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교황수위권(敎皇首位權, Primatus Romani Pontificis)은 로마의 주교가 전 세계 그리스도교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으로서 개인 인격을 통해 실질적으로 주교단을 영도할 수 있다는 가톨릭의 교리이다.
교황은 사도들의 으뜸인 베드로의 후계자이기에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단에서 으뜸이고, 로마 주교좌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오로의 순교로 축성된 성좌이기에 전체 교회의 수장좌라는 것. 그리스도교의 종파별로 입장이 매우 첨예하게 다르다. 정교회는 형식적으로나마 공식적인 첫 번째 주교로 인정하는 반면, 절대 다수의 개신교 교단에서는 교리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스도교의 교파별 입장
가톨릭의 입장
가톨릭 교회는 교황수위권에 대해 이미 교리서에서부터 확고한 입장을 드러낸다.
| 182. 교황의 사명은 무엇인가? 로마의 주교이며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은, 교회 일치의 영구적이고 가시적인 근원이며 토대이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주교단의 으뜸이고, 온 교회의 목자로서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대로 교회 전체에 대하여 완전하고 직접적이며 보편적인 최고의 권한을 가진다. 183. 주교단의 임무는 무엇인가? 주교단은 교황과 더불어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한을 행사하는데, 교황 없이는 그 권한을 결코 행사하지 못한다. |
|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편》 |
| 880. 그리스도께서는 열두 사도를 세우시면서 그들을 "확고한 단체 또는 집단의 형태로 세우시고, 그들 가운데에서 선택하신 베드로를 으뜸으로 삼으셨다."[1] "주님께서 제정하신 대로, 거룩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하나의 사도단을 이루듯이, 비슷한 이치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도 서로 결합되어 있다."[2] 881. 주님께서는 당신이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신 시몬 한 사람을 당신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셨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셨으며,[3] 그를 당신의 온 양 떼의 목자로 세우셨다.[4] 그런데 "베드로에게 주어진 매고 푸는 저 임무는 그 단장과 결합되어 있는 사도단에게도 부여되어 있음이 분명하다."[5]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이러한 사목 임무는 교회의 기초에 속하는 것이다. 이 임무는 교황의 수위권 아래서 주교들을 통하여 계속되고 있다. 882. 교황은 로마 주교이며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서 "주교들의 일치는 물론 신자 대중이 이루는 일치의 영구적이고 가시적인 근원이며 토대이다."[6] 사실 "교황은 자기 임무의 힘으로 곧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온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완전한 보편 권한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7] 883. 주교단은 "그 단장인 교황과 더불어 보편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한의 주체로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단장 없이는 결코 그러하지 아니하며, 또한 그 권한은 오로지 교황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행사될 수 있다."[8] 884. "주교단은 보편 교회에 대한 권한을 보편(세계) 공의회에서 장엄한 양식으로 행사한다."[9] "베드로의 후계자가 세계 공의회로 확인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세계 공의회는 결코 인정되지 아니한다."[10] 885. "이 사도단은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하느님 백성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드러내며, 또한 한 단장 아래 모여 있으므로 그리스도 양 떼의 단일성을 드러낸다."[11] 886. "개별 주교들은 자기 개별 교회 안에서 일치의 가시적인 근원과 토대가 된다."[12] 이처럼 그들은 사제들과 부제들의 협조를 받아 "하느님의 백성 가운데에서 자기에게 맡겨진 부분에 대하여 사목 통치를 한다."[13] 그러나 각 주교들은 주교단의 일원으로서 모든 교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데,[14] 우선 "보편 교회의 한 부분인 자기 교회를 잘 다스림으로써 교회들의 몸인 신비체 전체의 선익에"[15] 이바지해야 한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16] 믿음 때문에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과 온 세계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에게 그러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891.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은 참으로 신앙 안에서 자기 형제들의 힘을 북돋워 주는 사람이므로,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고 목자이며 스승으로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확정적 행위로 선언하는 때에, 교황은 자기 임무에 따라 그 무류성을 지닌다. 교회에 약속된 무류성은 주교단이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최상 교도권을" 특별히 세계 공의회에서 "행사할 때에 주교단 안에도 내재한다."[17] 교회가 그 최상의 교도권을 통하여 어떠한 것을 "하느님에게서 계시되어 믿어야 할 것"[18]으로 제시하거나,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제시할 때에는 그러한 "결정에 신앙의 순종으로 따라야 한다."[19] 이 무류성은 "하느님 계시의 위탁이 펼쳐지는 그만큼 펼쳐진다."[20] 895. "주교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직접 행사하는 이 권한은 고유한 직접적 직권이다. 비록 그 권한의 행사가 궁극적으로 교회의 최고 권위로 다스려지고 교회와 신자들의 선익을 고려하여 일정한 한계에 제한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러하다."[21] 주교들을 교황의 대리자로만 보아서는 안 된다. 교황의 통상적이고도 직접적인 최고 권한은 주교들의 권한을 무효화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확인하고 보호한다. 주교들의 권한은 교황의 지도 아래 온 교회의 친교 안에서 행사되어야 한다. |
| 『가톨릭 교회 교리서』 880~886, 891, 895항. 원문 링크: 880, 881, 882, 883, 884, 885, 891, 895.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
| Itaque Nos traditioni a fidei Christianae exordio perceptae fideliter inhaerendo, ad Dei Salvatoris nostri gloriam, religionis Catholicae exaltationem et Christianorum populorum salutem, sacro approbante Concilio, docemus et divinitus revelatum dogma esse definimus: Romanum Pontificem, cum ex Cathedra loquitur, id est, cum omnium Christianorum Pastoris et Doctoris munere fungens, pro suprema sua Apostolica auctoritate doctrinam de fide vel moribus ab universa Ecclesia tenendam definit, per assistentiam divinam, ipsi in beato Petro promissam, ea infallibilitate pollere, qua divinus Redemptor Ecclesiam suam in definienda doctrina de fide vel moribus instructam esse voluit; ideoque eiusmodi Romani Pontificis definitiones ex sese, non autem ex consensu Ecclesiae irreformabiles esse.[22] 그렇기 때문에 본인은 그리스도 신앙 초기부터 수용된 전통을 신실하게 따르면서, 우리의 구세주이신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리고 가톨릭 종교와 그리스도교 백성들의 구원을 위하여, 거룩한 공의회의 승인 아래, 다음과 같은 것이 하느님에 의해 계시된 교의임을 가르치고 규정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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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회가 이해하는 교황권은 기본적으로, 교황이 주교단의 단장이며 실질적으로 주교단을 이끈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특히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듯, 교의를 무류적으로 가르치는 것도 가능하므로 매우 강력한 권한을 지녔음은 분명하다.
