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성

니카제국 추존 황제
경조 신황제│景祖 神皇帝
출생 미상
신원 미상지
사망 미상
신원 미상지
능묘 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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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진로 니씨(姫路 尼氏)
휘 성(成)
부모 부친 천명 성황제
모친 광명성황후
배우자 선효신황후
자녀
1남 1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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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 - 불명(? ~ ?)
장남 - 태조 태황제
(太祖 太皇帝,
BC 24 ~ 46)
묘호 경조(景祖)
시호 태천 신황제
(太天 神皇帝)
태천초현신황제
(太天初現神皇帝)

개요

니카제국의 추존왕. 니카제국을 세운 초혁황제의 아버지이며 니카제국의 태천황제이다.

어느샌가 자취를 감춘 뒤 실종되었으며 어디로 갔는지, 살아는 있는지에 관한 생사확인 조차 불가능하다. 그의 기록도 거의 존재하지 않아 행적에 대해 조사가 어려운 실정.

생애

히메지 성을 축조하다

김이 건국되기 이전, 니카족들이 룡도로 넘어와 살고 있을 당시 주나라가 쇠퇴하자 고대 히로빈 제국의 아날로그군들이 남쪽에 있던 룡도을 자주 침략하였고 이를 니성은 매우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었다.

이후 초혁황제의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김이 건국되고 그들이 룡도로 넘어오자 영향력을 넓히기 시작할 무렵, 니성을 필두로 피해자들이 왕의 앞을 가로 막으며 격쟁을 했다한다.

그 당시 내 아비를 따라 같이 있었는데, 아비가 왕의 앞을 막아서며 말하길 "북쪽의 오랑캐의 잔당들이 자주 공격을 해오는데 저희의 왕께서는 오로지 왕조의 부흥에만 집중하니 이는 주나라의 변왕이랑 다를께 없사옵니다."라고 격쟁하였고 그걸 들은 왕이 "그럼 자네의 의견은 무엇이냐?"라고 되물었다.


생전, 니연의 니성 관련 인터뷰 증언

해당 질문을 받은 니성은 오랑캐들을 막고 왕이 살 수 있는 성을 건설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이에 왕은 자신이 거주할 수 있는 침략하기 어려우면서 지대가 높아 감시하기 좋은 국성을 착공하라 명했다 전해진다.[2]

자녀를 가지다

기반을 다지던 도중 선효신황후가 초혁황제를 출산하게 된다. 니성은 이를 매우 기뻐하였고 뭐든지 잘 풀리라는 뜻에서 자식의 이름을 니연이라고 작명했다.

내가 친히 따르던 형제자매가 있었는데, 그 중 기억나는 사람이 내 누이 밖에 없어 흩어진 가족들을 다시 보는 게 소원이구나.


생전, 니연의 니성 관련 인터뷰 증언

이후 인터뷰 당시 초혁제의 말로는 형제자매가 있었으며 이들 중 누나는 확실하게 있었다며 주장했다. 그녀의 이름은 기억이 안 나지만 자신과 이름이 비슷했다고 주장하였다.

갑작스러운 실종

초혁황제가 청소년이 됐을 무렵 니성이 집을 나간 이후 갑작스럽게 실종 되었으며, 그의 아내 선효신황후는 그가 사라지고 초혁황제가 성인이 될 때까지 홀로 아이들을 돌봤다고 전해진다. 초혁황제가 15살이 될 무렵 선효신황후에게 자신의 아버지는 어디로 갔는지 물었으나 선효신황후는 "네가 나중에 크면 알게 될 거란다."라며 대답을 회피했다 한다. 이후 신이 건국되고 초혁황제가 신의 장군으로 급제하던 날 선효신황후가 별안간에서 사하며 영영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는 어디로 갔는가?

초혁황제가 노년에 황제가 되어 건국을 선언할 당시, 자신의 아버지가 어디로 갔는지, 살아 계시는지가 매우 알고 싶다며 전하였다. 이를 들은 학자들은 그가 어디로 갔는지 여러 설들을 제시하였다.

숙환설

가장 유력하게 제기되는 설이다.

내용은 대강 이러한데, 선효신황후가 오랜 지병을 앓다 별세한 지 아비의 얘기를 어린 초혁황제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고 생각하여 말을 아꼈다는 설이다. 만약 니성이 죽지 않았다면 당시 히메지 성의 건축을 지도하던 십장의 역을 맡고 있었으면서, 갑작스레 자신의 건축물을 포기하고 가족을 떠나 유랑을 택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반박하는 학자도 있는데 만일 그가 죽었다면 선효신황후가 초혁황제가 장군이 되도록 이 사실을 고하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허나 대부분의 주류 학자들은 숙환설을 정설로 치부하고 있다.

