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제국(카르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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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제국
Deutsches Kaiserreich
German Empire
독일제국 국기.pngWappen Deutsches Reich - Reichswappen (Grosses).svg
국기국장
국가 정보
수도베를린
국가하느님, 왕국과 국민을 지켜주소서
공용어독일어
국토 면적24,090㎢
시간대HST (UTC+1)
국가 연호독일력
인구1,846,798명 (독일 8년)
인구 밀도75명/㎢ (독일 8년)
통화독일 달러
정치 정보
정치 체제전제군주제, 과두제
황제카르나도 1세
제국수상Pee
의회 의장공석
최고재판소장공석
기타 정보
ISO 3166-11039 , KKQ
도메인[[.hgmame

독일제국은 중부유럽에 위치한 국가이자 서유럽[12]에 또한 포함되는 국가이다.시계 방향으로 북쪽에 덴마크, 동쪽에 폴란드, 체코, 남동쪽에 오스트리아, 남서쪽에 스위스, 프랑스, 서쪽, 북서쪽에 룩셈부르크, 벨기에, 네덜란드와 국경을 맞댄다. 그야말로 유럽의 중앙부에 위치해 있다. 수도는 베를린이다.유럽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프랑스와 함께 현 유럽연합 체제를 이끄는 국가[13][14]다. 그리고 EU의 경제를 책임지는 유로존 최대의 물주이기도 하다.경제적으로는 GDP 4위[15][16], PPP 5위, 특별인출권 유로화, 1인당 GDP 18위, 국제통화기금 투표권 4위[17], 금 보유고 2위[18], 무역량 총합 3위 # , AIIB 지분율 4위이다.[19] 국방 분야에서는 국방비 세계 8위, 군사무기 수출은 세계 5위를 하고 있다.

개요

중부 유럽에 1871년부터 현재까지 존재하는 독일인을 주축으로 한 황제국

지리

독일제국의 면적은 35만 7,022㎢로 한반도의 1.5배 정도이며 일본(37만 7,915㎢)보다 약간 작다. 세계 면적 순위를 보면 일본 바로 밑에 독일이 자리하고 있다. 국토가 유럽의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어서 접경 국가가 매우 많다. 북쪽은 덴마크와 접경하고 있으며 서쪽으로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프랑스와 접경하고 남쪽으로 스위스, 오스트리아와 접경하며 동쪽으로 폴란드, 체코까지 총 9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독일의 지형은 남고북저(南高北低)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북부 독일은 북독일 평원이라 불리는 넓고 평탄한 평야지대로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볼 수 있다.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점점 고도가 높아지는데 그 이유는 그 유명한 알프스 산맥 때문이다. 다만 독일 영토 지역의 알프스 산맥은 스위스, 이탈리아, 프랑스에 속한 곳보다는 그나마 고도가 낮은 편이라 표고도 최고 3000m가 못 된다. 독일제국의 최고봉인 추크슈피체산은 높이가 2,963m이다.

정치

강력한 중앙국가 및 전제군주제 국가이다.헌법에도 독일제국은 황제가 통치한다 한다는 조항이 있다.완벽한 전제군주제는 아니지만 입헌군주제와 전제군주제가 합체된 정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역사