| 교황의 수위권이 아무리 확고하고 강력할지라도 각 지역 주교들의 고유한 사목 권한을 배제하거나 축소하거나 대행하지 않는다. 주교들은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사도들의 후계자가 되고, 위임된 지역 교회의 완전한 사목자가 되며, 로마 교황과 더불어 한 주교단을 이룬다. 베드로가 사도단의 단장이었던 것처럼 교황도 주교단의 단장이며, 따라서 교황을 제외한 주교단이나 주교단과 유리된 교황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교회헌장 22). 그러므로 주교단 안에서 각 주교들은 그들의 사목권을 교황으로부터 받는 것이 아니고 주교서품을 통하여 하느님으로부터 받기 때문에, 자기에게 위임된 지역 교회(교구)안에서 교황의 대리가 아니고(교회헌장 27) 고유하고 직접적이고 통상적인 사목자이며(교회헌장 23), 세계 교회에 대해서는 교황과 함께 한 주교단으로서 전반적 최고 사목권의 주체가 된다. 주교단의 단체성은 세계 공의회에서 잘 나타난다. 공의회의 결의는 단장인 교황의 동의를 받아서 교회 전제에 대한 보편적인 사목지침이 되는 것이다. 공의회 밖에서도 세계 주교들의 일치된 결정은 동의를 전제로 하여 교회의 최고 사목권의 발로로 인정된다(교회헌장 22, 주교교령 4). |
| 《가톨릭대사전》, 교황 문서 |
다만 가톨릭 신자가 교황권을 이해할 때에도 주의가 필요하다. 흔히들 가톨릭 교회의 교황 개념을 단순하게 파악하기 쉽지만, 지역 교구 안에서 주교는 교황의 대리자가 아니라 고유하고 직접적으로 통상적인 사목자이다. 가톨릭의 교계 제도가 적지 않게 '중앙집권'으로 표현되고 정교나 성공회 등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는 그렇지만, 한국인들이 '중앙집권'이라는 말에서 흔히 연상하는 동아시아식 중앙집권체제와는 다르고, 역사적으로도 상관이 없다. 그보다는, 교리서가 표현하듯 주교단의 '단장'으로 로마 '주교'인 교황을 바라봐야 가톨릭 교회 스스로의 교황권 이해에 가깝다.
다음은 위에서 발췌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에 대한 해설이다.
| 본문은 교황이 무류적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위에 언급된 조건들이 채워지면 교황은 "하느님이신 구세주께서 당신의 교회가 (…) 향유하기를 원하신 무류성을 지닌다." 다른 말로 하자면, 교황의 무류성은 교회라는 배경 안에 있는 것이지 그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다. '교회'가 의미하는 것이 명시되진 않았지만 단지 위계적인 교회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정말 우선적으로는 후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 〈인류의 빛 Lumen Genitum〉에서 나타나듯이 하느님 백성, 그리스도교 신자들이라고 보는 것이 도리에 맞다. 따라서 교황은 전체 그리스도교 백성에게 약속된 인도(guidance)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 구절을 지나치게 축소하려는 접근을 경고하면서 다음과 같이 끝내고 있다. "그러므로 로마 교황의 결정들은 교회의 동의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바뀔 수 없는 것이다" 또한 무류성은 "우리의 구세주이신 하느님의 영광, 가톨릭교회의 고양 그리고 그리스도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교황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달리 말해서 무류성은 숨은 목적, 특히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서지 교황의 개인적 만족을 위한 것이 아니다. |
| 노만 P. 탄너, 간추린 보편 공의회사, 김영식·최용감 옮김(서울: 가톨릭출판사, 2010), 152-153쪽 |
즉 교황의 무류성마저도 결국에는 교회의 무류성에서 분리되지 않는다.
| 따라서 교황의 무류성은 교회의 무류성에서 결코 분리시켜서는 안 된다. 교황의 무류성은 "교회 자체의 무류성일 뿐이다. 모든 논쟁을 종결지으려고 이를 권위 있게 해석하는 이가 절대적이고 인격적인 방식으로 소유하는 것이다."[26] 이에 관하여, 드 뤼박은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교황 무류성의 개인적 독자성을 설명한 "교회의 동의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exsese, et non ex consensu Ecclesiae)라는 유명한 정식이 어떻게 흔히 잇따른 논란으로 왜곡되었는지, 어떻게 "교황 무류성이 별개의 무류성을 의미하게 될 뻔했는지"를 설명한다.[27] 그의 올바른 해석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재정립되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동일한 정식과 동일한 가르침을 더 명확한 표현으로 강조하면서[28] 이 무류성이 온 교회에도 속하는 것으로 결정적으로 분명히 정의한다.[29] |
| 마르코 스프리치(Msgr. Marco Sprizzi),[24] 《앙리 드 뤼박: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25], BOOKK 2018, p.197-198. |
|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친교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교황의 직무가 그리스도의 뜻에 부합한다고 긍정할 때, 교회는 그 직무를 주교단 전체에 위탁된 임무와 분리시키지 않습니다. 주교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사자들"[30]입니다. 교황은 "주교단"의 일원이며, 주교들은 직무에서 그의 형제들입니다. |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하나 되게 하소서(Ut Unum Sint)」 95 |
