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not the end. It is not even the beginning of the end. But it is, perhaps, the end of the beginning.
이 전쟁은 끝이 아니다. 끝의 시작도 아니다. 어쩌면 시작의 끝일 뿐이다.
– 윈스턴 처칠, 1942
광명의 제국우리 시대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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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서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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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獨逸國Großdeutsches Reich des Deutschen Volkes
» 개요
독일 민족의 대게르만국(Großdeutsches Reich des Deutschen Volkes), 약칭 대게르만국은 중유럽의 국가사회주의 국가이다. 뵈멘-메렌 국가보호령, 니더란데 국가판무관부 등과 국경을 맡닿고 있는 냉전의 주요국이며, 인구는 약 1억 1천만명이다. 영향권인 아인하이츠팍트의 맹주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활동중이며, 초강대국으로 불리운다. 냉전의 주축이 되며 현재는 유럽의 패권을 쥐고 있는 상황이다.정보 수정중입니다. 불편을 끼쳐 죄송합니다.
» 역사
[ 대한국의 근대화와 황권의 재정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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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혼란한 국내 정세와 외세 침탈의 위기 속에서 대한국은 조선 왕조의 한계를 벗어나 황제 중심의 절대 권력 체제를 확립하며 근대 제국으로 거듭났다. 황제는 단순한 상징적 군주가 아닌, 입법・사법・행정・군사에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국가의 최고 통치자로 군림했다. 기존의 유교적 통치질서와 천명사상은 ‘천황지정(天皇之政)’이라는 새로운 국가이념으로 재해석되어, 황제의 통치는 하늘의 명을 실천하는 절대 권위로 정당화되었다.헌정 체제는 형식적으로는 ‘준입헌군주제’를 표방하였지만, 국정을 심의하는 의회는 황제의 명에 따라 조직되고 해산되며, 국정참사원과 각부 대신은 황제의 재가 없이는 어떠한 행정 결정도 내릴 수 없었다. 대한국 헌장은 오직 황제가 반포하며, 군제・외교・경제 등의 국가 중대사는 모두 황제의 칙령에 의해 결정되었다. 이러한 체제 아래에서 대한국은 국체의 혼란 없이 근대화와 중앙집권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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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명하의 강대국 ] | |||
20세기 초, 대한국은 동아시아의 중심국으로 부상하며 황제권을 바탕으로 한 독자적 국제질서 구상을 제시하였다. 1930년대에 접어들며, 대한국은 ‘황도공영(皇道共榮)’이라는 이념 아래 아시아의 질서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이는 서양 제국주의와 일본의 군국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제시된 정치・문명 질서였으며, 대한국은 이를 실현할 맹주국으로 자임했다.공영권은 단순한 동맹이 아닌, 황제의 천명 아래 질서를 유지하는 위계적 연합체였다. 회원국은 대한국 황제의 외교 지침에 따라 국제 관계를 조정하고, 대한국은 각지에 황제의 대리인인 고등사절 및 감찰관을 파견하여 질서를 감독했다. 만주, 연해주, 동남아 일대에는 황제의 칙령으로 설치된 ‘공영국’들이 형성되었고, 이들 국가는 독자 정부를 구성하였으나 군사・외교・재정은 대한국의 지휘 하에 놓였다. 황제는 문명과 질서의 수호자로서, 외부 세계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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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아대전과 초강대국 군림 ] | |||