의 황가인 호엔촐레른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 내의 선제후 영지인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과 폴란드 왕국 내의 프로이센 공국을 동군연합으로 차지하고 있었고, 1640년 '대선제후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즉위하면서부터 북독일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1세는 30년 전쟁의 승리를 바탕으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령과 프로이센 공작령을 통합해 프로이센 왕국을 세웠고,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는 부국강병책을 적극 추진하여 수만의 대군과 부유한 국고를 확보하였으며, 그의 아들 프리드리히 대왕은 이를 바탕으로 강력한 팽창정책을 펼쳤다. 이후 어리석고 무능한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를 거쳐 나폴레옹 전쟁의 위기를 지나 빈 체제에 접어들어서는 오스트리아와 함께 독일 연방을 양분하는 강대국으로 등극하였다.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 시대는 바야흐로 자유주의 혁명의 시대였다. 1848년 혁명에서 호엔촐레른 왕조는 전복의 위기를 겪었고, 혁명으로 성립된 독일 국민 의회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를 황제로 추대했으나, 왕권신수설을 신봉하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이를 거절하였고 결국 혁명은 유야무야 실패로 돌아간다.이후 안정을 되찾은 호엔촐레른 왕조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가 정신병에 걸려 퇴위한 후 새로운 국왕 빌헬름 1세를 맞이하게 되었다. 빌헬름 1세의 주요 관심사는 군대였다. 왕국의 전통대로 군인으로 성장해 온 그는 독일이 통일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프로이센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군제를 개혁하고 신병을 확충하려 하였다. 그러나 곧 자유주의 세력의 반대에 부딪혀 개혁은 지지부진하게 되었고, 몇 차례의 의회 해산과 재선거에도 불구하고 계속 상황은 불리해져갔다. 결국 국왕은 퇴위를 결심하였으나, 당시 국방 대신이었던 보수 성향의 '룬 장군'이 오토 폰비스마르크를 재상으로 임명하라고 건의한다. 이리하여 비스마르크는 재상에 임명되었고, 그는 첫 의회 연설에서 그 유명한 철혈 정책을 내세운다. 이후 덴마크 위기[6],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 북독일 연방 결성,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을 거쳐 최종적으로 베르사유 궁전에서의 선포식으로 독일 제국이 탄생한다.1871년 통일 이후 호엔촐레른 왕조는 독일 황제위도 겸하게 되었다. 황제인 빌헬름 1세는 재상 비스마르크를 전적으로 신임하였고, 그런 비스마르크에게 국내 정책은 외교 정책보다 덜 우선시 되었다. 소위 비스마르크 체제라고 불린 특별한 외교 관계를 통해 비스마르크는 독일의 안위를 도모하였다. "외교란 러시아와 친하게 지내는 것이다." 라고 그가 말한 것처럼, 독일은 러시아 제국과 동맹을 맺고 남쪽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도 동맹을 맺었으며 영국과도 동맹 내지 우호적 중립의 관계를 맺었다. 독일이 확장을 멈추고 유럽의 균형자로써 행동해야 이익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 비스마르크의 생각이었고, 베를린 회의는 이러한 구상에서 나온 산물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베를린 회의는 러시아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최종적으로 독일-러시아 동맹의 결렬을 불러왔다. 그러나 삼제동맹이라고 일컫어지던 독일-러시아-오스트리아 동맹은 이미 발칸 문제로 무너진 지 오래였다. 결국 비스마르크의 외교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독일의 외교는 그가 권력에서 물러난 후 갈 곳을 잃고 방황하며 한때 프랑스를 국제 왕따로 만들었던 독일을 국제 왕따로 전락시켰고 이는 끝내 제1차 세계 대전이라는 비극을 부르게 된다.국내 문제 또한 간단하게 돌아가지만은 않았다. 비스마르크 앞에 놓인 국내 문제는 크게 세 가지, 문화 투쟁과 사회입법 그리고 관세 문제였다. 문화 투쟁(자유로운 문화를 요구하는 운동)이라 불린 가톨릭 교도들과의 전쟁은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대해 교황의 무오류를 선언하면서 불이 붙었다. 교황은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중세 이후 유럽이 이룬 업적은 악마의 행위이므로 파괴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스마르크는 교황에 맞서 국내의 교황에 반하는 가톨릭파와 손을 잡았다. 그는 국정에서 가톨릭 교회를 배제하는 법안을 발의하고 민사 사건에 교회가 개입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막았다. 그렇게 7년을 싸웠지만 관세 문제 때문에 비스마르크는 문화 투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유 무역을 원한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받던 비스마르크이지만 정치인인 그는 가톨릭당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다. 결국 관세 법안을 철회함으로써 비스마르크는 가톨릭당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한편 사회주의자들을 대하는 비스마르크는 매우 교묘했다. 1878년 황제 암살 미수가 두 번이나 발생하자 비스마르크는 이를 사회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몰고 가 결국 사회민주당을 박살내 버린다. 때로는 노동자의 권익을 증진시키는 법안, 아동 노동을 금지하는 법안을 낸 비스마르크였지만, 그에게 사회주의란 언제나 경계의 대상이었다. 그가 재상으로 있던 시절 독일에는 주요 6개의 정당이 있었다. 낡은 봉건적 이상을 품고 산업화와 기계화에 반대하던 보수당, 비스마르크의 배경인 융커(동프로이센의 지주들)들의 자유보수당, 가장 강력한 정당인 부르주아지의 국가자유당, 반군국주의, 반보수주의, 자유방임주의를 주장하던 진보당, 가톨릭교회의 중앙당, 유일한 좌파 정당인 사회민주당. 이 여섯 개의 정당이 여러 주요 쟁점들을 놓고 다투었다.그 후 황정이 잘 유지되고 있고 지금 현재까지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