이 부분에 대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itum)」과, 그와 관련된 "사전 설명 주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22 주님께서 제정하신 대로, 거룩한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이 하나의 사도단을 이루듯이, 비슷한 이치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사도들의 후계자인 주교들도 서로 결합되어 있다. 전 세계에 세워진 주교들이 일치와 사랑과 평화의 유대로 서로 교류하고 교황과 친교를 이루던 매우 오랜 옛 규율과[31] 공의회 모임 자체가[32] 주교단의 단체적 본질과 특성을 드러내 준다. 공의회를 통하여 더 근본적인 문제는 무엇이든 공동으로 결정하고[33] 많은 이의 의견을 숙고하여 판단한다.[34] 여러 세기의 흐름 속에서 개최된 세계 공의회들이 그 단체성을 명백히 증명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 뽑힌 이를 대사제 직무로 올리는 데에 참여하도록 여러 주교들을 초대하는 오랜 권고와 관습 자체가 이미 그 단체성을 가리키고 있다. 주교는 누구나 성사적 축성의 힘으로 또 주교단의 단장과 그 단원들과 이루는 교계적 친교로 주교단의 구성원이 된다. 그러나 주교들의 단체인 주교단은 동시에 그 단장으로서 베드로의 후계자인 교황과 더불어 이해되지 않을 때에는 권위를 가지지 못한다. 목자들이든 신자들이든 모든 이에 대한 교황의 수위권은 온전히 유지된다. 교황은 자기 임무의 힘으로 곧 그리스도의 대리이며 온 교회의 목자로서 교회에 대하여 완전한 최고의 보편 권력을 가지며 이를 언제나 자유로이 행사할 수 있다. 주교단은 교도권과 사목 통치에서 사도단을 계승할 뿐 아니라 그 안에 사도단이 계속하여 존속하며, 그 단장인 교황과 더불어 보편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력의 주체로도 존재한다. 그러나 이 단장 없이는 결코 그러하지 아니하며,[35] 또한 그 권력은 오로지 교황의 동의가 있을 때에만 행사될 수 있다. 주님께서 한 사람 시몬을 교회의 반석으로 삼으시고 교회의 열쇠를 맡기셨으며(마태 16,18-19 참조), 그를 당신의 온 양 떼의 목자로 세우셨다(요한 21,15 이하 참조). 그러나 베드로에게 주어진 매고 푸는 저 임무는(마태 16,19 참조) 그 단장과 결합되어 있는 사도단에게도 부여되었음이 분명하다(마태 18,18; 28,16-20 참조).[36] 이 사도단은 여러 사람으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하느님 백성의 다양성과 보편성을 드러내며, 또한 한 단장 아래 모여 있으므로 그리스도 양 떼의 단일성을 드러낸다. 주교단 안에서 주교들은 그 단장의 수위권과 최고 권위를 충실히 존중하면서, 교회의 유기적 조직과 화합을 끊임없이 북돋아 주시는 성령에 따라, 자기 신자들은 물론 온 교회의 선익을 위하여 고유한 권력을 행사한다. 이 주교단이 지닌, 보편 교회에 대한 최고 권력은 세계 공의회에서 장엄한 양식으로 행사된다. 그러나 베드로의 후계자가 세계 공의회로 확인하거나 적어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세계 공의회는 결코 인정되지 아니한다. 세계 공의회를 소집하고 주재하며 확인하는 것은 교황의 특권이다.[37] 전 세계에 살고 있는 주교들은 교황과 함께 그 동일한 합의체적 권력을 행사할 수 있으나, 그것이 진정한 합의체적 행동이 되려면, 주교단의 단장이 주교들에게 합의체적 행동을 요청하거나 적어도 흩어져 있는 주교들의 일치된 행동을 승인하거나 자유로이 수락하여야 한다. 25. (…) 각각의 주교들이 무류성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니지만, 전 세계에 흩어져 있으면서도 상호간에 또 베드로의 후계자와 친교의 유대를 보전하면서 신앙과 도덕의 사항들을 유권적으로 가르치는 주교들이 하나의 의견을 확정적으로 고수하여야 할 것으로 합의하는 때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오류 없이 선포하는 것이다.[38] 그것은 이제 주교들이 세계 공의회에 모여서 보편 교회를 위하여 신앙과 도덕의 스승들이 되고 재판관들이 될 때에는 더욱 명백해지므로, 그들의 결정에 신앙의 순종으로 따라야 한다.[39] (…) 주교단의 단장인 교황은 참으로 신앙 안에서 자기 형제들의 힘을 북돋워 주는 사람이므로(루카 22,32 참조), 모든 그리스도인의 최고 목자이며 스승으로서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확정적 행위로 선언하는 때에, 교황은 자기 임무에 따라 그 무류성을 지닌다.[40] 그러므로 교황의 결정은 교회의 동의 때문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 마땅히 바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것은 복된 베드로 안에서 교황에게 약속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선포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 결정은 결코 다른 누구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고 다른 판단을 요구하는 어떠한 상소도 허용되지 않는다. 그러할 때에 교황은 한 개인으로서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바로 교회 자체의 무류성의 은사를 특별히 지니고 있는 보편 교회의 최고 스승으로서 가톨릭 신앙의 교리를 설명하고 옹호하는 것이다.[41] 교회에 약속된 무류성은 주교단이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최고 교도권을 행사할 때에 주교단 안에도 내재한다. 이러한 결정에 대하여 교회의 동의가 결코 없을 수 없다. 똑같은 성령의 활동으로 그리스도의 모든 양 떼가 신앙의 일치 안에서 보전되고 진보하기 때문이다.[42] |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 |
| 사전 설명 주석 위원회는 수정안들의 심의에 다음과 같은 일반적인 견해들을 전제하기로 결정하였다. 1. 단체는 엄밀한 법률적 의미로 이해되지 않는다. 곧 자기 권한을 자신의 단장에게 위임한 평등한 사람들의 모임이 아니라 그 조직과 권위가 계시로부터 말미암아야 하는 확고한 집단의 의미로 이해된다. 그 때문에 수정안 12에 대한 답변에서 열두 사도들에 대하여 주님께서 그들을 ‘확고한 단체 또는 집단의 형태로’ 세우셨다고 분명하게 언급되었다. 수정안 53c도 참조. 같은 이유로 도처에서 주교단에 단 또는 집단이라는 용어들이 관련되어 사용된다. 한편으로 베드로와 사도들, 또 다른 한편으로 교황과 주교들 사이의 동형(同形)은 사도들의 특권이 그 후계자들에게 전수된다는 의미도 아니고 또 분명하거니와 단체의 단장과 구성원들 사이의 평등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첫째 관계(베드로-사도들)와 둘째 관계(교황-주교들) 사이의 균형성만을 함축하고 있다. 따라서 위원회는 제22항에서 '동일한'이 아니라 '비슷한' 이치로 쓰도록 결정하였다. 수정안 57 참조. 2. 