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당(시라비시카)

시라비시카 보수당.png
Conservatives Party of Shirabishika
한국어 명칭시라비시카 보수당
영어 명칭Conservatives Party of Shirabishika
창당일1722년 07월 3일
슬로건일어나라 보수당이여!
이념주류
진보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재정보수주의
사회자유주의[1]
사회보수주의[2]
친유럽주의
비주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좌파 생디칼리즘
스펙트럼중도좌파~우파[3]
상징색 옥색 (#00C6C6)
대표미에라 로에트[4]
부대표 [5]제크 스프링필드[6]
상원 원내대표제이미 로
사무총장예루 네게브
전국위원회 의장로네 페네치크
유럽연합 상임대표론 소프타르[7]
교육의회 교섭단체작은 보수당 (Little Conservative Party)
하원의원
426석 / 800석 (53.5%)
상원의원
163석 / 300석 (54.3%)
교육의원
189석 / 350석 (53.9%)
약칭SCP

개요

Stand up Conservative!
일어나라 보수당이여!
—  2032년 보수당의 공식 슬로건

시라비시카의 대표적인 보수정당이자 집권여당 전신은 1655년에 결성된 토리파이며 시라비시카 역사상은 물론이고 현존하는 세계의 정당중 가장 오랫동안 존속한 정당이다.

더불어 시라비시카의 사회노동당이 만든 복지체제를 이어나가면서 전후 근현대사와 마셜플랜등의 수혜로 급성장하는 북유럽의 신화를 써내려간 정당으로 시민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장기집권

시라비시카 보수당은 1차대전 이전에도 이미 40년간 장기집권을 이뤄왔지만 1945년부터 시작된 장기집권은 계파교대만 있었을뿐 2018년 로비에르 정권 취임전까지 시라비시카는 1당우위에 가까운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원내 1당은 2006년 이래 단 한번도 빼앗긴적은 없었을정도로 장기집권이 이어져왔다. 오죽하면 시민들 사이에서 대통령을 뽑는것보다 "보수당 대표"를 뽑는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이라는 우스갯 소리도 나왔을정도.

이렇게 보수당이 오랜 기간동안 집권해오고 여러 경제정책을 쌓아온 커리어가 있기 때문에 양당제가 확립된 현재까지도 야권의 실적이 적은 악재가 이어지고 있다. 시라비시카 정치와 경제는 시라비시카는 보수당 중심으로 확고한 체제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면서 계파정치로 변질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문제는 키시라 총리 시절 대타협을 구축하여 보수당 우파와 좌파간 의견을 규합하는 합동 기구를 설치하고 소냐 총리 시절 1:1 내각을 1990년대 사실상의 총리 직선제를 명문화한 "대표 프라이머리법"까지 시행하면서 국민의 의견이 수렴될수 있는 창구들이 늘어나게 되었다. 그 결과는 상당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 두개의 역사적 사건으로 보수당은 좌우 모두를 대변하는 국민정당으로 발돋움할수 있는 기반이 되었으며 이런 창구를 통해 정보를 선점하는등 정치권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등 장기집권의 기반을 다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보수당 강세의 이유

현재는 이미 지난이야기긴 하나 일당우위 정당제를 이끌었고 현재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당이지만 일각에서 "복지국가 건설","2차대전 의인정당"이라는 점만 강조했는데 의외로 그렇게 볼만한 사안은 아니다. 시라비시카 보수당은 복지국가 건설당시 주류파인 기업가들과 노동자들 서민이 많은 레지스탕스와의 반목으로 인해 초기 내각이 불안정했었고 당시 노동당에게 밀릴수 있을것이라는 우려또한 존재했었다. 하지만 이때 보수당의 신임 대표로 당선된 지아크 라브 총리가 기업가와 시민간의 대화창구인 "시민의회"를 설치하여 기업가 그리고 노조 대표간의 의견을 경청하여 양측 의견을 조정하고 신규 이슈들을 수렴하여 정책화 시키는 과정을 정립화 시킨다.

