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강연합자치국"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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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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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강연합자치국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에 걸친 공화국이다. 1936년 [[데므치그돈로브]]가 [[몽골군 총사령부]] 수립을 선포하였으며, 몽골족의 모든 고유한 영토를 되찾고, 민족 부흥의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는 숭고한 다짐하에 1936년 4월, 몽골족 총회에서 [[몽골군사정부]]의 성립이 선언된다. 1937년 10월 27일, 제 2차 몽골족 총회의에서 몽골연합자치정부의 법과 강령의 제정 문제와 2차 몽골 총회의 선언문을 발표하는 것 등에 관해 논의하였고, 28일 [[몽골연합자치정부]]가 공식 출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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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왕징웨이 정권]]의 수립으로 자치정부로 전락하여 개칭당했으나, [[데므치그돈로브]] 사망 후 몽골인민당의 몽골 민족주의 세력과 접촉하여 반공주의를 내세웠다. 이후 1943년, 일본의 지원을 받아 몽골지역에 신정부를 수립하고 백군세력, 공산주의세력, 친중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한다. 1943년 9월에는 [[몽강연합자치정부]]에서 몽강연합자치국으로 개칭하여 국가로서의 인식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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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강연합자치국은 몽골의 정통 정부로서 [[대동아공영권]]에 속한 공화국이기도 하다. 현재도 일부지역이나 단체등이 군벌을 형성하여 대응을 지속하고 있긴 하지만, 군사정부의 강력한 국가체제와 성공적인 대외정책덕에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몽강연합자치국의 정부는 [[몽골혁명군위원회]]와 [[몽강혁명당|혁명당]]이 전담하고 있으며, 혁명당 당서기와 군위원회장을 겸임하는 주석직이 존재한다. 몽강국은 공식적으로 몽골 제국의 계승국, 중국<ref>중원을 지배하거나 지배했던 정통성있는 국가라는 뜻이다.</ref>의 계승국 --그리고 로마 제국의 계승국--을 표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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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강연합자치국의 경제는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인구의 3분의1 가량이 자급자족 유목하며 살아가거나 농업에 종사하는 인민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현재 확인된 몽강연합자치국의 명목상 전체 GDP는 $38,634,443,250이며, 1인당 GDP는 약 $7,400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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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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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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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강연합자치국의 '몽강'은 대일본제국의 황하 이북, 차하르성과 허베이성, 산시성의 기존 괴뢰정부들인 찰남자치정부, 진북자치정부와 함께 구성된 '몽강공동위'에서 따왔다. 하지만, 몽강연합자치국의 정체성은 '몽골'이기에 '몽강'은 국명을 의미할 뿐, 민족적 속성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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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이라는 명칭이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중국 당나라 시대로, 실위의 부족 중 하나인 '몽올(蒙兀)'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난다. 이때는 아무르 강 상류의 초원 지대에 있었던 군소부족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이후 몽골은 북송 시절부터 강성해지며 이 때부터 중국에서는 '몽고(蒙古)'란 명칭으로 불렀다. 원나라 시절 공식 문서에도 몽골을 한문으로 표기할 일이 있으면 중국인만 아니라 몽골인도 '몽고'라는 표기를 썼으며 오늘날 몽강연합자치국 내에서도 자국의 명칭을 한문으로 표기할 때, 해당 표기를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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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몽골연합자치국', 몽골어로는 ᠮᠣᠩᠭᠣᠯ ᠤ᠋ᠨ ᠥᠪᠡᠷᠲᠡᠭᠡᠨ ᠵᠠᠰᠠᠬᠤ ᠬᠣᠯᠪᠣᠭᠠᠲᠤ ᠤᠯᠰ, 키릴문자로는 'Монголын Өөртөө Засах Холбоот Улс'라고 표기한다. 'Republic'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몽골어 단어는 'бүгд найрамдах улс'이지만, 편의상 관습상 'Монголын Өөртөө Засах Холбоот Улс'라고 불려져왔기에, 수정할 필요는 없다. 또 'State'와 'Republic'이 체제적 대조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에, 기존 명칭을 고수하고 있다. 영어로는 'Republic of United Autonomous Mengjiang'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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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기와 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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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50% | <div style="margin: 8px 10px">[[파일:몽강국 국기.pn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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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50% | <div style="margin: 8px 10px">[[파일:몽강국 국장.png]]</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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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50%" style="background: #f9c400; color: #0b3182" align=middle | '''몽강연합자치국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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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idth="50%" style="background: #f9c400; color: #0b3182" align=middle | '''몽강연합자치국의 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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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강연합자치국의 국기는 바탕이 노란색인 파랑, 하양, 빨간색의 줄무늬 깃발이다. [[몽골군사정부]], [[몽골연합자치정부]], 진북자치정부, 찰남자치정부가 썼던 깃발 색의 공통적 의미는 빨간색은 일본인, 파란색은 몽골족, 노란색은 한족, 하얀색은 회족<ref>또는 투바인, 카자흐인을 뜻하기도 한다.</ref>을 뜻한다. 1937년 제정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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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강연합자치국의 국장은 용 두마리와 몽강연합자치국의 국기를 교차한 모습이다. 몽골족의 위엄과 숭고함을 드러내었다. 국장도 국기와 마찬가지로 1937년에 제정되어 수정을거쳐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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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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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하사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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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2월 23일, 일본군이 관동군 스파이 총살사건을 빌미삼아 만주국의 영토라 주장해오던 열하성을 공격하여 만주국에 합병시켰다. 대일본제국의 승리로, 당고정전협정의 체결되어 러허성이 만주국에 합병되었다. 이후 만리장성 일대의 비무장화가 촉진되면서 일본의 팽창적 야욕 또한 약간 사그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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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1933년 4월, 대일본제국이 차하르성을 침공하면서 내몽골을 향한 일본의 침략야욕이 본격화되었다. 7월에 내몽골 지역의 유력인사이며 청나라에서 내몽골 지역의 왕공족이라는 귀족의 직함을 맡았었던 [[데므치그돈로브]] 이하 [[데므치그돈로브|덕왕]]은 내몽골의 유력자들을 불러모아 국민정부와 [[장제스]]에게 이러한 정세를 바탕으로 내몽골의 자치를 요구할 목적으로 '몽골자치협의회'를 구성하여 내몽골의 자치방안에 대해 모색하기에 이른다. 당시 중국대륙 동북부의 비무장화와 긴 군벌시대가 지속되면서, 내몽골에 대한 중국의 감시 및 관리가 소홀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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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자치협의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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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므치그돈로브]]와 그 외 내몽골 인사들이 구성한 몽골자치협의회는 일본의 힘을 빌어 내몽골을 자치국으로 만드려고 하였고, 장제스의 강한 회유(장제스는 데므치그돈로브 휘하의 내몽골 유력인사들이 내몽골 지역을 일본에 송두리째 넘기는 사태를 막기 위해 자치정부를 중앙 행정원 직속으로 설립 해줄 것을 약속한다.)에도 불구하고 만주국과 대일본제국의 관동군과의 물자교환, 무기교환을 주고 받으며 몽골지역의 자치국 설립을 계획하는등 비밀리에 지속적으로 협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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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골군사정부와 몽골연합자치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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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2월 10일, [[데므치그돈로브]]는 내몽골 시린궈러의 쑤니터 우기 지역에 있었던 덕왕부에서 '몽골군 총사령부' 성립행사를 가지고 행사 연설에서 자신을 칭기즈칸의 후손이라 자칭하면서, 몽골 제국과 위대한 칸의 정신을 이어받아 몽골족의 모든 고유한 영토를 되찾고, 민족 부흥의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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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므치그돈로브]]는 몽골군 총사령부가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외몽골에 대항하는 '정통 몽골 세력'임을 내세웠는데, 그 까닭은 성공적으로 내몽골을 통일한 뒤, 외몽골(몽골 인민공화국), 탄누 투바, 소련령 부랴티아까지 합병, 몽골족의 통일을 이루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을 관동군은 만주국의 불안정 등 여러 사안, 특히 소련과의 충돌을 제일 염려하여 극구 만류했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외몽골의 독립'같은 소소한 목표를 주장하였지만, '완전한 몽골민족의 독립과 몽골제국의 고토 회복'이라는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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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1936년 4월에 몽골족 총회가 열렸고, 5월 1일 몽골군사정부강령이 채택되었으며, 12일 '몽골군사정부'의 성립이 선언되면서 평소 내몽골 귀족 사이에 명망이 깊었던 왕공족인 [[운왕]]을 몽골군사정부 주석직에, 그리고 [[데므치그돈로브]]는 총재직에 취임하였다. 1936년에는 다나카 류키치의 부추김으로 수동사변을 일으켰다가 개박살났다. 1937년에 [[노구교 사건]]를 빌미로 중일전쟁을 시작한 일본제국군의 중국 대륙 침공에 편승한 [[데므치그돈로브]]는 본격적으로 일본의 지원을 받아 몽골군사정부 영토에 주둔했던 중국군과 전투를 하게 되어, 성공적으로 격퇴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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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강공동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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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신임을 얻은 몽골군사정부는 관동군의 지원하에 1937년 10월 27일, 2일동안 개최된 제2차 몽골족 총회의에서 '몽골연합자치정부'의 법과 강령의 제정 문제와 총회의 선언문을 발표하는 것 등에 관해 논의하였고, 28일 '후흐허트'를 수도로 하여 '몽골연합자치정부'가 공식 출범하였다. 