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부안 특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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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난방공화국/2급 행정구역/사바주

라부안
納閩(납민) / Labuan
라부안 특별구 문장.png
• 納閩特別區 / 納閩特別區 중국어
• Daerah Khusus Labuan 마인어
• Labuan Special District 영어
라부안 특별구 지도.png
국가 난방공화국 국기.png 난방공화국
지역 보르네오 북부
상위 행정구역 사바(沙巴)
하위 행정구역 16사구
인구
GDP
행정관 아니파 빈 아만 난방대통당
부행정관 케네스 응옌 난방대통당
구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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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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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구성
라부안 전경1.jpg

개요

라부안(納閩)은 사바주의 하위 행정구역 (2급)으로, 난방공화국의 유일한 특별구이다. 일본령 보르네오 군정청 시기 난방공화국과 통합되었으며, 칼리만탄 전쟁 당시 난방공화국에 재흡수되어 특별구로 개편되었다. 역외금융센터 및 여러 관광지가 위치하고 있으며, 21세기에 이르러 경제특구로서 성장하였으며, 동남아시아의 떠오르는 금융허브로 거듭났다.

역사

15세기부터 19세기 중반까지 브루나이 술탄국의 지배 하에 있던 작은 섬에 불과하였다. 이후 라부안 조약(Treaty of Labuan)을 통해 영국에 할양되었는데, 영국은 라부안 섬의 지정학적 가치를 고려하여 해군 기지를 설립하고 차세대 싱가포르로 성장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보르네오 인근 해안의 석탄 매장지를 둘러싼 갈등이 일어났고, 1890년에 영국령 북보르네오에 넘겨졌다.

2차 대전 중, 일본군은 영국령 북보르네오를 점령하고 난방공화국 일본군 점령지와 통합하여 영국령 보르네오 군정청을 설치하였다. 1942년, 일본은 마에다 도시나리 후작의 이름을 따와 이 섬을 마에다섬(前田島)으로 개칭한다. 일본군의 패전 이후, 보르네오 영국군청으로 귀속된 라부안 섬은 북보르네오 왕령 식민지에 합류했지만, 여러 정치적 불안정과 보르네오 북부의 전쟁에 휘말려 발전이 더뎌졌다. 이후, 칼리만탄 전쟁으로 난방공화국하손명 정부가 민주 사라왁 정부사라왁 지역에 설치하면서, 사바주 또한 사라왁 정부에 흡수되었다. 칼리만탄 전쟁은 결국 난방공화국의 승리로 마무리되었고, 보르네오 군정청 시기의 영토를 모두 수복한 난방공화국 정부는 사바 지역과 사라왁을 각각 들로 개편하였다.

경제 및 개발

역사적인 맥락과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여, 오도웅 대당총장은 라부안을 에서 특별구로 개편하고 경제특구로 육성하고자 했다. 라부안의 초기 경제는 방대한 석유 및 가스 자원을 바탕으로 한 화학산업과 국제 투자 및 금융 서비스를 바탕으로 한 수출 중심 경제로 급부상하였다. 라부안의 대외 무역 총가치는 2001년이 6년 전인 1995년에 비해 3.7배나 상승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2009년, LIFC의 설립으로 역외 금융 허브로 거듭나며 해외 투자자 및 관광객을 겨냥한 정부주도의 개혁적인 경제 정책의 도입지로 자리잡았다. 현재도 성장률은 3%~5%대를 넘나들며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으며, 2028년의 정부 주도 계획도시 조성 사업도 성공적인 결과를 보이면서 난방공화국 내부에서는 '동남아의 홍콩', '제2의 싱가포르'등의 별칭이 붙기도 하였다. 최근에는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높아졌고, 주로 금융 및 보험, 부동산 및 비즈니스 서비스가 성행하고 있다.

관광

라부안 섬에는 칼리만탄 전쟁, 제2차 세계대전의 다양한 전쟁 무덤과 전사자를 기리는 기념물이 자리잡고 있다. 격변의 시대를 맞이했던 작은 섬에 불과했던 것이 고도의 성장세를 기록하며 난방공화국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한 만큼, 그 역사적 가치와 여러 발자취는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을 끌었다.

교육

라부안에는 여러 중등 교육기관과 2개의 국제학교(라부안 국제학교, 충명 국제학교), 5개의 대학교(라부안 대학교, 빅토리아 대학교, 쿠봉 대학교, 라부안 예술대학교, 라부안 과학기술원)가 존재한다. 정도규 대당총장은 아시아의 여러 경제 대국의 시스템을 모방하여 여러 교육, 과학 기술 관련 혁신을 주도하였는데, 라부안 과학기술원은 홍콩의 난양이공대학과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선례를 바탕으로 국가 주도 과학 기술 산업 및 과학 인재를 양성하고자 야심차게 출범한 대학이다.

사회

정치적으로 부유층과 빈곤층의 빈부 갈등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자리잡았다. 고도의 성장을 이룩한만큼 원주민의 생활 양식을 존중하지 않고 강압적인 국가 주도 성장의 폐해가 여실히 존재한다고 비판하는 견해도 존재하며, 말레이인이 거주하던 지역에 중국계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인구밀도는 증가하였고 중국계 부유층에 대한 일부 말레이인 민족주의자의 범죄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