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 대한 나의 근본적인 반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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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공부하다보면 필연적으로 친북 성향을 가진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된다. 그럴때마다 나는 가능한한 북한을 근본적으로 불신하고 반감을 가지는 이유를 이야기하곤 한다. 나는 북한의 도그마에 대한 근본적인, 본능적인 반감이 있다.

최근 김여정이 페이스북을 개설했고, 이게 사칭계정인지 아닌지에 대한 의견을 보았다. 나는 사실 그럴듯하다고 생각하고, 해외에서 활동하는 북한 인물들의 계정이 있으니, 사람들도 쉽게 믿은듯 하다. 그러나 나는 그 계정이 사칭이란걸 알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그 계정이 김정일의 사진첩을 만들며 제목을 "내 아버지 김정일" 이라 지었기 때문인데, 북한 정권의 성격과 내부 도그마와 전혀 맞지 않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김정은도, 김일성이나 김정일을 공식 석상에서 "아버지(부친)" "할아버지(조부)" 라고 표현하지 않으며, 김여정 역시 공식석상에서는 김정은을 가리켜 "원수님"이라고 이야기한다.

북한에서 김정은은 "국가인격"의 현현이자, 국가를 위해 자신의 사적 인격을 포함한 권리를 모두 희생한, 초인적 철인으로 묘사된다. 김정은이 북한 사회에서 특별하게 취급되는 이유는, 국가는 한 몸이요, 당은 장기이고, 수령은 몸의 인격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의 조직들이 전체 구성원을 김정은으로 대표되는 인격에 일치화함으로서 하나의 "영혼"을 구성한다. 이와 같은 북한 정권의 도그마는, 북한이 사회주의 정권을 표방하며 내세를 부정함에도 불구하고, "수령님은 영원히 우리와 함께 살아계신다" 는 구호를 내세우는 이유이다. 북한은 수령의 몸은 죽었어도, 수령의 인격은 끝까지 조선이라는 몸의 인격으로서 세대와 세대를 넘어 계승된다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와 북한의 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을때, 북한이 외무성 성명으로 비웃는 뉘앙스의 글을 올린적이 있었다. 그 성명에서는 "만약 수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그러한(친근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한들, 국가의 중대사에서 사적인 감정으로 결정하겠는가"라는 대목이 있었는데, 이러한 북한의 모습들은 김정은이 북한 사회 내에서 어떠한 위상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기반한 조직은 매우 도그마적이고, 촘촘하며, 강력하다. 북한은 집단주의를 극단으로 끌어낸 국가이며, 종북주의자들이 북한을 보며 감격(..)을 하는 이유는 바로 북한의 이러한 부분이겠다. 중국보다도 더 근본적이고 철저하고, 흔들림없는 온 사회가 한 방향으로 일치된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북한을 보며 혐오감을 감출수 없는데, "왜 그 철인이 김정은이어야 하는가" "수령의 무오류성은 누가 보증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북한도 "백두혈통" "선대 수령들의 무한한 애국정신의 게승" 같은 이야기를 제외하면 명쾌하게 과학적으로 내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북한측이 가장 진보적으로 낼 수 있는 이야기란, 천주교가 교황무류설을 옹호하는 논리와 비슷한 종교적 논리에 가까울 것이다. 쉽게 "세포로부터 모아진 인민의 뜻이 즉 수령의 뜻이므로 이는 결코 무오류하다" 정도겠다. 삶은 소대가리도 이것이 비과학적이라는 것은 알 것이다. 아니, 이미 "오류"를 이야기하는 시점에서 더이상의 과학적 토론은 불가하다.

게다가 과학적으로 따지면, 생물들의 "이성"이 꼭 "생존"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은 단일한 인격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념과, 가족, 신념, 또는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자, 때때로 죽음이라는 것을 선택하기 마련이다. 이와같이, 개인의 인격도 "이성적 판단"에 의거하여 몸을 죽음으로 이끌수 있는데, 수령으로 대표되는 국가인격은 무오류하며, 근대적인 효율성에 근거한 최선의 결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인가? 주체사상이 내세우는 개인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 수령님 두리에 모임으로서 보장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나는 과학적 바운더리를 넘어간 이념을 구심점으로 내세우는 집단주의의 폐단을 알고 증오한다. 나 역시 김일성 족속을 잉태시키고 사상적 모티브를 제공해주었던 "개신교"의 핵심적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리고 극단적 일치성, 주권, 조직성과, 거듭남, 소명등을 강조하는 칼비니스트 논리가 얼마나 개인을 말살시키고, 인격을 황폐하게 하는지를 알고 있으며, 내부적 도그마에 의해 합리적 물증이 무시되기에 어느 조직보다 비효율적이고 극단화되기 쉬운지를 안다.(그들의 도그마로부터 벗어난 지금까지도 나는 청교 도덕률의 잔재를 벗어나지도 못했고 지금은 그냥 장로교의 도덕률과 사상을 지키며 그저 체념하는 상태에 있다. ㅡ 장로교가 비록 좆그지같아도 이 시대의 리버럴보다는 그나마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나. ㅡ 북한과는 달리 장로교는 오늘날 과학에게 두들겨 맞기라도 하고 말이다.)

비합리적인 것을 원동력으로 삼는 집단주의는 언제 극단으로 폭주할지 모르는 기관차와 같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과학적인 증거에 기반한 이성으로부터 도출되는 집단주의가 아니라면, 그것은 그저 세계에 어떠한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는 전근대의 잔재이며, 언제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기만적 종교국가일 뿐이다.

그러니 나는 친북 성향의 사람들이 만날때마다, 이와같은 내 관점을 이야기하며, 북한에 대해 냉정하고, 과학적으로 판단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