1938년에 사망한 [[운왕]]을 대신해 [[데므치그돈로브]]가 주석직에 취임하였고 그 후, 몽골연합자치정부는 일본 관동군의 권유에 따라 1938년 일본제국의 황하 이북, 차하르성과 허베이성, 산시성의 기존 협력 세력들인 찰남자치정부, 진북자치정부와 함께 '몽강공동위'를 구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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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9년 9월 몽강공동위는 구성원인 세 개의 괴뢰 정권<ref>몽골연합자치정부, 찰남자치정부, 진북자치정부</ref>을 흡수하고 '칼간'<ref>현재의 중국 장자커우</ref>으로 천도하여, [[데므치그돈로브]]를 정부수반 직책인 주석직에 추대한다. 몽강공동위는 '몽강연합자치정부'로 이름을 바꾸며 몽강연합자치국의 구정부가 정식적으로 출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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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강연합자치국 구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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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징웨이 정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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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강연합자치국 신정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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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동아공영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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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강혁명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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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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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체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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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강연합자치국이 공식적으로 내걸고 있는 자국의 정체성은 다양하다. 기존 몽강연합자치정부의 목표는 '몽골족과 몽골제국 고토의 통일'이었지만, [[몽강혁명당|현 정권]]이 정의하는 '몽강'의 정체성이란 '진정한 몽골제국, 진정한 중국, 진정한 유목민족의 통합 정부'이다. 실제로 몽강연합자치국의 국부인 [[데므치그돈로브]]가 몽골 귀족 가문의 30대손이며, 칭기즈칸과의 혈통적 관련성을 입증하고 있다. 몽골제국의 후신임을 당연스럽게 내세울 수 있다는 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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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역사적인 사료나 영토 크기 등을 고려하였을때, 중원의 올바른 주인은 몽강연합자치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올바른 지도자와 정당한 정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분열한 것이며, '몽강연합자치국은 진정한 중국의 주인으로서 대륙을 통일로서 해방시킨다.'라는 것이 몽강국의 입장이다. 실제로 몽골족 선조들은 오랜기간동안 중원의 지배계급, 상등계층으로 존속했다. 원나라때는 몽골족이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최상위계층으로 대우받았다. 또, 청나라가 몽골의 '칸'의 칭호를 사용함으로서 '몽골의 지위는 중국대륙 왕조도 탐할만한 칭호'라는 것을 입증한 바 있으며, 여러 동북아시아 지명들(특히 만주, 중앙아시아 등)은 몽골식 어휘를 사용하여 지어진 것이 대부분다. 이처럼 몽강연합자치국은 이전까지 몽골의 인민들이 실현하지 못했던 '중국통일'이라는 원대한 꿈을 대일본제국과 함께 수행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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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몽강연합자치국 군사정부의 '로마 계승 발언'은 많은 국가들에게 질투와 비난을 받아 철회된 바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아직까지 '로마 제국의 황제' 칭호를 고수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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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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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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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구글어스 몽골지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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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최대규모의 내륙국이며, 영토가 매우 광활하다. 프랑스, 이베리아, 이탈리아, 브리튼 섬을 전부 합친 것과도 맞먹는다. 위쪽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위치해 있는 바람에, 체감상 크기가 작아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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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국이다. 바다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건조하고 일,연교차가 큰 극단적인 대륙성 기후를 띤다. 헌법상 영토인 [[베이징시|칸발리크]]와 그 주변은 대체로 온난하지만, 실질적 영토의 절반이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한랭하다. 최고봉 후이텡 봉은 4,374m에 달하며 최저점도 518m로, 국토 평균 고도는 1,580m. 수도 [[울란바토르|후레]]도 해발 1,350m에 위치해 있다.