그 결과 보수당은 키시라,오리칸까지 정권연장을 단행할수 있었고 이후 총리와 대표시절에도 사회적 합의와 파트너쉽 전략들이 이어지며 현재 시라비시카 정치권과 경제는 물론 야권까지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그외에도 보수당은 집권기간동안 국민적 합의와 소통을 중시하는 정책을 추구하였고 그 결과 73년동안 집권하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유연한 실리주의

시라비시카 보수당은 다른 보수당들과 다르게 사회적 합의를 중시하고 레지스탕스와 같은 진보적인 의사를 가진 서민층을 영입시킨 역사적인 영향으로 인해 전후 보수당은 정책 어젠다에서 진보적이고 실용주의적인 면모를 자주 보여왔다. 특히 스칸디나비아권의 보편적 복지의 제정적 기반이 되는 석유펀드,고세율 고복지 그리고 제정준칙 전략과 같이 제정적 보수주의를 지향하면서도 건강보험과 무상교육 연금제도육아혜택까지 진보측이 주장하는 복지정책은 대다수 보수당 행정부에서 마련되었다.

이러한 보수당의 능통적이고 실리적인 모습에 대하여 1960년대 정치학자들은 "보수당은 캐나다 자유당과 비교하여야 한다"라는 입장을 보일정도로 보수적인 색채보단 진보적인 색채에 집중하는 모습을 띄었다. 또한 경제위기로 보수당의 정책노선에 위기가 있었을 당시에도 보수당은 전문가들과 1차적으로 초안을 작성한뒤 각계 인사들과의 대화와 토론과정을 거쳐 정책을 수정하였고 이 과정에서 진영논리는 철저하게 배제된 상태로 작성된다. 이를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하기까지 하였다. 이는 추후 비보수당 행정부가 2008년 2013년에 연이어 터진 금융위기를 타개하는데 큰 영향을 주었고 현재까지도 시라비시카 경제의 혁신안은 보수당이 주도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외에도 보수당은 정부의 복지지출 증가와 무상의료,무상교육,의료보험체계 확립,연금제 도입.개혁,노인의료지원 확대등 당대 진보의 주요 아젠다를 공격적으로 선점하고 직업학교제와 같은 실업자 구제정책을 시행하는 정책을 통해 기존 노동당의 지지층이였던 노동자 계층이 2차대전의 상은이 지워지고 의인의 업적이 잊혀진 21세기까지 드러서도 2026~2027년 1년간을 제외하면 보수당에 대한 지지를 표하고 있다.

또한 보수당 시기였던 1950년대 정당의 교육재단 설치및 학교 운영이 합법화되었고 이후 60년대부터 정치특화 학교등 교육시설을 만들어 청년등의 정치 참여를 활발하게 만들었고 각 대학에도 지부를 만들어 청년 정치인을 양성시키기 시작했다. 70년대부턴 노조 지부와 공무원 지부 설치 80년대엔 정당과 정파에 상관없이 자유로운 토론을 진행하는 보수당 정치캠프와 함께 대표가 각계 학생대표들을 만나 정기적으로 강연을 가지는 신년 강연과 3분기 강연 연말강연을 시작하고 사교클럽까지 설치시킨다. 이 결과 보수당은 지지층에만 집중하고 목소리를 지지층에 집중하는 형세와 달리 정치적 무관심층과 다양한 각 계층의 의견을 들을수 있는 창구를 형성시킴은 물론 새로운 인재 풀을 만들어 다양한 의견이 정파에 상관없이 보수당의 정책으로 반영될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냈다.

특히 전후 사회민주당이라는 분당세력을 영입시켰을때도 그들의 정책노선을 존중해주었고 심지어 시라비시카 역사상 가장 보수적이였다는 스테츠킨 제시카 조차 보수당 내부에 있는 사회주의 세력을 축출시키지 않고 노동부나 재무부의 장관으로 기용하는 행보를 보여왔을정도로 시라비시카 보수당의 포용성은 다른 정당과 비교조차 할수 없다.

외교에서는 시라비시카의 중립국화를 지향하였으나 NATO와 EU 가입이후 친서방 계열을 점진적으로 수용하였는데 이과정에서 보수당의 암흑기였던 2026년~2028년이라는 2년간 진보정당에게 정권 주도권을 빼앗겼고 2030년 대선에서 패배하기까지 하였을정도로 상은이 심했었다. 하지만 2029년 로에트 내각이 드러선 이후 친서방 노선은 공고화 되었고 외교 노선도 당내 소프타르 행정부가 지향하던 모습과 비슷했다.

