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광명공국 역사

개요

카카오톡 가상국가 대광명공국의 역사를 설명한 문서이다.

역사

건국 이전

2025년 1월 1일 보헤미아상병은 오픈채팅방에서 컨볼계과 접촉했다. 2025년 4월 27일 보헤미아상병은 모 소통방에서 화랑민주공화국에 들어가고 헌법 제정에 참여하며 가국계와는 분리된 가상 국가에 참여했다. 이 시기 화랑은 매우 활기찬 분위기였다. 곧이어 우후죽순으로 새로운 가국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이 때 보헤미아상병도 화령권에 속한 가국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

건국기

2025년 6월 5일, 대한광명연해공국이 건국되었다. 이는 화랑의 가국계 수용 2일 전이다. 처음엔 화랑권 국가들과 외교를 하며 운영할려 했지만, 보헤미아상병이 자리를 비운 이틀 사이 화랑은 가국계를 수용하며 건국 초기의 분위기는 없어졌다 가장 처음 이 국가에 들어온 것은 전향 이전의 율레였다. 아무튼, 가국에 들어오고 헌법을 만들고, 당을 만드는 등 기초적인 건국 준비를 마치고 안정을 위해 얼마동안 화령민화국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 후 시스템이 안정 된 후에 대한광명연해공국은 독립을 하게 되었고 가국으로 발돋움 할 준비를 마쳤다.

쇠퇴기

하지만 그 후로 추가적인 개혁은 없었고 더군다나 알고리즘의 선택도 받지 못한데다 내각공백사태와 홍보 부재, 적극적 외교 부재로 인해 인구가 증발하듯 사라졌다. 이 시기는 깡베어가 대한광명연해공국을 나간 시점부터 보헤미아상병의 가쉼 사이 구간이다. (참고, 지금부터 보헤미아상병의 호칭을 공작으로 통일)

암흑기

결국 공작은 9월 2일부터 9월 16일까지 2주 간 가쉼을 하였다. 방치된 대한광명연해공국은 15명에서 9명까지 추락하였으며 이는 공국 역사상 가장 암울한 시기로 평가받는다. 그 후 공작이 돌아왔을 때에는 나이트메어의 전향 약 40분 후였다.

르네상스

결국 공작은 대개혁을 시작하였다. 국명을 가독성있는 대광명공국으로 바꾸고 유명무실한 공지를 개편하고 행정시스템을 한차례 개혁했다. 이 이후 성장세가 보이기 시작했으며 멈췄던 공국은 다시 부활하기 시작했다.

발전기

결국 빠른 속도로 호황을 맞은 공국은 10월 24일까지 30명을 돌파하는데 성공했다. 놀라운 속도로 공국은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그 공의 일부는 홍보를 엄청나게 돌린 까닭도 있다.

1•2차 테러

2025년 10월 25일, 간첩 웰링턴이 공국 역사상 최초의 테러를 일으켰다. 하지만 신민들과 공작의 빠른 대처로 3일만의 모든 전력을 복구하였지만 성장세가 주춤하기 시작했다. 2025년 11월 9일 Eco의 전향으로 대광명공국은 심각한 피해를 입었다. 카카오톡이 신강 해제를 내놓기 전까지 공국은 이 신강테러로 전력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잃어버린 2개월

11월 9일부터 11월 28일동안 공국은 발전을 멈추고 다시한번 암흑기에 빠져들려 했으나, 새로 방을 파게 되면서 대광명공국은 다시금 발전을 시작했다. 2026년 여러 이벤트에 힘입어 1월 8일, 공국은 2개월만에 테러 이전의 국력을 회복하는데 성공하였다.

제2 르네상스

하지만 르네상스 대개혁에도 아직 정리를 하지 못한 공지들이 남아있었고 사업을 확장하다 방치된 기업들도 있었다. 결국 성탄절 행사날, 공작은 2차대개혁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 때 쓸모없는 공지들은 모조리 옮겨져 기록실에 들어가게 되었고 부처가 개편되었다. 대광명공국은 드디어 선진국 다운 공지 체계를 가지게 되었다.

크크다스 데모크라시

하지만 제3차 총리선거와 더불어 크크다스와 1대 법무부장관, 그리고 대한감자 간의 갈등으로 정치에 심각한 혼란이 오게 되었다. 하지만 이 시기는 사상과 문화가 꽃피우는 시기이기도 했다.

광란의 26년과 왕국선포

성탄절 행사 이후 대광명은 적극적 외교를 실시하며, 국가의 체급을 몇배로 성장시켜 건국이래 최대의 호황기에 들어서기 시작했으며 왕국을 선포하였다. 대광명국의 외교적 위상은 어느 수준을 갖추기 시작했고, 이 성장은 지속될 것이다.

대공황

청금석 총리의 방임으로 대광명국은 몰락했다. 하지만 국왕의 빠른 성명문과 기존 외교망, 국가체제 복원으로 2026년 5월 1일 기준 인구의 5할을 복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