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사국/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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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사국의 역사
平私史
고대중세근세근대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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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본주비사국
중세 본주 (중부)대화국
중세 본주 (북부)대화국

고대

삼산시대

역사서에 따르면 타핀 섬(太平島)에 상륙한 첫 사람은 사이 례산(崔䴡山)이라고 한다. 그는 중국인으로, 서기 100년 쯤의 일로 알려져 있다. 타핀 섬 중부에는 사이 례산의 증손자인 사이 류진(崔流進)이 태평국을 건국하였으며 6세기까지 남하하였다. 타핀 섬 북부에는 장 메이린(張明林)이 건국한 중산국풍 잉산(風英山)이 건국한 성산국이 확장을 하다가 충돌하였고 전쟁으로 발전했었는데 종전 후 중산국은 서남부, 성산국은 동남부로 남하하였다. 이 때 중산국과 태평국이 충돌하기 시작했고 양국 간의 전쟁이 시작되었다.[1] 이후 580년 태평국이 중산국을 멸망시켰다. 삼산사에 따르면 "중산국왕 진하이(進解)가 나와 항복하였다."라고 한다. 602년에는 성산국과 전쟁을 하여 멸망시켰다. "성산국왕 잉류(英流)는 가족들과 함께 도성을 버리고 도망쳤다. 중산왕의 도움으로 뒤를 쫓았으나 결국 잡지 못하였다."라고 삼국사에 기록되어 있다.

통일 태평국시대

삼국을 통일한 이후의 태평국을 말한다. 이 시기에 핀본 섬(平本島)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636년 김 난메이(金南明)가 군대를 이끌고 진양국[2]을 점령하였다. 이후 당나라, 백제, 신라 등의 국가와 교류하며 태평성대를 이루었다.[3]

682년 희대의 미치광이 강 수린(康秀璘)이 성주 성[4]을 불태웠다. 이 때 관군이 강 수린을 잡으러갔는데 잡지 못하였다고 한다. 관군이 강 수린의 가족이라도 잡아서 성도로 이송하였고 성왕이 강 수린의 아들 강 문잉(康文英)을 곁에 두었다고 한다.

689년 진주 성이 붕괴되자 강 문잉이 강 수린을 잡아달라고 성왕에게 요청을 하였고 왕명으로 강 수린을 잡았다. 그 때가 2년이 지난 692년이었다.

694년 성왕이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었다고 한다. 성왕은 자식이나 형제가 없었으므로 왕족들이 왕이 되려고 난리였는데 이를 잠재우기 위해서 강 문잉에게 양위한다고 발표하였다. 이 때부터 왕족과 일부 귀족이 협력하여 반란을 일으켜 혼돈의 시대가 찾아온다. 강 문잉은 손수 군대를 이끌고 반란을 진압하러 다녔고 이 때 어려운 백성들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중세

태평도사화국시대

삼국시대

각주

  1. 성산국이 몇차례 지원하기도 했다.
  2. 진양국은 진국과 양국을 중심으로 한 소국연맹체였다. 성산국 잉류 왕 일가가 망명한 곳이다.
  3. 고구려, 발해와는 왜 교류하지 않았나면 너무 멀기 때문이란다. 그래도 당나라에서 사절단과의 교류는 있었다.
  4. 성산국의 도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