요약하자면 보수당은 전후 진보적인 아젠다를 선점함은 물론 이를 직접 추진하였고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며 외교에서의 실리주의 추구등 "보수"라는 말이 무색하게 진보적인 형태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진영논리 없이 포용적이며 실리주의적이고 융통성 있는 정책 추진과 빠른 노선 변경과 같이 혁신적인 바람은 시라비시카 시민의 포용적인 지지를 이끌어냈고 결국 보수당이 펑크를 내지 않는다면 시민들이 야권에 지지를 표할 이유 자체를 소멸시켜버리는 현실을 만들어버리면서 시라비시카 정치의 주류로 자리매김하였다.

같은 성향을 지향하여 장기집권한 일본 자민당과 달리 시라비시카 보수당은 2020년대 후반부터 진보주의가 더욱 두드러지고 경쟁 계파체계와 외교적인 실리주의가 두각을 보이면서 대중들의 관심에 가까워지고 있으며 정치인들의 소통 노력도 보수당이 광범위적인 지지를 얻는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시라비시카 경제

시라비시카의 복지국가 건설과 경제발전에 대해 보수당을 빼고 설명하는것은 불가능하다. 세계적으로 4천만명 이하인 소국중에서 유일하게 20위권 이내 GDP를 보여주고 경제의 전성기를 이끈 청사진을 제공한건 보수당 행정부였고 이들의 청사진을 기반으로 시라비시카의 경제정책이 확립시키는 영향을 끼쳤고 2008년 금융위기와 1990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여당은 보수당이 주도하여 해결시키기까지 하였다.

이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2028년 경기 호재와 함께 보수당의 장기집권 체계를 확립시킨 "2040 플랜"은 공격적인 규제완화로 많은 비판과 단점을 불러왔지만 벤처기업의 활성화와 고용율 증가등 실물 경제 지표의 회복을 이끌면서 2028년이후 다시 시라비시카 보수당의 우위를 만들어버린 원인으로 평가받는다.

시라비시카 청년층이 보수당에 압도적인 지지를 표하는것 역시 보수당의 경제전략에 따른 실업율 해소가 원인으로 평가받는다.

민주적인 계파경쟁체제

시라비시카 보수당은 90년대 총리직선제 시행이후 계파정치가 더욱 활성화되었지만 국민이 개입할수 있게되어 소모적인 논쟁보단 혁신적인 안건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계파경쟁의 장점까지 얻는등 두마리 토끼를 잡게되었지만 보수당은 기존 보수세력외에도 사회자유주의 세력은 물론 사회민주주의와 민주사회주의와 같이 급진주의자들 또한 존재하는 특별한 사정으로 인해 계파들과의 독자적인 경쟁을 할경우 노선에 큰 차질이 생길수 있는만큼 2010년대부턴 계파들이 자신의 정치성향에 따라 정당안에 정당인 "크루"로 통합해있는 상황이다. 이 크루는 말 그대로 보수당 내부의 또다른 정당으로 강령과 조직 체계역시 명문화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러한 보수당 내부의 정당안에 정당은 노동당 역시 따라하였고 실제로 어느정도 실용적인 측면을 반영하여 승리를 거두기도 하였지만 원조가 실패한 부분들을 수습하지 못했고 결국 노동당은 보수당의 경쟁력에 따라잡지 못하고 만다.

주요 크루

개혁동맹

Reform Alliance
창당일2031년 1월 31일
슬로건더 나은 더 좋은 시라비시카로!
이념진보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
친유럽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사회보수주의
스펙트럼중도~중도좌파
상징색 초록색 (#00ae00)
대표미에라 로에트[8]
하원대표루네 나기사[9]
상원 대표제이미 로
사무총장로네 페네치크
유럽대표리제 토베르
하원의원
178석 / 426석 (35.2%)
상원의원
54석 / 163석 (33.1%)
교육의원
57석 / 189석 (30.1%)

자유보수당

Liberal Conservative
창당일2017년 1월 31일
슬로건시라비시카의 미래를 위해
이념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사회보수주의
친유럽주의
국민보수주의
보수자유주의
우익대중주의
스펙트럼중도우파~우파
상징색 파란색 (#00AEFF)
대표론 소프타르[10]
하원대표제크 스프링필드[11]
상원 대표루네 스이카[12]
사무총장네빌 페네치크
유럽대표킨 베라스
하원의원
97석 / 426석 (22.7%)
상원의원
55석 / 163석 (33.7%)
교육의원
21석 / 189석 (11.1%)

