윈저 2세

King of United King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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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알렉산더 루이
이름왕호
윈저 2세
출생2022 / 08 / 10
대영제국 잉글랜드 런던 버킹엄 궁전
사망X / X / X
X
장례식X / X / X
X
묘소X
X
재위기간2022.11.04 ~ 2022.12.04
부모에든버러 공작 제임스 영국 국서
엘리자베스 6세 영국 여왕
배우자스티아나 왕비
자녀찰스, 에드워드 5세
신체178cm
종교영국 성공회
복무X

윈저 2세 는 영국 윈저왕가의 제12대 국왕이며 엘리자베스 6세 여왕과 제임스 공의 장남이다. 영국 국왕이자 영연방왕국의 국왕으로써 31일간 재위하였다. 후임자는 에드워드 5세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서론

윈저 2세는 2022년 11월 4일 어머니이자 선왕인 엘리자베스 6세 여왕이 서거함에 따라 65세의 나이로 국왕의 자리에 올랐다. 226일 만의 나타난 남성군주였으며 골드 주빌리를 맞이하고 재위 31일차가 되는날 영국 역사상 최초로 후임자 에드워드 5세에게 양위하고 왕위에서 물러났다.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작위

"윈저 공작 전하 "
— 공식적인 칭호
문장91.png
모노그램파일:93
칭호의 변천사윈저6.png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즉위 전 호칭 추측

2022년 10월 중순부터 엘리자베스 6세 여왕의 건강이 악화되어 직무 대부분을 윈저 2세 국왕이 맡자, 국민들은 그가 왕이 곧 될 것이라 생각했다. 대부분 자신의 이름을 딴 조지 8세, 혹은 에드워드 5세나 윌리엄 2세를 추측했으나 위대한 선왕이던 윈저 1세의 왕호를 이어받아 윈저 2세 라는 왕호로 결정했다고 4일 오후에 밝혔다.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태어난뒤, 얼마안가 왕세자

"난 무조건 이 아이를 낳을거라고!! "
— 엘리자베스 6세 여왕
웨일스 공으로 책봉된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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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8월 10일, 웨일스 여공작이던 이시스 여공과 에든버러 공작 제임스 공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태어나자마자 세례를 받았다. 이름은 조지 알렉산더 루이로 정해졌다. 가족들에 돌봄을 받지 못하고 보모들의 돌봄을 받았다. 태어난뒤 이틀후 어머니를 대신해 영연방을 순방했다. 이후 웨일스 공자로써 갈수록 커지고 있었다. 8월 19일 할머니 앤 여왕이 서거하고 어머니 엘리자베스 6세 여왕이 즉위하여 웨일스 공작으로 책봉되었다. 이후 국민들과 친목하며 생활하다가 9월 9일, 스티아나 양과 약혼을 발표한다. 9월 24일 장남 찰스가 태어나고 6일후인 30일에 차남 에드워드가 태어났다. 10월 1일, 장남 찰스가 독감으로 급사하고 다음날 아버지가 사망하여 충격을 받았다. 이후 차남인 에드워드가 자신의 후계자가 된다. 10월 8일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스티아나 공빈과 결혼식을 치루고 엘리자베스 6세 여왕이 스코틀랜드 왕자 작위를 하사했다. 가정을 확장하며 국민들과 친목을 하며 왕실의 책무를 가끔씩 맡았다.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국가원수 대행

10월 23일부터 여왕의 건강이 악화되자 국가원수 대행인이 된다. 이때부터 법률 재가 및 순방 등 공식적인 군주의 직무를 대부분 맡았고 업무 비중이 매우 커졌다. 10월 30일에 아들 에드워드의 결혼식엔 건강상의 이유로 참여하지 못했다. 11월 4일까지 왕실 홍보이벤트 등을 주최하며 여왕의 자리를 대신하였으나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즉위와 행보

"제 2의 윈저 시대가 열렸습니다. "
— 루이스 BBC 기자
성명문을 발표하는 윈저 2세 국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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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4일 오후 8시 15분, 엘리자베스 6세 여왕이 치료도중 급사했다. 처음엔 믿지 않았으나 몇분후 믿었다고 한다. 궁내부의 조언에 따라 여러 왕호 후보가 있었으나 윈저 2세 로 정하였다. 이후 대국민 연설문을 발표하고 여러 관료와 접견하였으며 11월 5~6일에 장례절차에 대부분 참여할 것이다. 11월 5일 오후 1시엔 세인트제임스궁전에서 국왕 즉위선포식이 있으며 대관식 은 11월 중순내로 있을 것이며 국왕으로써의 본격 업무는 애도기간이 지난 11월 7일부터 진행될 듯 하다.

