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기스어 : Либералдык-алай Республикасы
러시아어 : Либерально-Киргизская Совет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영어 : Liberal Kirghiz Soviet Republic
약칭 : ЛР(키), ЛКСР, LKSR, 키르기스스탄(공화국)
개요
자유 소비에트 공화국 연방에 소속된 중앙아시아권 국가. 신소련 내 공화국들 최초로 임기 중 대통령이 세번이나 민중에 의해 집단린치[1] 당한 국가이기도 하다.
역사
저 집단린치의 역사는 튤립 혁명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1991년 독립 이후인 2005년, 튤립 혁명 당시 민중들은 아스카르 아카예프 독재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대규모 시위를 펼쳤다. 하지만 아카예프는 직위포기를 거부하며 아예 대통령실에서 아예 나오지 않았다. 결국 화가 끝까지 치밀어 오른 과격파 출신 시민 수십명이 대통령실로 쳐들어가 아스카르 아카예프를 무려 8시간 동안 두들겨팼다(!).
그 후 아스카르 아카예프는 8시간 후 시민들에 의해 끌려져나오고 시민군의 난사로 총살당한다.[2] 가까스로 민주당이 승리하고 쿠르만베크 바키예프가 당선된다. 하지만 그 또한 키르기스스탄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했고, 당시 키르기스스탄 인민국가회의[3] 조차 그에게 고개를 돌린다.
거기에 정경유착 등 부정부패 의혹이 겹치자 시민들은 다시금 민주화에 눈뜨게 된다.
2010년, 바키예프의 오른팔 로자 오툰바예바에 의해 민중 대봉기가 발생했다.[4] 하지만 그때와 마찬가지로 바키예프가 자진사퇴를 거부하고 저항을 시도하자 과격파 시민들이 연장을 들고(!) 대통령실로 쳐들어가 쥐어패고 만다.
결국 어깨가 골절되고 정강이가 분쇄골절로 개박살난 바키예프는 기어서 대통령실을 나온다. 하지만 그는 뒤통수를 한 시민에게 후려 맞았고,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아 뇌출혈로 죽게 된다.
그 후 민주적 선거로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가 당선되었다. 하지만 군사 쿠데타로 무산당할 뻔했지만 시민들의 저항이 거셌고, 이제는 군인들이 역쿠데타로 당시 쿠데타를 지휘한 장군을 두들겨 패서 죽이고 만다. 그 뒤로 군인들은 스스로 책임을 지고 감옥으로 수감되었으며, 2년 후에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다시 군인으로 복귀한다.
알마즈베크 아탐바예프는 길고 길었던 과도정부를 마치고, 2015년 7월 30일, 자유 키르기스 소비에트 공화국을 선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