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제국 제1제국 승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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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경제국 승정원
大敬帝國 承政院 / Korea Empire Royal Secretariat
설립일 의명 원년, 1936년 4월 3일
설립 근거 대경제국 제1제국 헌법
전신 대경국 삼사 홍문관 제외, 그리고 승정원은 삼사를 승정원의 전신이라 규정한 바는 없음.
해산일 의명 26년, 1961년 5월 17일
후신 대경제국 승정원
직원 수 1,350명
승정원장 4대 신이춘

개요

승정원은 대경제국 제1제국의 궁무부 기관들을 감찰하는 기관이었다.

역사

의종이 궁무부 기관들을 감찰할 목적으로 이전에 폐지됐던 승정원을 기능만 바꾸며 복설시키는게 승정원의 시작이었다. 복설된 승정원은 의종의 예상대로 철저히 감찰 기구로서의 역할을 하며 추밀원 하지만 이미 조직이 와해되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궁내부가 다시 궁무부 조직을 장악한 상태였다.궁내부를 압박한다. 허나 승정원 내부에서 감찰권을 놓고 승정원장 감찰을 기획하고 지시하는 업무를 맡는다. 중심의 좌파 승정원장의 공관이 승정원 청사의 왼쪽에 있어서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와 감찰경 감찰 실무를 맡는다. 중심의 우파 감찰경의 공관이 승정원 청사의 오른쪽에 있어서 이러한 명칭이 붙었다.가 서로 분쟁을 하다가 1954년에 좌파가 우파를 흡수하면서 감찰경직을 승정원장이 겸직해버린 것이 화근이었다. 승정원 내부 파벌이 통일된다. 그리고 승정원은 통일된 역량을 궁내부 견제에 쏟아붇기 시작한다. 그러나 얼마 안되어 의명 26년, 1961년에 제정이 폐지되면서 강제 해산당한다. 승정원의 관료들은 대경제국 복벽파로 활동하다가 이후 제정이 복고되자 대경제국 승정원의 관료로 다시 채용되기도 하였다.

구성

승정원장은 의명 22년, 1954년까지는 칙임관이었다가 이후로는 대신관으로 승격됐다. 승정원장은 핵심 궁무직 공무원들과는 다르게 대경제국 제1제국 귀족대표회의에서 후보를 건의하지 않고 그냥 황제가 직접 임명했었다. 이때문에 승정원장을 비롯해 승정원은 귀족 눈치를 안 보는 궁무부 기관이 되어버렸다. 이외 실무를 맡는 감찰경도 황제가 임명했으나 1954년 이후로는 승정원장이 감찰경을 겸하면서 임명 구조가 사라졌다.

1954년 이전에 감찰경은 실무 업무를 관장하던 직책으로 칙임관의 직위였고 명목상으로는 승정원장 예하였지만 사실상 승정원장과 줄을 나란히 하며 상호간 권력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 감찰경의 실무 업무를 집행하던 곳은 외무원으로 산하조직을 관할하는 곳이면서 실무를 집행하는 업무를 맡기도 했다. 물론 1954년에 승정원장의 파벌인 좌파로 감찰경이 주도하던 우파가 강제 흡수됨에 따라 이러한 구조도 완전히 사장되버렸다. 실무도 외무원이 아닌 영무원에서 맡게 되면서 외무원은 완전히 산하조직만 관할하게 된다.

승정원의 중앙조직 1과(정무과), 4사(훈문사, 기훈사, 기획사, 보업사), 3관(감찰관, 궁무특별감찰관, 감사관)은 '영무원'이 관할하며 산하조직 감청원, 경사신문은 '외무원'이 관할한다. 영무원장과 외무원장은 원래 별도의 임명 구조를 가졌는데 영무원장은 승정원장이 직접 임명하고 외무원장은 감찰경이 직접 임명하는 구조를 가졌었지만 이 역시 1954년 이후로는 그냥 승정원장이 영무원장과 외무원장을 모두 직접 임명하는 구조로 변혁됐다. 중앙조직과 산하조직에 대해 승정원은 각각 영무원과 외무원에 전권을 주어 자치적으로 관리하는 형식을 취했는데 이는 각 조직의 자율성을 확장시키고자 한 조치로 실제로 각 조직의 자율성이 높아져 활기 있고 효율성 높은 업무 환경이 구축되었다. 단점으로는 자율성이 높아서 어느 조직에서 무슨 검은(..) 일이 일어나도 다른 조직이나 상부 조직이 이를 모르는 경우가 생겼었다.