발표 이후 9시 20분에 왕호가 윈저 2세로 정해졌다고 궁은 밝혔고 국왕의 성명이 있었다.

"짐은 영국과 영연방 국민여러분들께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저는 여왕 폐하를 어머니로써 늘 사랑했고 재위 기간 동안 지켜보았습니다. 늘 빠짐 없이 국정을 돌보셨고 우리 위대한 대영제국 왕실과 국민분들께 큰 영감이 되신분입니다. 여왕께선 어머니로써 왕실 가족들에게 사랑과 애정은 가득했고 조언도 늘 해주셨으며 앞장서서 영국연방을 수호하셨습니다. 모두 추모해주시길 바라며, 저는 여왕께서 하신말에 깊은 뜻을 이어받아 제 생이 언제 끝날지 몰라도 재위하는동안 영국 연방과 위대한 국민 여러분들께 평생 헌신하고 봉사할 것임을 약속드립니다."
— King Windsor II

웨스트민스터 사원, 세인트폴대성당, 하이드 파크, 성 조지성당, 세인트마거릿교회, 카디프 성, 런던탑, 지브롤터 공항 등에서 조포와 추모종이 105번 울렸다. 105포를 발사한 이유는 여왕이 향년 105세로 서거했기 때문이다.

윈저 2세 국왕은 스티아나 웨일스 공빈을 스티아나 왕비 로 책봉했고 에드워드 케임브리지 공작을 웨일스 공작으로 책봉했다.
이후 버킹엄 궁전에서 지미 카터 총리와 각 내각원들, 청설모 켄터베리 대주교와 앨리스 요크대주교, 야당 당수들과 접견을 나누어 조의를 받았다.

윈저 2세 국왕은 9시 후반에 귀족부를 폐지한다 발표했다. 귀족부란 귀족들의 교육소를 뜻한다.
의회에서 충성맹세식이 있었다.

11월 5일 오후 1시, 추밀원 즉위회의가 세인트제임스궁전에서 거행했었다. 만장일치로 즉위위원회에서 윈저 2세 국왕의 즉위안이 회의에서 통과되었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자비롭게 베푸셨다. 여왕 폐하께서 서거하셔서 대 헌장과 왕실법, 교회법에 따라 후임자는 조지 알렉산더 루이로 신의 영역과 영국 연방 영역의 새 주인이시며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레이트브리튼 및 북아일랜드 연합왕국과 그 밖의 국가와 해외영토의 국왕, 영연방의 원수, 신앙의 수호자, 왕실령의 영주이십니다. 이제 영국과 북아일랜드의 제국 왕관과 킹 에드워드 왕관, 인도 황관은 조지 알렉산더 루이가 받으며 이제 우리의 유일한 합법적이고 정당한 국왕이 되셨습니다. 더 이상 조지 알렉산더 루이가 아닌 윈저 2세 국왕 폐하 이십니다. 하느님께선 국왕 폐하를 지켜주소서"
— 아템 추밀원 서기
즉위 공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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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5일 오후 8시, 의회 개회식이 있었고 의원들은 새 국왕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그리고 당일 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찾아 조문을 표했다.
11월 6일 오전 12시, 왕실에선 윈저 2세 국왕폐하의 뜻에 따라 공식관저를 버킹엄 궁전에서 윈저성으로 옮긴다는 발표를 했으나 무산되었다.
11월 6일 오후 7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윈저2세 국왕은 육개장 두 그릇 을 먹었다고 한다. 장례절차와 애도기간이 끝나 이제 국왕의 시대가 사실상 열렸다. 그리고 당일 결혼 30일 은혼식 을 맞이했다.

11월 7일, 엘리자베스 5세 여왕때부터 큰 논쟁이던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는 제19조 개헌안을 두고 정부와 마찰이 생겼으며 그 규모는 커져 헌정 사상 위기가 될 뻔 했으나 왕실이 입헌군주제를 수호한다며 한발 물러나 정부와 합의하여 제19조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국왕의 지지율은 89.6% 라는 높은 결과가 나타났으며 선왕 엘리자베스 6세에 비하여 50% 이상 상승했다.

11월 8일, 클라렌스 하우스에서 헨리 웨일스 공자가 태어났으며 첫 손주를 보게되었다.
11월 12일, 대관식 이 오후 5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되었으며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석했고 영국 대관식 역사상 가장 많은 인파가 몰린 것으로 보인다. 대관식을 통해 이제 즉위 절차는 모두 끝났으며 대관식이 끝난뒤 전통에 따라 윈저 성에서 즉위 기념 연회를 열었다.