재건민주당

Reconstruction Democratic Party
창당일2032년 6월 21일
슬로건돌아오라 민주당이여
이념진보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사회자유주의
친유럽주의
스펙트럼중도~중도좌파
상징색 녹색 (#3DCE00)
대표세비스찬 스티야[13]
하원대표키에스 유나
상원 대표지미 로제트
사무총장한스 루케이
하원의원
42석 / 426석 (9.8%)
상원의원
14석 / 163석 (8.5%)
교육의원
17석 / 189석 (8.9%)

사회주의자

Socialist
창당일2027년 3월 24일
슬로건노동과 자본의 융합을 위하여
이념진보주의
사회자유주의
친유럽주의
사회민주주의
민주사회주의
아나키즘
유럽공산주의
스펙트럼중도좌파~극좌
상징색 사회주의 홍색 (#D10000)
대표[14]힐러리 코제라[15]
상원 대표콘라트 모비슨
사무총장론 칼슨
하원의원
54석 / 426석 (12.6%)
상원의원
13석 / 163석 (8.5%)
교육의원
0석 / 189석 (0.0%)

스칸디나비아의 자유

Freedom of Scandinavia
창당일2023년 6월 21일
슬로건순수한 시라비시카
이념보수주의
국가주의
전체주의
사회보수주의
우익대중주의
스칸디나비아 네셔널리즘
반세계화
네오 파시즘
스펙트럼우파~극우
상징색 짙은 파란색 (#002680)
대표티베라 미즈오[16]
하원 대표루마엘 카루
상원 대표제럴드 윌슨
하원의원
8석 / 426석 (1.8%)
상원의원
8석 / 163석 (4.9%)
교육의원
0석 / 189석 (0.0%)

무소속

Independent
하원의원
47석 / 426석 (10.9%)
상원의원
19석 / 163석 (11.6%)
교육의원
94석 / 189석 (49.7%)

보수당의 역사

창당

역사적으로 시라비시카 보수당의 기원으로 올라가면 30년 전쟁이후인 1649년 왕위 투쟁을 두고 싸웠던 봉건적 귀족중심,지주들이 스톡홀롬에 몰린 개혁적 자유주의적 성향의 귀족들과 젠트리들을 견제하기위해 결성한 계파인 "토리파"로 볼수있지만 공식적으로 선관위에서 인정되는건 1722년에 발표된 시라비시카 보수당회 성립문으로 현재 시라비시카 정부는 물론 선관위도 토리파를 시라비시카 보수당의 공식 전신으로 바라볼뿐 동일한 정당이라고 비교하지 않습니다.

시라비시카 보수당은 당대 경쟁자였던 시라비시카 자유당과 경쟁하면서 양당구도를 형성하였고 당시까지만 했어도 귀족중심이였던지라 자유당의 개혁정책에 밀리면서 점차 선거마다 의석을 잃어갔고 결국 나폴레옹 전쟁이후 퍼진 자유화 열풍으로 인해 1당 우위제라는 참극을 만들게 됩니다.

야당시대 2공화국

이후 시라비시카 보수당을 지탱하던 귀족들이 전부 신적강하되고 탈 봉건화가 진행되면서 보수당은 활력을 잃어갔지만 자유당은 농민이나 일부 소수자에 대한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고 보수당은 이들의 권리를 요구하며 지지층을 포괄하기 시작했는데 이때가 시라비시카 보수당의 진보화의 시점으로 이를 통해 시라비시카 보수당은 소작농과 노동자의 지지를 받기 시작했고 점진적으로 의석을 늘리기 시작했으며 이후 8월 혁명에서 보수당은 농민들과 함께 이들을 지지하고 농민들의 정치세력화를 적극적으로 협조하였으며 이후 자유당이 몰락하고 대통령 직선제에 기반한 제 3공화국이 등장하자 자유당의 정치인들은 혁명의 여파가 적었던 보수당으로 합류하게 됩니다.