누구나 주교 서품의 힘으로 그리고 주교'단'의 단장과 그 단원들과 이루는 교계적 친교로 주교단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제22항 1의 끝 참조. 서품 안에서 거룩한 임무로의 존재론적 참여가 주어지는데, 이는 의심의 여지 없이 성전과 전례적 전통에도 있다. ‘임무’라는 용어가 ‘권한’ 대신 의도적으로 쓰이고 있는데,왜냐하면 후자는 권력의 자유로운 행사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권력의 자유로운 행사가 주어지기 위해서는 교계의 권위를 통하여 교회법적 또는 법률적 결졍이 추가되어야 한다. 그러한 권한의 규정은 특별한 직무의 부여나 수하의 지정으로 이루어질 수 있으며, 또한 최고 권위가 승인한 규범에 따라 주어진다. 이러한 종류의 다른 규범은 사안의 본질상 요구되는 것인데, 왜냐하면 이것들은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교계적으로 협력하는 여러 주체들이 수행해야 할 임무들에 관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친교"는, 이를테면 법으로 성문화되기 전에, 교회의 생활 속에서 시대 상황에 따라 적용되어 온 것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교회의 으뜸과 그 구성원의 교계적 친교가 요구된다고 명확히 언급된다. 친교는 고대 교회에서 (오늘날에도 특히 동방에서처럼) 크게 존중되는 개념이다. 그것은 막연한 어떤 감정이 아니라, 법률적 형식을 요구하는 동시에 사랑으로 살아가는 유기체적 실재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위원회는 거의 만장일치로 ‘교계적 친교 안에서’로 써야 한다고 결정하였다. 수정안 40과 제24항 아래에서 교회법적 임명에 관하여 말하는 것도 참조. 주교들의 재치권에 관한 최근 교황들의 문서들은 이 필요한 권력 결정에 대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3. 단장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주교단은 ‘마찬가지로 보편 교회에 대한 최고요 충만한 권한의 주체로서 존재한다.’고 언급된다. 교황의 충만한 권한이 위험에 놓이지 않기 위해서는 이 진술이 반드시 받아들여져야 한다. 주교단은 주교단 안에서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또 보편 교회의 목자로서 자신의 임무를 온전히 보존하는 단장과 필연적으로 언제나 함께 이해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교황과 집단으로 여겨지는 주교들이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혼자 있는 교황과 주교들이 함께 있는 교황이 구별되는 것이다. 실로 교황은 주교단의 단장이므로 교황 홀로 어느 모로도 주교들의 소관이 아닌 어떤 일들, 예컨대 주교단을 소집하고 지도하고 행동 규범을 승인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있다. 수정안 81 참조. 그리스도의 양 떼 전체를 돌보는 일이 교황에게 맡겨져 있으므로,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변천하는 교회의 필요에 따라 개인적인 방식으로든 단체적인 방식으로든 이 사목의 실행에 알맞은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교황의 판단에 달려 있다. 교황은 교회의 선익을 고려하여 자기 재량에 따라 단체적 사목 수행을 조정하고 증진하고 승인하는 것이다. 4. 교황은 교회의 최고 목자로서 자신의 직무가 요구하는 대로 언제나 자기 뜻대로 자신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주교단은 언제나 존속되지만, 교회의 전통이 확증하듯이 항상 엄밀하게 단체적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달리 말하면 주교단은 언제나 '충만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간격을 두고서만, 그리고 단장의 동의가 없지 않을 때에만 엄밀한 단체적 행위를 한다. 그리고 ‘단장이 동의할 때에만’이라고 하지만, 이를 마치 외부의 다른 사람에게 예속되는 것처럼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동의'라는 용어는 그와 반대로 단장과 구성원 사이의 친교를 상기시켜 주며, 단장에게 고유한 행위의 필연성을 함축하고 있다. 그 사실은 제22항의 2에서 명백히 강조되고 또 그 말미에서 설명되고 있다. ‘없지 않을 때’라는 부정적 표현은 모든 경우를 포괄한다. 그러므로 최고 권위로 승인된 규범이 언제나 준수되어야 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수정안 84 참조. 이 모든 것들이 주교들과 그 단장인 교황의 결합에 관하여 말하는 것이지, 결코 교황으로부터 독립된 주교들의 행동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 경우에 만약 단장의 행동이 없다면 주교들은 단체로서 행동할 수 없는데, 이는 '단체'의 개념에서도 드러난다. 교황과 모든 주교의 이러한 교계적 친교는 전통 안에서 확실히 관례적인 것이다. * 주의. 교계적 친교가 없으면 교회법적-법률적 측면과 구별되는 성사적-존재론적 직무가 수행될 수 없다. 그러나 위원회는 ‘합법성’과 ‘유효성’에 관한 문제에는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이 문제들, 특별히 갈라진 동방 교회에서 실제로 행사되고 있으며 그 해석에 대한 여러 가지 의견이 있는 권한과 관련된 문제에 관해서는 신학자들의 토론에 맡겨 둔다.[43] |
문헌들에서는 일관적으로 교황의 권한을 언급하지만, 또한 일관적으로 교황을 주교단의 단장으로 이해하고 있다. 따라서 "주교단은 (…) 보편 교회에 대한 완전한 최고 권력의 주체로도 존재"(〈인류의 빛〉 22)하며, "주교단은 보편 교회에 대한 권한을 보편(세계) 공의회에서 장엄한 양식으로 행사"(교리서 884)하고, "교황을 제외한 주교단이나 주교단과 유리된 교황이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것"(가톨릭대사전)이다.
가톨릭이 이해하는 교황권이 강력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으나, 가톨릭 신자가 이를 막연하게 '강력한 권한'으로 단순화해서 파악한다면 주교들의 권한을 심각하게 과소평가할 위험이 있다. 최소한, 역사적으로 상관 없는 동아시아식 군현제의 황제-지방관 관계를 교황-주교 관계에 대입해서는 안된다.