대관식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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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2일, 호주와 뉴질랜드가 통합되어 오스트랄라시아 연방이 출범했으며 즉위 이후 첫 영연방에 관한 업무를 시작하였다.
11월 13일, 아일랜드 공국이 독립하고 웨일스 공때 주최했던 왕실 홍보물 대회를 마감하였다.

11월 19일, 자신의 차남인 에드워드가 웨일스 카디프성에서 웨일스 공작으로 책봉되었으며 윈저 2세 국왕과 스티아나 왕비가 참여하였다.
11월 20일, 급진적인 작위 개혁을 진행하여 수많은 귀족가문들을 평민가문으로 격하시키고, 대부분의 귀족들 작위를 압수하거나 강등하였다.
이에 불만 이 터진 귀족들이 단체로 시위하며 군주제가 위기 에 빠질려고 하자 국왕은 빠르게 사태 수습을 하여 작위 일부를 복구하고 민심을 달랬다.
하지만 작위에 관해 업무를 보던 수여위원회 동의 혹은 자문 도 없이 진행하여 수여위원회 위원들이 2차 불만 을 가지게 되었으나 사그라들었다.

11월 22일, 첫 며느리이자 웨일스 공빈이던 루이즈가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했다. 향년 36세였으며 국민들도 BBC의 서거 발표가 있을때 국왕이 고령인 서거한줄 알았으나 웨일스 공빈이 사망하자 큰 충격에 빠졌다고 한다.

11월 23일, 재위 20일, 실버 주빌리 희년 을 맞이한 국왕은 축하 연설을 할려했으나 전날 공빈의 사망으로 행사 등 모두 26일로 연기되었다.
11월 25일, 웨일스 공빈 루이즈의 장례식이 윈저성 성 조지 예배당에서 거행되었으며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루어졌고 루이즈 공빈은 엘리자베스 6세 기념관에 묻혔다. 2020년 말 이후 영국 역사상 왕세자/왕세녀의 배우자가 공석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11월 26일, 실버 주빌리 행사가 시작되었으며 간소하게 치루어졌다.
11월 26일, 2020년 엘리자베스 4세 여왕때부터 왕실이 소유한 최초이자 마지막이자 유일한 브리타니아호가 노후화되어 수리해야했으나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 윈저 2세 국왕은 퇴역을 결정했다. 퇴역 이후 에든버러 항구에 정박되었다.

골드주빌리 기념 왕실 가족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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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영국 관습들을 정리한 윈저본이 최초로 제작되었다.
11월 29일, 궁내부가 개편되어 시종/시녀로 분리되었으며 이에 여파로 시종장관이던 유에 경이 사퇴했다.
12월 1일, 훈장과 기사단 개혁이 이루어지며 외국인도 훈장을 받을수 있게 규정이 변경되었다.
12월 3일, 재위 30일 골드 주빌리 를 맞이한 국왕은 나무 심기를 시작으로 여러 행사에 참여하였다.

Royal Arms of the United Kingdom (Scotland).svg 양위와 남은 여생

"폐하께서 양위를 결정하셨으며.."
— 루이스 BBC 기자

12월 4일, 곡갱이 살인마사건 4주년을 추모하였으며 그날 밤 갑작스럽게 양위를 발표하였다. 양위는 영국 역사상 최초 이다. 양위는 총리인 테레사 메이가 요청하였으며 양위 사유는 고령으로 인한 직무수행 불가 및 정부의 제청이 이유이다. 생전퇴위를 함에 따라 이후 윈저 공작 작위를 받았으며 왕위는 웨일스 공 에드워드 5세에게 넘어갔다. 또한 스티아나 왕비왕대비 칭호를 받았고 앞으로 호칭은 윈저 2세 국왕폐하가 아닌 윈저 공작 조지 전하 로 불러질 것이고 스티아나 왕비 왕대비와 함께 켄싱턴궁에서 거주할 것이다.

새 국왕인 에드워드 5세는 즉위 연설을 하였다.

"국민 여러분, 요번 윈저 2세 국왕폐하의 양위로 이 자리를 갑작스럽게 받게 됐지만 국왕으로써의 책무는 충실히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 우리는 새 시대에 도래했습니다. 그전과 다르게 큰 변화는 없을지라도 여러분들에게 왕실의 안정과 평화를 약속해 드리겠습니다. 그동안의 과오를 바로잡고 다시금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보여드릴 겁니다."
— King Edward V
양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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