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계유정난 癸酉靖難 | |
| 시기 | |
| 1453년 10월 10일 | |
| 장소 | |
| 조선 한성부 경복궁 및 인근 | |
| 원인 | |
| 단종의 사림파 탄압으로 인한 사림파의 반발 | |
| 주요 인물 | |
| 조선 조정(진압군) • 국왕 단종 • 영의정 목인덕 • 이조판서 정현서 • 사육신 | 수양대군 세력(반란군) • 종친 수양대군 [신종] • 판의금부사 장루아 • 병조판서 하원 • 대사헌 윤임 • 호조참판 이현식 • 장군 성희안 • 장군 류순정 • 서원장 홍경주 |
| 결과 | |
| 목인덕을 비롯한 훈구대신 숙청, 훈구파 정권 촉출 | |
| 영향 | |
| 사림파의 정권 장악 및 수양대군의 왕위 계승, 단종의 유배 및 사형 | |
개요
팔도가 안정되었고, 폐주가 쫒겨났으니 이보다 평화로운 날이 어디 있겠느냐? — 장루아
계유정난(癸酉靖難)은 1453년(계유년), 훗날 신종으로 즉위하는 문종의 차남 수양대군이 훈구대신들이던 목인덕 등을 살해하고 정권을 장악한 사건으로, 이후 단종 폐위로 이어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단종은 선왕이던 문종이 펼치던 사림 등용 정책을 사실상 폐기시키고, 훈구 대신들을 가까이 두었다. 특히 대표적인 훈구 대신으로 재상 목인덕을 두었는데, 목인덕을 중심으로 한 훈구 세력이 사림의 언론을 차단하고 사림을 지속적으로 탄압하자, 사림은 무력을 사용해 반정을 일으켜 수양대군인 신종을 왕위에 올렸다. 이후 사림이 집권한뒤 목인덕을 포함한 훈구 대신들이 다수 숙청되었고, 계유정난 2년 후엔 단종이 정치적 압박으로 수양대군에게 선위한뒤 상왕으로 물러났다.
하지만 문연, 김태진, 목현덕, 로즈, 권율, 박주한이라는 사육신들을 중심으로 한 단종 복위 운동이 전개되자 장루아의 건의하에 신종은 싹을 뿌리 뽑기 위해 사육신 다수를 제거하고, 상왕이던 단종과 왕대비 정순왕후 송씨를 폐위시켜 처형하였다. 단종이 처형되고 종친이 없자 단종 복위 운동은 자연스럽게 좌절되었고, 계유 정난에 참여했었던 하원이 뒤늦게 후회하며 바로 잡기 위해 역모를 모의했으나 다른 반정 세력들의 고발로 사전에 발각되며 처형되었다.
결국 신종은 장루아의 보호하에 안정적인 재위를 하였고, 예종을 거쳐 덕종때가 되서야 장루아의 신원이 박탈되고, 단종의 명예가 회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