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도황태자 端悼皇太子 | |
|---|---|
| 이름 | 福臨 (복림) |
| 성씨 | 愛新覺羅 (아이신기오로) |
| 출생 | 숭덕 ○년 7월 18일
대청국 자금성 |
| 사망 | 숭덕 ○년 7월 27일 (향년 9일)
대청국 자금성 |
| 능호 | 미정 |
| 시호 | 端悼皇太子 (단도황태자) |
| 아버지 | 청 태종 숭덕제 |
| 어머니 | 효단문황후 |
| 형제 | 이복동생 아이신기오로 부예닌 |
| 신분 | 황태자 |
개요
단도황태자(端悼皇太子, 愛新覺羅 福臨)는 대청국 "숭덕제"의 9번째 아들이자 첫 황태자이다. 황태자로 책봉되어 동궁에 올랐으나, 생후 3년 만에 갑작스럽게 붕어하였다. 훗날 황제로부터 단도황태자라는 시호를 추증받았다.
생애
탄생과 책봉
숭덕 ○년 7월 18일, 효장문황후가 황자를 출산하였다.
숭덕제는 이를 크게 기뻐하며 조서를 내려 황자 복림을 황태자로 책봉하였다.
皇子福臨,稟乾坤之正氣,承祖宗之洪休……茲特冊立皇子福臨為皇太子,正位東宮,以承宗廟,以安社稷。
이와 함께 천하에 대사면을 실시하고 백성과 함께 경사를 나누도록 하였다.
붕어
숭덕 1641년 7월 27일, 황태자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황실은 즉시 국상을 선포하였으며, 황태자의 예에 따라 장례를 거행하였다.
추시
7월 30일 황후는 황태자의 추존과 귀비 나씨의 황귀비 승봉을 함께 청하였다.
이 과정에서 태부 이중화는 절차를 뛰어넘는 추존에 반대하며 고례를 따를 것을 아뢰었다.
이후 황제는 복림에게 端悼皇太子라는 시호를 내렸다.
성격
실록에는 황태자가 매우 어린 나이에 사망하였기 때문에 자세한 행적은 많지 않다.
후대 기록에서는 예법과 효행에 다소 부족한 점이 있었으며, 어린 나이답게 궁중에서 작은 분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러나 적장자로서 황실의 기대를 받았던 만큼, 사후에는 황태자의 예를 갖추어 예우받았다.
가족
- 아버지 : 청 태종 숭덕제
- 어머니 : 효단문황후
- 이복동생 : 아이신기오로 부예닌
시호
端悼.
- 端 : 황실의 적장자로서의 품위와 바른 근본을 기리는 뜻.
- 悼 : 어린 나이에 요절한 것을 애도한다는 뜻.
여담
- 대청국 역사상 최초로 책봉된 황태자이다.
- 생후 3년 만에 사망하여 가장 재위(?) 기간이 짧은 황태자로 기록된다.
- 그의 죽음 이후 황위 계승 문제는 다시 논의되었으며, 이후 귀비 나씨 소생인 아이신기오로 부예닌이 황실의 중심 계승자로 떠오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