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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국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이다. (작성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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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국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이다. (작성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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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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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기원전 90000년 전 구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계속 대륙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여 기원전 70000만년 경에는 아예 일본 열도와 떨어진 섬이 되어버렸는데, 이때 일본의 조몬인들과 점점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조고인으로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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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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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33000년경에는 동토제도의 경한(勁悍)산이라는 화산이 크게 폭발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 화경섬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 중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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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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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12000년쯤엔 섬의 일부가 잠겨서 섬의 면적이 약 9000km²가 줄어들게 되어 고독제도는 2개의 큰 섬으로 나뉘어졌다고 전해진다.
= 근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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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국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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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천년 전쯤엔 동토제도의 동인족들과 자주 싸우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로 조고인, 동인족의 인구가 둘다 반토막으로 줄어들어 서로 건드리지 않고 따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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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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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요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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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4년에는 요부라는 국가가 세워져 고독제도를 통치했다. 계속 동인족들이 쳐들어와 군사를 강화했으나 이는 새로운 질병이 퍼지는 것을 막지 못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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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진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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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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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초반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하여 금세 요부 전역을 집어삼켰다. 요부 사람들은 이를 신의 심판으로 받아들여 신에게 용서만 구했고, 결국 요부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872년 멸망하고, 진유국이 건국된다. 진유에서는 주변과의 교류를 위해 배를 여럿 보내 대륙에 도달하길 시도했지만 결과물은 북천제도와 남천제도를 발견한 것으로 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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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후에 남천제도의 풍부한 식량자원으로 인해 진유는 더이상 바깥과 교류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식량난은 가끔씩 발생해 고생할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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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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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6년, 진유는 위기를 맞이한다. 진유의 여러 파벌들이 떨어져 나오게 되어 7개 국가로 나눠지는데, 이때 정중회는 왕인 서령왕을 몰아내고 무신정권을 일으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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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진유국은 다른 6개의 약소국들에게 동네북으로 취급받는다. 참지 못한 진유국은 다 떨어져 나간 군사력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대전국과 정고국을 친다. 다른 4개국은 진유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고 1347년 성해국의 멸망으로 분열시대는 끝이 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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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세(진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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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년 무신 고성무가 집권하게 되어 초반에는 제대로 된 정치를 했지만 정신 이상 증세로 폭정을 일삼게 되어 1416년에 쫓겨나 무신정권은 끝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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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9년 스페인 사람들이 찾아와 진유와 교류를 하게 되었다. 이때 진유는 매우 힘든 시기였는데, 주변이 전부 바다이고 대륙과 멀리 떨어져있어 외국과 교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처음 스페인 사람들을 본 진유인들이 매우 신기해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스페인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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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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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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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2년 2월 17일 밤, 정유재란 후 조선인 40명 가량이 단체로 군인들을 죽이고 배를 훔쳐 도망쳤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조선인들이 고독 제도를 발견했다. 그 배가 많은 양의 식량을 가지고 있었던 덕에 고독 제도까지 별 탈 없이 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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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제도에서 조선인들은 환영받지 못했는데, 진유국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언어학자였던 김의현은 한글을 전파했고, 몇몇 진유인들은 한글에 흥미를 느껴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진유 내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많이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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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과 조고인이 혼혈이 되어 정경인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정경인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 1687년에는 조고인들을 따라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서종왕은 정경인들을 차별했다. 하지만 같은 조고인들이 많았던 군인들은 군인들에 신경을 쓰지 않고 쓸데없는 차별정책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참다참다 마침내 터져버린 정경인들과 군인들은 단체로 반란을 일으켜 내전이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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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2년 6월 6일, 내전이 시작한 지 정확히 1달째 되던 날에 정경인들은 서종왕을 잡아 처형시켰다. 결국 1732년 6월 13일 진유 왕조를 몰아내고 정경의 조씨 왕조가 집권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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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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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3년 1월 15일, 진유는 국호를 정경국으로(다른 민족들의 반발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경인들은 당시 자신들을 금오(金烏)민족이라 불러서 문제는 없었다)바꾸었다. 이후 군주의 명칭을 신황으로 변경하고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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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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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일본 제국은 먼나라 정경을 노리기 시작했다. 갈수록 일본의 간섭이 심해져 불만이 있었던 정경은 찾아오는 일본인들을 강제로 돌려보냈지만 이는 큰 실수였다. 정경은 이후 타협을 해 정•일 불가침조약을 맺고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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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11월 9일, 일본은 불가침 조약을 어기고 정경을 침공한다. 신황은 미국을 방문해 있었다. 일본의 침략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정경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그 사이 일본은 순식간에 고독제도를 점령한다. 작지만 군사는 조금 강한 편에 속했던 정경은 일본 제국에 맞서지만 일본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다른 영토들도 빼앗겨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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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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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1939년 4월 21일 정경을 병합했고, 공식적으로 정경국은 멸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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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은 정경국, 동토국 각각 2개로 분할되어졌고, 정경인들의 출국을 금지시켰다. 정경인들은 대규모 독립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지만 일본은 더욱 강압적으로 정경을 통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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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 현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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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정경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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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국==

2021년 12월 11일 (토) 10:08 판

개요

정경국의 역사를 다루는 문서이다. (작성중)

선사시대

약 기원전 90000년 전 구석기 시대가 시작되었다. 계속 대륙에서 멀어지기 시작하여 기원전 70000만년 경에는 아예 일본 열도와 떨어진 섬이 되어버렸는데, 이때 일본의 조몬인들과 점점 만나지 못하게 되면서 조고인으로 발전한다.

