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계 시라비시카인

판브스 (토론 | 기여)님의 2021년 7월 7일 (수) 21:19 판 (→‎역사)

개요

재패니즈 스칸디나비안(일본계 시라인)은 코레안 스칸디나비안 그리고 화교와 함께 동양계의 주축을 이루는 일본혈통의 시라비시카인이며 현재 시라비시카 전체인구의 117,89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

19세기 후반 급격한 산업화와 인구 유출로 노동력이 부족해지자 기존 노예무역에서도 시라비시카의 척박한 기후로 인해 불리한 위치를 차지하던중 연방정부는 비슷한 기후조건의 동양계에 대한 이민제한을 완화하고 대대적으로 쿨리를 들여오기 시작했으며 처음엔 저임금 노동자로 일본계도 들어오며 재패니즈 스칸디나비안의 역사가 시작된다.

처음에는 저임금 노동자로 시작했고 대우도 흑인노예와 비슷하게 시작했지만 러일전쟁이후 일본의 급성장과 일본에서의 학술이민 증가와 교류 증가로 1905년부터 일본계 쿨리에 대한 명예권 인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보수당을 중심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으며 때마침 1917년 12월 일본계를 주도로 노동봉기가 전개되고 당시 무종교인이 많았던 일본계의 인정받기위해 개종하는 노력을 하고 문화를 받아들였다.

이런 노력으로 인해 정부는 사회적 목소리를 받아들여 '1차 민권선언'을 통해 일본계를 본토인과 동일한 노동자 계급으로 대우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1918년 쌀 소동 당시 많은 일본인들이 시라비시카로 이주하였으며 인구가 늘어나자 1925년 선거법 개정과 2차 민권선언을 통해 일본인의 일본어 사용이 개종하는 조건하에 이루어졌으며 일본어도 이때부터 공용어로 지정되며 사실상 백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게된다.

이후 1920년대 대공황기와 여러 어려웠던 시기를 거친뒤 시라비시카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진 일본계 시라인들은 자신들을 재패니즈 스칸디나비안으로 부르게 되었고 재패니즈 스칸디나비안은 재계에서도 전후부터 성공한 일본인 사업가가 등장하고 정치계에선 1932년 첫 일본계 시장 '하시모토 유키오'가 나온것을 시작으로 1936년 선거에선 스기하라 마사코라는 의인적 인물이 나오는등 정치계와 재계에서의 여러 족적을 남기게된다.

전후에는 일부 평화주의 일본계 정치인 주도로 사회노동당에서 이탈한 사회민주당을 창당하여 1970년대 후반까지 보수당과 연정을 이끌었고 이후에는 1980년대에 신자유주의 열풍을 타고 4인방과 함께 큰 정치적 이익을 얻는등 사실상 시라비시카의 상류층으로 자리매김하게된다.

위치

시라비시카의 유대인과 동등한 대우를 받음은 물론 스칸디나비아 문화에 잘 적응함은 물론 적극적인 대외활동와 재계나 정계에 많이 진출해있으며 다른 아시아계에 비해 상류층이 많은편이다. 그런탓인지 80년대 론 탐피야 1세를 시작으로 총 8명의 수상과 이원정부제 시행이후의 모든 대통령을 배출할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주로 재계에선 석유화학,중공업에 포진해있으며 대표적인 기업으로는 페네치크 그룹과 스프링필드 은행이 있으며 정부의 ETV 자산 매각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재계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다만 4인방과 같은 독일계 재벌에 비하면 영향력이 적으며 사실상 일본계의 대표 대기업인 페네치크 그룹도 시가총액의 10%밖에 미치지 못하고 언론에서도 영향력 보유량 모두 4인방에게 밀린다. 그래서 주로 4인방이나 유대인의 눈치를 보는 콩라인 신세라 누구보다 4인방의 멸망을 바라고 있다.

종교

처음에는 무종교인이 많았으나 2차 민권선언이후 일본어만이라도 지키기위해 개종하였으며 현재는 루터교와 장로교가 양분하고 있는 상황이지만 1968년 68혁명으로 종교의 자유가 인정되고 21세기 신드롬으로 인해 현재는 무종교를 택하는 일본계도 많은편입니다.

정치성향

인구가 11만명정도로 약 0.5%정도 구성되어있지만 정치적 로비스트가 많고 실제 정치인으로 진출하는경우도 많은만큼 무시할수 없는 존재이다. 대부분 시라비시카 남부지역이나 수오미 헬싱키에 포진해있으며 이 지역들은 일부를 제외하면 현재까지도 보수당의 약우세 지역으로 판별되고 있다.

일본계도 연령대별로 혹은 엘리트냐 비엘리트냐를 두고도 정치성향이 갈리는데 젊은 엘리트일수록 복지축소와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보수당에 젊지만 저학력일수록 복지의 확충과 사회보장제도 강화를 지지하는 노동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고연령층에선 젊은층과 달리 교회의 영향으로 인해 엘리트,비엘리트 구분없이 보수당 성향이 강한편인데 이는 대부분이 전후세력에 사회노동당의 권위주의 정치에 저항했던 세대임과 동시에 민주당의 좌경화에 반대하여 이동한 경우가 많아 현재까지도 보수당의 주요 지지층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예외가 있는데 일본계인 제임스 소프타르처럼 준 엘리트급이 대통령이 되는경우도 존재하며 일부 저학력 일본계도 사르테야 정국시절의 안정적인 국정운영으로 보수당을 지지한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같은 일본계여도 계속전쟁과 겨울전쟁,나치의 민간인 학살등을 바라본 세대인 만큼 일본의 우경화에 대해 비판적이며 난징 대학살등 일본의 만행에 대해 반성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