2022년 1월 3일 (월) 20:53 판

몽강연합자치국
ᠮᠣᠩᠭᠣᠯ ᠤ᠋ᠨ ᠥᠪᠡᠷᠲᠡᠭᠡᠨ ᠵᠠᠰᠠᠬᠤ ᠬᠣᠯᠪᠣᠭᠠᠲᠤ ᠤᠯᠰ
Монголын Өөртөө Засах Холбоот Улс
蒙疆聯合自治國
Republic of United Autonomous Mengjiang

몽강국 국기.png 몽강국 국장.png
국기 국장
收復蒙古固有疆土
옛 몽골의 고유 영토를 되찾자
상징
국가 몽강국국가
국수 용, 늑대
국조 두루미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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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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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칸발리크(ᠻᠠᠨᠪᠠᠯᠢᠺ)[1]
후레(ᠬᠦᠷᠡᠡ)
최대도시 후레(ᠬᠦᠷᠡᠡ)
면적 1,734,616km²
접경국 만주국,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중화민주평화국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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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盟) 23개
소목(蘇木) 347개
촌(村) 약 3600개
미수복지역 9개 맹(盟)
87개 소목(蘇木)
약 1100개 촌(村)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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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인구 5,213,825명
인종 구성 몽골인 52%
중국인 29%
일본인 6%
회족 4%
카자흐족 2%
만주족 1%
기타 6%
인구밀도 3명/㎢
출산율 1.42명
기대 수명 74세
공용어 몽골어, 중국어
지역어 협화어, 일본어, 만주어, 카자흐어, 러시아어, 투바어, 조선어 등
공용 문자 한자, 키릴 문자, 몽골 문자, 가나
종교 국교 국교 없음(국가무신론)
분포 무종교 58%
티베트불교 26%
민속신앙 5%
불교 1%
기타 10%
군대 몽골혁명군
주둔군 일본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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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체제 공화제, 일당독재, 군사독재, 군국주의, 전체주의, 단일국가
민주주의 지수 권위주의 체제
주석 -
부주석 -
몽골혁명군위원장 -
민족대회의 의장
여당 혁명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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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체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GDP
(명목)
전체 GDP $38,634,443,250
1인당 GDP $7,410
화폐 공식 화폐 몽강 위안, 일본 엔[2]
ISO 4217 MNY, JPY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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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서력기원
시간대 UTC+7(몽강 표준시)
도량형 SI 단위
통행방향 왼쪽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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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 가입 가입국
UN 가입일 1941년
ccTLD
.mn
국가 코드
MNJ
국제 전화 코드
+976
몽강국 국장2.png

개요

몽강연합자치국은 중앙아시아와 동북아시아에 걸친 공화국이다. 1936년 데므치그돈로브몽골군 총사령부 수립을 선포하였으며, 몽골족의 모든 고유한 영토를 되찾고, 민족 부흥의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는 숭고한 다짐하에 1936년 4월, 몽골족 총회에서 몽골군사정부의 성립이 선언된다. 1937년 10월 27일, 제 2차 몽골족 총회의에서 몽골연합자치정부의 법과 강령의 제정 문제와 2차 몽골 총회의 선언문을 발표하는 것 등에 관해 논의하였고, 28일 몽골연합자치정부가 공식 출범하였다.

