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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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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BHShRgH_RQk</yout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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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흐메트 6세의 즉위식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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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이자 마지막 [[파디샤]]이자 제101대 수니파 [[칼리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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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형이자 전대 파디샤인 [[메흐메트 5세]]가 '레샤트'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듯이 본인도 '바히데틴(Vahîdeddin)'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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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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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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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61년 아버지 압뒬메지트 1세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작은 형 압뒬하미트 2세 재위에 황실 하렘에서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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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사촌형 유수프 이제틴(압뒬아지즈의 장남, 압뒬메지트 2세의 형)이 사망하자 제국의 황태자가 되었다. 1918년에 57세로 즉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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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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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 대전]] 말기에 즉위했으며 [[1918년]] [[10월 30일]]에 무드로스 휴전 조약으로 [[오스만 제국]]이 패전한 이후 [[세브르 조약]]으로 몰락한 뒤에도 계속 파디샤 자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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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위 직후인 1918년 12월 통일진보위원회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술탄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의회를 해산한 후 자기 매형인 다마트 파샤를 대재상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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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5월에는 그리스군이 이즈미르를 점령하였으나 영국의 지지를 잃을까 두려워 묵인하였고, 이는 많은 청년 튀르크당 출신 장교들의 분노를 사게 되 무스타파 케말을 주재로 결집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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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소집된 의회가 케말이 소집한 국민의회의 결의를 정식으로 채택하자 1920년 3월 연합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하였고, 케말에 대한 체포령과 함께 궐석으로 사형을 선고한 후 수도에 남아있던 청년 튀르크당 인사들을 잡아들인 후 다시 의회를 해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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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이슬람 장로에게 케말의 행위는 반란이자 칼리프의 행위는 의무라는 파트와를 내게 했다. 그러자 케말은 앙카라의 이슬람 법학자에게 자신들이 이슬람의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는 파트와를 내게 했다. 이 시점까지만 해도 칼리프의 권위는 아직 살아있었다. 1920년 8월에는 세브르 조약에 조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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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튀르키예 독립전쟁]]에서 국민군이 승리하고 로잔 조약이 맺어지자 무력하게 술탄 직위에서 퇴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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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11월 18일 성전의 적(영국)에게 몸을 맡긴 자는 칼리프의 자격이 없다는 파트와에 의거해 칼리프 직위도 빼앗긴다. 다음 날 [[압뒬메지트 2세]]가 칼리프로 선포되었고, 이탈리아 왕국 산레모로 망명했다. [[1926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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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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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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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콧수염을 길렀으며, 역대 오스만 황제 가운데 안경을 쓴 처음이자 마지막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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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느 황제들 중 평상복이 아니라 군복을 입고 다녔다.
 
[[분류: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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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27일 (토) 16:13 기준 최신판

오스만 제국 제36대 파디샤
메흐메트 6세
محمد التىنجى | VI. Mehmet Vahîdeddin
Sultan Mehmed VI of the Ottoman Empire.jpg
출생 1861년 1월 14일
오스만 제국 코스탄티니예 돌마바흐체 궁전
사망 1926년 5월 16일 (향년 65세)
이탈리아 왕국 산 레모
(現 이탈리아 리구리아주 임페리아도 산 레모)
묘소 시리아 다마스쿠스 쉴레이마니야 타키야 모스크
재위기간 오스만 파디샤
1918년 7월 3일 ~ 1922년 11월 1일
재임기간 오스만오을루의 수장
1922년 11월 19일 ~ 1926년 5월 16일
서명
메흐메트 6세 서명.svg
[ 펼치기 · 접기 ]
부모 아버지 압뒬메지트 1세
어머니 귈뤼스튀 하늠 (출신: 압하스인)
배우자 에미네 나지케다 카든에펜디 (출신: 압하스인)
인쉬라흐 하늠 (출신: 우비흐인)
뮈베드뎃 카든에펜디 (출신: 압하스인)
아이셰 레일라 네브바레 하늠 (출신: 압하스인)
네브자데 하늠 (출신: 알바니아인)
자녀 메흐메트 에르투으룰 황자, 페니레 술탄, 파트마 울비예 술탄, 루키예 사비하 술탄
종교 이슬람 (수니파)

개요


메흐메트 6세의 즉위식 동영상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술탄이자 마지막 파디샤이자 제101대 수니파 칼리파.

셋째형이자 전대 파디샤인 메흐메트 5세가 '레샤트'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듯이 본인도 '바히데틴(Vahîdeddin)'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생애

즉위 전

1861년 아버지 압뒬메지트 1세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리고 그는 작은 형 압뒬하미트 2세 재위에 황실 하렘에서 지냈다.

그는 사촌형 유수프 이제틴(압뒬아지즈의 장남, 압뒬메지트 2세의 형)이 사망하자 제국의 황태자가 되었다. 1918년에 57세로 즉위하였다.

재위

제1차 세계 대전 말기에 즉위했으며 1918년 10월 30일에 무드로스 휴전 조약으로 오스만 제국이 패전한 이후 세브르 조약으로 몰락한 뒤에도 계속 파디샤 자리에 있었다.

즉위 직후인 1918년 12월 통일진보위원회의 권력을 약화시키고 술탄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해 의회를 해산한 후 자기 매형인 다마트 파샤를 대재상으로 임명했다.

1919년 5월에는 그리스군이 이즈미르를 점령하였으나 영국의 지지를 잃을까 두려워 묵인하였고, 이는 많은 청년 튀르크당 출신 장교들의 분노를 사게 되 무스타파 케말을 주재로 결집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새로 소집된 의회가 케말이 소집한 국민의회의 결의를 정식으로 채택하자 1920년 3월 연합국이 이스탄불을 점령하였고, 케말에 대한 체포령과 함께 궐석으로 사형을 선고한 후 수도에 남아있던 청년 튀르크당 인사들을 잡아들인 후 다시 의회를 해산한다.

또한 이슬람 장로에게 케말의 행위는 반란이자 칼리프의 행위는 의무라는 파트와를 내게 했다. 그러자 케말은 앙카라의 이슬람 법학자에게 자신들이 이슬람의 법도를 어기지 않았다는 파트와를 내게 했다. 이 시점까지만 해도 칼리프의 권위는 아직 살아있었다. 1920년 8월에는 세브르 조약에 조인했다.

하지만 튀르키예 독립전쟁에서 국민군이 승리하고 로잔 조약이 맺어지자 무력하게 술탄 직위에서 퇴위하게 된다.

1922년 11월 18일 성전의 적(영국)에게 몸을 맡긴 자는 칼리프의 자격이 없다는 파트와에 의거해 칼리프 직위도 빼앗긴다. 다음 날 압뒬메지트 2세가 칼리프로 선포되었고, 이탈리아 왕국 산레모로 망명했다. 1926년에 생을 마감하였다.

가족관계

여담

  • 콧수염을 길렀으며, 역대 오스만 황제 가운데 안경을 쓴 처음이자 마지막 인물이었다.
  • 여느 황제들 중 평상복이 아니라 군복을 입고 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