암살설

내용은 대강 이러한데, 그가 사라진 것은 사실이나 누군가에 의해 납치를 당하였거나 살해 당했다는 설이다. 실제로 신태조의 경우 신상왕 때문에 세키도리야스국의 암살자들에게 납치되어 사망했었던 사례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위와 같이 히메지 성의 건축을 지도하던 십장의 역을 맡고 있었으면서, 갑작스레 자신의 건축물을 포기하고 이후 가족들에게 아예 모습을 안 들어 냈다는 거 부터가 사망해서 못 돌아오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다. 게다가 니성의 성격을 보면 왕의 앞을 막았다 나오는데, 자신의 목숨은 걸어 대담하게 행동하였기에 그의 제안이 받아 들여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그는 싸움이 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이 이기도록 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를 안 좋게 보는 시각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것. 그렇게 분노한 누군가가 니성을 납치해 아무도 모르게 살해하여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이 이 설의 내용이다.

그러나 학자들의 반박이 매우 많은데, 애초에 그렇게 아무도 모르게 죽였다면 선효신황후가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고할 수 없었다며, 이렇게 되면 살인범의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선효신황후가 된다며 반박했다.

이혼설

선효신황후와 니성이 싸워 니성이 선효신황후를 떠났다는 설이다. 그 이유로는 선효신황후가 니성이 사라졌는데도 그렇게 슬퍼하지 않았다는 점과 나중에 말해 주겠다는 건 자신의 아비가 자기를 버렸다는 충격을 주지 않으려 했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며 주장하는 설이다.

불로불사설

니성신화에 따르면 자신의 아버지가 천명태왕으로 나오는데, 초혁황제가 자신의 아비는 신의 아들이라며 죽을리가 없다면서 지속적으로 강한 주장을 펼쳤던 것과 합쳐져 생겨난 설이다. 그의 말에 따르면 니성이 생전 영생을 살고 싶다며 죽지 않게 해주는 도구를 만들 줄 아는 자들을 만나고 말겠다 선언했었다며, 자신의 아비는 어쩌면 그들과 살고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니성신화의 기반이 된 천명신화에 따르면, 천명태왕은 사람의 범주를 벗어난 노치의 명을 받은 자이며, 북방의 이민족들에 의해 사해 노치의 일가가 분노했다 나온다. 이후 니성신화에서 약간 외람된 말이 등장하는데, 아까까지 아들이라 주장하던 니성이 노치의 명령을 받은 사람으로 등장한다. "신의 명령을 받고 신의 아들을 죽인 자들을 벌하기 위해 아들로 위장하라."라고 기록이 되어 있다. 사실상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개구라인셈.

그러나 81년 3월 13일 경 후신 역사가 태조태왕릉 무단 파묘 사건이 발생하자 약 한 달이라는 기간 동안 해당 묘소 인근의 기후가 재앙 수준으로 변하는 모습이 관측[3]되어 신화가 사실 거짓이 아닐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여담

  • 토착 종교인 제국교의 니성신화 기록에서 부친을 신태조, 모친을 분정왕후라 말하고 있다.
  • 히메지 성을 건축하는 것을 건의한 사람이며 거의 평생을 히메지 성을 짓던 사람이다.
  • 초혁황제를 가지게 된 이후 열심히 히메지시 설치에 힘을 쓰다가 어느샌가 사라지셨으며 그 이후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었는지 조차 알 수 없다.
  • 초혁황제께서 자신을 황제라 칭하며 니카제국을 건국하였다. 이후 자신의 아버지인 니성이 짓던 히메지성을 수도로 하여 니성을 경조 신황제로 추존하였다.
  • 초혁제가 니성의 얘기를 했던 것과 그가 어디로 사라졌는지 어디서 죽었는지 알 수가 없어 경신제는 죽었습니까? 라는 도시괴담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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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역대 니카제국 추존 황제


  1. ↑ 확인된 자녀가 2명이며 더 있을 확률이 높다.
  2. ↑ 이는 과거 초혁황제가 어릴적 아버지에게 직접 들었다며 거짓이 아니라 주장했다.
  3. ↑ 주변에 지속적으로 번개가 내리치며 비가 끊이지 않는 등 정상적인 마인크래프트에서 벌어질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나도 진짜 의문이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