1941년, 왕징웨이 정권의 수립으로 자치정부로 전락하여 개칭당했으나, 데므치그돈로브 사망 후 몽골인민당의 몽골 민족주의 세력과 접촉하여 반공주의를 내세웠다. 이후 1943년, 일본의 지원을 받아 몽골지역에 신정부를 수립하고 백군세력, 공산주의세력, 친중세력을 대대적으로 숙청한다. 1943년 9월에는 몽강연합자치정부에서 몽강연합자치국으로 개칭하여 국가로서의 인식을 강조하였다.

몽강연합자치국은 몽골의 정통 정부로서 대동아공영권에 속한 공화국이기도 하다. 현재도 일부지역이나 단체등이 군벌을 형성하여 대응을 지속하고 있긴 하지만, 군사정부의 강력한 국가체제와 성공적인 대외정책덕에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몽강연합자치국의 정부는 몽골혁명군위원회혁명당이 전담하고 있으며, 혁명당 당서기와 군위원회장을 겸임하는 주석직이 존재한다. 몽강국은 공식적으로 몽골 제국의 계승국, 중국[3]의 계승국 그리고 로마 제국의 계승국을 표방하고 있다.

몽강연합자치국의 경제는 그리 부유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인구의 3분의1 가량이 자급자족 유목하며 살아가거나 농업에 종사하는 인민이라고 생각하면 결코 적은 수치가 아니다. 현재 확인된 몽강연합자치국의 명목상 전체 GDP는 $38,634,443,250이며, 1인당 GDP는 약 $7,400이다.

상징

국호

몽강연합자치국의 '몽강'은 대일본제국의 황하 이북, 차하르성과 허베이성, 산시성의 기존 괴뢰정부들인 찰남자치정부, 진북자치정부와 함께 구성된 '몽강공동위'에서 따왔다. 하지만, 몽강연합자치국의 정체성은 '몽골'이기에 '몽강'은 국명을 의미할 뿐, 민족적 속성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몽골'이라는 명칭이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중국 당나라 시대로, 실위의 부족 중 하나인 '몽올(蒙兀)'이라는 명칭으로 나타난다. 이때는 아무르 강 상류의 초원 지대에 있었던 군소부족 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이후 몽골은 북송 시절부터 강성해지며 이 때부터 중국에서는 '몽고(蒙古)'란 명칭으로 불렀다. 원나라 시절 공식 문서에도 몽골을 한문으로 표기할 일이 있으면 중국인만 아니라 몽골인도 '몽고'라는 표기를 썼으며 오늘날 몽강연합자치국 내에서도 자국의 명칭을 한문으로 표기할 때, 해당 표기를 사용한다.

정식명칭 '몽골연합자치국', 몽골어로는 ᠮᠣᠩᠭᠣᠯ ᠤ᠋ᠨ ᠥᠪᠡᠷᠲᠡᠭᠡᠨ ᠵᠠᠰᠠᠬᠤ ᠬᠣᠯᠪᠣᠭᠠᠲᠤ ᠤᠯᠰ, 키릴문자로는 'Монголын Өөртөө Засах Холбоот Улс'라고 표기한다. 'Republic'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몽골어 단어는 'бүгд найрамдах улс'이지만, 편의상 관습상 'Монголын Өөртөө Засах Холбоот Улс'라고 불려져왔기에, 수정할 필요는 없다. 또 'State'와 'Republic'이 체제적 대조가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아니기에, 기존 명칭을 고수하고 있다. 영어로는 'Republic of United Autonomous Mengjiang'라고 한다.

국기와 국장

몽강국 국기.png
몽강국 국장.png
몽강연합자치국의 국기 몽강연합자치국의 국장

몽강연합자치국의 국기는 바탕이 노란색인 파랑, 하양, 빨간색의 줄무늬 깃발이다. 몽골군사정부, 몽골연합자치정부, 진북자치정부, 찰남자치정부가 썼던 깃발 색의 공통적 의미는 빨간색은 일본인, 파란색은 몽골족, 노란색은 한족, 하얀색은 회족[4]을 뜻한다. 1937년 제정되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몽강연합자치국의 국장은 용 두마리와 몽강연합자치국의 국기를 교차한 모습이다. 몽골족의 위엄과 숭고함을 드러내었다. 국장도 국기와 마찬가지로 1937년에 제정되어 수정을거쳐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역사