또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황 무류성 정의에 대하여 극단전으로 과장된 해석이, 극단적인 교황권 지지자와 반가톨릭주의자들 사이에서 모두 나오고 있는데, 이런 과장은 공의회 텍스트에 근거한 해석이 아니다. 유럽의 가톨릭-개신교 신학자 36명[44]이 공저한 서적인 《Neues Glaubensbuch - Der gemeinsame christliche Glaube》에서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황무류성 정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45]
| 무류성은 모든 교황 '각자'에게 주어진다. 그러나 베드로의 후계자를 교회와 분리시켜 교회 위에 앉히는 개인적인 특권은 아니다. 교황은 이를테면 교황이기 때문에 (로마의 주교 또는 서방교회의 총수이기 때문에) 무류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무류성이 있는 것은 그가 모든 신앙인들의 최고의 교사로서 이 직분의 최고권위에 의하여 (ex cathedra) 말을 할 때이다. 즉, 무류성은 직무 자체의 자격이 아니라 직무가 수행되는 특정한 행위에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황이 그런 행위를 수행할 때에는, 즉 그런 교리상의 결정올 내리고자 할 때에는 스스로 그것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또 교황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것올 증명해야 한다. 당연한 일이거니와 제 1 바티칸 공의회 전의 시기에 관해서 그런 증명을 하기란 반드시 쉬운 일은 아니다. …"가톨릭교리에 의하면 교황은 무류성이 있다"는 말은 지나치게 간단한 표현이며 그야말로 오류이다. 공의회의 문서들과 일치해서 "로마 주교에 의한 교도직의 행사는 엄밀한 조건 하에서 오류가 없다"고 해야 옳다. (…) 나아가 이런 교황의 교리결정은 교희의 신앙에 의존하게 되어 있다. 비단 교회의 신앙이 그 결정의 목적이라는 점만이 아니라 그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교의 자체가 교황으로 하여금 진리 발견을 위한 모든 인간적인 수단을 적용하도록 의무를 지우고 있다. 물론 그런 수단들의 선택에 있어서도 공의회가 교황에게 어떤 제약을 가하고자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과정에 있어서 성서와 전통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교의가 교황에게 약속하는 성령의 도움이란 〈소극적〉 의미의 (오류에서 보호된다는) 효과일 뿐이다. 교황에게 어떤 적극적 의미의 영감이 약속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하물며 새로운 계시가 약속되어 있는 것은 더욱 아니다. 가장 큰 반발을 ㅡ 당시에나 지금에나 ㅡ 사는 것은 "로마 주교의 결정이 교회의 동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자체에 의해서 철회될 수 없다"는 표현이다. 그러나 실상 이 말은 듣기처럼 그렇게 반발을 살만한 것은 아니다. 공의회는 교황의 무류적 교리결정과 교회의 신앙 사이에 아무 관계도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그런 교리 결정이야말로 교회가 증언하는 신앙의 표헌이다. 교황은 교회의 신앙에서 분리될 수 없다. 만일 그렇다면 그 자신이 교회 밖에 있는 셈이다. 〈그 자체에 의하여〉ex sese라는 말은 그러므로 교황이 임의로 신조를 제정하여 교회에 명령해도 좋다는 의미가 아니다. 다만, 일종의 의희(議會) 비준과 같은 일정한 법적 절차에 의해서 비로소 교황의 교리 결정이 철회될 수 없는 것으로 확정된다는 견해를 배제할 뿐이다. 이런 견해는 〈갈리아주의〉와 〈공의회주의〉 신학사조의 영향을 받아 실제로 존재했다(라틴어로 갈리아라고 불리는 프랑스에서 특히 강력히 대두되던 갈리아주의는 프랑스 교희의 로마로부터의 독립올 위하여 대단한 압력을 가하고 있었고, 공의회주의는 다소간에 교황보다 공의회에 우선권을 부여하려 했다). 이런 사조들은 교황 선언의 유효성을 백성의 대표자로서의 군주나 주교 또는 신도 전체의 직접 동의에 의존하게 하려고 했고, 이런 경향을 방지하기 위하여 이 말썽 많은 표현형식이 공의회의 마지막 회기에 글자 그대로 공의회 문서에 들어 가게 된 것이다. 수많은 반발과 오해의 근원이 된 이 표현을 구태여 이 문서에 넣을 필요가 있었던가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이론들이 있다. 1870년 당시 까지도 갈리아주의나 공의희주의가 공의회에서 이 표헌방식을 옹호하던 이들이 생각하던 만큼 활발했던 것은 아니다. 오늘날에는 개신교 신학자들까지도 〈교회의 동의〉consensus Ecclesiae라는, 의미가 석연치 못하여 별로 반가울 것이 없는 개념올 역사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바르게 이해하려고, 그럼으로써 〈무류적 교(도)직〉 문제에 있어서 부질없는 논쟁을 피하려고 큰 노력올 기울이고 있다.[46] 여러면에서 제1 바티칸 공의회의 표현형식들은 극단적인 〈무류성론자들〉과 중도로선을 지키 던 존경할만한 소수자들 사이에 일어난 힘겨운 싸움과 점차적인 화해의 소산이다. 공의회 후의 시대에는 그러나 이 교의의 지지자들도 반대자들도 모두가 저 나름으로 교황교도직의 무류성올 과장해서 해석하게 되었다. (…) 이런 이론들은 제1 바티칸 공의회 문서에 근거한다고 할 수는 없다. |
| Johannes Feiner - Lukas Vischer 등 공저, 《새로운 공동신앙 고백서 - 하나인 믿음》Neues Glaubensbuch - Der gemeinsame christliche Glaube, 이경우·정한교 번역, 분도출판사 1979, pp.608-611 |
지금까지의 긴 발췌에서, '교황'과 '주교단'의 권한을 명료하게 종합해서 이해하는데는 드 뤼박 추기경의 설명이 도움이 될 것이다.
