이 중앙일간지라는 충격적인 설정이있다.

방송사

EBC라는 국영방송사 단 하나만이 존재한다. 이는 독재정권 시절의 언론통폐합 의 잔재이며 민주화된 이후에도 딱히 방송업 진출을 추가로 정부가 허가하지 않고있다.

문화

언어

민족

군사

동인도의 국방군은 동인도-파푸아연방제국군이 정식명칭이다. 줄여서 제국군으로 부른다. 창설은 16세기 영국인들이 이곳에 상륙하면서 거점방어를 위해 고용한 용병단들이 최초로 간주하나 정식식민지 방위군창설은 자치령승격인 1910년이며 독립국가 군대로서의 정식창설년도는 1947년이다.

통수권자

지휘관

황립육군

공수부대

황립해군

해군육전대

해병대이다. 해군사령부의 지휘를 받는다.

황립공군

특수부대

근위대및 친위대

근위대는 황궁및 수도경비를 담당하며 친위대는 황제및 요인의 개인경호를 담당하는 부대이다. 과거 공화정시절에는 대통령호위군으로 통합되어있었으나 전횡과 비리가 심각하여 결국 제정시대에 분리되었다.

국경경비대

준군사조직으로 인도네시아의 얼마없는 육상국경인 칼리만탄북부, 티모르섬 지역에 주둔하여 국경경비및 감시업무를 담당한다.

해상경비대

준군사조직으로 국경경비대의 해상버전이라고 할수있다.

경찰군

동인도는 경찰력또한 국방성에서 관할하는 경찰군이었다. 하지만 2006년에 내무성으로 경찰의 관할이 이첩되었으나 일부는 경찰군으로 계속 국방성 예하에 남아있게되었다.

하는 역할은 영국의 국방부경찰과 타국의 내무군내지는 국가헌병대와 동일한 임무를수행하며 대테러임무도 수행한다.헌병대와는 다른조직이며 헌병대는 헌병사령부의 관활로서 별도로 존재한다.

교육

학문

외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