조직

의명 22년(1954년) 이전

  • 승정원장
    • 원장대변인
    • 원장고문원
    • 영무원장
  • 감찰경
    • 대변인
    • 자문원
    • 외무원장
  • 중앙조직
    • 영무원
      • 1과
        • 정무과
      • 4사
        • 훈문사
        • 기훈사
        • 기획사
        • 보업사
      • 3관
        • 감찰관
        • 궁무특별감찰관
        • 감사관
  • 산하조직
    • 외무원
      • 실무원
      • 감청원
      • 경사신문 승정원에서 운영하던 신문사다. 제정이 폐지되고 민영화되어 오늘날의 '삼원매일신보'로 변화됐다.

의명 22년 이후

  • 승정원장
    • 원장대변인
    • 원장고문원
  • 중앙조직
    • 영무원
      • 1과
        • 정무과
      • 4사
        • 훈문사
        • 기훈사
        • 기획사
        • 보업사
      • 3관
        • 감찰관
        • 궁무특별감찰관
        • 감사관
  • 산하조직
    • 외무원
      • 감청원
      • 경사신문

승정원장

승정원장은 승정원의 수장으로 대신관이다. 승정원장은 황제의 직접 임명을 받는 관료로 귀족이 아닌 자도 임명되었던 적이 있을 정도로 귀족의 영향력이 높은 궁무부 기관들 중에서 가장 귀족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웠던 기관이었다. 승정원장이 맡는 승정원 자체가 감찰 기관이기에 승정원장은 무조건 청렴해야 한다. 실제로 비리 1건이라도 걸리면 바로 직에서 해임되는 곳이 승정원장이었다. 이를 악용하는 이들도 있었다. 대표적으로 이분들

승정원장의 연봉은 1960년 기준으로 그당시 달러화에 맞춰 $11,600으로 현대 한화로 환산하면 1억 1000만원 정도의 연봉을 받았다고 보면 된다. 승정원장은 非귀족 출신도 임명되었던 직위였기에 다른 궁무부 기관의 수장직과는 다르게 예우가 좀 높은 편이었고 당대 가장 큰 대우를 받았던 궁내대신과 비슷한 수준의 대접을 받았다. 게다가 공관과 함께 관저도 제공됐고 별장과 공원까지 제공했다. 또한 승정원장직에서 은퇴한 경우에는 은퇴 후 10년 만기에 연금을 수령하였다.정리해보자면 추밀원장은 연봉을 더 받았고 궁내대신과 승정원장은 대우가 좋았다

업무

승정원은 궁무부 기관들에 대한 감찰 업무를 주 업무로 하는 기관이었다. 그 궁무부 기관들은 대경제국 제1제국 궁내부대경제국 제1제국 추밀원같은 핵심 기구들을 비롯하여 대경제국 제1제국 내명부, 대경제국 제1제국 내관부 등의 자잘한 시종기구들도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감찰에 관하여 정기적으로 1년 주기로 감찰을 했는데 특별한 경우에는 즉시 감찰을 할 수 있었다. 승정원에서 감찰을 통해 나온 시정해야 할 점에 대하여 승정원은 이에 대한 시정 요구를 해당 궁무부 기관에 할 수도 있었다.

기관별 업무에서 정무과는 승정원의 정무 업무를 관장했고 중앙조직의 훈문사와 기훈사는 승정원 내 규율 제정 및 개정 업무와 업무 단속 등의 승정원 질서 유지 업무를 맡았다. 기획사는 감찰 계획을 기획했고 보업사는 기획사의 자문에 응하여 이들을 조언하는 업무를 맡았다. 감사관은 기획사에서 기획한 감찰안을 획정하여 수정 후 감찰관과 궁무특별감찰관으로 이송시켰고 감찰관과 궁무특별감찰관은 감찰안에 따라 감찰 실무를 집행헀다. 산하 조직에서 감청원은 '감청'이라는 승정원의 지청들을 관할하였고 경사신문은 승정원의 관립 신문사로서 지식인 대상으로 제국의 상황을 정리한 신문을 배포하던 신문사였다.

대경국 승정원과의 차이

일단 대경국 승정원은 왕명 출납과 국왕 보좌, 그리고 국가안전보장에 관한 정보 관리를 맡았고 시종 기구의 기능을 맡았다. 그러나 후기의 즉 대경제국 제1제국 승정원은 이후에 복설되는 대경제국 승정원과 같이 궁무부 기관같은 행정기구들을 대경제국 제1제국 궁내부대경제국 제1제국 추밀원 뿐만 아니라 대경제국 제1제국 내명부같은 비주류 궁무부 기관들도 감찰의 범위에 속하여 있었다. 감찰하는 업무를 주재하는 감찰 기구의 기능으로 바뀌었다. 정리하자면 대경국 승정원은 시종 기구였고 대경제국 제1제국 승정원과 이후 복원되는 대경제국 승정원은 감찰기구이다.

기타

  • 궁무부 기관 중 유일하게 내명부에는 감찰을 실시하지 않는다.

관련문서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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