| 교황이 온 교회를 "대표한다"고 말할 때에는, 그리스-로마의 정치 법률 문화에서 비롯되는 "대표자"의 개념을 쓰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대표자의 성경 개념을 언급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공동체의 "지도자"는 바로 이 직무를 위하여 받은 하느님의 선택에 힘입어 공동체를 대표하고 이른바 공동체를 "인격화하며" 자기 자신 안에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다.[47] 이는 베드로의 직무에 관하여 복음서가 가르치는 대로이다. 베드로는 "(자신을 포함하여) 열두 사도가 똑같이 받게 될 그 동일한 권한을 개인적으로 받았다. (…) 이러한 측면에서, 베드로는 최고 사도가 아니라, 사도단이 공유하는 모든 것을 그 안에 개인적으로 재통합하고 있는 사도로서 드러난다."[48]바로 이 모든 것을 통해, 우리는 드 뤼박과 함께 다음과 같이 차분하게 결론내릴 수 있다. "가톨릭 신자는 이를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시야를 넓혀 교회가 이른바 베드로 안에 온전히 요약되어 있음을 본다."[49] |
| 마르코 스프리치(Msgr. Marco Sprizzi), 《앙리 드 뤼박: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BOOKK 2018, p.216. |
즉 가톨릭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베드로는 "(자신을 포함하여) 열두 사도가 똑같이 받게 될 그 동일한 권한을 개인적으로 받았다. (…) 이러한 측면에서, 베드로는 최고 사도가 아니라, 사도단이 공유하는 모든 것을 그 안에 개인적으로 재통합하고 있는 사도로서 드러난다."
세속 국가로 비유하자면, 이렇게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은 대등하며, 대통령[50] 역시도 국민으로서는 다른 국민과 대등하다. '대통령으로서의 국민의 권한'과 '대통령이 아닌 국민의 권한'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대등한 국민들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을 대통령이 대표하는 것이다. 물론 "일반 국민의 권한과 대통령의 권한이 다르다"고 표현하여도, 그 표현은 옳은 말이며 틀린 게 아니다. 그러나 동등한 국민들로 이루어진 대한민국을 대통령이라는 한 국민이 대표하고 실질적으로 이끈다고 이해한다면, 비록 복잡하지만 대통령직을 깊이 있게 이해 가능하다. 비슷한 원리로, '베드로 사도'와 '베드로가 아닌 사도'의 권한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대등한 사도들을 베드로가 대표한다'고 여기면 가톨릭의 이해에 가까울 것이다.
정교회의 입장
| 우리가 이야기하였듯, 모든 총대주교들의 최종 공동판관은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세계 공의회이기 때문이다. |
| 니코디모스(Νικόδημος ο Αγιορείτης)[51]의 저서 피달리온(Πηδάλιον) 中 제4차 세계 공의회 결정사항 제9조에 대한 주해 |
| "정교회와 천주교회가 일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로마 교황이 교회 분리 이전 총대주교의 위치로 돌아오면 일치가 될 수 있습니다. 초대 교회에는 없었던 교황의 수위권(首位權), 교황무류성(敎皇無謬性) 문제가 해결되면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정교회는 교회 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
| 제2대 정교회 한국대교구장 암브로시오스 조그라포스(조성암)와의 인터뷰 중에서 |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시다." 라고 고백하는 모든 주교가 교회의 반석이다.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의 주교는 분명히 영예로운 자리지만, 모든 주교는 그 사도적 권리에 있어 서로 동등하고, 로마의 주교는 모든 교회에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로마의 주교가 교회의 수장이긴 하지만, 수직적인 위치에서 다른 주교들보다 높아서 수장이 아니라 수평적인 위치이기에 동등한 모든 주교를 대표하기에 수장인 것이다. 그렇기에 정교회는 이를 '명예 수위권'이라고 주로 표현한다. 그러나 정교회가 교황권을 '명예 수위권'이라 부른다고 해서, 이것이 동방 교구에 대한 로마의 실질적 권한이 없다고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정교회는 오히려 이를 인정한다.
| The bishop of Rome would be, by ancient custom, the "first" of the world’s bishops and of the regional patriarchs. His "primacy of honor" would mean, as it meant in the early Church, not simply honorific precedence but the authority to make real decisions, appropriate to the contexts in which he is acting. 로마 주교의 권한은 고대 관습이 그러했듯이 세계 주교들과 지역 총대주교들의 첫째가 되어야 한다. 그의 "명예 수위권"은 단지 존경적인 수위가 아니라 실제로 결정하는 권한을 의미한다. 이는 그가 활동하는 맥락에 고유한 것이다. -고대 교회가 의미하듯이- |
| The_North_American_Orthodox-Catholic_Theological_Consultation, 「Steps towards a Reunited Church: A Sketch of an Orthodox-Catholic Vision for the Future」, 2010-10-02, 제7항 a |
오리엔트 정교회의 입장
오리엔트 정교회도 교황수위권에 관해서 정교회와 입장이 비슷하다. 오리엔트 정교회는 로마 교황이 전체 교회의 수장이라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으며, 다만 역사적으로 주교들 가운데 손위 주교로 여겨졌을 뿐이라고 말한다. 물론 로마 교황의 무류성 또한 믿지 않는다. 오리엔트 정교회에서는 로마 교황은 물론 어느 주교도, 심지어 그들의 수장인 콥트 정교회의 알렉산드리아 총대주교조차도 전체 교회를 통치할 권위를 지닌다고 보고 있지 않다.
개신교의 입장
개신교 중에서 성공회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인정되지 않는 교리이다.[52] 절대 다수의 개신교단에서는 교황수위권에 부정적이며, 신법(神法)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점차적으로 진화한 제도일 뿐이라고 본다. 사실 이런 부정적 입장 자체가 개신교의 정체성 중 하나이니. 당연히 후술하는 마태오 복음 16장을 통한 교황권 정당화도 역사적으로 의심스럽다고 본다.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면 갈라디아서에서는 베드로에게 유다인과 관련된 특별한 지위가 부여되는 동시에 바울로에게도 이방인에 대해 비슷한 역할이 주어진다.[53]
아울러 전승에 따르면 베드로는 후계자를 로마 교회에서만 세운 것이 아니고, 아들이라 불리웠던 그의 제자 마르코는 알렉산드리아의 초대 주교가 된다. 또한 안티오키아 교회는 최초의 이방 교회로서 모든 사도가 세우다시피 했다고 전해지며, 예루살렘 교회는 사도들의 직속 교회이자 교회의 뿌리 그 자체다. 즉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를 제외한 총대주교좌들이 이러하니 천국의 열쇠를 홀로 지니는 주교좌는 없는 셈이다. 이에 대해 가톨릭 측은 초대 교회 시절부터 베드로와 바오로가 순교한 로마 교구가 베드로좌로 널리 인정되었다고 주장한다.