20세기 초, 1941년, 아시아는 거대한 전쟁의 불길에 휩싸였다. 훗날 대아대전(大亞大戰)이라 불리는 이 충돌은 대한국이 주도하던 공영권의 질서에 맞선 반공영 세력들의 최후의 저항이었다. 일본의 잔존 군벌, 중화대륙 내 임시 정부와 군벌 연합, 동남아 해방전선, 연해주의 친소세력까지 연대해 대한국에 반기를 들었고, 전쟁은 만주에서 남부 중국에 이르기까지 전 방위로 확산되었다. 대한국은 즉각적으로 전시계엄을 선포하며 국가 총동원 체제로 돌입했다. 황제는 최고사령부를 직접 지휘하며 기계화군과 국방군을 투입해 반격에 나섰고, 군수산업은 황령 직속 공영산업국의 주도 아래 전시체제로 전환되었다. 민간 영역까지 동원된 이 전쟁은 대한국의 물적・인적 자원을 한계까지 시험하는 총력전이었다.전시 초기엔 중국의 인해전술과 게릴라 전략 이용으로 인해 공세에 난항을 겪었으나, 간도 방어선에서의 대승 이후 국방군은 점차 주도권을 회복했다. 중원의 군벌 연합은 내부분열로 약화되었고, 동남아 해상전에서도 제국 해군은 해상권을 재장악하였다. 결국 1949년, 한성종결선언을 통해 전쟁은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으며, 대한국은 전후 아시아의 유일한 안정 세력으로 부상했다.종전 이후 대한국은 공영권 내부의 재편에 착수하였다. 반란 지역에는 감찰관・보호사절단을 파견하여 정치질서를 안정시키고, 새롭게 편입된 지역과는 ‘공영경제협정’을 체결해 경제적 재건을 도왔다. 이와 함께 대한국은 외부 강대국들인 대게르만국, 소비에트 연방, 미합중국과의 관계를 조심스럽게 재정립하며, 어느 진영에도 예속되지 않는 중립적 제국 외교노선을 확립하였다. 냉전이 본격화되면서, 세계는 네 개의 거대한 세력으로 갈라졌지만, 그 가운데 대한국은 제3지대의 질서 조율자로서, 단순한 지역 강국이 아닌 문명국가적 위상을 지닌 초강대국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이로써 대한국은 전후 혼란을 넘어, 근대 동아시아의 핵심축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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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냉전의 주축 ] | |||
대 아대전 이후, 대한국은 공영권을 중심으로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를 구축했다. 제국은 패전국 처벌 대신 복구와 협력을 택하며, 전후 재건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국식 근대화는 공영권 내 표준이 되었고, 황실은 자주와 질서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세계는 독일, 미국, 이탈리아, 소비에트 잔존국, 그리고 대한국을 중심으로 분할되었으나, 대한국은 어느 외교 노선도 따르지 않고 자주적 주축으로 기능했다. 여러 전략적 외교는 제국의 위신을 높였고, 공영권은 느슨한 연방처럼 제국을 중심으로 굳어졌다. 1960년대의 대한국은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자립, 군사적 자강을 모두 이룬 황제적 근대국가로 완성되었다. 제국은 더 이상 방어적인 생존 국가가 아닌, 아시아 질서의 설계자이자 세계 외교의 중심으로 부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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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영권
ㅇ~ 작성중이야~
» 주목할 점
1936년, 대한국은 공영권 세력의 맹주국으로서 아시아 질서를 주도하고 있었다. 황제가 전권을 장악한 전제군주제 국가로서, 정치 체제는 일부 자문기구와 행정의 효율화를 위해 준입헌적 요소를 도입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여전히 황궁에 집중되어 있었다. 제국헌장은 황제의 칙령에 의해 개정 가능하며, 중추원과 학사원은 입법 자문기구에 불과했다.
국외적으로는, 대한국이 주도하는 공영권(共榮圈)은 아시아의 독립국가들과 자치세력들을 결집시킨 거대한 세력권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대한국은 여러 중화민국 군벌 세력과 인도 반英 독립운동 세력, 말라야 등과 외교관계를 맺고, 여러 회의를 통해 공동 외교 및 군사 협약을 체결하였다. 이는 유럽 제국주의에 맞선 아시아 자주세력의 실질적인 연대였으며, 소련의 팽창주의 및 남진정책에 대한 가장 강력한 견제력이 되었다.
국내적으로는 황제권 강화와 근대적 행정 체계 확립이 병행되고 있었다. 황궁 직속 내각이 국가 전반을 통제하며, 지역 관리는 도찰원과 제국통감부를 통해 엄격히 운영되었다. 황실 친위군이 국가 방위를 담당하였고, 공영권 내에서는 통합방위계획에 따라 상호 방위 조약도 발효되었다.
이 해, 대한국은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여 문무의 제국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했다. 궁술, 전통 무예, 국악 공연이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체육원 소속 선수단은 강한 통제를 받으며 질서정연한 모습을 보였다.
경제적으로는, 황실 직할의 공영개발공사가 만주・연해주・동남아시아에 투자하여 경제망을 구축했고, 한성-하얼빈 철도, 해양운수국, 제국화폐통일령 등이 시행되면서 공영권 내 경제통합이 가속화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