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오소의 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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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친환경 정책==
==현대와 친환경 정책==
그녀의 취임에 이르러서 경제 성장은 상당히 정체되었으나, 그녀는 치안 등을 개선시켰다. 확실히 살인율이 상위권이었던 프레시오소의 살인율이 그녀의 취임 이전보다 퇴임 때 13% 정도 감소했다. 그러나 그녀는 비리나 여러 스캔들로 2003년 퇴임했다. 그 이후엔 다시 정의자유당이 당선되었다. 정의자유당의 오티스 패트릭은 친환경 정책을 펼쳤는데, 전국적으로 나무심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지방에 인프라를 건설하기도 했다. 경제성장률은 2006년 잠시 8%까지 상승했다가 다시 감소했다. 2009년에도 정의자유당인 진 블랙이 취임했다. 그는 프레시오소의 첫 아시아계 대통령이었다. 패트릭의 노선을 계승해 친환경 정책을 펼쳤다. 2015년 당선된 정의자유당(정의자유당의 3연속 당선으로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다)의 블로 암스트롱 역시 친환경 정책을 펼쳤으나 비교적 소극적이었고 2019년 병사했다. 이후엔 대민주당의 엘리자베스 톰슨이 취임했다. 그녀는 대민주당이지만 정책은 정의자유당의 강화판 같은 정책을 펼쳤다. 환경 보호를 위한 정책들도 많이 펼치고 지방을 개발하기도 했다. 지방에 많은 인프라를 건설했는데 대표적으로 에스타 시다드시에 대형병원을 설치한 것이다(에스타 시다드는 나라 전체에서 2번째로 가난한 시).

2021년 7월 16일 (금) 22:56 판

북대서양에 위치한 프레시오소의 역사에 대해 다룬다.

식민지배 이전

식민지배 이전엔 프레시오소 원주민이 살고 있었다. 그들은 프레시오소 원주민 언어를 사용했었으며 프레시오소 토속 신앙을 믿었었다. 이때 토속 신앙에 관한 유물들을 많이 남겼었다.

식민지배

1498년 크리스토퍼 콜롬버스가 방문했었다. 처음에는 포르투갈어로 아름답다는 뜻인 벨라(Bela)로 불렸으나 이후 방문한 스페인 탐험가들에 의해 스페인어로 아름답다는 뜻인 프레시오소(Precioso)로 불리게 되었다. 1636년 영국인들의 식민지가 건설되었고 그들은 원주민들의 언어와 토속 신앙을 탄압하고 대항하는 원주민들을 죽이기도 했다. 사탕수수 농장을 만들고 원주민들과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들을 노예로 삼았다. 1833년 노예제가 폐지되고 영국인들은 떠났으나 여전히 식민지로 유지되었었다. 1966년 영연방 왕국의 일원으로 독립했다.

초기의 독재

총리 선거를 진행했는데, 쿠바에서 영향을 받은 친소, 반미 성향의 사회민주당의 톰 콜슨이 당선되었다. 그 이후인 1967년 4월 4일 헌법을 제정했으나 권위주의적인 성격을 띄었었다. 그는 공산주의 정책을 실시했는데 잘못된 수익 분배 등의 문제로 인해 나라는 가난하졌다. 또한 부패가 심해지기도 했다. 그의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밀경찰을 통해 비밀스럽게 체포하고 처형했다고 전해진다. 1973년 임기가 끝나고 재임을 시도하며 선거에 출마했는데 사회민주당의 지지율이 20%에 그치자 부정선거를 통해 53%의 지지율로 당선되었다. 그는 더 노골적인 반미 정책을 폈는데 그것은 미국의 경제제재라는 역효과만을 불려왔다. 1979년 헌법을 개정해 4선까지 가능하게 하고 또다시 부정선거로 3선까지 성공하나 취임식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망했다. 그 이후엔 독립당의 마리오 딘이 당선되었으나 그 역시 권위주의적인 행보를 보이다가 1981년 3.14 시위로 퇴임했다.

민주화

독재자가 퇴임한 이후엔 자유정의당의 빌 루터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연임 제도를 없애고, 비밀경찰들을 없앴고, 경제 제도를 공산주의에서 자본주의로 바꾸고 친미, 반소 국가가 되었다. 그 덕분에 미국의 경제 제재에서 벗어나며 경제 상황이 나아졌다. 1983년의 그레나다 침공을 봤을 때 공산주의를 탈피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는 평이 많다. 경제 상태는 여전히 좋지 않았으나 민주화를 제대로 이루었다는 점이 고평가 받는다.

경제 성장

1987년에도 정의자유당의 후보인 윌리엄 본 킹이 당선되었다. 그는 여러 경제 정책을 펼치고, 많은 인프라와 거주지를 건설했다. 이는 성공해, 프레시오소의 경제가 그저그런 개발도상국에서 상위권 신흥공업국으로 자리잡을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러나 그의 치세 때 검거 등의 작업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치안이 악화된 것은 비판받는다. 1993년에도 정의자유당이 당선되었다. 총리가 된 빈 베니스는 영연방 왕국을 탈퇴하고 공화국을 선언하고 총리의 명칭을 대통령으로 바꿨으며, 그것을 제외하면 윌리엄 본 킹의 노선을 그대로 따르며 경제를 성장시켰다. 그러다가 1999년 퇴임하고 이번엔 대민주당의 그레이스 폴리가 당선되며 프레시오소의 첫 여성 지도자가 나오게 되었다.

현대와 친환경 정책

그녀의 취임에 이르러서 경제 성장은 상당히 정체되었으나, 그녀는 치안 등을 개선시켰다. 확실히 살인율이 상위권이었던 프레시오소의 살인율이 그녀의 취임 이전보다 퇴임 때 13% 정도 감소했다. 그러나 그녀는 비리나 여러 스캔들로 2003년 퇴임했다. 그 이후엔 다시 정의자유당이 당선되었다. 정의자유당의 오티스 패트릭은 친환경 정책을 펼쳤는데, 전국적으로 나무심기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지방에 인프라를 건설하기도 했다. 경제성장률은 2006년 잠시 8%까지 상승했다가 다시 감소했다. 2009년에도 정의자유당인 진 블랙이 취임했다. 그는 프레시오소의 첫 아시아계 대통령이었다. 패트릭의 노선을 계승해 친환경 정책을 펼쳤다. 2015년 당선된 정의자유당(정의자유당의 3연속 당선으로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도 있었다)의 블로 암스트롱 역시 친환경 정책을 펼쳤으나 비교적 소극적이었고 2019년 병사했다. 이후엔 대민주당의 엘리자베스 톰슨이 취임했다. 그녀는 대민주당이지만 정책은 정의자유당의 강화판 같은 정책을 펼쳤다. 환경 보호를 위한 정책들도 많이 펼치고 지방을 개발하기도 했다. 지방에 많은 인프라를 건설했는데 대표적으로 에스타 시다드시에 대형병원을 설치한 것이다(에스타 시다드는 나라 전체에서 2번째로 가난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