기원전 33000년경에는 동토제도의 경한(勁悍)산이라는 화산이 크게 폭발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때 화경섬이 생긴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2000년쯤엔 섬의 일부가 잠겨서 섬의 면적이 약 9000km²가 줄어들게 되어 고독제도는 2개의 큰 섬으로 나뉘어졌다고 전해진다.

기원전 2천년 전쯤엔 동토제도의 동인족들과 자주 싸우기 시작했는데, 그 결과로 조고인, 동인족의 인구가 둘다 반토막으로 줄어들어 서로 건드리지 않고 따로 지냈다.

고대(요부)

464년에는 요부라는 국가가 세워져 고독제도를 통치했다. 계속 동인족들이 쳐들어와 군사를 강화했으나 이는 새로운 질병이 퍼지는 것을 잘 막지 못한 계기가 되었다.

중세(진유)

혼란 시대

6세기 초반 전염병이 퍼지기 시작하여 금세 요부 전역을 집어삼켰다. 요부 사람들은 이를 신의 심판으로 받아들여 신에게 용서만 구했고, 결국 요부는 인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872년 멸망하고, 진유국이 건국된다. 진유에서는 주변과의 교류를 위해 배를 여럿 보내 대륙에 도달하길 시도했지만 결과물은 북천제도와 남천제도를 발견한 것으로 그쳤다.

하지만 후에 남천제도의 풍부한 식량자원으로 인해 진유는 더이상 바깥과 교류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었다. 하지만 식량난은 가끔씩 발생해 고생할 때도 있었다.

분열 시대

1086년, 진유는 위기를 맞이한다. 진유의 여러 파벌들이 떨어져 나오게 되어 7개 국가로 나눠지는데, 이때 정중회는 왕인 서령왕을 몰아내고 무신정권을 일으키게 된다.

이후 진유국은 다른 6개의 약소국들에게 동네북으로 취급받는다. 참지 못한 진유국은 다 떨어져 나간 군사력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대전국과 정고국을 친다. 다른 4개국은 진유를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고 1347년 성해국의 멸망으로 분열시대는 끝이 나게된다.

근세(진유)

1401년 무신 고성무가 집권하게 되어 초반에는 제대로 된 정치를 했지만 정신 이상 증세로 폭정을 일삼게 되어 1416년에 쫓겨나 무신정권은 끝을 맞이한다.

1549년 스페인 사람들이 찾아와 진유와 교류를 하게 되었다. 이때 진유는 매우 힘든 시기였는데, 주변이 전부 바다이고 대륙과 멀리 떨어져있어 외국과 교류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처음 스페인 사람들을 본 진유인들이 매우 신기해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스페인 사람들에게 잘 대해주었다고 한다.

근대

조정내전

1602년 2월 17일 밤, 정유재란 후 조선인 40명 가량이 단체로 군인들을 죽이고 배를 훔쳐 도망쳤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조선인들이 고독 제도를 발견했다. 그 배가 많은 양의 식량을 가지고 있었던 덕에 고독 제도까지 별 탈 없이 갈 수 있었다.

고독제도에서 조선인들은 환영받지 못했는데, 진유국의 영토였기 때문이다. 언어학자였던 김의현은 한글을 전파했고, 몇몇 진유인들은 한글에 흥미를 느껴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진유 내 한국어를 쓰는 사람은 많이 늘어났다.

조선인과 조고인이 혼혈이 되어 정경인들이 생기기 시작하는데, 정경인들의 수는 급격히 늘어 1687년에는 조고인들을 따라잡으려 하고 있었다.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서종왕은 정경인들을 차별했다. 하지만 같은 조고인들이 많았던 군인들은 군인들에 신경을 쓰지 않고 쓸데없는 차별정책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다. 참다참다 마침내 터져버린 정경인들과 군인들은 단체로 반란을 일으켜 내전이 일어난다.

1732년 6월 6일, 내전이 시작한 지 정확히 1달째 되던 날에 정경인들은 서종왕을 잡아 처형시켰다. 결국 1732년 6월 13일 진유 왕조를 몰아내고 정경의 조씨 왕조가 집권하게 된다.

화평시대

1733년 1월 15일, 진유는 국호를 정경국으로(다른 민족들의 반발이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정경인들은 당시 자신들을 금오(金烏)민족이라 불러서 문제는 없었다)바꾸었다. 이후 군주의 명칭을 신황으로 변경하고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한다.

정일전쟁

1936년, 일본 제국은 먼나라 정경을 노리기 시작했다. 갈수록 일본의 간섭이 심해져 불만이 있었던 정경은 찾아오는 일본인들을 강제로 돌려보냈지만 이는 큰 실수였다. 정경은 이후 타협을 해 정•일 불가침조약을 맺고 일본과의 관계를 개선했다.

1938년 11월 9일, 일본은 불가침 조약을 어기고 정경을 침공한다. 신황은 미국을 방문해 있었다. 일본의 침략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정경은 큰 혼란에 빠지게 되고, 그 사이 일본은 순식간에 고독제도를 점령한다. 작지만 군사는 조금 강한 편에 속했던 정경은 일본 제국에 맞서지만 일본의 갑작스러운 공격에 버티지 못하고 다른 영토들도 빼앗겨 가게 된다.

일제강점기

일본은 1939년 4월 21일 정경을 병합했고, 공식적으로 정경국은 멸망했다.

정경은 정경국, 동토국 각각 2개로 분할되어졌고, 정경인들의 출국을 금지시켰다. 정경인들은 대규모 독립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지만 일본은 더욱 강압적으로 정경을 통치했다.

독립운동

현대

정경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