열하사변

1933년 2월 23일, 일본군이 관동군 스파이 총살사건을 빌미삼아 만주국의 영토라 주장해오던 열하성을 공격하여 만주국에 합병시켰다. 대일본제국의 승리로, 당고정전협정의 체결되어 러허성이 만주국에 합병되었다. 이후 만리장성 일대의 비무장화가 촉진되면서 일본의 팽창적 야욕 또한 약간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1933년 4월, 대일본제국이 차하르성을 침공하면서 내몽골을 향한 일본의 침략야욕이 본격화되었다. 7월에 내몽골 지역의 유력인사이며 청나라에서 내몽골 지역의 왕공족이라는 귀족의 직함을 맡았었던 데므치그돈로브 이하 덕왕은 내몽골의 유력자들을 불러모아 국민정부와 장제스에게 이러한 정세를 바탕으로 내몽골의 자치를 요구할 목적으로 '몽골자치협의회'를 구성하여 내몽골의 자치방안에 대해 모색하기에 이른다. 당시 중국대륙 동북부의 비무장화와 긴 군벌시대가 지속되면서, 내몽골에 대한 중국의 감시 및 관리가 소홀해진다.

몽골자치협의회

데므치그돈로브와 그 외 내몽골 인사들이 구성한 몽골자치협의회는 일본의 힘을 빌어 내몽골을 자치국으로 만드려고 하였고, 장제스의 강한 회유(장제스는 데므치그돈로브 휘하의 내몽골 유력인사들이 내몽골 지역을 일본에 송두리째 넘기는 사태를 막기 위해 자치정부를 중앙 행정원 직속으로 설립 해줄 것을 약속한다.)에도 불구하고 만주국과 대일본제국의 관동군과의 물자교환, 무기교환을 주고 받으며 몽골지역의 자치국 설립을 계획하는등 비밀리에 지속적으로 협력하였다.

몽골군사정부와 몽골연합자치정부

1936년 2월 10일, 데므치그돈로브는 내몽골 시린궈러의 쑤니터 우기 지역에 있었던 덕왕부에서 '몽골군 총사령부' 성립행사를 가지고 행사 연설에서 자신을 칭기즈칸의 후손이라 자칭하면서, 몽골 제국과 위대한 칸의 정신을 이어받아 몽골족의 모든 고유한 영토를 되찾고, 민족 부흥의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데므치그돈로브는 몽골군 총사령부가 소련의 영향권 아래에 있던 외몽골에 대항하는 '정통 몽골 세력'임을 내세웠는데, 그 까닭은 성공적으로 내몽골을 통일한 뒤, 외몽골(몽골 인민공화국), 탄누 투바, 소련령 부랴티아까지 합병, 몽골족의 통일을 이루려는 데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을 관동군은 만주국의 불안정 등 여러 사안, 특히 소련과의 충돌을 제일 염려하여 극구 만류했다. 그리하여 겉으로는 '외몽골의 독립'같은 소소한 목표를 주장하였지만, '완전한 몽골민족의 독립과 몽골제국의 고토 회복'이라는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그 후 1936년 4월에 몽골족 총회가 열렸고, 5월 1일 몽골군사정부강령이 채택되었으며, 12일 '몽골군사정부'의 성립이 선언되면서 평소 내몽골 귀족 사이에 명망이 깊었던 왕공족인 운왕을 몽골군사정부 주석직에, 그리고 데므치그돈로브는 총재직에 취임하였다. 1936년에는 다나카 류키치의 부추김으로 수동사변을 일으켰다가 개박살났다. 1937년에 노구교 사건를 빌미로 중일전쟁을 시작한 일본제국군의 중국 대륙 침공에 편승한 데므치그돈로브는 본격적으로 일본의 지원을 받아 몽골군사정부 영토에 주둔했던 중국군과 전투를 하게 되어, 성공적으로 격퇴시킨다.

몽강공동위

일본의 신임을 얻은 몽골군사정부는 관동군의 지원하에 1937년 10월 27일, 2일동안 개최된 제2차 몽골족 총회의에서 '몽골연합자치정부'의 법과 강령의 제정 문제와 총회의 선언문을 발표하는 것 등에 관해 논의하였고, 28일 '후흐허트'를 수도로 하여 '몽골연합자치정부'가 공식 출범하였다. 1938년에 사망한 운왕을 대신해 데므치그돈로브가 주석직에 취임하였고 그 후, 몽골연합자치정부는 일본 관동군의 권유에 따라 1938년 일본제국의 황하 이북, 차하르성과 허베이성, 산시성의 기존 협력 세력들인 찰남자치정부, 진북자치정부와 함께 '몽강공동위'를 구성하게 된다.

