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란덴부르크 문 참사

하인리히 헤스 (토론 | 기여)님의 2020년 6월 26일 (금) 20:22 판

브란덴부르크 문 참사

틀:사건 정보

브란덴부르크 문 참사

개요

헤르메스 세계관 독일연방공화국 연방정부는, 연방을 중심으로 총리의 뜻 대로 운영되고있었다. 이에 훔볼트 대학교 대학생들이 이러한 정부를 비판하며 브란덴부르크 문 앞으로 가서 시위를 일으켰다. (6.14 학생의거) 하지만 시위가 길어지고 이러한 뜻을 공감하는 시민들이 모여 시위에 합류했다. 팻말과 깃발을 들며 시위를 계속 이어갔고 18일이 되는 날엔 브란덴부르크 문 근처가 시위대로 인해 혼잡해지자 연방정부는 시위대에 해산을 권고한다. 이에 시위대는 해산을 조건으로 총리의 사임을 요구했고, 연방정부는 이를 받아드릴수없었다. 22일, 베네룩스 국왕의 독일을 방문했고 결국 14일에 시작된 학생의거는 베네룩스의 언론에 보도됬다. 이에 연방정부는 이 시위를 강경대응하기로 하고. 베를린 시내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브란덴부르크 문 쪽을 봉쇄한 후 전차와 군사를 앞세워 시위대를 향한 유혈진압이 시작된다.

학살의 시작

시위대를 향한 강경진압이 선포됬지만, 이 유혈진압은 브란덴부르크 문을 지나가던 시민과 근처 베를린 시내에 있던 시민들까지 닿았다. 무차별적으로 이어진 기관총 사격과 전차를 내세운 진압은 수많은 무고한 이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때 희생된 베를린 시민들은 820명에 다다랐다. (시위대 미포함) 해가 진 밤이 되서는 아예 베를린 시를 봉쇄하고 탈출하려는 시민들까지도 죽임을 당했다. 파일:브란덴부르크_문_사태.jpg (당시 보도된 사진)


베네룩스 문제

계엄령이 선포되기 전, 베네룩스 국왕과 경호원, 측근들 53명이 귀국일정 시간을 미루고 브란덴부르크 문을 보러갔다. 하지만 일정을 미룬 탓에 베네룩스 측이 브란덴부르크 문에 있다는 전보를 군에 전하지 못했고 결국 베네룩스 경호원 6명이 부상을 당한다. 처음에 국왕령은 독일을 탈출한 후 "독일의 중도발에 대해 강경 대응할것" 이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연방정부의 거금로비로 인해 베네룩스 내엔 입막음됬다.


결과

시위대, 시민 사망자 4,821명 부상자 519명 부상이라는 피해가 생기고 시위대의 저항 과정에서 군인 2명이 부상당했다. 독일 내에서는 시위대와 시민의 피해에 대해선 보도되지않고, 군인의 피해에 대해서만 보도됬다. 헤르메스 중앙 방송에서 6.22 참사에 대해 보도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