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백그룹

월백그룹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1월 27일 (수) 15:25 판
월백그룹
형태 종합기업
창립자 김영식
전신 월본교통
국가 월본국
본사 소보하나 더 스카이[1]
사업 지역 월본국 국내
자회사 월백인터내셔널, 월백에어, 월백철도, 월백스포츠, 월백애드, 월백물류기업, 월백엘리베이터, 월백넷, 월백시네마

개요

월백그룹은 월본의 기업이다. 본사는 월본 소보하나시에 위치해 있다.

역사

월백그룹은 1954년 월본 소보하나시에서 작은 구멍가게에서 시작되었다. 1대 회장 김영식은 소보하나시에서 근무하던 역무원이었다. 그는 기차역에서 일을 하며, 교통 사업을 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게 되고, 1954년에 소보하나시에 작은 구멍가게를 차리게 된다.

그리고 1962년, 김영식은 물려받은 돈과 마트의 수익금을 합쳐 소보하나 철도 운영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 때, 김영식은 소보하나의 부호였던 이화주를 만나 많은 돈을 모아 1964년, 소보하나 관광철도를 개발했다. 김영식의 월본교통은 규모가 커져 소보하나 내 부유 가문으로 손꼽혔다.

한편 1965년 배구를 접해 배구 팬이 된 김영식은 1967년, 회사 내 실업 배구단을 세우기도 하였다. 1970년대부터 규모가 커진 월본교통은 월본 전역에서 철도 공사를 진행하며 인지도를 쌓았다.

1982년, 소보하나 웨일스의 팬이었던 김영식은 소보하나가 자금난에 빠지자 소보하나를 인수하였다.

이후 2002년 김영식은 노쇠화로 아들 김단서에게 회장직을 승계하고 사퇴하였다. 김단서는 공격적인 성향으로 항공까지 발을 뻗어 하늘미르와 엔도국에도 진출하였다.

이후 김단서는 금융[2]계와 인터넷에도 발을 뻗었다. 갑작스러운 확장에 월본교통은 이화그룹과 합병하게 되었다.

이화그룹은 장미그룹과도 합병해 백학그룹으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백학그룹으로 재탄생하는 과정에서 월본교통은 월본백학금융그룹으로 기업명을 변경하였다.

그러나, 청아그룹 퇴출 사태와 리산성 사태로 인해 월본백학금융그룹은 독립하여 월본백학으로 기업명을 변경하였다.

2027년 월백으로 기업명을 또 다시 변경하였다.

경영진

회장급 : 김단서(월백인터내셔널 대표이사 회장)

부회장급 : 김장서(월백인터내셔널 상무이사), 박형식(월백에어 사장), 안구훈(월백인터내셔널 부회장)

역대 회장

1대 김영식(1954~2002)

2대 김단서(2002~)

사옥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소보하나 더 스카이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계열사

위키스 상세 내용 로고.svg 자세한 내용은 월백그룹/계열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각주

  1. 소보하나 미라이시티 인근에 위치해 있다
  2. 현재는 금산분리 원칙으로 인해 폐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