제 1의 전성기

보수당은 제 3공화국 건국과 함께 자유당의 몰락세력들을 흡수하게되었고 나름대로 제 1야당이라는 위치에 올라서게 됩니다. 물론 노동조합과 소작농 중심의 농민당과 노동당의 25년 집권기간동안 집권을 하지 못했지만 이 기간동안 노동당을 견제하며 사회주의적 전략을 배제한 진보적 정책을 지지하였고 보수당은 1865년부터 40년동안 집권하면서 강력한 친기업,규제완화 정책으로 2차산업혁명 당시 전성기를 이끌게 됩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열악화 빈부격차 심화등 여러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되었고 결국 1905년 노동당에게 정권을 넘기게 됩니다.

제 2의 야당시대

1905년부터 1945년까지 노동당의 40년 집권기간동안 노동당의 탈귀족,탈 기득권 전략으로 선거구들이 조정되고 평등투표권이 보장됨에 따라 보수당의 입지는 줄어들게 되었고 빠르게 추격하는 민주당으로 인하여 보수당에도 변화가 필요했고 1920년 점진적으로 받아들이던 진보적 어젠다를 받아들여 "보수당 1940"을 발표하게됩니다. 보수당 1940으로 보수당은 그동안 자유방임주의로 인해 피해를 본 중산층을 구제해야한다는 입장아래 강력한 국가개입 사업을 주장하게되고 노동자 복지에 대해서도 어느정도 호의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에 부정적이였던 일부 수구 유권자와 기업가들은 민주당을 지지하게 되었고 이로인해 민주당은 수구정당으로 보수당은 혁신 개혁정당으로 스펙트럼이 바뀌게 되었다. 이렇게 바뀐 스펙트럼은 2003년 스테츠킨 의원이 총리가 될때까지 반세기동안 유지되었고 현재도 부분적으로 이 스펙트럼의 영향을 받은 세력들이 보수당 중진에 존재하는등 1920년대의 대변화는 아직도 시라비시카 정치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상황이다.

2차대전 의인들의 모임

2차대전 당시 시라비시카는 사회노동당 행정부의 극우화로 유대인에 대한 차별과 폭압이 시작되자 많은 유대인들은 당시 진보진영의 색채를 띄던 보수당으로 몸을 피신하거나 보수당 인사들의 도움으로 국외로 피신할수 있었다. 이때 미노 로케와 스기하라 마사코 케빈 루이스는 자신의 사비까지 털어가면서 유대인을 보호하였다. 당시 사회노동당 행정부와 나치의 직접적인 표적까지 되었음에도 보수당 대표였던 케빈 루이카의 필리버스터와 회유로 많은 유대인을 보호하여 시라비시카의 유대인사회의 절멸을 막는 공로를 세우게 된다.

이후엔 "자유대"라는 조직을 결성시켜 나치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를 공식적으로 조직한뒤 직접 교전하기까지 하는등 시라비시카의 자유화를 위해 투쟁하였다. 그 결과 1945년 사회노동당 행정부는 전후 국민의 심판을 받고 해체 수순급 패배를 감내해야했다.

2차 대전 이후부터 80년대까지

현재

지지기반

시라비시카 보수당의 주 지지기반중 43.5%는 기업가와 고소득층이며 57% 가량은 중도층으로 구성되있다.

앞서 언급한것처럼 당내 대화 루트 역시 많고 타 유럽국가들처럼 청년정치의 진출 발판 역시 낮은편이여서 청년들의 전입과 지지가 크며 고소득층 감세와 규제 완화등을 포함하므로 고소득층은 물론 중산층과 같이 소득이 보장된 계층의 지지가 큰편이다.

세대별로는 대체로 많은 세대들이 30~40%의 고정적 지지를 보내지만 청년층에선 약우세를 띄지만 노년층으로 갈수록 지지율이 높아지고 있으며 반이민 이슈로 백인과 황인등 주류인종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야권의 몰락이후 사실상 정치적 무관심층과 무슬림을 제외하면 전 계층에서 지지세가 두드러지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로에트 내각이 2032년부터 론 소프타르와 제크 스프링필드를 필두로 하는 비주류와 로에트 대표 임기가 끝나거나 중대한 문제가 발생할경우에만 불신임한다.라는 대원칙에 합의하면서 진보적이면서도 보수적인 정책을 포괄적으로 받을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버리는 바람에 당분간 전계층의 포괄적 지지는 이어질 전망이다.