| 교회의 통일성을 삼위일체론적으로 확립하는 것은 단일 군주론적인 사제직을 일신론적으로 확립시키는 것보다 신학적으로 훨씬 더 타당하다.(…) 전능으로서의 하나님은 교황의 보편적이고 오류가 없는 권위에 나타나고 이 권위를 인정함으로써 경험된다. 그러나 사랑으로서의 하나님은 공동체에 나타나고 그리스도가 그들을 함께 용납한 것같이 서로가 서로를 용납하는 데서 경험된다. 단일 군주론적인 일신론은 교회를 계급제도로서 거룩한 주권으로서 확립시킨다. 삼위일체론은 교회를 "지배로부터 자유로운 사귐"으로서 형성한다. 삼위일체론의 원리는 동의의 원리를 가지고 힘의 원리를 대체시킨다. 권위와 순종 대신에 대화와 의견의 일치와 조화가 등장한다. 교회의 권위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계시의 진리를 자기 자신이 깨닫게 됨으로써 신앙하게 된다. 통일성을 보존하고 관철시키는 계급 제도 대신에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형제애가 등장한다. |
| 위르겐 몰트만, '삼위일체와 하나님의 나라', 대한기독교서회, 2017, 316p |
몰트만 등의 진보 성향 개신교 신학자들은 단일 인물로서의 교황에 의한 일치는 삼위일체에서 나타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 거주에 상응하는 사귐의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교황수위권을 비판하며, 장로제도와 노회 제도, 형제관계가 사회적 삼위일체에 가장 상응하는 조직체라고 보고 있다.[54][55]
성공회의 입장
아시리아 동방교회의 입장
성경에서의 단서
마태오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
각주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19항.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2항; 교회법 제330조 참조.
- ↑ (교리서 내 주석)마태 16,18-19 참조.
- ↑ (교리서 내 주석)요한 21,15-17 참조.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2항.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3항.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2항; 주교 교령, 2, 9항 참조.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2항; 교회법 제336조 참조.
- ↑ (교리서 내 주석)교회법 제337조 1항.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2항.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2항.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3항.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3항.
- ↑ (교리서 내 주석)주교 교령, 3항 참조.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3항.
- ↑ (교리서 내 주석)갈라 2,10 참조.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5항. 제1차 바티칸 공의회, 교의 헌장 Pastor aeternus, c. 4: DS 3074 참조.
- ↑ (교리서 내 주석)계시 헌장, 10항.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5항.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5항.
- ↑ (교리서 내 주석)교회 헌장, 27항.
- ↑ 라틴어 원문 출처: #
- ↑ 한국어 번역 출처: 『하인리히 덴칭거: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선언 편람』(이하 덴칭거로 표기) 3074항,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CBCK), 2017을 따름
- ↑ 책 출판 당시 대한민국과 몽골 주재 교황 대사 대리이자 가톨릭대학교에서 교의신학 교수.
- ↑ 원제: 《De Lubac: L'identità ecclesiale del cristiano》. 앙리 드 뤼박 추기경의 신학에 대한 책이다. 참고로 베네딕토 16세는 "교황님은 어떤 신학자를 최고로 여기나요?" 라는 질문에 "저는 개인적으로 뤼박 추기경님과 발타자르 추기경님을 꼽고 싶습니다." 라고 답하며 앙리 드 뤼박 추기경과 한스 우르스 폰 발타사르(Hans Urs von Balthasar, 1905~1988)를 평가한 바 있다(《마지막 이야기(베네딕토 16세 교황의)》, 페타 제발트 대담 및 정리, 김선태 주교 옮김, 196쪽). 가톨릭에서 드 뤼박은 "명실공히 20세기 가장 위대한 신학자"로 인정받으며, "공의회는 계시헌장에 나타난 성경과 성전의 유일한 원천, 무신론, 교회헌장, 비그리스도인 선언 등에 그의 사상을 수용했다." #1#2#3
- ↑ (책 속 주석)Meditazione sulla Chiesa(「교회에 관한 묵상」, Milano 1993, p.187.)
- ↑ (책 속 주석) Ibidem, nota n.125.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인용에 관해서는, cfr.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 「인간 존엄성」(Dignitatis Humanae) 3074.
- ↑ (책 속 주석)Cfr.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Lumen Genitum) 25.
- ↑ (책 속 주석) '교회 헌장' 12항은 실제로 다음과 같이 천명한다. "성령께 도유를 받는 신자 전체는(1요한 2,20.27 참조) 믿음에서 오류를 범할 수 없으며……." cfr. 사도좌 관보 Acta Apostolicae Sedis 57(1965), p. 16. 또한 '교회 헌장' 25항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힌다. "교회에 약속된 무류성은 주교단이 베드로의 후계자와 더불어 최고 교도권을 행사할 때에 주교단 안에도 내제한다." cfr. ibidem, p.30.
- ↑ (회칙 내 주석)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 27항.
- ↑ (문헌 내 주석)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5,24,10, 『그리스 그리스도교 저술가 총서』(GCS), 2,1, 495; SC, Bardy 편, 2, 69; 에우세비우스의 저술에 나오는 디오니시오, 「교회사」, 7,5,2, GCS 2,2, 638-639, Bardy 편, 2, 168-169 참조.
- ↑ (문헌 내 주석)옛 공의회들에 관하여: 에우세비우스, 「교회사」, 5,23-24, GCS, 2,1, 488 이하, Bardy 편, 2, 66 이하. 여러 곳; 니케아 공의회, 제5조, 「세계 공의회 결의문집」(COD), 7 참조.
- ↑ (문헌 내 주석)테르툴리아누스, 「금식」, 13, PL 2,972B; CSEL 20, 292면, 13-16행 참조.