1939년 9월 몽강공동위는 구성원인 세 개의 괴뢰 정권[5]을 흡수하고 '칼간'[6]으로 천도하여, 데므치그돈로브를 정부수반 직책인 주석직에 추대한다. 몽강공동위는 '몽강연합자치정부'로 이름을 바꾸며 몽강연합자치국의 구정부가 정식적으로 출범한다.

몽강연합자치국 구정부

왕징웨이 정권

몽강연합자치국 신정부

대동아공영권

몽강혁명당

현재

정체성

몽강연합자치국이 공식적으로 내걸고 있는 자국의 정체성은 다양하다. 기존 몽강연합자치정부의 목표는 '몽골족과 몽골제국 고토의 통일'이었지만, 현 정권이 정의하는 '몽강'의 정체성이란 '진정한 몽골제국, 진정한 중국, 진정한 유목민족의 통합 정부'이다. 실제로 몽강연합자치국의 국부인 데므치그돈로브가 몽골 귀족 가문의 30대손이며, 칭기즈칸과의 혈통적 관련성을 입증하고 있다. 몽골제국의 후신임을 당연스럽게 내세울 수 있다는 소리이다.

또한, 역사적인 사료나 영토 크기 등을 고려하였을때, 중원의 올바른 주인은 몽강연합자치국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은 올바른 지도자와 정당한 정부를 찾지 못했기 때문에 분열한 것이며, '몽강연합자치국은 진정한 중국의 주인으로서 대륙을 통일로서 해방시킨다.'라는 것이 몽강국의 입장이다. 실제로 몽골족 선조들은 오랜기간동안 중원의 지배계급, 상등계층으로 존속했다. 원나라때는 몽골족이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최상위계층으로 대우받았다. 또, 청나라가 몽골의 '칸'의 칭호를 사용함으로서 '몽골의 지위는 중국대륙 왕조도 탐할만한 칭호'라는 것을 입증한 바 있으며, 여러 동북아시아 지명들(특히 만주, 중앙아시아 등)은 몽골식 어휘를 사용하여 지어진 것이 대부분다. 이처럼 몽강연합자치국은 이전까지 몽골의 인민들이 실현하지 못했던 '중국통일'이라는 원대한 꿈을 대일본제국과 함께 수행 해나갈 것이다.

전 몽강연합자치국 군사정부의 '로마 계승 발언'은 많은 국가들에게 질투와 비난을 받아 철회된 바 있다. 하지만 현 정부에서 아직까지 '로마 제국의 황제' 칭호를 고수하고 있다는 소문이 있다.

자연

지리

파일:구글어스 몽골지도.png
동북아시아 최대규모의 내륙국이며, 영토가 매우 광활하다. 프랑스, 이베리아, 이탈리아, 브리튼 섬을 전부 합친 것과도 맞먹는다. 위쪽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이 위치해 있는 바람에, 체감상 크기가 작아보이는 것이 현실이다.

내륙국이다. 바다와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건조하고 일,연교차가 큰 극단적인 대륙성 기후를 띤다. 헌법상 영토인 칸발리크와 그 주변은 대체로 온난하지만, 실질적 영토의 절반이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서 한랭하다. 최고봉 후이텡 봉은 4,374m에 달하며 최저점도 518m로, 국토 평균 고도는 1,580m. 수도 후레도 해발 1,350m에 위치해 있다.

  1. 헌법상 베이징, 즉 칸발리크가 몽강국의 수도이다. 하지만 실질적인 수도는 후레이다.
  2. 공식 화폐는 아니지만 주로 통용된다.
  3. 중원을 지배하거나 지배했던 정통성있는 국가라는 뜻이다.
  4. 또는 투바인, 카자흐인을 뜻하기도 한다.
  5. 몽골연합자치정부, 찰남자치정부, 진북자치정부
  6. 현재의 중국 장자커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