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주

카카오톡 가상국가인 대한제국의 세계관 공식 문서입니다. 문서편집,반달등을 전부 금합니다.
대한제국 제 3대 황후
박찬주
朴贊珠
박찬주.png
출생
1936년 4월 23일 (73세)
경기도 경성부
재임기간
대한제국 제 3대 황후
1948년 8월 15일 ~
[ 펼치기 · 접기 ]
본관
반남(潘南) 박씨
부모
부친: 박일서(朴日緖), 모친: 박원희(朴元熙)
배우자
이우
자녀
이청,이종

개요

박찬주는 대한제국의 교육자이자 사회사업가로, 대한제국의 개화파 정치가였던 박영효의 서손녀이다. 선황의 실질적인 맏며느리이다.

흥선대원군의 적장손인 이준용의 양자 이우의 부인으로 운현궁의 종부(宗婦)였으며, 대한제국의 제3대 황후이다. 또한 중앙여자중학교ㆍ중앙여자고등학교의 설립자이자 사립학교인 추계학원의 초대 재단 이사장을 역임하였다.

생애

1914년 12월 11일, 아버지 박일서(朴日緖)와 어머니 박원희(朴元熙)의 5남 3녀 중 장녀로 경성부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박영효는 철종의 딸인 영혜옹주의 남편, 즉 철종의 부마였다. 조선의 법도상 부마는 사별해도 재혼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영혜옹주는 박영효와 결혼한 지 3달만에 요절했다. 원칙대로라면 박영효는 재혼도 못하고 평생을 혼자서 살아야 했고 당연히 후사도 볼 수 없었다. 이에 고종은 그를 배려하여 특명으로 영혜옹주가 하가할 당시 몸종으로 데려갔던 궁녀들을 첩으로 삼을 수 있게 해주었는데, 그 중 한 명인 나인 범씨가 낳은 아들이 박찬주의 아버지 박일서이다.

박일서와 그의 자녀들도 원칙적으로는 서자, 서손이 되어야 했지만, 본처와 사별하고 재혼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박영효의 유일한 후사였기 때문에, 사실상 박일서는 적장자로 대우받았다.

1932년 3월 경성여자고등보통학교(현 경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이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일본 황족과 화족(귀족)의 딸들이 다니는 학교인 여자가쿠슈인에 진학하였다.

1934년 7월 11일, 궁내성 종질료(宗秩寮)에서 약혼을 인정하는 담화를 발표하였다. 결혼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이우 문서를 참고.

1935년 4월 17일, 혼인을 인정하는 쇼와 천황의 칙허가 발표되었다.

1935년 5월 3일, 박찬주와 이우는 도쿄 별저에서 결혼식을 올렸으며, 같은 해 6월 28일에 경성부로 돌아와 종묘와 능원을 참배하고 조선호텔과 운현궁에서 피로연을 열었다.

결혼한 지 약 1년 후, 1936년 4월 23일에는 장남 이청(李淸)이, 1940년 11월 9일에는 차남 이종(李淙)이 도쿄 별저에서 태어났다.

1938년경, 여성운동가이자 교육자인 황신덕에게 소유 건물을 희사하여 경성가정여숙(京城家庭女塾)의 설립을 도왔다. 이 때의 인연으로 광복 이후 추계학원의 초대 이사장이 되었다.

1945년 8월, 이우와 두 아들과 함께 운현궁에 거처하다가. 대한제국 임시정부가 이우를 황제로 추대하면서, 이우의 즉위 이후, 박찬주가 황후가 되었다.

1950년 4월, 추계예술대학교ㆍ중앙여자고등학교ㆍ중앙여자중학교ㆍ추계초등학교의 재단인 추계학원의 초대 이사장에 취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