- ↑ (문헌 내 주석) 성 치프리아노, 「서간집」, 56,3, Hartel, 3 B, 650; Bardy 편, 2, 154 참조.
- ↑ (문헌 내 주석)제1차 바티칸 공의회, 치넬리 공식 보고서, 『공의회 교령집』(Mansi), 52,1109C 참조.
- ↑ (문헌 내 주석)제1차 바티칸 공의회,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제2초안, 제4장, Mansi 53,310; 수정 초안에 대한 클로이트겐 보고서 Mansi, 53,321B-322B; 치넬리 선언 Mansi 52,1110A 참조; 또한 성 대 레오, 「설교집」, 4,3, PL 54,151A를 보라.
- ↑ (문헌 내 주석)구교회법 제222조; 제227조 참조.
- ↑ (문헌 내 주석)제1차 바티칸 공의회, 「하느님의 아드님」, 3, Dz 1792(3011); 교회에 관한 제1의안에 붙여진 주해(성 로베르토 벨라르미노의 말 인용): Mansi 51, 579C; 또한 제2헌장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수정안과 더불어 클로이트겐의 해설: Mansi 53, 313AB; 비오 9세, 교서 Tuas libenter, Dz 1683(2879) 참조.
- ↑ (문헌 내 주석)구교회법 제1322-1323조 참조.
- ↑ (문헌 내 주석)제1차 바티칸 공의회, 「영원하신 목자」, Dz 1839(3074) 참조.
- ↑ (문헌 내 주석)가서, 「제1차 바티칸 공의회 해설」, Mansi 52, 1213AC 참조.
- ↑ (문헌 내 주석)「제1차 바티칸 공의회 해설」, Mansi 52, 1214A 참조.
- ↑ 번역 출처: 《덴칭거》 제44판 4353-4359
- ↑ 가톨릭 19명, 개신교 17명
- ↑ 저술 원칙은 다음과 같다:
「그리고는 개신교와 가톨릭 신학자들에게 부탁하여 각 장章(§)마다 한분씩 기본 텍스트를 작성하게 했읍니다.그러니까 가롤릭 신학자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중의 어느 한분이 첫 원고를 써 낸 것입니다.각 장마다 그러나 또 한분씩 다른 교파의 감수자를 두어 그 초고에 대한 견지를 밝히게 했읍니다. 이런 방식으로 어느 부분의 텍스트에 대해서나 공동책임이 보장된 것입니다. 여기서 이 책의 의도를 이해하기 위하여 독자들이 특별히 알아 두어야 할 점은 이것입니다: 서로가 텍스트를 검토 · 판단함에 있어서 기준이 된 물음은, 내가 이 부분을 맡았더라도 꼭 이렇게 썼을까? ㅡ 그런 물음이 아니라, 내가 이 텍스트에 찬성올 해도 나는 역시 가톨릭이나 프로테스탄트라 할 수 있올까? ㅡ 이런 물음이었다는 것입니다.」
-Johannes Feiner - Lukas Vischer 등 공저, 《새로운 공동신앙 고백서 - 하나인 믿음》Neues Glaubensbuch - Der gemeinsame christliche Glaube, 이경우·정한교 번역, 분도출판사 1979, p.27
다음 인용문은 가톨릭의 Karl Lehmann이 초고를 저술하고 개신교의 Heinrich Ott가 감수했다. - ↑ (책 속 주석)예를 들면 H. Ott, Die Lehre des I. Vatikanischen Konzils (Basel 1963) 156ff.; w.Pannenberg, Thesen zur Theologie der Kirche (München 1970) 46f
- ↑ (책 속 주석)Cfr.Pluralismo di Chiesa o unità della Chiesa?(「보편 교회 안에 개별 교회들」), Brescia 1973, p.123. 필립스(G.Philips)는 '교회 헌장'을 주해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교황이 그의 직무에 힘입어 행동할 때, 그는 이와 동시에 온 교회와 목자단 전체를 대표한다. 그러나 그가 그의 권력을 교회 공동체나 주교들로부터 받는다고 그 누구도 결론내릴 수 없다. 교황의 권력은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cit. in ibidem.
- ↑ (책 속 주석) Ibidem, note nn.24.25. 「보편 교회 안에 개별 교회들」 각주 24에서는 참고 본문으로 마태 18,18(요한 20,23)을 인용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이미 말했듯이, 공의회의 가르침도, 특히 '교회 헌장' 22항에서는 교황이 온 교회에 대하여 "완전한 최고의 보편 권력"(plenam, supremam et universalem potestatem)을 지니고 있음을 인정한다(cfr.Acta Apostolicae Sedis(사도좌 관보) 57[1965], p.26). 이와 마찬가지로,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나 되게 하소서」 95항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가톨릭 교회는 교황의 직무가 그리스도의 뜻에 부합한다고 긍정할 때, 교회는 그 직무를 주교단 전체에 위탁된 임무와 분리시키지 않습니다. 주교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파견자들'입니다." cfr.Acta Apostolicae Sedis 87(1995), p.977.
- ↑ (책 속 주석)Meditazione sulla Chiesa(「교회에 관한 묵상」, Milano 1993, p.186. 이텔릭체 표기는 필자가 한 것이다.
- ↑ 비록 교황이 온 교회를 "대표"한다고 말할 때 그 개념이 한국 헌법의 "대표" 의미와는 다를 수 있겠지만
- ↑ 1749-1809. '성산(聖山)의 니코데모'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정교회의 교회법 주석자이다. 1955년 세계 총대주교 아티나고라스의 주도 하에 정교회에서 시성되었다.
- ↑ 전 캔터베리 대주교 로완 윌리암스는 법적 제도적 장치로서만 수위권을 이해하면 이는 곧 통제의 장치가 될 수 있다는 견해를 밝힌 바 있다.참조
- ↑ 강한수, 가톨릭대학교 대학원 신학박사 학위 논문, 「교회 안에서의 가르치는 권위와 무류성-미국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회의 교회일치 대화(1980)에 대한 신학적 배경 연구」, 2013, 227p
- ↑ 위르겐 몰트만, 위의 책, 316-317p
- ↑ 가톨릭에서는 해방신학자들의 관점이 이와 비슷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