역대 보수당 대표

성향

급진주의자들은 바보지만 시대가 맞는다면 현실적으로 적용시켜라
—  1865년 라피엘 대통령의 서한

북유럽 복지국가를 완성시킨 장본인이라는 호칭처럼 진보보수주의와 사회자유주의가 주류이며 일부 강경보수파(대처리즘)이 있지만 현재까지도 몇몇 대표를 제외하면 영향력이 강하지 않습니다. 이런 이념적 체계가 확립된건 1840년대 농민당(현재 노동당의 전신)이 자유화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자유당의 후신인 민주당이 몰락하자 이를 계기로 어느정도의 진보적 아젠다를 받아들여 총선에서 승리하였으며 실제로 이와 함께 다른 보수정권이 기업가 편을 들때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며 한쪽에 편향적인 결과를 내지 않았고 그 결과 노동자들에게도 지지를 받으면서도 양측의 타협안을 효과적으로 제시하게 됩니다. (단 이점은 사회노동당도 비슷했음)

그리고 타국과 달리 보수당이 평화주의를 옹호하고 중립주의를 제창하는데 이는 2차대전 당시 보수당이 제 1야당의 위치에서 유대인과 소수민족들을 구하면서도 당직자들이 본 전쟁의 참상으로 인해 평화주의가 상승하게 되었습니다.

다만 사회보수주의적인 측면 특히 소수자 권리에선 다소 보수적이다. 여성 참정권의 경우 사회노동당에 의해 일찍 발현되어 큰 반대는 없었지만 여성 권익 향상에서 68혁명전까진 가부장적인 권력구도를 유지시켜왔고 68혁명 이후에나 여성들의 육아휴직 강화와 여성정책들이 본격화되었지만 여성들의 사회진출을 가로막는 유리천장을 급진적으로 부수는것과는 거리가 매우 멀다. 오히려 보수당의 전략은 보수당이 세워왔던 전통과 대화 그리고 타협이라는 노선으로 인해 서서히 개선의 여지를 보여도 급진적이고 한쪽에 편향적인 안을 제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화를 통해 약자가 기득권을 설득시킬 루트가 존재하고 기득권 역시 이들의 차이를 극복할수 있는 평등한 출발선을 보증해주는등 양측 모두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면서 점진적이지만 진보로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가 존재한다. 하지만 공격적이고 비타협적인 노선으로 일관할경우 시라비시카 사회에서 "얀테의 법칙"에 의거하여 사라진다는걸 증명한다는것 역시 보수당이다.

68혁명의 경우 혁명을 주도한 지도부가 평화투쟁을 주도하고 보수당 행정부와도 타협을 시도하여 성공했다는 평가가 있었고 2008년 라카니오 역 점거와 99% 시위때도 당시 스테츠킨 제시카 대통령이 재가를 거부하여 논란이 되기도 하였지만 보수당 원로와의 논의를 틀어 노선 변화를 이끌어내었다. 하지만 2016년 난민위기 당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나 1960년대 공산주의자는 보수당과의 대화를 거부했고 그 결과는 대화를 주도적으로 한 기득권과 정보원의 "무력진압"의 의견으로 몰리면서 결국 그 자취를 감추거나 인권이 행동전에 비해 낮아진 결과를 초래하기까지 하였다.

  1. 보수당계열의 보수정당들은 대부분 대처리즘을 반대하며 특히 신산업 분야는 적극적인 정부개입을 지지함
  2. 주로 동성애나 성소수자에 대해 보수적인 입장을 견지한다.
  3. 시라비시카 보수당은 빅텐트 정당이라는 점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는 로에트 총리가 주도하는 연합주의,사회자유주의 세력이 주류인 상황이지만 보수당 내부에는 사회보수주의적인 론 소프타르계와 네오 나치계 심지어는 민주사회주의,사민주와 같은 좌파계열 정치 개념을 주도하는 계파또한 존재한다.
  4. 현직 총리
  5. 하원 원내대표 겸임
  6. 현직 부총리
  7. 현직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
  8. 현직 총리
  9. 현직 법무장관
  10. 현직 유럽연합 이사회 의장
  11. 현직 부총리
  12. 현직 상원의장
  13. 현직 카이사르 주지사
  14. 하원대표 겸임
  15. 현직 카이사르 주지사
  16. 현직 루코주 주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